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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복의 어원
삼복은 음력 6월에서 7월 사이에 들어 있는 속절(俗節)이다.
하지 후 셋째 경일(庚日)을 초복, 넷째 경일(庚日)을 중복, 입추 후
첫 경일(庚日)을 말복이라 하여, 이를 삼경일(三庚日) 혹은 삼복 이라 한다.
복날은 10일 간격으로 오기 때문에 초복과 말복까지는 20일이 걸린다.
그러나 해에 따 라서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 간격이 되기도 하는데,
이를 월복(越伏)이라고 한다.
복의 어원에 대해서는 신빙할 만한 설이 없다.
다만 최남선의《조선상식(朝鮮常識)》에 의하면 '서기제복(暑氣制伏)'이라는
뜻으로 풀이되고 있다.
2. 삼복의 유래
복은 원래 중국의 속절로 진(秦)·한(漢) 이래 매우 숭상된 듯 하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동국 세시기》의 기록에 의하면
"상고하면《사기(史記)》에 이르기를 진덕공(秦德公) 2년에 처음으로
삼복 제사를 지냈는데, 성 4대문 안에서는 개를 잡아 충재(蟲災)를 방지했다고 하였다."라는
내용이 전한다. 이로 보아 삼복은 중국에서 유래된 속절로 추측된다.
3. 삼복의 풍속
삼복은 1년 중 가장 더운 기간으로 이를 '삼복더위'라 한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더위를 이겨 내라는 뜻에서 높은 벼슬아치들에게 빙표(氷票)를 주어
관의 장빙고에 가서 얼음을 타 가게 하였다. 복중에는 더위를 피하기 위하여 아이들과
부녀자들은 여름 과일을 즐기고, 어른들은 술과 음 식을 마련하여 산간계곡으로 들어가
탁족(濯足)을 하면서 하루를 즐긴다.
한편으로 해안지방에서 는 바닷가 백사장에서
모래찜질을 하면서 더위를 이겨내기도 한다. 복날과 관계 있는 속신으로
'복날에 시내나 강에서 목욕을 하면 몸이 여윈다.'는 것이 있다.
이 러한 속신 때문에 복날에는 아무리 더워도 목욕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초복에 목욕을 하였다면 중복과 말복 날에도 목욕을 해야 하는데,
이런 경우에는 복날마다 목욕을 해야만 몸이 여위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4. 삼복의 시절음식
초복과 중복, 그리고 말복에 걸친 삼복더위를 이겨내는 시절음식으로 개장국이 있다.
개장국은 더위로 인해 허약해진 기력을 충전시켜 준다. 허준이 저술한《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개고기는 오장을 편안하게 하며 혈맥을 조절하고, 장과 위를 튼튼하게 하며, 골수를 충족시켜,
허리와 무릎 을 온(溫)하게 하고, 양도(陽道)를 일으켜 기력을 증진시킨다."는 기록이 있어
개고기의 효능을 구 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외에도 복날에 개장국을 끓여 먹는 풍속은
여러 세시기(歲時記)에도 나타난다. 이들 기록은 개고기의 효능과 복중에 개장국을
절식(節食)으로 즐기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예컨대《열양세 시기(洌陽歲時記)》에 의하면
"복날에 개장국을 끓여 조양(助陽)한다."는 기록이 있고, 또《동국세 시기(東國歲時記)》에는
"개장국을 먹으면서 땀을 내면 더위를 물리쳐 보허(補虛)한다."고 하였다.
또〈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에는 황구(黃狗)의 고기가 사람을 보한다고 하여,
황구를 일등품으로 여기고 있다. 이러한 문헌을 통해서 볼 때, 개장국은 우리 민족이 건강식으로
널리 즐겼음을 알 수 있다. 개고기 요리법에 관한 기록은 조선시대 조리서에 나타난다.
조선시대 조리서에는 개고기 요리 의 종류와 원리를 다양하게 기록하고 있다.
예컨대《규곤시의방(閨 是議方)》에는 개장·개장국누 르미·개장고지누르미·개장찜·
누런 개 삶는 법, 개장 고는 법 등 전통 요리법이 자세하게 기록 되어 있다.
또《부인필지(婦人必知)》에 의하면 "개고기는 피를 씻으면 개 냄새가 나고,
피가 사람 에게 유익하니 버릴 것이 아니라 개 잡을 때 피를 그릇에 받아 고기국에 넣어
차조기잎을 뜯어 넣고 고면 개 냄새가 나지 않는다."라는 기록이 있다.
우리 민족이 개장국을 건강식으로 널리 즐겼음은 분명하나 지방에 따라서 개고기를 먹으면
재수가 없다고 하여 금하기도 하였다. 또 특정 종교의 세계관에 의해 개고기를 식용으로
하는 것을 금기시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개장국을 대신하여 삼계탕을 즐기기도 한다.
삼계탕은 햇병아리를 잡아 인삼과 대추, 찹쌀 등을 넣고 고은 것으로서 원기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외에도 팥죽을 쑤어 먹으면 더위를 먹지 않고, 질병에도 걸리지 않는다고 하여
초복에서 말복까지 먹는 풍속이 있다. 팥죽은 벽사의 효험을 가진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더운 복 중에 악귀를 쫓고 무병하려는 데에서 나온 풍습이다.
참고 >> 뿌리를 찾아서
5.삼계탕의 유래
'복날의 절식 삼계탕'
보양식으로 으뜸…외국인에게도 인기 뚝배기에 뜨겁게 끓여내야 제맛
삼계탕은 어린 닭에 인삼과 마늘 대추 찹쌀 등을 넣고 물을 부어 푹 고아서 만든 음식으로
계삼탕(鷄蔘湯)이라고도 한다.
여름철의 대표적인 보양음식이며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들이 손꼽는 한국 음식 중 하나이다.
원래는 연계(軟鷄: 병아리보다 조금 큰 닭)를 백숙으로 고아서 `영계백숙'이라 하였는데
인삼을 넣어 계삼탕이라 불렸으며 지금은 삼계탕이라고 명칭이 굳어졌다.
"서울잡학사전"에서는 “계삼탕은 식욕을 돋우고 보양을 하기 위해 암탉에다 인삼을 넣고
흠씬 고아 먹는 것이다. 배를 가르고 삼을 넣고는 꾸져 나오지 못하게 실로 묶는다.
여름철 개장국 먹는 축보다 더 여유있는 집안의 시식이다.
계삼탕이 삼계탕이 된 것은 인삼이 대중화되고 외국인들이 인삼의 가치를 인정하게 되자
삼을 위로 놓아 명칭을 다시 붙인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여
명칭이 바뀐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다.
삼계탕을 끓일 때에는 한 사람이 혼자 먹기에 알맞은 작은 크기의 닭을 구한 후에
배를 가를때 되도록 조금만 갈라 내장을 빼내고 그 안에 불린 찹쌀과 인삼 대추 마늘 등을 넣고
밖으로 빠져 나오지 않도록 실로 묶는다.
강한 불에 끓이다가 약한 불로 1시간쯤 푹 고아야 하는데,
인삼이나 황기의 성분이 닭의 여러 성분과 어울려 충분히 우러나고 찹쌀이 무르며
국물이 알맞게 졸았을 때 불을 끈다.
이것을 그대로 먹기도 하고 꼭 짜서 즙액만을 먹기도 한다.
삼계탕을 끓일 때는 들어가는 재료도 중요하지만 돌솥이나 뚝배기에 뜨겁게
끓여내는 것이 중요하며, 함께 들어가는 인삼 대추 황기 등은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한약재이므로 삼계탕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약식동의(藥食同意)의 개념이 짙게 배어있는 음식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보통은 흰살 닭을 이용해 삼계탕을 만드는데 이것보다는 오골계로 만든 것을 더욱 귀하게 여긴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오골계를 약용(藥用)이나 식용(食用)으로 많이 쓰는데
조선후기의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와 「규합총서(閨閤叢書)」에서는
오골계에 대해 “적흉백오계(赤胸白烏鷄)가 사람에게 아주 좋되 뼈가 푸른 색이어야 진짜 오골계이다.
겉으로는 알기 어렵고 눈과 혀가 검어야 뼈가 푸른 법이다”라고 하였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 따르면 오골계는 풍을 예방하고 여성의 산후조리에 좋으며
늑막염과 노이로제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삼계탕 이외에 닭을 이용하여 만든 음식으로는 임자수탕(깻국탕)과 초계탕, 닭개장 등을 들 수 있다.
더운 공기로 인해 불쾌지수가 최고로 올라가고 있는 요즘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는 말처럼
따끈한 삼계탕을 먹어보면 어떨까? 찬 음식을 먹는 것보다 오히려 개운한 느낌이 들고
영양면에서도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6.개고기 먹는풍속은 중국서 유래
우리 전통민속은 `부정탄다' 여겨 더운 삼복철에는 떨어진 기운을 보충하기 위해
보신탕이나 삼계탕을 먹어야 한다는 습속이 있어서 견공(犬公)과 닭이 수없이 희생된다.
특히 개고기를 즐겨 찾으므로 서구인들로부터 '야만적'이라는 지탄을 받아온 지가
어제오늘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애완견과 먹는 개는 다르다” 또는
“남의 나라의 식(食)문화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문화적 폭력이다”는
식으로 항변하지만 설득력을 잃고 있다.
수없이 버려진 애완견이 보신탕으로 환원되는 경우를 보여주는 TV의 고발 프로가 등장하였고,
개고기가 보양음식으로 특별하지 않다는 평가가 내려진 지 오래이다.
게다가 지구촌의 일원으로서 함께 살아가야하는 시대에 혼자만 '전통'이라고 우기는 것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고기를 먹는 습속이 우리의 `전통'인가? 그건 `아니다'.
본래 개고기를 먹는 풍속은 중국에 있었다.
홍석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삼복(三伏)조에 보면, “
사기(史記)에 이르기를 진덕공 2년에 비로소 삼복제사를 지내는데 성 안 4대문에서
개를 잡아 충재(蟲災)를 막았다”고 했다.
유득공의 `경도잡지(京都雜誌)'에도 이 기사를 인용하고
"이것이 복날의 고사(故事)인데 지금 풍속에 이것을 먹는다"고 하였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처음에 중국에서 제사의 희생물로써 개가 바쳐지고 그것을 먹은 풍속이
우리에게 전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의 전통민속에서는 개를 먹는 것을 `부정 탄다'고 해서 지극히 꺼린다.
개를 먹은 자는 물론이고 잡는 것을 본 자도 동제(洞祭)나 혼례 및 상례 등 중요한 행사에
참여할 수 없음은 기본적인 상식이다.
특히 산삼을 채취하기 위해 신성한 산에 드는 심메마니에게 있어서
개고기는 제일의 금기(禁忌)이다.
개가 이렇게 금기의 대상이 된 것은 우리의 선조들이
“개는 인간과 가장 가깝고 오로지 주인에게 충성하는 신성한 영혼을 지닌
영물(靈物)이기에 상해하는 것은 부정(不淨)하다”고 인식한 결과이다.
지금은 옛날처럼 먹을 것이 없는 세상도 아니고,
인간과 견공(犬公)의 끈끈한 정서로 보아서,
그리고 지금은 세계인이 함께 사는 시대이기에
전부터 주변에서 먹어온 개고기지만
이제는 남의 눈치를 좀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김의숙(강원대 대학원장, 민속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