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무슨 일부터 해야 되는데?”
느긋하게 커피까지 한 잔한 뒤 내가 아내에게 한 말이다.
“일이 어중간한데, 오늘 일은 그만 하자.”
“그렇다면 산에 가도 되나?”
산행할 준비를 하지않아 어떻게 갈 수 있을까마는 짬난 시간을 허투루 보내기 싫어 마음을 먹어 보았다.
그렇게해서 부랴부랴 채비를 갖추며 설쳤다.아내의 시장보따리를 끈으로 묶어 배낭을 만들어 물과 먹을꺼리를 넣어 어깨에 걸쳤다.
나중에 이 차림이 그만 나물꾼 차림이 되어 행동과 출입의 제약을 받을 줄은 몰랐다.
그렇게 찾아나선 산은 고성의 무량산(無量山 582.6).낙남정맥이 지나는 이 산은 북으로 천왕산이 가깝게 솟아있고, 동으로 통영지맥이 분기된다.
이 무량산 동릉으론 철마봉과 301.8m봉을 지나면서 통영지맥을 이탈하며 북동으로 서재봉이 살짝 벗어나 있다.
이 구간이 오늘 내가 급히 선택한 코스로 원점회귀를 이루어야 하는 곳.
결론적으로 말하면 “오늘 산행은 완전 망했다.”
그러니까 이 기록은 실패한 산행기인 셈.
서재봉에서 내려선다면 하산은 그런대로 가능할 것이나 서재봉부터 오르는 길은 불가하였다.
원점회귀를 전제로 지형도를 참고하여 이리저리 붙어 보았으나 접속하는 足足 사유지 휀스로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거기다 내 차림새가 그 모양이었으니 누굴 탓하랴.
준비를 전혀 하지 못한 데다 예습도 전무하였으니 시행착오는 불을 보듯 뻔했다.
1926년 일제는 천왕산(天王山 582.6)을 무량산(無量山), 무량산(544.9)을 대곡산(大谷山), 철마봉(鐵馬峰 416.9)을 천왕산으로 표기하고 있어 무량산과 천왕산의 위치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2011년도(1:25000) 지도에서는 나즈막한 서재봉(書齋峯 193.1)에다 ‘천왕산(무량산)’으로 표기해놓고 있다.
이렇듯 산이름이 뒤죽박죽 바뀐 것은 韓민족의 맥을 끊으려는 일제의 창지개명(創地改名)과 관련이 있다.
고문헌과 고지도에서는 대곡산(545m)과 철마산(416.9), 그밑에 있는 301.8m봉을 통틀어 무량산으로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헤아릴 수 없다’는 알듯모를듯한 무량산은 고성의 중심 산이고, 철마봉은 고을 현령이 1년에 두 번 제를 지낸 실질적인 진산 노릇을 한 봉우리라고 한다.
서재봉은 옛날 산자락에 서재가 있어 서재골 또는 서재산이라 했지만 지형도에는 천왕산 또는 무량산이라 잘못 표기해 왔었다.
그렇게 ‘천왕’이라는 명칭을 보잘 것 없는 낮은 봉에다 매겨놓고 만 것.
1) 서재봉 북동쪽은 잡목숲이 우거져 빙빙돌다 포기.
2) 서재봉 좌측 임도는 '누리농원'으로 각종 산나물을 재배하는 사유지로 출입금지.
흡사 나물꾼 복장으로 올라오는 나를 어떻게 보았을까, 지금 생각해도 절로 웃음이 난다.
3) 무량산 북릉 포장임도로 접근해 보았으나 거기도 '사슴농장'으로 휀스를 쳐놓아 오를 수 없었다.
4) 다 포기하고 돌아가려다 지형도에서 서재봉이 제일 가까운 '무등선원'으로 깊숙이 들어가 보았다.
참고 <월간 산>.트랙은 양화리에서 봉화산~천왕산~화리치(낙남정맥)~사슴농장~무량산~철마봉~서재봉(13.5km, 약 7시간)
연지보건진료소에 차를 댄 후 호기롭게 표지기를 준비하였다. 이 때 만해도 이번 산행이 망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연지보건진료소.
보건소에서 서재봉부터 올라 철마봉~무량산~사슴농장으로 내려와 도로를 따라 회귀하려 하였다.
올려다보는 서재봉.
저렇게 나즈막한 봉우리이니 어디로 올라도 쉬우리라 생각하였다.
저 쪽 길로 올라 산밑으로 붙어 보았으나 에구, 내려올 땐 몰라도 포기다.
고목이 있는 방향, 산밑으로 돌아...
능선자락을 훑어 보지만...
집들이 들어서면서 모두 담장으로 막혀있다. 내 집 앞으로 등산로가 나는 걸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내려오면 몰라도 오르는 데는 불가할 것.
청송재 쪽으로 가...
골목으로 들어가도, 또 자전거가 있는 개울쪽으로도 담에 막힌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서재봉 서쪽의 임도가 선명한 골짜기를 선택하였다.
나중에 내가 걸어 내려올 계획인 약수암과 사슴농장 안내판.
정면으로 천왕산과 무량산인 듯 스카이라인이 선명하다.
그 우측 배경.
낙남정맥 마루금.
서재봉을 서쪽 임도를 통해 접근하기 위하여...
서재봉을 좌측 어깨에 짊어지고 두르는데...
누리농원 표석이 서있다.
그려러니 하고 오르니 철문.
좌측으로 서재봉인 듯한 봉우리를 올려다 보며...
줌인해 보니 얼추 정상부위까지 임도가 보인다.
그렇게 임도를 따라 오니 흡사 마을 한복판인 듯.
무슨 안내도인가 하여 살펴보니 명이나물(산마늘) 주산지라네.
안내도 뒤 임도를 따라 더 올랐더니 "어디 가세요."한다.
"요 위 서재봉요."
"안돼요 거기 길 없어요."
설명이 필요없었다
.말인 즉슨 산짐승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전부 울타리를 쳐서 갈 수 없다는 것.
구구절절 설명을 해봤자 백약이 무효다.
"알겠습니다."하고 돌아서서 터덜터덜 내려오다 내 꼬라지를 쳐다보니 영판 산나물 도둑놈 형색이다. 캬~
"그러나저러나 무슨 사유지가 이렇게 넓남?"
산 골짜기 전체를 온통 다 차지하고 앉았다.
임도시설을 포함한 전체가 사유지인지, 또 언제부터였는지 궁금증이 유발한다.
시간은 이미 많이 지났다.
서재봉부터 먼저 오를려고 했던 건 나중에 늦어 어두워져도 산에선 일찍 내려오고자 했던 것.
차로 이동하여 사슴농장이 있는 낙남정맥 고개에서 무량산만 찍고 내려와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나의 무량산 산행은 허락되지 않는다. 사슴농장의 울타리가 나의 산행길을 막아서고 있기 때문.
그런 나의 절박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사슴무리들.
이리저리 둘러 보았으나 농장의 규모는 산을 거의 다 차지하고 있다.
오른쪽에도 길게 울타리가 쳐져 있다.
나중에 알고보니 차가 올라온 방향(고개에서 연지리 방향)150여m 지점 아래에 울타리를 끼고 맥꾼들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사슴농장이 맥을 끊어 놓았으니 지맥꾼들은 농장울타리 옆으로 맥을 잇고 있었던 것.
차를 타고 내려오다 석축 위의 안국사를 돌아 보았다.
그런 실패를 하고보니 만사가 다 귀찮아졌다.
이리저리 지형도를 살피다 서재봉에서 제일 가까워 뵈는 '무등선원(無等禪院)'에서 서재봉만이라도 오르고 싶어졌다.
그렇게 깊숙이 들어와 무등선원 널따란 주차장에 차를 댔다.
지형도를 살펴보면 무등선원 뒤로 민가가 한 채 있고, 그 뒤 안부로 접근하면 금세 서재봉에 오를 것으로 판단했다.
"어디 가십니까?"
"서재봉 갑니다."
"거기 길 없습니다."
또 낙심이다.
그러다보니 타령도 아니고 푸념도 아닌 넋두리가 나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접근하는 곳마다 사유지로 인해 오를 수 없었던 이유를 쏟아놓고 나니 한결 마음이 후련해졌다.
'무등선원'은 스님 두 분이 계시는 비구니 사찰.
무등선원 뒤의 민가는 스님의 아버지가 사시는 집이란다.
나중엔 나의 사정을 다 들으시고 "그렇다면 올라가 아버지께 말씀드려 보세요."하신다.
그러면서 다른 스님이 "아랫마을(안무량)에서 통영지맥으로 새로 임도가 개설되어 차량통행도 가능할 것."이라 말씀하신다.
전화벨도 울리고, 마스크도 쓰지않아 "알겠습니다."하고 돌아서는데, '이거 드시며 가라'며 음료 한 팩을 권한다.
"잘 먹겠습니다."
스님의 안내에 따라 '고성군 고성읍 무량리 산19-1'지점에서 화살표 방향 임도를 오른다.
이 임도는 신설임도로서 아직 다져지지도 않은 상태라 바퀴에 자갈이 모래밭처럼 쭉쭉 미끄러져 상당히 위험하다.
임도.
임도는 통영지맥을 오른쪽 어깨에 짊어진 채 산허리를 계속 굽어돈다.
위험을 무릅쓰고 임도가 끝나는 지점까지 구불구불 올라왔다.
나중에 트랙을 확인하니 속도가 빨라서 그런지 튀어버려 대강의 흔적만 참고할 뿐이었다.
통영지맥과 임도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지맥을 따라 서재봉으로 오른다.
지맥길은 아주 선명하여...
묵묘인 듯 석축의 흔적도 지나고...
봉분이 평평한 무덤 한 기가 있는 '무량산 갈림봉(해발 약 200m)'에 올랐다.
갈림봉에서 서재봉으로 가는 길은 어린 편백나무가 식재된 내리막길.
능선을 따라 좁게 길이 나 있더니...
왼쪽으로 철망이 쳐져있다. 아까 출입을 금지당한 '누리농원'에리어이다.
안부에서 무덤3기를 지나...
좌측으론 누리농원 휀스가 쳐져있고...
농원 안으론 임도가 능선까지 올라와 있다.
작은 봉우리에 서명한 서재봉(書齋峰) 표지기를 걸었다.
어떤 지도에는 천왕산 또는 무량산으로도 표기된 작은 산이다.
지난 2014년 4월 4일 국토지리정보원은 지명 변경 고시를 발표하며 산봉우리 4개의 이름을 바꿨다.
천왕산, 무량산, 철마봉, 서재봉이 제 이름을 찾는 순간이다.
무슨 꽃일까, 산목련인가?
휀스 옆으로 난 길도 잡목 가지치기로 막히기 일쑤.
빼꼼이 모습을 드러낸 봉우리는 301.8m 삼각점봉(舊 무량산)인 듯.
다시 회귀하여 갈림봉에 돌아왔다.
성도 나고, 짜증도 나고해서 준비한 무량산과 철마봉의 표지기에다 '갈림길'이라는 글을 써 넣은 뒤 나란히 걸어버렸다.
다시는 오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지만, 산행기를 쓰는 지금은 마음이 얼추 돌아서 자꾸만 못간 그 산들이 돌아보인다.
아까 올랐던 곳으로 임도와 지맥이 겹치는 곳이지만 산길을 더 이어며...
진달래도 눈에 담는다. '내려 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싯귀처럼 한결 마음이 가라앉았다.
오만 짜증 다 받아주고, 오만 넋두리 다 들어주는 충복스런 나의 차.
나와의 인연은 10년이 훨씬 넘었다.
아내에게 전화를 건 뒤 1시간 뒤 도착예정이라고 일렀다.
귀가하면서 차에서 찍은 '송학리 고분군(사적 119호)'은 소가야 왕국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 무량산(現 천왕산) 산행 때엔 차에서 내려 고분군을 한 바퀴 둘러 보기도 하였고.
다시 한 번 당겨보는 고분군.
다시 찾아가리라.
그 한량없다는 심오한 철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철마(鐵馬)가 어떠했길래 고을 수령이 매년 제를 올리게 되었는지 가서 내 눈으로 확인해 보리라.
코스는 이날 실패한 지맥의 북쪽을 이용하지 않고, 지맥의 남단을 이용하여
1) 감치재~무량산, 2) 부치골~철마봉, 3) 이곡~301.8m봉에서 선택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