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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쭉제(1981) - 문순태 - |
[줄거리] |
주인공은 6. 25때 아버지를 학살한 원수를 갚기 위해, 신문팔이를 하는 등 고학을 하여 끝내 검사가 되어 고향으로 내려온다. 30년 전, 어릴 때 아버지가 동네 인민재판에 붙여 죽게 되자, 자기 집 머슴이었던 박판돌이 "내 손으로 이 놈을 죽이겠다."며 인민군들이 보는 앞에서 지리산 속으로 끌고 가는 것을 본 기억이 생생했다. 박 검사가 고향에 내려와 보니 '박판돌'은 박 검사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사료공장을 차지하고 사장이 되어 있었다. 결국 박 검사는 먼저 아버지의 유골부터 찾기 위해 그를 앞장세우고, 박 영감과 인부 두 사람, 그리고 미스 현이 이들과 함께 지리산 철쭉제가 열리는 세석평전으로 간다. 박 검사는 아버지의 유골이 있는 곳으로 가는 도중 박 판돌의 저열함에 혐오를 느끼지만, 박 영감은 ‘나’와 박판돌의 사이를 화해시키려 한다. 결국, ‘나’는 아버지의 유골을 찾게 되고, 도중에 사라졌던 박판돌이 천왕봉에 오른 나에게 다시 나타나 자신의 부모가 ‘나’의 할아버지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과 서러움을 당했는지 이야기한다. 그의 어머니 넙순이가 노비로 있을 때 박검사의 조부 박 참봉에게 몸을 빼았겼고, 그 뒤 박판돌의 부친 박 쇠의 아내가 된 후에도 수시로 몸을 빼았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 이 사실이 탄로나자 박검사의 할아버지 박참봉은 박 쇠를 무마하여 자기네 족보에 올려 준다고 약속하는데, 이때 박 검사의 아버지가 박 쇠를 지리산 속으로 끌고 가 엽총으로 살해해 버린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로 인하여 박 판돌이 박 검사의 아버지를 살해한 것은 아니었다. 뒤에 안 사실이지만, 판돌이 6.25때 인민재판에 회부되어 죽게 된 박 검사의 아버지를 일부러 ‘내가 이놈을 죽이겠다’며 지리산으로 끌고 갔었고, 빨치산이 된 판돌의 내심은 자기 어머니의 유언대로 자기 아버지를 어디서 죽였는지 그 유골을 찾아 안장시킬 속셈이었지, 사실은 죽일 마음은 없었다. 그런데 세석평전 가까이에서 박 검사의 아버지는 높은 바위를 오르다가 그만 미끄러 떨어져 죽었는데, 판돌은 "주인님 미안해요. 잘 주무세요"하며 그 부근에다가 묻어 주었다는 것이다. 박검사는 “당신 아버지를 죽인 우리 아버지를 왜 안 죽였소?" 바윗덩어리처럼 무겁게 나를 짜누르고 있는 판돌에게 물었다. “어디 기회가 있어야죠. 또, 같이 살다 보니께 마음이 약해집디다. 사실 지는 도련님 댁 머슴이었제만, 두 어른들 도움도 많이 받고 자랐거든요. 그라고 도련님 식구들과 오래 한솥밥 묵고 살다 보니께 정도 붙고 해서…. 지난 일들을 잊어 버릴까 허는 생각도 납디다. 또 어르신께서 우리 아버지를 쥑이지 않었을지도 모를 일이고….” 판돌이는 잠시 말을 멎고 머리를 무겁게 떨구었다가 천천히 들어올렸다. “6·25가 터지고 세상이 뒤집히니께 지 마음도 세상과 함께 뒤집힙디다요. 좌우당간에 어르신한테 한번 따져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드만요. 그래서 그 어른을 데리고 지리산으로 들어갔지요. 그러고 우리 아버지를 어디서 죽였느냐고 성질을 냈어요. 사실 그때 지는 어르신네께서 거짓말로라도 지 아버지를 절대 쥑이지 않았다고 말하기를 맘속으로 얼마나 바랬는지 몰라요. 그란디…그란디 말입니다. 어르신께서는 지가 그렇게 바랬던 것과는 달리 우리 아버지를 세석평전에서 엽총으로 쏴 쥑였다고 쉽게 고백을 허시고 말았어요. 아버지가 언젠가는 낫으로 어르신의 아버지를 찍어 쥑일 것만 같았고, 또 지 부자가 도련님댁 족보에 오르는 것이 싫어서 쏴 쥑였다고 허드만요. 어르신은 그러면서 보잘것없는 지한테 용서를 빌었어요. 저는 그런 어르신이 싫었던 거지요. 차라리 그때 나헌티 불호령을 치셨더라면 지 마음이 약해져서….” “그래서 판돌씨도 우리 아버지를 세석평전까지 끌고 와서….” “어르신께서 지 아버지를 쥑인 곳을 알고 있다고 해서…. 지도 어머니 유언대로 울 아버지 뼈라도 찾을까 허고….” “그래, 찾았나요?” 나는 판돌이가 그의 아버지 유골을 찾았기를 바라면서 물었다. “워디가요. 세석평전을 다 뒤져 봤제만 철 늦은 철쭉꽃만 휘너후러져서…. 허갸, 족보에도 못 오른 아버진데 무덤은 남겨서 뭘 하겠어요? 차라리 잘됐지요. 머. 그까짓 족보 대신에 아직도 우리 조부님 종문서허고 도련님 조부님이 박판돌이라고 지어 주신 지 부자 이름이 적힌 종이 쪽지를 소중히 간직허고 있구만요. 으쩌면 족보보다는 그것이 더 귀한 것일지도 모르제요.”
박 판돌로부터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나’(박검사)는 내년 철쭉제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화해의 악수를 청한다. |
[인물의 성격] |
나 → 검사. 6․25 당시 아버지가 공산당원(빨치산)들에게 끌려가 학살당한 상처를 갖고 있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모진 고생을 겪어내며 드디어 검사가 된 의지적 인물이다. 아버지를 죽였다고 생각하고 있는 박판돌에게 복수를 하고자 하나,부모 대에 얽힌 악연을 듣고 마음을 돌리게 된다. 박판돌 → 박 쇠의 아들. 6 · 25 전쟁 전까지 나의 집에서 머슴을 살았으나 아버지를 학살로 내몬 장본인이다. 나와는 조부부터 아버지 대까지 악연으로 맺어져 있는 인물이며, 지금은 비료 공장 사장이 되어 있다. 넙순이 → 박판돌의 어머니. 박쇠와 혼인하기 전부터 주인인 박참봉의 성적인 노리개였다. 이 일로 말미암아 남편에 의해 팔이 잘리는데, 결국 남편마저 박참봉의 아들에게 죽임을 당하게 된다. 이 일로 인해 거의 미쳐 박참봉 집에서도 쫓겨나고 만다. 박 쇠 → 박판돌의 아버지. 족보에 이름을 올릴 요량으로 박참봉 집에서 종살이를 한다. 그러나 아내 넙순이가 박참봉에게 유린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분노하여 낫으로 아내의 팔을 자른다. 결국 박참봉 아들에게 살해당하는 비극적 인물이다. 박참봉 → 주인공 나의 할아버지. 자신의 종을 성적으로 유린하고 종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파렴치한 인물임.' 박참봉 아들 → 주인공 나의 아버지. 껄끄러운 존재인 박쇠를 사냥터로유인하여 살해한다. 그러나 그 역시 6 · 25의 와중에 학살당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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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 단계] |
발단 : 나의 어린 시절과 고향을 찾은 나 나는 30년 만에 고향에 내려와 6 · 25 당시 아버지를 학살한 원수 박판돌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집 머슴이었던 그는 현재 성공하여 비료회사 사장이라고 한다. 검사가 되어 어느 정도 출세를 한 나였지만 그래도 박판돌을 만난다고 하니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전개 : 박판돌, 인부, 지관 등과 함께 지리산에 오름. 아버지의 유골을 찾아 무덤을 만들어드리고 싶었던 나는 원수 박판돌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만이 아버지 시신이 어디 있는지를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박판돌을 앞세워 지관, 인부 등과 함께 지리산을 오르게 된다. 박판돌이 데리고 온 여자 때문에 신경이 거슬리기도 했던 나는 그와 함께 산을 오르며 왜 우리 아버지를 죽였느냐고 따져 묻는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부정하며 그 사건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한다. 위기 : 아버지의 유골을 찾은 나 철쭉꽃이 유난히 검붉은 곳은 6 · 25 당시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시신이 묻혀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들은 즈음, 드디어 박판돌이 아버지의 유골을 찾아낸다. 절정 : 박판돌이 들려준 나와 그의 가족사 나는 아버지의 유해를 끼고 천왕봉에 올라가면서 박판돌에 대한 복수심이 더욱 불타오른다. 그러나 나는 돌아오는 길에 박판돌을 만나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판돌에게 용서해 달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박판돌 가족에게 행한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악행을 알게 된다. 결말 : 화해를 하는 두 사람 박판돌의 이야기를 들으며 혼란스러워진 나는 많은 생각을 하고, 결국 그와 화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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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감상] |
◈ <철쭉제>는 1982년 <물레방아 소리>와 함께 발표된 중편소설로, 우리 민족이 갖는 비극적인 역사의 상황을 깊이 있게 다루는 작가의 작품 경향이 이 작품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지리산을 배경으로, 산의 온통 붉은 경관과 지역적인 특수성을 고려하여 기행문학적인 면으로 서술함으로써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실향의식으로 가득 차 있으며, 고향에서의 삶의 근원적인 한의 역사를 지극히 비극적으로 묘사하여 작품의 토대를 구축하고 있다.
◈ 작품에서 나타나고 있는 '비극성'이란, 6 · 25가 갖는 시대적인 상황이 현재까지 연결되고 있다는 것인데, 그러한 비극성을 해결하는 방법은 사상성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한국인의 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다는 것이다.
◈ 이 작품은 철쭉이 만발한 지리산을 배경으로 일제시대부터 6 · 25 전쟁을 거쳐 현재에 이른 2세대에 걸친 비극적 삶을 종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신분제'와 '전쟁'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어떻게 한 개인에게 비극적으로 작용하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 6.25전쟁 때 아버지를 죽인 박판돌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검사가 된 ‘나’가 박판돌과 함께 지리산 세석평전을 찾아 가는 4박 5일간의 여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서술한 전후 소설이다. 철쭉이 만발한 지리산에서 펼쳐지는 비극적인 가족사는 나와 박판돌 사이의 원한 관계를 보여줌과 동시에 봉건적 신분제도와 전쟁 등에 얽힌 우리 역사의 비극적 면모를 담아 내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철쭉제'의 상징적 의미이다. 철쭉의 그 붉은 시각적 이미지는 '한'을 상징한다. 그리고 '제(제사, 축제)'는 화해와 용서의 의미를 가진다. 즉 '철쭉제'라는 제목은 불행한 과거로 인한 한을 풀어내는 화해와 용서의 장을 상징하는 것이다.
◈ 또 고향을 떠난 지 30년 만에 검사가 되어 돌아온 ‘나’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박판돌을 앞세워 아버지의 유골을 찾기 위해 지리산을 오르는 것이었다. 이는 오래 전 박판돌이 자신의 부친 유해를 찾기 위해 ‘나’의 아버지를 앞세우고 지리산을 올랐던 것과 흡사하며 이러한 두 인물의 행위는 ‘아비 찾기’의 여정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나와 박판돌이 부친의 유해를 찾는 의미는 매우 복합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그것은 잃어버린 낙원을 찾는 일이며, 생명의 근원, 과거의 나를 추적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주인공이 부친의 유해를 찾는 과정에서 확인한 것은 결국 이 땅의 훼손된 삶이다. 하지만 생명의 본향인 고향에서 우리의 훼손된 삶과 동질성이 회복된다는 것을 이 작품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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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사항 정리] |
▶ 갈래 : 중편소설, 전후소설, 기행문학적 성격, 향토적, 사실적 ▶ 배경 : 시간적 → 일제시대, 6 · 25 전쟁을 거쳐 현재까지 공간적 → 지리산 자락의 솔매마을, 철쭉이 만발한 지리산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부분적으로 전지적 작가 시점) ▶ 특징 : 여로형 구성 및 액자식 구성 신분제로 인한 착취와 대립의 구조로 이루어짐. 방언을 사용하여 작품에 사실성과 향토성을 더해 줌. ▶ 주제 ⇒ 신분제와 전쟁으로 인한 역사적 비극과 그 극복 및 화해 ▶ 출전 : <한국문학>(1981) |
[생각해 볼 문제] |
1. 이 작품의 제목 <철쭉제>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 이 작품의 공간적 배경인 '지리산'은 일종의 해체의 공간으로, 주인공 나와 박판돌 사이에 대립되던 요소들을 통합시키고 있다면, 지리산 안에서 행해지는 철쭉제라는 행사는 두 인물을 지속적으로 연결시켜 주는 매개가 된다. 내년 철쭉제 때 다시 만나자는 약속과 내가 아버지의 새 무덤 옆에서 가져온 철쭉꽃을 판돌에게 주는 행위는 모두 용서와 화해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필로 인해 더욱 검붉은 색을 띄는 철쭉이야말로 한을 넘어서 그 비극의 역사를 극복하는 이 작품의 주제를 가장 함축적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다.
2. 주인공 '나'의 심리 변화를 정리해 보자. ⇒ 아버지를 죽인 박판돌에 대한 증오심(첫날) →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백지 한 장 차이라는 박판돌의 말에 움츠러듦(둘째 날) → 박판돌에게 어떻게 복수를 해줄 것인지 고민함(셋째 날) → 박판돌에게 왜 우리 아버지를 죽였느냐고 다그침(넷째 날) → 박판돌로부터 그의 가족사를 듣고나서 죽은 아버지 대신 용서를 빌고 싶은 마음이 생김(다섯째 날) → 박판돌에게 손을 내밀어 화해를 신청함(마지막 날)
3. 이 작품은 지주 대 머슴, 신분제 대 전쟁이라는 뚜렷한 이분법적 구도가 설정되어 있다. 따라서 등장 인물이나 주제가 지나치게 작위적인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작품을 면밀히 검토하여 이 비판이 과연 정당한지 자신의 생각을 말해 보자. ⇒ 봉건적인 사회를 그릴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바로 지주가 자신의 종을 학대 혹은 착취하거나 성적으로 유린하는 것이다. 박판돌의 어머니 넙순이를 나의 할아버지 박참봉이 유린하고, 분노한 박판돌의 아버지를 족보로 회유하는 행위 또한 신분상의 모순을 드러내는 전형적인 방법이다. 또한 전쟁을 다룬 소설 중 학대받던 머슴이 착취하던 주인을 학살하는 장면 또한 일반적인 경우이다. 따라서 이 소설의 인물 설정은 지금까지 발표된 많은 소설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그러한 내용을 중첩시켜 봉건 신분 제도의 모순과 전쟁의 모순 양쪽을 다 보여준다는 점이 특이한 점이다. 따라서 인물 성정이 다소 작위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는 주제나 인물 들이 잘 결합되어 새로운 소설을 만들어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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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알아 봅시다] |
■ 지리산과 문학 ⇒ 태백산맥(조정래), 지리산(이병주), 진달래 산천(신동엽), 토지(박경리), 역마(김동리), 천둥소리(김주영), 우적가(영재), 만복사저포기(김시습)
지리산이 포괄하고 있는 드넓은 삶의 영역과 지리산이 가지는 역사적 내용으로 인하여 이곳을 소재로 한 문학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삼국유사'에서는 '영재우적'이라 하여 지리산과 덕유산 중간의 육십령 통로에 기거하고 있던 도적떼들을 문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김시습의 <만복사저포기>는 다소 허황된 듯하지만 중세 리얼리즘 문학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며 남원의 만복사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조선 중기 김종직, 김일손, 이륙의 지리산 기행문들은 모두 우리나라 기행 수필 문학의 명작들로 평가된다. 여기서 김종직의 '유두류록'은 사실적 산문 형식의 기술을 통해 지리산의 해동청 잡는 모습을 비롯 몇몇 풍물들을 적고 있으며, 김일손의 기행문은 섬세한 필치와 수사적 표현 양식이 단연 돋보인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전문학으로 꼽히는 <춘향전>과 <흥부전> 그리고 <변강쇠타령> 등도 넓은 의미에서 지리산을 무대로 한 것들이다. <춘향전> 내용에서 주목되는 것은 변학도가 잔치를 벌일 때 유독 운봉 현감만이 춘향에 대한 비난을 자제하고 있는 점이다. 지리산을 가까이 하고 있는 운봉 현감의 이러한 처신은 아마도 지리산 속의 잠재적 변혁 세력과 결코 무관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흥부전>의 무대가 운봉 여원치에서 함양 팔랑재까지라는 것은 책 속의 지명이 말해주고 있으며, 남원군 동면 성산리는 흥부전의 원고장이라고 자부하고 있기도 하다. <변강쇠타령>은 거의 동구, 마천을 그 지역적 배경으로 한다. 근대로 와서 지리산 문학을 살펴보면 몰락 양반가의 손자 석이와 소작인의 딸 순이의 비극적 삶을 내용으로 한 황순원의 <잃어 버린 사람들>이 먼저 떠오른다. 박경리의 <토지>도 악양면 평사리가 작품의 배경이다. 김동리는 <역마>에서 화개장터를 배경으로 역살이 낀 주인공의 떠돌이 생활을 그리며 일제의 자본침탈과 붕괴되어가는 조선시대 장터의 모습을 애환 깊게 다루고 있다. 6 · 25와 빨치산 투쟁이라는 비극적 역사가 휩쓸고 간 다음 지리산 문학은 곧 분단 문학의 선상에서 논의된다. 그러나 분단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한 지리산 문학의 잉태 과정은 이데올로기적 제약 때문에 진통을 겪는다. 신동엽 시인의 <진달래 산천>은 바로 이 판도라 상자의 뚜껑을 여는 것이었다.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모두 산으로 갔어요."라며 최초로 산사람들의 얘기를 진혼곡 형식으로 읊고 있다. 뱀사골 마뜰 마을을 배경으로 한 오찬식의 <마뜰>, 문순태의 <피아골>과 <철쭉제>, 김주영의 <천둥소리>, 박경리의 <천둥소리>도 모두 지리산의 비극적 역사를 그 테마나 소재로 하고 있다. 1970년대 이병주의 대하소설 <지리산>은 본격적으로 지리산과 빨치산 투쟁을 형상화한다. 그러나 <지리산>은 실제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으면서도 픽션으로의 한계와 지식인적 관점에 머물고 말았다. 이에 비해 1980년대에 등장한 이태의 <남부군>은 작가가 체험한 생생한 빨치산 기록이라는 점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하나의 역사 기록물인 <남부군>은 바로 1980년대가 말해야 할 지리산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고 평가된다. 1980년대 분단문학의 대표작으로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이 있다. 여순 반란사건에서부터 휴전 성립 시기까지 전남지방과 지리산을 무대로 입산자와 그 가족을 비롯한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형상화했다. 특히 이 책은 이제껏 지리산과 관련된 분단 문학이 갖고 있던 역사 허무주의를 어느 정도 극복하고 분단된 역사 속에서의 민중들의 희망과 좌절, 기쁨과 고통, 그리고 사랑과 분노를 감동적으로 담아 내고 있다.
■ 아비찾기 모티프 우리 나라 현대 소설에 대해 흔히 '아버지 부재의 문학'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6 · 25와 같은 큰 전쟁을 겪으면서 실제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거나 아니면 부상을 당해 제대로 가장 노릇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대신 어머니의 존재가 강하게 부각되는 경우가 많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대신해 생계를 책임지고 집안의 모든 일을 건사하는 중심 축 역할을 한다. 당연히 어머니의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고 부드럽고 따뜻한 어머니보다는 억세고 강인한 어머니상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철쭉제>에서도 주인공은 부재한 아버지를 찾아 지리산을 헤매게 되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나와 박판돌이 부친의 유해를 찾는 의미는 여러 가지로 볼 수 있다. 잃어 버린 낙원을 찾는 일이기도 하며, 생명의 근원, 과거의 나를 추적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아비찾기 모티프가 아버지의 부재를 분명하게 일깨워주며 그 간절함이야말로 전쟁으로 말미암아 훼손된 삶을 역설적으로 드러내 준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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