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5;13-14 ] 빛과 소금으로써의 증언
지난 2월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러시아가 손쉽게 승리를 거둘 거라는 관측이 대부분이었다. 러시아가 세계 2위의 군사 강국인 데 반해 우크라이나는 세계 22위의 군사력을 지닌데다, 정치 베테랑 블라디미르 푸틴을 상대하기 쉽지 않으리란 전망이었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과 다르게 전쟁은 10개월간 이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급해진 러시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예비군 동원령을 내리고, 핵 위협을 하는 등 초강수 행보에 나서고 있다.
대체 젤렌스키의 리더십에는 어떤 비밀이 있기에 강력한 것일까?
우크라이나 국민은 물론 전세계를 움직인 젤렌스키의 리더십에는 세 가지 비밀이 있다.
먼저 용기의 리더십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시민들은 충격과 혼돈에 빠졌다. 그들은 해외로 도피해야 할지에 대한 갈피조차 잡지 못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해외 도피설은 이러한 혼란을 더욱 가중했다.그러나 개전 직후 젤렌스키가 올린 한 편의 동영상은 상황을 반전시켰다. 젤렌스키는 최전방까지 들어가 병사들과 연대했고, 키이우에 남아 자신의 소식을 올리며 국민에게 자신의 건재를 확인시켰다.
둘째, 확신의 리더십이다. 젤렌스키는 개전 직전부터 지금까지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끊임없이 우크라이나 국민의 항전과 우크라이나의 승리에 대한 높은 기대와 확신을 보여주고 있다. “당신이 우리를 공격할 때 당신은 우리의 등이 아니라 얼굴을 보게 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항전을 확신했다.
이러한 믿음은 우크라이나 국민의 98%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자국의 승리를 확신한다는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든 비 그리스도인 이든지 간에 그 사람의 행위의 삶은 더불어 사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때때로 좋은 영향을 , 때때로 매우 나쁜 영향을 가지게 한다.
그리스신화에 보면 두가지 이야기가 나온다
1. 어떤 한 여신이 지나가면 그 지나간곳 에서는 황무한 길거리에 꽃이 만발하게 피고,바싹 말랐던 풀이 파릇파릇한 풀러 변하고. 썩어 냄새나는 연못이 신선한 물로 바뀌 었다.
2. 또 어떤 여신이 지나가면 그 주변에 공기을 오염 시킨다.
벌래가 생기고, 그리고 그 주변에 모든 것을 죽인다.
우리는 우리의 말과 행동과 태도가 분명히 긍정적인 결과을 낳게 되기을 원한다.
성경은 “다윗의길 처럼” 행했다. 라는 기록이 나오는데
“길” 인생, 삶을 말하는데
다윗의 인생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믿음의 삶을 일컫는 관용적 표현]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았다.
그리고“ 여로보암의 길 ”라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스라엘의 분열을 주도한 자요 (예루살렘 성전을 버리고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 우상을 세워 예배처로 삼고, 산당을 세워 백성을 타락시킨 죄악)을 가리켜 한 말로, '죄악의 길을 걸었던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써 세상에 속했지만 세상에 가치관과 태도로 살아서는 안된다. 점점 더 타락하는 문화속 에서 앞을 보기 어려울정도의 암흑속 에서 영적인 소금이 필요한다.
이 세상 ]오늘날 복음을 증거하기 힘든 이유는? ,
21세기 들어서 실용적인 무신론[ 자신의 입장을 고려하고 철학적 인 이유를 채택했다]과
도덕 상대주의[한 사회 안에서도 개인의 행동을 규제할 어떤 근거도 없기 때문에 도덕문제에 관한 한 누구에게나 획일적으로 적용되는 규범은 없다는 점]가 우리 사회을 훱쓸렀다.
최고의 지도자들이 부도덕, 사기 ,권력 남용으로 온 나라가 분노에 들끌고 있지만 [저는 돈이 없어서 라면만 먹어요,,3억이상 정치 후원 받고.. 콘인만 60억,, [무슨 돈인줄도 몰라] 오히려 떳떳하게 말합니다. ...
결국 아무런 징계와 책임 없이 갑작스럽게 끝나버리는 경우가 허다한다. 왜? 이렇게 ,,,, 저 사람 보니 나는 그래도 괞찮으니까?
이는 이 세계가 악의 영역 이고, 사탄이 다스리는 어둠의 나라을 개혁 시킬수 없다.
이런 사실 앞에서 신적 소명은 그리스도을 통해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신실하게 증거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문화는 기독교의 흔적마저 약해지고, 기독교의 정신을 훼손시키고 있다. 더욱기 탐욕과 환락 속에서 노골적으로 반 기독교 정책을 세웠다.
이런 상황속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이데올로기 [정치이념]들을 정복할수 있다고 한다.
[고후10‘3-5]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복음을 신실하게 선포함으로만 사회을 변화 시킬수 있다.
그것은 내면으로부터 시작된 삶의 변화이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교회의 위협은 배교자[믿음을 저버리고 변절한 사람]들에서 부터 시작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딤후3;1-5]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회화적인 언어로 우리는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 너희 ” 헬라어 대명사 모두“ 강조형”이다. “ 강조”의 형태는 신자들이 문화 속에서 참된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전체는 세상에 영향을 끼치기 원한다.
마5;13-16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오늘날의 세대을 보면 “ 많이 변한 것 같으나 자세히 보면 별로 변한게 없다. [ 변해 봤자 그게 그거다] 이 격언은 인간의 죄성은 어느때보다 더 심각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딤후3;13]
롬1;18-32절에서 묘사된 타락은 가장 밑바닥, 즉 “상실한 마음”[어떤 것이 아주 없어지거나 사라짐] 까지 곤두박질친다.
예수님 께서 복음을 전파하라는 그 명령에 맞춘 교회의 초첨은 점점 더흐려지고 있으며 , 그리스도인 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향해 신실하게 증언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마9‘37-39] “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의 성도을 “세상의 소금” 이라고 표현 합니다.
소금은 음식을 보존하고 맛을낸다.
순수한 소금은 맛을 잃을수 없지만 , 사해지역에 흔한 소금은 석고와 다른 광물들로 인하여 맛을 잃어 버릴수 있고, 식품 보준의 능력을 상실할수 있다. 그렇게 광물이 섞은 소금은 길에 물이 나지 못하게 하는 것 외애 쓸모가 없었다.
예수님이 성도을 소금과 연결시키는 이유는 세상의 문화로 초래한 도덕적이고, 영적인 부패를 늦추라는 것입니다.
소금은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수 있다.
우리의 책임은 회개하지 않는 자를 교화하는게 아니라 부도덕한자를 개종시키는 것이다.
소금은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것을 늧추지만 ,부패하지 않도록 완전히 변화 시킬수 없다.
헬렌유앙 은 소금같은 사람이다.
예수을 믿고 그의 주권에 철처히 복종했다. 22살나이로 하나님이 그를 데리가 가셨지만 그의 죽음을 많은 사람들이 슬퍼했다고 합니다. 그는 항상 새벽 5시 일어나서 기도와 성경공부 했고, 그의 일기에 보면 300명의 선교사을 위하여 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가 있었던곳에는 사악한말과 행동이 중단되었고 그가 다녔던 글래스고 대학은 그리스도의 향기을 나타냈다.
그는 그의 삶이 소금의 특성을 들어냈다.
소금은 간접적인 영향이라고 하면 빛은 직접적인 영향을 말한다.
소금은 삶의 표현이라고 한다면 빛은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의 빛을 주셨다.
시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사도요한은 요일1;5-7]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우리에게 비추어진 성경과 세상의 빛 되신 예수그리스도을 말한다.
그 빛을 받은 사람 들은 다른 사람들 에게 반사 해야 한다.
만약 그리스도인이 어둠에 나와서
빌2;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불신앙에 빠진 사람들은그 빛을 거절 하고 포기할수 있지만 , 우리는 여전히 빛을 비추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빛을 비추는 성도들을 잘묘사하고 있다.
마5;14절은]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그 지역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 마을을 볼수 있다.
빛을 비추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숨기는 사람들은 빛에 대한 모순이다.
빛과 소금의 자신의 역할을 못한다면
소금이 역할을 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소금은 성도들의 삶이다. 삶이 죄로 물들여 있다면 하나님께 쓸모 없는 존재가 된다.
짠맛의 효능을 잃어버리면 ...
사해지역에 흔한 소금은 석고와 다른 광물들로 인하여 맛을 잃어 버릴수 있고, 식품 보준의 능력을 상실할수 있다.
그렇게 광물이 섞은 소금은 길에 풀이 나지 못하게 하는 것 외애 쓸모가 없었다.
하나님께 유능하고 쓸모있는 종이 되지 못한다.
빛은 진리에 대한 선포입니다.
진리을 다른 사람들 에게 제시 하라는 것입니다.
마5;16절은 소금과 빛의 부름에 합당한 삶을 산다고 하면
“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이말은 여러분의 말과 삶으로 하나님뜻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라고 말씀 합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긍정적인 부르심을 보았고 ,
부정적인 반응도 경험했다.
하지만 바울의 증언은 제지 당하지 않았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과 다른 성도도 이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고후2;14-16]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하나님의 성도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의 원리와 명령을 어디을 가는곳마다 순종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벧전2;9]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우리을 소금과 빛으로 부르신 이유는 삼은 이유는 ?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전하는 증언을 제외하고서 그리스도을 알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