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눈독 들이고 있었어
'돼지국밥 전문'이라는 간판이 있는 그 식당을 말야
경상도 지방을 여행할 때면 항상 빼놓지 않고 먹는 음식이 돼지국밥이었거덩
경부선을 타고서 부산역 한 정거장 전인 구포역에 내리자마자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돼지국밥집
해운대 재래시장의 그 돼지국밥집
부산영화제 갈때면 꼭 들르는 자갈치 시장 안에 있는 그 돼지국밥집
지리산엘 가기 전에 구레역에 내리면 꼭 들르게 되는 돼지국밥집
대구역 주변에 국일국밥보다 더 맛있는 돼지국밥집
경상도 땅 걷다보면 발에 채이고 눈에 걸리적 거릴만큼
그 수가 많은 돼지국밥집을 이상하게 서울에선 눈씻고 찾아보기가 힘들었거덩
그냥 순대국밥으로 아쉬움을 달래긴 했지만
어디 순대국밥이 돼지국밥하고 닮은 구석이라도 있어야 말이쥐
엄마 어릴 적 내게 먹이던 그 젖맛 같았던 돼지국밥을
우연히 발견한 거야
딴지일보 기자도 끝내 발견하지 못한 서울에서의 돼지국밥집을 말야
문을 열고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신발 벗고 올라가는 그런 곳이었어
이상하게 꼭 빵꾸난 양말을 신을 때면 신발 벗고 올라가는 집엘 가게 되는데
신발을 벗고 엄지발꾸락을 대충 꼼지락 거려 보니까
오늘은 다행히 양말이 빵구나진 않은 거 같았어
그래도 혹시나 해서 신발을 벗자마자 발꾸락부터 쳐다보긴 했어
아무튼 식당 구석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돼지국밥을 주문했어
으히야, 드뎌 나도 돼지국밥을 먹어보는구나
이 서울에서 말야, 행복감이 물밀듯이 몰려왔어
식당 여주인은 길고 윤기나는 생머리를 곱게 묶어
나름대로 분위기가 있는 그런 4,50대 여자였어
왠지 돼지국밥을 파는 여자로는 안 보이는 그런...
하긴, 뭐 돼지국밥 파는 인상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말야
드뎌 손으로 만질 수도 없을만큼 데워진 뚝배기 안에 담겨진 돼지국밥
그러나 경상도 지방에서 먹은 것처럼
머릿고기를 도마에 듬성듬성 썰어놓은 그런 것은 아니었어
비게 반, 살코기 반인 머릿고기가 아닌
순 살코기로 얇게 썰어낸 수육이 충분한 양이 새우젓과 함께 나왔어
국물도 돼지냄새가 좀 나도 좋으련만
냄새가 하나도 나지 않는, 그야말로 너무 깔끔한 돼지국밥이었어
아마도 너무 깔끔떠는 서울사람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만들어졌나보다
김치도 칼을 댄 자국이 없이 길게 손으로 뿌리 부분만 뜯어서 내왔어
원래 야채들은 칼을 대면 맛이 변하기 마련이잖어
깍뚜기도 입에 간신히 들어갈 정도로 무를 큼직큼직하게 썰어놓은 거구...
국물 위에는 정구지(부추)를 띄어놓은
마치 경상도 아이가 서울 수돗물 먹고 몇년 지나서
서울 사람이 되어가는 듯한 그런 느낌
결국 내 습관대로 국물 한 방울 안 남기고 다 먹긴 했지만
역쉬 돼지국밥은 재래식 시장에서
머릿고기 듬성듬성 썰어넣은 그런게 제맛인데 말야
아무튼 그래도 반갑웠어
그래도 돼지국밥이란걸 먹어봤으니 말야
그것도 서울에서 먹기 힘든 걸 먹었잖어
나와 다른 문화를 가장 쉽게 체험하는 게 바로 음식이잖어
돼지국밥 한그릇을 먹으면서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도
그처럼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문화적 차이가 있었던가 하는 생각을 했어
지역에 따라 사람들의 입맛이 다르고
음식은 사람들의 입맛을 따라가기 마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