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을 자살하게 만드는 것
사회주의자는 사람의 죽음조차도 사회주의혁명의 도구로 삼는다.
그래서 사회주의자 뒤에는 죽음이 따른다.
구루밍을 통한 분신타살, 시신떠메고 행진, 빈소차려 놓고 선전선동을 한다.
죽음은 어두움 암울함 두려움 분노와 적개심, 불안 등 인간의 심리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가 모두 갖추어져있다.
알고보면 죽음과 시신은 신성한 것이고 인간영역의 극한에 있다.
사회주의자는 자살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그래서 걸핏하면 자살해버린다.
그러면 상황을 역전시킬수도 있고 그 죽음을 우상화해버린다.
박종철 이한열도 그랬고 노무현도 그랬다.
구소련도 죽은자의 묘지를 성역화하고 순례코스에 넣어 산 사람을 프로퍼갠다의 조작대상으로 삼아 격동시켜왔다.
공무원으로서 고급시계와 돈다발을 받고 그게 밝혀져 쪽빨려서(평소 자기만 청렴결백했던 위선이 폭로되어) 투신자살한 시정잡배같이 파렴치 한 소인배가 자살을 계기로 어려운 국면을 뒤집에 버린 사건을 성역화하고 노무현정신입네 하는 사회주의좌익들의 능수능란한 프로퍼갠다 기술에 혐오를 느끼기보다는 존경에 이르기까지 하다.
상여는 한국인 전통의 죽음 의 퍼레이드이다.
여기에는 절망감과 불안 괴기스러움 억울함 등 온갖감성이 혼화된 퍼레이드이다.
그것은 민주국가에서 자유를 박탈당한 절망감, 억울함 두려움이 혼재되어있다.
죽은 자유를 매장하러가는 마지막 퍼레이드는 당연히 비통함, 절망감, 분노심과 적개심으로 불타올라야 마땅하다.
우리가 자유를 잃고 철사줄에 꽁꽁묶에 몸부림 쳐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태가 바로 한 자유민주국가의 죽음이다.
절망과 절규외에 무엇이 있단말인가
그러므로 상여를 맨 동안 비록 나무로 만든 상여일망정 나와 그 상여가 하나가 되어 절규하고 통절하며 분노해야한다.
자유가 죽은 나라를 매장하는 마지막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애절복통하는 상여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는 시민은 거기에 녹아들어 적에게 분개하고 증오하고 저주하면서 국민적 일체감 을 형성하게 되는것이다.
그것이 프로퍼갠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