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일이다
가끔씩 외출했다 돌아오면 그녀는
퇴색되어 누렇게 뜬 벽 앞에 놓인 TV를 켠다
지진이 났다거나 천둥치는 날을 제외하곤
늦은 시각까지 드라마와 영화를 본다
한낮에 오려두었던 케이블 방송의 드라마와 영화편성표
요일마다 같은 시각에 방영되기에
일주일 분을 코팅하여 핸드백 속에 넣고 다닌다
신발 뒤축을 꺾어 신는 아들도
술과 친구를 맺고 늦게 들어오는 남편도
신경 끄고 산다. 아침밥 굶고 나가는 일에 익숙해진 식구들
그러려니 한다. 식구들 잠들고 나면
냉장고에서 주전부리 꺼내놓고
TV를 켜고 볼륨을 최대한 줄인다
입 모양만 봐도 의미 터득하는 법을 일찍이 간파한 그녀
방 안 불빛은 TV가 쏘아 주는 것이 유일하다
주전부리 소리나지 않게 조심스레 씹으며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화면에 고정한다
그러다가 살짝 웃기도 하고, 냅킨으로 눈가를 훔치기도 한다
검고 네모난 상자와 친구한 뒤로
그에게 변한 건 우울증이 없어졌다는 것
병을 고치는 건 의사뿐이 아니고 그 검고 네모난 상자도 가능하다는 것
식구들이 참아주는 건 그녀의 병을 치유시켜 준
고마운 것이기에 그런 건 아닌지
아침을 건너뛰는 사람들이 어디 한둘인가
옆에서 가느다란 숨소리라도 들려주면 그게 고맙지
벽에 걸린 괘종시계도 안면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열두 점, 한 점, 두 점 치는 일을 뒤로 미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