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의 총
이 현 주
“시익·…·시익·….”
바람소리 같기도 한, 그러나 분명히 바람소리는 아닌 이상한 소리에 나는 잠
이 깨었읍니다. 노오란 봄볕이 내 눈알맹이 속으로 확 들어 왔읍니다.
내가 누워서 잠자던 곳은 바로 얼룩소들이 떼를 지어 놀고 있는 목장의 언덕
따뜻한 양지 쪽이었읍니다.
“시익·…·시익.”
그 이상한 소리는 계속 들려왔음니다. 무슨 소릴까?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눈에 보이는 건 하얀 구름과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기 시작한 살구나무 가지들뿐 아무것 도 없 었움니다.
“시익·…·시익.”
이번에는 아주 내 귀 가까이에서 소리가 들렸읍니다. 소리나는 쪽으로 나는 고개를 돌려봤지만 거기에는 등에 붙은 파리를 꼬리로 쳐 쫓으며 서 있는 얼룩소가 한 마리 서 있을 뿐이었읍니다. 조그만 파리는 소의 꼬리가 휘익 날아오는 순간 날쌔게 자리를 떴다가 다시 그 자리에 앉는 것이었읍니다. 아직 여름도 되지 않았는데 참 일찍 파리가 나왔읍니다. 얼마나 귀찮을까? 나는 신경질도 부리지 않고 툭툭 꼬리로 자기 등을 치고 있는 소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읍니다.
그런데 그 소가 갑자기 입술을 실룩실룩 하더니 이빨을 내놓고는 시익, 하는 것이었읍니다. 어라? 저것 봐라. 소가 웃네? 이번에는 아주 참을 수 없다는 듯
이 입을 찍 벌리더니 시이히헉, 하고 크게 웃는 것이 아닙니까?
아, 바로 저 소리였구나 !
나는 살금살금 소가 서 있는 곳으로 겉어갔읍니다. 사실 소가 신나는 일이 생기면 웃는다는 얘긴 할아버지에게서 들었지만 실제로 눈으로 보기는 처음이었으니까요. 소는 커다란 눈알로 나를 바라보더니 웃음을 멈추고 입을 다물었읍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읍니다. 뭔가 빨간 공같이 생긴 것이 쪼르르 소의 가
랑이 사이로 빠져 건초더미 쪽으로 달아나는 게 보였읍니다.
나는 깜짝 놀랐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그 빨간 놈을 따라 건초더미 쪽으로 기어갔읍니다. 쥐새끼처럼 빠르게 그 조그만 녀석이 풀속으로 사라졌읍니다. 그렇지만 풀더미가 원래 조그마했기 때문에 나는 그 풀을 송두리째 들어버렸지요.
그속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서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것은 빨간 조끼를 입은 난장이 였읍니다.
“살려주셔요, 네? 살려만 주셔요.”
나를 보더니 두 손을 싹싹 빌며 살려달라는 겁니다. 그 꼴이 우습기도 했지만 안됐더군요. 그래서 나는 그 난장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입니다.
“얘 꼬마야, 살려달라니…… 도대체. 뭘 잘못했기에 그 야단이냐 응?”
그러자 그 난장이는 대번에 활짝 웃으면서 이제는 안심이다 하는 얼굴로 쳐다보더니 한 눈을 꿈벅, 아주 귀엽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읍니다. 나는 오른손 둘째손가락으로 그의 머리를 살살 쓸어주었읍니다. 이때 갑자기 난장이가 한짝 뒤로 물러서더니 조끼 품에서 까만 권총을 꺼내 나를 겨누었읍니다.
“어어? 왜 그래?”
나는 엉겁결에 두 손을 들어 그 총구멍을 가리고 일어섰읍니다.
“평!”
아주 귀염고도 간지러운 총소리가 들렸는가 했는데, 웬일인지 갑자기 내 입에서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이었읍니다. 아무리 참으려 해도 참을 수 없었습니다.
“하하하·… 히히히·….”
난장이는 신이 나는지 자꾸만 내게 총을 쏘아댔읍니다.
“헤헤 헤 헤·…· 히히히히·….”
웃음은 자꾸 나왔읍니다. 금방 두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렸읍니다. 나는 눈물을 훔치며 물었읍니다.
“헤헤헤·…·그게 뭐니? 응? 이히히히·…· 그게 무슨 총이난 말야? 헤헤헤…· 하하하하·….”
아무리 웃음을 그치려 했으나 소용없는 일이었읍니다. 난장이는 펑펑 신이 나서 나에게 총을 쏘아댔습니다.
“하하하·…· 이제 그만, 이히히히·…· 꼬마야, 그만 쏘란 말야. 으하하하……
정말 그만두지 못하겠니? 으흐흐흐·… 헤헤헤·….”
나는 그만 너무 웃었기 때문에 뱃속에 쥐가 다 날 정도였읍니다. 땅바닥에 마구 뒹굴며 나는 소리쳤읍니다.
“아아 흐흐흐·…· 이히히히·…· 너 임마 정말 그만두지 못해? 우헤헤헤……
아버지·…· 으하하하 아이구 엄마·…·하하하·…· 후후후·….”
내가 정말 죽는 시늉을 하자 놈은 총을 다시 품속에 넣고 내 옆에 버티고 서는 것이었읍니다. 그러자 차츰 웃음도 그쳤읍니다. 나는 땅위에 엎드린 채 꼬마를 불렀읍니다.
“야 그거 참 이상한 총이구나? 어디 좀 보자. 응?”
그 난장이는 자랑스럽럽다는 듯 총을 꺼내들더니,
“이건 말예요.”
하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읍니다.
“이건 웃음의 총이라는 건데요·…·아무리 골이 난 사람이라도 이 총으로 한방만 쏘면 웃음이 나는 그런 총이어요. 재미있죠?”
“어디 좀 보자.”
나는 그가 내미는 총을 받아 이리저리 살펴보았읍니다. 조그마한 게 아주 귀엽게 생긴 총이었읍니다. 나는 갑자기 그 총이 갗고 싶어졌읍니다. 이것만 가지면 울보인 내 동생도 달랠 수도 있고 심술장이 누나도 곯려줄 수 있을 테니까 말이죠.
“아무나 다 웃니?”
“그럼요.”
“어른도 웃어?”
“그럼요.”
“나무도?”
“네, 나무도 웃어요.”
“거짓말!”
“에에? 쏴 보세요.”
“그럼 별님도 웃겠네?”
“글쎄, 다 웃는다니 까요.”
“어디 보자!”
나는 벌떡 일어나 앞에 서 있는 얼룩소를 향해 한방 쏘았읍니다. 그랬더니 아니나다를까? 두 눈을 꿈벅꿈벅하더니 어내 이빨을 내밀며 〈시이익〉 웃는 것이 었읍니다.
그 옆에 있는 살구나무에도 한방 쐈더니 어렵쇼? 나무도 잔가지를 푸들거리며 속으로 킥킥거리는 것이 아닙니까!
“야 꼬마야, 이거 나 줄래?”
나는 총을 뒤로 돌리고 난장이에게 사정을 했읍니다. 난장이는 한참 동안 턱을 괴고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머 말하는 것 이었읍니다.
“네·…· 달라면 드리죠. 그러나 그 총은 아무데서나 막 쏘면 안돼요.”
“그럼 어떻게 쏘지?”
“음, 그건 이제 차차 알게 될 거예요.”
나는 너무너무 기뻐서 그만 깡총깡총 제자리에서 뛰기 시작했읍니다. 그러자 발밑에서 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읍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욧!”
“응? 뭐야?”
“그렇게 뛰다가 내 등이나 밟아버리면 어쩔 셈이에요?”
“아참 그랬구나, 미안해·…· 그런데 꼬마야, 한가지만 더 물어보자. 이 총알은 무얼로 만들지?”
“그렇지, 중요한 걸 빼먹을 뻔했구나! 잘 들어뒤요. 그 총알은 말이죠, 따듯한 봄볕 한 움큼하고 빨간 장미꽃 두 송이, 그리고 이른 새벽 아기 호박에 맺힌 이슬방울을 섞어 만든 거예요. 꼭 봄볕이라야 돼요. 알겠어요?”
“그래, 그래 잘 알겠다. 정말 이 총 나 주는 거지?”
난장이는 그 빨간 조끼 주머니에 두 손을 넣더니 고개를 까닥거렸읍니다.
“고맙다. 자, 그럼 또 만나자.”
나는 난장이와 헤어져 한걸음에 집으로 달려왔읍니다.
집에서는 마침 낯잠에서 깨어 울음을 터뜨린 아기를 업고 엄마가 땀을 흘리며 달래고 있었읍니 다.
“어이, 어·…· 또래또래·…· 어이 착하다. 우리 아가를 누가 울렸어 ?·….”
흔들고 젖을 물리고 별짓 다해도 이 녀석은 한참 울어야 그칩니다. 성질이 아주 고약하답니다. 내가 권총을 쑥 빼어들고 방안으로 들어서자 엄마가 소리를 치십니다.
“아니 재가? 못써, 그런 거로 사람을 쏘는 게 아냐요.”
하지만 나는 끄떡도 않고 서서 아가에게 우선 한방 평 하고 쐈지요. 틀림 없지 뭡니까? 아가는 곧 울음을 그치더니 생글생글 웃으며 엄마의 젖을 물었습니다.
엄마가 놀라서,
“얘 그게 뭐냐?”
하시며 손을 내밀었읍니다.
“어디 좀 보자!”
나는 엄마한테도 한방 펑 하고 쐈읍니다. 그랬더니 엄마도 감자기 웃음을 터뜨리는 것이었읍니다.
“호호호·…· 쟤가 붤 가지고…… 하하하·…· 그게 도대체 무슨 총이냐?”
나는 신이 났읍니다. 서울역으로 가는 버스에서였읍니다. 더이상 들어설 수 없도록 꽉 들어찬 버스에다 차장은 자꾸만 사람을 태웠읍니다. 끝내 어떤 뚱뚱한 돼지같이 생 긴 아저씨가 꽥 소리를 질렀읍니다.
“야 차장, 숨통 터진다! 고만 좀 태워라 엉?”
그러자 차장이 또 꽥 소리를 질렀읍니다.
“그렇거든 자가용을 타요. 택시를 타든지. 10 짜리가 야단야, 야단이.”
나는 슬그머니 총을 꺼내 우선 그 뚱보아저씨에게 한방, 그리고 차장에게 한방을 남모르게 쐈읍니다.
“헤헤헤·…· 고것 참!”
드디어 웃음이 터졌읍니다.
“아 이 녀석아! 누가 자가용 타겠다구 했나? 응? 사람 좀 그만 태우라고 했
지. 하하하·….”
그러자 차장도 깔깔대고 웃었읍니다.
“호호호·…· 그러니 어떡해요? 같이 타고 가셔야지. 조금만 참아주셔요. 후후훗·….”
버스 안에 탔던 다른 사람들도 그 두 사람을 따라 저마다 웃기 시작했읍니다.
남학생들은 킬킬거리며 목을 있는 대로 가슴에다 파묻는가 하면 어떤 여학생
들은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깔깔거리는 것이었읍니다.
나는 자꾸만 신이 났읍니다.
서울역에 내렸읍니다. 사람들이 와글와글 들끓는데 갑자기,
“이놈, 꼼짝마라!”
하는 소리가 들렸읍니다. 뛰어가보니 어떤 소년을 형사 아저씨가 막 잡아끌고 있었읍니다.
“왜 이래요? 예? 놔요, 놔. 난 쓰리꾼이 아니란 말예요.”
“아니긴 뭐가 아냐? 내가 똑똑히 보았다. 임마!”
나는 얼른 총을 꺼내 형사 아저씨에게 한방, 소년에게 한방 쐈지요. 갑자기 형사 아저씨의 음성이 부드러워졌읍니다.
“하하하·…· 괜찮다! 괜찮아 무서워하지 말고 파출소로 가자. 응? 아하하·…· 저기 가면 너 같은 아이들을 위해 좋은 학교도 있구 말야·…· 가자……
하하하·….”
“네, 가요. 히히히. 잘못했어요. 아저씨 용서해줘요. 네? 헤헤헤·….”
이 얼마나 신나는 일입니까? 나는 온통 서울시내를 웃음바다로 만들고 싶었읍니다. 선생님도 웃고, 거지도 웃고, 교통순경님도 웃고, 아! 온통 웃음천지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아마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모여들 것입니다. 그들은 와서 웃음을 배워가지요. 그래서 전 세계를 웃음바다로 만드는 겁니다. 아름다운
세계를 만드는 겁니다.
그러나 세상은 웃음만으론 살아갈 수가 없는 것 인 모양입니다.
어느 골목길을 나는 걸어가고 있었읍니다. 난장이에게서 얻은 신기한 총을 주머니에 넣고 기분이 한창 좋아 있었읍니다. 갑자기 한 집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소리는 한 사람의 울음소리가 아니었읍니다.
나는 빠끔히 열려 있는 대문으로 들어갔읍니다.
조그만 마당에 사람들이 모여 슬프게 울고 있었읍니다.
나는 총을 꺼내 그들에게 펑펑 마구 쏘아댔읍니다. 그러자 그들 중에서 하나 둘 웃기 시작하더니 모두들 울음을 그치고 입을 벌려 웃어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나는 으스대며 한 사람에게 물었읍니다.
“아저씨. 왜 울고 있었나요?”
“응? 하하하…· 우리 딸애가 앓다가 오늘 죽었단다! 후후후·…….”
아저씨는 웃으며 말했읍니다. 그러나 그 눈은 말할 수 없이 슬퍼보였읍니다.
“네?”
나는 깜짝 놀랐읍니다.
“아·…· 난 몰라, 난 몰라!”
나는 마구 그 집을 뛰쳐나왔읍니다. 이걸 어쩌면 좋단 말입니까? 거기선 쏘면 안되는 것이었읍니다. 거기엔 웃음이 필요없는 곳이었읍니다.:
나는 난장이가 총을 주면서 아무데서나 막 쏘지 말라고 한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읍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웃음이 비록 달콤하고 좋은 것이지만, 그것만 가지고 정말 아름다와질 수 없는가 봅니다.
아름답다는 건 그건 진실하다는 거니까요.
이제 이 길로 난장이를 찾아가 만나야겠읍니다. 가서 이렇게 말할 작정입니다.
―얘 이젠 이 총 소용없다. 그 대신 이런 총 없을까? 진짜로 슬퍼해야 할 사람에게 쏘면 눈물을 주고 진짜로 기뻐해야 할 사람에게 쏘면 웃음을 주는 그런 총 말이야…….
●Iι또㏓珏□
41° 이 현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