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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중보기도자,, 리즈 하월즈
리즈 하윌즈는 1879년 웨일즈에서 열 한명의 형제 중 여섯번째로 태어났다.
철공소에서 일하시는 아버지 밑에서 넉넉지 못한 생활을 하였지만,
경건과 사 랑이 가득한 집에서 신앙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세상적인 즐거움에도 아주 흥미가 없었고 예수님을 거스리는 죄를 짓는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22세 때에 돈을 벌고자 고향을 떠나 미국에 가서도 리즈는 교회에 다니며
경건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죄 가운데서 태어났으며 참으로 구원이 필요한 상태에
있음을 깨닫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그가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 마저도 리즈를
'전 교인 가운데 가장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때 하나님은 사촌 에반을 통해
개입하셨다. "리즈 너는 구원의 확신이 있 니?" 라는 에반의 질문에 갈등했고
자신이 그저 크리스챤으로서만 만족하고 있 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때쯤, 리즈는
장티푸스라는 치명적인 병에 걸리게 되 었다.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 갖은 두려움 가운데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매달리 는 순간, 이 때까지 돈을 버는 일과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일 등에서
느꼈던 즐거움을 회개하고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신다면 자신의 인생을 주님께 드릴 것을
서원기도하였다.
회복되는 동안 리즈는 예수님의 성육신과 구속과 부활을 항상 믿어왔지만
이 것이 그의 삶에 실효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자신이 믿고 있는 그 리스도가 오직 역사 속의 그리스도였을 뿐
개인의 구주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 그리고 모르스 르우벤이라는 한 회심한 유대인의
전도 집회를 통해 십 자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리즈대신 죽음을 당하신 예수님을 모르고
죽음 의 공포 속에서 살아온 자신을 발견하고,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깨닫게 되었 다.
그리고 27세에 랜드린다드 사경회를 통해 성령 안에서 사는 삶에 대한 설교 를 듣고
그리스도께서 몸을 입고 오사 이 땅에 사셨던 것처럼 성령도 우리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사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분은 당신 의 삶과 내 삶에 같이 공존하지 않는 것임을 명백히 하셨다.
나는 그분이 내 안에 들어와 거하시게 될 때 나에게 주시고자 하는 그 영광을 보았다.
하지만 내게는 소중한 것들이 많이 있었다. 그분이 이 어떤 것 하나도
그대로 용납해 두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나의 허무한 본성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십자가 앞에 내어놓아야만 할 것이다. 그러면 그분은
당신 자신의 삶, 당신 자신의 본성을 심어주실 것이다." 그것은 무조건 적인 굴복이었다.
이 '랜드리다드의 체험'이 고비가 되어 그후 리즈에게는 성화의 과정이 찾아왔다.
성령께서 리즈 하윌즈 안에서 새로 갈아야 했던 맨처음 땅은 '기도생활'이라 는 땅이었다.
기도란 곧 내가 너에게 모든 것을 준다는 의미이다. 기분 내키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기도하지 말고 오직 성령께서 주시는 기도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성령께서 그를 통하여 하신 첫번째 기도는 Will Battery라고 하는 한 젊은이 를 위한 기도였다.
그는 술기운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요 더럽기 짝이 없었으며 모든 사람이 외면하는 사람이었다.
리즈는 자유 시간을 이용하여 먼저 이 사람 을 친구로 사귀며, 주일날이면 하루 종일 그와 함께
보냈다.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왔지만 그는 3년 동안 그를 위해 기도하며 함께 하며
모든 필요를 실질적 으로 채워 주었다. "이렇게 하여 나는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여
한 사람을 사 랑하게 되었다. 한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때 많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때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었습니 다."
성령께서 리즈를 통하여 하신 두번째 놀라운 기도는 짐 스테익스라는 사람을 위한 기도였다.
이 일은 성령께서 리즈에게 '후히 내어주는 것'에 대하여 처음 으로 가르쳐주신 사건이기도 했다. 리즈가 이 사람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던 중 이 사람은 구원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다 내놓겠다고 주님께 기도하던 중에 그에게 2년치의 방세가 밀려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갚아주면서 짐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까지도 그의 '후히 내어주는' 모습 앞에서
완전히 깨 어져 버려 주님의 사랑을 영접케 된것이다. 그리고 오두막집 모임이 이들 부부 의 집에서 시작되어 매주 사람들이 참석하며 가장 포악하다는 사람들도 상당수 거기서 주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리즈 안에 있는 한가지 단순한 욕망을 손대기 시작하셨는데 그것은 바로
식욕이었다. 한번은 리즈가 어떤 집회를 앞두고 마음에 커다란 부 담을 안고 있었을 때
주님은 리즈에게 하룻동안 금식하며 기도할 것을 요구하 셨다. 이는 지금까지 안락한 집과
하루 네 번의 식사에 익숙해 있던 그로서는 커다란 갈등이었다. 하지만 점심을 먹고
방으로 돌아오자 그는 성령께 불순종 했다는 생각의 괴로움에 눈물로 회개케 되었다.
그날 이후 리즈는 많은 날 동 안 저녁을 먹지 않으면서 그 시간을 하나님과 함께 보냈다.
"우리 마음이 계속 어떤 것에 연연하게 된다는 것은 아직 우리가 그것을 원하고 있다는
얘기입니 다. 일단 그것을 그분께 돌려 드리면 그분은 그것을 다시 우리에게 되돌려 주 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되돌려 받아도 이제 우리는 더이상 그것에 연연해하 지 않게 됩니다."
주님은 리즈에게 부랑자들에 대한 부담을 주셨다. 즉 성령께서 사랑스럽지 않은 사람을
사랑하는 삶의 수준으로 끌어 올려 주시기 위함이었다. 리즈는 그 들이 어떻게 느끼는 지를
조금씩 배워야 했고, 그들이 앉아 있는 그 자리에 가 서 앉는 법을 배워야 했다.
리즈는 광부로서 고된 일을 하고 있었지만 그들과 똑같이 하루 두 개의 빵과 치즈와 수프만 먹었다. 그리고 부랑자들의 실질적인 필요를 채워 주었고 급기야는 자신의 집도 부랑자들을 위해
내어주었다.
또한 주님은 리즈에게 새로운 도전을 하게 하셨다. 개인적인 접촉이 전혀 없 이 기도만을 통해서
한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었다. 이 일을 하기 위 하여 성령께서는 요15:7 말씀을 주시고
약속은 제한이 없지만 그 성취는 거함 에 달려 있음을 알려 주셨다. 이 '거함'을 늘 유지하기 위하여 날마다 중보기 도 시간 동안에 따로 시간을 떼어서 온전히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를 통해 그저 살피고 중보기도만을 통해 한 자매 영혼을 구원에 이르게 하였다.
또한 주님은 리즈를 폐병을 위한 중보기도로 인도하셨다. 중보기도자로서 이 제 리즈는
그 병자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야 하며, 자기가 위해서 기도하는 그 사람과 같이 아파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대신 내어주기까 지 서원하면서 3개월 동안 기도하였다.
그러나 3개월 후, 주님은 갑자기 그 여자를 데려가셨다. 그리곤 리즈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의 중보기도는 받아들였지만 그러나 너의 생명을, 지금 취하지는 않겠다. 그대신 나는 너를 살아있는 순교자로 사용하기 원한다. 나는 '살아있는 순교자'라는 말은 이전에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주님은 내게 다음 사실을 분명히 해주셨다. 즉,
내가 과연 내 생명에 대한 권리를 주님께 완전히 이양해 드렸다면,
이제 나는 꼭 죽어야만 한다는 내 입장까지도 다 버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성령께서 리즈에게 점진적으로 계시해 주셨고 또 이처럼 그의 전 생애의 사 역에 있어서
주요한 원동력이 되었던 가장 핵심적인 진리는 바로 중보기도의 진리였다. 랜드리다드 사경회에서 자신을 성령께 완전히 내어드릴 때부터 시작 해서 폐병에 걸렸던 그 여자를 도와야 했던
그 일에 이르기까지 성령은 리즈에 게 중보기도의 의미를 점점 더 분명하게 가르쳐 오셨다.
하나님은 중보기도자를 찾으시지만 이 세상에 그러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것은 이사야를
통해서 주신 당신의 가슴 아픈 선포의 말씀에 너무나 잘 나타나 있다.
"그가 사람이 없음을 보고 중재자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 또한 에스겔을 통해서 주신
실망에 찬 말씀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이 땅을 위 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 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고로" 하시는 주님의
안타까운 음성이 나와 있다.
보통 평범한 기도에는 꼭 필요하지 않지만 중보기도자라면 공통적으로 가지 고 있는
세가지 요소가 있다. 그것은 동화(하나가 되는 것), 고통, 권위이다.
동화는 중보기도자의 제 1법칙이다. 주님의 기도가 효험이 있는 것은 당신이 기도해 주시는
그 사람들을 위하여 당신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자신의 유익을 모두
내버리시고 오직 우리의 필요와 우리의 가난만을 생각하셨다. 그리고 최대한 글자 그대로
우리의 자리를 대신하셨다. 성령은 당 신이 택한 그릇을 그런 중보자의 삶으로 인도하시기 전에
먼저 그들에게 있는 모든 세상적인 것들을 밑바닥까지 깨끗이 처리하셔야만 한다.
돈을 사랑하는 마음, 개인적인 야망, 부모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인간적인 애정,
육신의 욕구들, 인생 자체를 사랑하는 마음, 회심한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이나 자신의
안락이나 자기의 이익이나 자기 발전이나 자기의 교분이 있는 모임을 위해서 살게 만드는
그 모든 것들, 이런 모든 것들이 다 십자가 아래 내려 놓 아져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론적인 죽음이 아니라, 진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을 뜻한다.
참으로 이런 자가 성령의 종이며 이런 자의 삶을 통해서는 오직 성령만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십자가에 못박 히는 삶이 계속될 때 중보기도는 비로소 시작된다. 그러나 여기엔
온전한 순종 이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내적인 씨름과 신음이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주님의 말씀은 임하는 것이다.' 연약한 그릇이 성령 의 권세로 옷을 입고
구원의 말을 선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새로운 은혜의 자리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는
'믿음의 선물'과는 다른 '믿음의 은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보통 일반적으로 하는 기도는
선하신 하나님께서 우 리에게 뭔가 주실 것을 소망하는 기도이다. 그리고 그것을 주시면 기뻐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언제 기도해도 그와 똑같은 응답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힘이나 권세가 없다. 그와는 달리, 어느 특정 영역에 대한 중보기도의 자 리를 얻게 된
중보기도자가 있다면, 그는 '믿음의 은혜' 차원에 들어간 것이 다. 리즈에게는 병든자들의 아픔이 곧 자신의 고통이었다. 그래서 그는 마치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처럼 그들을 위해서
간구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중보기도이다.
리즈는 아침 7시부터 저녁 4시 반까지 탄광에서 일하고 직장 일이 끝나면 매 일밤 집회에 참석했고 두번은 심방을 가서 모임을 가졌다. 그래서 그의 유일한 기도 시간은 집회 장소까지 3km를 걷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기도하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너무도 실재로 느껴져 리즈는 늘
모자를 벗곤 했다. 하지만 낮에는 리즈도 어떤 경우라도 모자없이 다니는 일은 없었다.
당시엔 탈모군단 이란 아직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은 얼핏 보기에는
사소한 습관 같아 보 이지만 실은 성령께서 그를 사람들의 반응에 대하여 죽게 하는데 사용한
첫번 째 도구였다.
또한 주님은 리즈로 하여금 대중사역에 손을 떼게 하심으로 밖으로 드러나는 성공적인 삶을 통해서뿐 아니라, 숨은 인생을 통해서도 그와 똑같은 기쁨을 맛 볼 수 있는 자로 빚어가셨다.
리즈는 친구에게 사역팀을 넘겨준 뒤, 런던에 있 는 고셋씨의 아들의 구원을 위한 중보기도를
맡게 되었다. 고셋씨의 아들은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사람이었으며 이후로도 만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 다. 그러니 그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었다. 오직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길밖에 없었다. 주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것이 너의 중보기도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이제 리즈는 사람들과 상대 하여 일하는 것을 일체 그만두고
오직 하나님만 움직이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리즈는 주님 안에 거하기 위해서 하루 두끼만 먹었고, 기도하는 자세로 생활 (이는 모자를 안 쓰는 것), 사역 팀의 모든 외적인 사역을 그만두고
집회에도 참석치 않고 매일 저녁 세 시간을 무릎을 꿇고서 처음 두 시간은 말씀을 읽고,
다음 한 시간은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투쟁을 하였다.
그러던 중 성경을 읽다가 주님은 민6:2-6 말씀을 통해 이 중보기도 기간동안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모든 날 동안 삭도를 대지 말 것을 들려주셨다. 처음엔 리즈도 이렇게 살 바에야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였다. 그 시대 모자를 안 쓰 고 다니는 것만 해도 충분했다. 그런데 여기에 다가
머리도 수염도 안자르는 거지중에 상거지같은 지저분한 생활이라니... 이는 엄청난
자기부인이었다. 그 러나 성령께서는 계속 말씀하셨다. "네 안에 세상이 없다면
어떻게 세상이 의식될 수 있느냐? 세상이 어떻게 죽은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단 말이냐?
이제 네 안에서 이것이 뿌리 뽑힐 때까지 너는 나실인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6개월 동안을 나실인으로서 살고 나자 주님은 그에게 이제 중보기도 가 응답되었다는
확신을 주셨다. 그리고 이 중보기도의 완전한 응답 소식을 들 은 것은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뒤였다. 그리고 리즈에게 있어 또 하나의 큰 체 험은 30년이나 넘게 누워 있었던 불구의 몸인
외삼촌이 낳을 것이라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4개월 반 후에 치유가 된 것이다.
폐병에 걸렸던 그 여자의 경우 리즈의 중보기도는 6개월이라는 길고긴 싸움 후에야 응답되었었다. 그러나 "한번 응답 받은 중보기도는 곧 그 중보기도의 자리를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성령께서 원하신다면 이후 어떤 경우에라도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리즈는 인도의 어린 과부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감당케 되었는데, 누군가를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려면 바로 그 사람처럼 살아야만 한다는 중보기도의 법칙아래 리즈는 식사량을 줄여서 이틀에
거의 돼지밥과 같은 오트밀 한 끼 분 량만 먹어야 했다. 이런 그의 4개월 동안의 중보기도를 통해
1949년 인도가 독 립되고 새 헌법이 제정되면서 과부들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하여
상속법 조항에 최소한의 법률적 변화가 생기게 된 것은 의미심장한 사실이다.
그리고 때가 되자 광부의 일을 내려놓고 오로지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고자 하는 방향을 잡게
되었다. 그리고 옛날 사역팀에서 같이 일했던 엘리자베스 한 나 존스와 결혼하고
본격적인 사역의 길로 들어선 리즈 하월즈는 신학대학에 입학했고 한 교회의 제의를 받아들여
설교자로서의 일을 시작하였다. 그 즈음 아프리카에서 선교하고 있는 친구 부부를 위한
기도의 부담을 느끼고 있던 리즈는 그 부부에게 딸 아이가 태어난 소식을 듣고 그 아기를 대신
키울 결심을 하게 된다. 아프리카의 기후조건은 신생아의 건강에 매우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결정은 함께 일하던 아내가 사역을 완전히 내려놓아야 함을 의미했지만
그들을 돕겠다는 리즈 부부의 마음은 동일했다.
“그들이 선교지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고 있다면 우리는 그 아이에게 생명을 내어 주겠다!”
하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전혀 예기치 않은 방향이었다.
몇달 후 본국을 방문한 그 선교사는 진심으로 감사하면서도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참석한 한 선교집회에서 리즈는 아프리카를 향한 환상을 보게 된 것이다.
물론 그는 전에도 선교지의 필요에 대해 많이 들어 왔고 또 이미 오랜 세월 동안 세계복음화를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기도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절박한 필요를 직접 눈으로 보는 것처럼
느낀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들은 마치 목자없는 양처럼 그 앞에 서 있는 것이었다.
이 의외의 부르심 앞에서 리즈는 무척 당황스러워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선교지에 나간다는 것은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 게다가 얼마 전 그들 부부에게도 아기가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 이제 너는 네 아들을 바침으로
저 아프리카의 영혼들을 네 친아들보다 더 사랑한다는 사실을 증명해보여야 한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그 아들을 다른 사람에게 입양시키고 다시는 부모로서의 권리를 요구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그는 돈이나 건강, 그 밖의 다른 것들을 드리는 것에 대해서는 익히 잘 알고
있었지만 이것은 너무도 고통스러운 시험이었다. 리즈는 그때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의 이름을
사무엘이라고 부르게 하신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이 아이는 한나의 아들처럼 이미
제단에 바쳐질 운명이었던 것이다.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하는 리즈의 심정은 한없이 착잡했고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볼 때 그의 마음은 산산조각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일은 아기를 입양시키는 날 사무엘의 옷가지들을 준비하고 있는
아내의 심정이 리즈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오는 일이었다.
사무엘이 간 것은 단지 집만 비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도 텅 비게 하는 것이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온 리즈는 아내에게 어떻게 그 일을 감당할 수 있었는지 물었다.
아내는 혼자 울면서 이 찬송가를 많이 불렀다고 대답했다.
“주의 제단 위에 모두 바치기 전에는 그 사랑에 대한 보답 증명할 수 없네!”
하월즈 부부는 이처럼 갈보리에 아들을 내어놓으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아프리카를 향한
소중한 값 지불을 온전히 감당해냈다. 그때 주님은 다음과 같은 약속의 말씀을 주셨다.
“너희가 나를 위해서 포기한 그 모든 것들에 대하여 내가 100배로 갚아 주겠다.
특히 이번 경우에 대해서는 아프리카의 수천 수만의 영혼들을 달라고 주장해도 좋다.”
(한편 하월즈 부부가 하나님께 바친 사무엘은 양부모의 사랑 속에서 훌륭하게 성장하여
옥스퍼드에 진학했으며 대학을 졸업한 후 친 아버지 곁으로 돌아와 그가 설립한
웨일즈 성경대학에서 봉사하였고 그의 아버지가 본향으로 부르심을 받은 후
아버지를 이어 성경대학의 학장이 되었다. 하월즈 부부는 아들을 다시 얻기 위해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양부모의 기꺼운 동의 가운데
그를 되돌려 주신 것이다.)
본격적인 선교 준비에 들어간 하월즈 부부는 의학과 약학 공부를 시작했다.
사람들은‘그토록 놀라운 병고침의 은사들을 받았는데 굳이 의학을 공부해야 하는가’하고
의아해 했지만 이것은 중보기도의 삶을 살면서 발견한 원리 즉 인간의 힘이 다한 곳에
하나님의 일이 시작된다는 영적 법칙으로부터 나온 행동이었다.
그리하여 1915년 7월 하월즈 부부는 드디어 남아프리카 선교회 소속으로 포르투갈령 가자랜드에
도착하게 되었다. 이 지역은 전임자가 여러 해 동안 인내와 눈물로 생명의 씨앗을 뿌린 곳으로
이미 사람들의 마음밭이 준비되어 추수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리즈는 집회가 열릴 때마다 자신이 웨일즈에서 체험한 부흥에 대해 이야기했고 성령님은
이곳에서도 똑같이 행하실 수 있는 분이라고 가르쳤다.
6주가 지나자 크리스챤들의 마음에는 부흥의 열망으로 가득차게 되었고 드디서 10월 10일 주일
저녁예배 때 자신이 성령을 맞을 준비가 되지 않은 죄인임을 깨닫고 3일 금식을 하고 있던
한 어린 소녀에게서부터 시작하여 5분이 채 못되어 온 회중에게 임하셨다.
사람들은 마치 폭풍과도 같은 강력한 역사 앞에서 흑인, 백인, 교사, 전도자 할 것 없이
모두 울며 자기 죄를 고백했고 선교사들도 감히 말을 잇지 못하고 그들과 함께 울고
기도할 뿐이었다. 이날 예배는 일주일 동안 쉴새없이 계속되었고 일주일이 다 지났을 때는
모든 사람들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가자랜드의 부흥 집회는 매일 두 차례 집회를 가지고 금요일은 하루종일 집회를 가지는 식으로 15개월 간이나 계속되었다.
이것은 웨일즈 대부흥 때도 볼 수 없던 장면이었다.
가자랜드의 부흥집회가 끝났을 때 남아프리카 선교회 선교본부에서는 모든 지부에 매일 아침 30분 동안 가자랜드에서 일어난 것과 똑같은 축복이 임하게 해달라고 기도할 것을 요청했으며
리즈 하월즈에게 각 지부를 순회하며 부흥을 일으키는 사역을 부탁했다.
리즈는 이 요청 앞에서 심각한 격전을 치러야만 했다. 사탄은 그에게 선교지에 온 지
2년 밖에 안된 일개 초임선교사가 서로 언어도 다르고 거리도 수백 km나 떨어져 있으며
어떤 곳은 돌밭처럼 전혀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은데 어떻게 부흥을 이곳에서 그곳으로
옮겨갈 수 있느냐고 끊임없이 공격했다.
그는 자기 안에서 자기와 함께 가시는 성령님이 바로 오순절의 주인이요 부흥의 근원이심으로
인간이 부흥을 이 지부에서 저 지부로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다고 선언함으로 승리하였다.
한 지역에서 당겨진 부흥의 불은 이제 거대한 불꽃이 되어 아프리카 전역에서 활활
타오를 준비가 되고 있었다.
어떤 경우에는 세 명의 통역자들이 통역을 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것도 성령의 역사를
막지는 못했다. 그가 말씀을 전할 때마다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았으며
주의 이름으로 안수할 때 즉시 치유를 얻는 역사가 계속되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힘으로도 되지 않고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며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말씀하신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하여 2년 간에 18,000km를 지나가는 대 장정 동안 성령 하나님은 약속대로 각 지부마다
부흥을 쏟아 부어주셨으며 수천 수만명의 영혼을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의 말씀을 성취하셨다.
하지만 이 큰 부흥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기혼남자들 중에 회심한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일 경우 딸을 결혼시킬 때 남자로 부터 받게 될
‘라볼라’라는 엄청난 지참금을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월즈선생은 그들을 자유케 하기 위해서는 먼저 라볼라라는 뿌리깊은 악습으로
그들을 묶고 있는 강한 자 사탄부터 결박해야 함을 깨닫고 영전쟁을 선포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놀라운 방법으로 이 기도에 응답하셨다.
제 1차 세계대전 직후 전세계를 휩쓸어 수백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혹독한 유행성 감기가
리즈 하월즈가 있는 가자랜드에도 덮쳐왔다.
마술사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가자 다급해진 추장은
신자들이 피신해 있는 선교회에 사람들을 보내어 그곳의 사정은 어떤지 물어왔다.
그때 성령이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들에게 선교회에서는 아무도 죽지 않을 거라고 말하라!”
이와 같은 선언은 비록 그가 하나님이 생사의 주인되심을 여러 차례 경험했었지만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지금까지 싸워왔던 죽음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큰 규모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믿음으로 그들에게 선교회에는 아무도 죽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몇일 후 추장은 다시 사람을 보내어 앞으로 정말 단 한명도 죽지 않을 것인지 확인하고
자신들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 이곳으로 와도 되는지 물었다.
리즈는 누구라도 유일하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이면 다 선교회에 올 수 있고
오는 사람은 아무도 죽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곧 머리에 담요를 뒤집어 쓴 병자들의 행렬이 선교회를 향해 오고 있었다.
그들은 복음에 강퍅했고 제일 애를 먹이던 기혼 남자들이었다.
하월즈는 석달 동안 사람들을 돌보느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다.
이때 영국에서 받았던 의학교육이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한꺼번에 50명이 감염되어 쓰러진 적도 있었고 어떤 환자들은 아무리 애를 써도
계속 사경을 헤매었다. 하월즈 여사도 고된 일을 하다가 그 병에 걸리고 말았고
리즈 자신도 과중한 노동과 수면부족으로 감염의 기운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 순간에도 성령님이 죽음보다 더 강하다는 사실을 확실히 붙잡고 찬양할 수 있었다.
결국 이 무서운 독감 중에서도 선교회에 와 있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단 한사람도 생명을 잃지
않았다. 하나님이 죽음보다 더 강하다는 이 소식은 곧 전 지역에 쫙 퍼졌고 전염병이 지나가자
교회당 한쪽은 악습을 버리고 주님께로 돌아온 기혼 남자들이 완전히 다 메우게 되었다.
이들은 전도팀을 구성하여 인근 국가로 선교여행을 떠나기도 했고 모진 고문과 핍박 속에서도
순교로 자신의 신앙을 고수했다.
1920년 리즈 하월즈 부부는 큰 승리의 체험을 안고 영국으로 돌아왔다.
부흥에 대한 리즈의 간증은 커다란 도전을 몰고 왔고 가는 곳마다 엄청난 영적 축복이 임했다.
선교회 이사회에서도 그를 자유연사로 지명하여 향후 5년 동안 세계 도처를 돌아다니면서
이 특별한 성령의 역사를 간증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헌신하면서 포기했던 세계 일주의 꿈을 주님은 이렇게 놀라운 방법으로 보상해주신 것이었다.
그런데 그의 삶에는 또 한번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부르심이 찾아왔다.
그즈음 리즈는 한 목사님이 제안에 따라 1차 대전 후 주님께 헌신하고 있는 많은 젊은이들을
훈련시킬 수 있는 대학 수준의 훈련기관을 세워주실 것을 기도하고 있었다.
자신도 아프리카에 있는 동안 훈련된 일꾼의 부족을 너무도 절감했던 터였기에
이 기도는 매우 간절한 것이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대학을 세울 것이다. 그것도 너를 통해서 말이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 금 삼천 달란트(대상 29:4)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 액수는 성경 난외 주에 당시 돈으로 6,150파운드에 해당한다고 설명되어 있었다.
일개 광부 출신의 자신을 통해 대학을 세우시겠다는 충격적인 말씀 앞에서 그는 감히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가 미국의 무디 성경학교를 방문했을 때 주님은 리즈 하월즈에게 다시 한번 확실히 물으셨다.
“내가 너를 통하여 웨일즈에도 이와 같은 대학을 세울 수 있다고 믿느냐?”
“예, 주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그 순간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었다. 성경대학은 바로 그때 이미 세워진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리즈에게 대학을 향한 당신의 비전을 점점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것은 30년 안에 당신의 통로로 쓰실 사람 10,000명을 세우시는 일을 위해 직접 일꾼을
키워내거나 중보기도로 세계 도처에서 일꾼을 일으키는 사명이었다.
리즈 하월즈는 평생 그를 떠나지 않는 비전이자 부담이 된 세계복음화를 위해 사람을 길러내고
책임지고 중보하는 사람이 되게 된 것이다.
사탄은 쉴새없이 그에게 돈도 없고 업무 경력도 하나 없으면서 그저 제멋대로 일을 벌려 놓기만
한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그 비전을 확고히 붙잡고 나갔다.
하루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대학이 세워질 부지를 보여 주시면서 계약을 하라고 명하셨다.
그것은 어림잡아도 1만 파운드는 될 것 같은 엄청난 성이었는데 그때 그가 갖고 있던 돈은
2실링이 전부였다. 처음에 리즈는 그 성의 초인종을 누를 힘조차 없었다. 하지만 결국
이 성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정확하게 채워진 6,150파운드의 대금으로 먼저 1만 파운드 이상을
주겠다고 제시한 경쟁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웨일즈 성경대학의 부지가 되었다. 이것은 비록
소유주라도 하나님께서 쓰시겠다고 하면 아무 말도 할 수 없음을 똑똑히 보여주는 표적이었다.
1924년 웨일즈 성경대학의 개교일이 되자 경제 불황과 통화량의 부족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이 놀라운 일을 직접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한 교수는 자신은 여기 오기 전까지만 해도 불신자였는데 이 대학을 보면서
신자가 되었노라고 간증했으며 언론들은 이사회나 종교제단 같은 배후가 전혀 없음을 발견하고
이 학교를‘하나님의 대학’이라 보도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
이렇게 세워진 웨일즈 성경대학은 하나님께서 리즈 하월즈에게 주신 비전대로 장차 일어날
선교 대부흥을 준비하는 일에 귀하게 사용되었다.
1936년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리즈 하월즈는 학생들에게 중보기도의 용사가 될 것에 대해
강력하게 도전했다.
“하나님은 중보 기도자를 부르고 계십니다. 정말 전선에서 적을 대항하여 싸우는 것처럼
마귀와의 싸움에 자기의 생명을 제단 위에 올려드릴 수 있는 사람을 찾고 계신 것입니다.
이 전쟁의 승패의 책임은 바로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전선에서 싸우는 병사들이 결코 여러분보다 더 많은 일을 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세계가 평화를 되찾게 될 때까지 여러분도 결코 평화를
누려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전쟁이 끝날 때까지 몇년 동안 대학은 매 저녁 7시부터 자정까지 기도를 쉬지 않았다.
그들은 악의 권세들이 복음전파의 자유를 방해하는 곳을 찾아서 전략적으로 적과 맞섰다.
크리스천 국왕의 영향으로 선교의 문이 열려 있던 에디오피아가 뭇솔리니의 침공 위기에 있을 때 그들은 마치 에티오피아가 자기 나라인 것처럼 금식하며 하나님께 간구했다.
하지만 에티오피아는 이탈리아 군대에 의해 함락되었고 그들의 기도는 수포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은 완벽했다.
영국으로 피신한 에티오피아 국왕은 이 성경대학을 찾아와 그들의 중보기도에 깊은 감사를 전했고 왕실의 자녀들은 이 학교에서 교육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1941년 에티오피아의 국권이 회복되었을 때 선교사들은 이탈리아 점령기간에도
신자의 성장이 40배 이상 이루어져 있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고 감격하게 되었다.
또 한가지 기도응답의 놀라운 간증은 유대인들을 위한 기도이다.
웨일즈 대학의 중보기도자들은 이 전쟁을 통해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복음이 만민에게 증거되게 하시어 주님께서 다시 오실 준비를 하게 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북아프리카의 정세는 반대로 심히 어두웠으며 롬멜의 독일군 전차부대는
이집트의 관문인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하기 일보직전까지 와 있었다. 만약 이집트가 무너지면
팔레스타인이 독일군의 손에 들어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알렉산드리아를 지켜달라고 간구했다. 바로 그때 알렉산드리아
전투에서는 북아프리카 정세를 완전히 뒤바꿔놓는 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래는 당시 아프리카 영국 제 8군 물 공급 책임을 맡았던 레이너 소령이 그의 책
「전쟁터로 연결된 송수관」에서 알렉산드리아 전투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해 자세히 증언하는
내용이다.
롬멜 군을 대항하기 위해 남아 있는 영국군 잔류 병력은 겨우 탱크 50문 소총 20정으로 무장한
약 5000명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비해 독일군은 훨씬 우수한 무장으로 점점 더 목을 죄어오고
있었다. 결전의 그날은 흙먼지와 물부족으로 아군은 탈진할 대로 탈진해 있었고
10분만 지났어도 우리는 투항하거나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독일의 아프리카 주둔 군대의 기수로 알려진 제 90라이트 기갑사단 소속 병사들 1100명이 전부 다 손을 들고 모래밭을 엉금엉금 기어서 투항해온 것이다.
그들은 살갗은 숯처럼 검었고 잔뜩 부풀어 오른 혀는 입에서 나와 축 늘어져 있었다.
이유는 이러했다.
이 부대는 몇일 전 영국군 지경 내로 몰래 잠입해 지름 15cm의 송수관을 발견하고 관에 구멍을
뚫고는 물을 한없이 마셨다. 그런데 갈증으로 인해 미각이 마비되어 있던 독일군은 양껏
마실 때까지 바닷물이라는 사실을 감지해 내지 못했다. 그 송수관은 그때 막 묻은 것으로
관의 성능을 시험해보기 위해 바닷물을 흘려보내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만약 그 부대가 하루 전에 이 송수관을 발견했다면 텅 비어 있었을 것이고 이틀 후에 발견했다면
깨끗한 식수를 충분히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기갑부대의 투항은 알렉산드리아 전투의 한 결정적인 승인이 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우연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사건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이 우리에게 개입하신 것이 너무나 분명하다.
그분은 우리가 위기에 처해있을 때 친히 찾아오사 우리를 도와 주셨던 것이다.
이렇게 되어 1945년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 귀환은 실현되었다. 그것은 감히 누구도 상상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것은 웨일즈 대학의 6년 간의 기도 응답이었다.
하나님은 무릎으로 세계대전을 치를 당신의 군대를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미국을 비롯해 영 연방과 스칸디나비아 및 기타 다른 나라들에서
수많은 젊은 청년들이 선교사로 헌신하여 나가는 역사가 일어났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리즈에게 보여주신 약속의 성취였다.
리즈 하월즈의 마지막 중보기도 사역은 이처럼 온 땅에 퍼져 나가고 있는 하나님의 종들을
후원하는데 마음놓고 쓸 수 있는 재정 10만 파운드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믿음으로 이 재정에 대한 승리를 확인한 날 그는 자신의 이땅에서의 사명이 다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로부터 몇주일 후 리즈 하월즈는 그가 그렇게 사모하던 본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이것이다.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승리 할렐루야 !”
노만 그럽 선교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말하는 방식부터가 달 랐다.
성령께서 그를 그렇게 다뤄 오셨기 때문이다. 한 젊은 크리스챤이 그에게
하나님의 목소리를 어떻게 알아듣느냐고 묻던 일이 기억난다. 그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은 어머니의 목소리를 다른 사람들 목소리와 구별할 수 있습니까?" 젊은이가
"물론 구별할 수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자 하윌즈는 다 시 이렇게 말했다.
"바로 그와 똑같이 나도 하나님의 목소리를 알아듣습니다." 그는 진정 성령의 하신 사역에
온전한 도구로 사용되었던 탁월한 중보기도의 사람으로 지금도 기억되고 있다.
첫댓글 지체님들!!! 감사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그러게요..중보기도자로 남기 좀 힘들때가 있지만 좋은 글이네용..*^^*
~중보기도의 위력 대단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는 기도의 용사:리즈 하월즈....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