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채워지는 것
文 熙 鳳
요새 유행하는 노래, 노사연의 ‘바램’은 진실로 사랑한다는 작은 한마디를 갈구한다. 요즘의 맞춤법에 맞게 고친다면 ‘바램’이 아니라 ‘바람’이 맞다. ‘내 손에 잡은 것이 많아서 손이 아픕니다. (중략) 큰 것도 아니고, 아주 작은 한마디 지친 나를 안아 주면서 사랑한다. 정말 사랑한다는 그 말을 해 준다면 나는 사막을 걷는다 해도 꽃길이라 생각할 겁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저 높은 곳에 함께 가야 할 사람 그대뿐입니다.’ 이 노래를 불러보면서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채워지는 것이야.’라는 말에 동의해 본다. 한용운의 ‘나룻배와 행인’에서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라는 표현과 유사한 느낌을 준다는 생각을 해본다.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나이 들어서 좋은 일, 재밌는 일을 만들어 즐겁게 살겠다는 마음가짐보다 중요한 것이 있을까. 인생은 어느 시기나 그 나이에 맞는 그때만 아는 즐거움이 있는데, 그것을 깨닫고 충분히 느끼고 산다면 성공한 인생이 아니겠는가.
내가 생각하는 재미있게 산다는 의미는 오락, 향락을 추구하는 삶이 아닌 내가 해야 할 일을 재미있는 쪽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진정한 긍정은 일단 나에게 일어난 상황을 수긍하고 그 다음 해결책을 찾게 해준다. 삶이 좋은 쪽으로 흐르도록 하는 에너지다. 나에게도 늘 좋은 일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긍정적인 사람은 오늘 좋은 일이 있을 거라 믿는다. 그러나 진정한 긍정의 고수는 오늘 어떤 일이 일어나든 잘 견딜 것이라 생각한다. 일은 만들면 생기는 것이다. 꼭 돈이 되는 일만 찾지 않는다. 돈이 안 되면 어떤가. 나이 들어 봉사보다 더 좋은 일도 없다. 봉사는 되돌아올 것을 바라지 않고 베푸는 것이다.
인생의 황금기는 바로 지금이다. 이렇게 보면 내 인생도 지금이 황금기이다. 노인을 부르는 말도 다양하다. 60~70세는 젊은 노인, 70~80세는 보통 노인, 80세 이상은 늙은 노인으로 구분한다. 그러니 이제 나는 보통 노인의 대열에 들어섰다. 어르신은 단지 나이가 많이 들어 듣는 칭호가 아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세월을 그저 흘려보낸 것이 아니라 조금씩 채워가는 삶을 펴오면서, 살아온 지혜를 아낌없이 나눠준 사람이 들어야 할 말이다. 늘 하는 얘기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병 중에서 고질병이 ‘거절결핍증’이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내가 도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기에 부탁했는데 거절하면 되겠는가. 나는 못한다. 그런 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영광이다.
노인은 보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중국 속담은 말하고 있다. 노인 한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에 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아프리카 속담도 있다. 존 러스킨은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채워지는 것이다.’라고 했다. 다들 노인이 가진 지식과 정보, 지혜를 칭송하는 말이다. 인생은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그 무엇으로서 채워가는 것이다.
나는 생일을 맞을 때마다 ‘오늘은 나에게 남은 생애에서 가장 젊은 날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나는 분명 신(新)노인이다. 톨스토이가 노년에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글 모르는 70세 노파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남편 밥상을 차려놓고 학교에 가서 열 칸 노트에 자기 이름 석 자, 남편 이름 석 자를 쓴다. 그런 노파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가득하다. 나이 든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좋은 일이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할 생의 궤적이다. 나이 들면서 좋은 일, 즐거운 일을 만들어 가겠다는 마음가짐이 훨씬 중요하다.
명예보다는 즐거움, 책임보다는 재미를 택하며 살기로 했다. 러셀은 ‘재미의 세계가 넓으면 넓을수록 행복의 가치가 많아지며, 운명의 지배를 덜 당하게 된다.’고 했다. 일본의 하이쿠에는 ‘얼마나 운이 좋은가, 올해에도 모기에게 물리다니!’ 즐거움과 유머가 듬뿍 담긴 표현이다.
내가 쓸 수 있는 인생의 시간은 지금 이 순간에도 줄어들고 있다. 재미있게 살려면, 나이가 들수록 내가 사람을 찾아가는 것이 좋다. 외로움은 노년을 쉬 늙게 만드는 주범이니까 찾아오지 않는 사람을 원망하고 푸념만 하지 말고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 먼저 연락하고 만나는 삶이 현명한 삶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 일은 중요하다. 사랑도 능력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남겨줄 수 있는 최고의 재산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내 부모는 정말로 즐겁고 재미있는 삶을 살았다.‘는 느낌만 주어도 그건 잘 산 삶이다. 나는 지금 무척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