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영토문제와 대마도
강사 : 김상훈(관동대 학군단장)
*이 자료는 2013.12.3(화) 15:30분 제7기 문화대학 13강좌에서 김상훈대령의 강의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강사는 육사39기 현역대령으로 우리의 영토, 영유권문제에 대한 연구와 발표를 하고 있다. 일본인 임자평의 호 독견에서 따와 본인의 아호를 萬古獨見으로 삼고 있다.
조선 최고 엘리트들의 대마도, 독도 영유(領有)권 승리
2010.11.26 육사에서 개최한 한일 군사문화학회 추계학술발표대회와 동년 12.7일 국회의원회관 131호실에서 대마도 정책포럼 특별강연을 통해 국제사회가 대마도 영유권을 인정했었고 이의 반환요구가 타당함을 여러번 발표하였다.
특히 지난 10.15일 중국칭화대 국제관계교육원 유강영 교수 겸 부원장의 초청으로 실시된 특별강연에서 독도와 대마도는 물론 관계된 중국의 조어도와 남태평양 일대의 영토 영유권에 대한 새로운 연구도 발표하여 유강영교수가 같이 본 연구를 책자로 발간하자는 제의를 하였다.
지금까지 독도(獨島)와 대마도(對馬島) 관련 연구자료는 국내에 있는 고서나 일본, 서양고지도 등에 표기된 것 위주로 연구되어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영토로 주장하여 결정적인 자료로 인정받기 어렵다. 오늘 발표는 조선후기 엘리트의 우리영토 대마도, 독도에 대한 인식이 근현대 동북아시아 국경확장에 직접영향을 미쳤고, 이 확정된 국경이 국제법적으로 공인되었음을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중국 등에서 수집한 다양한 공식자료를 바탕으로 주장하는 것으로 새로운 사실이 될 것입니다.
1.1763. 8월 일본 막부정권 교체시 일본에 간 조선 영조의 특사 조엄(趙曮, 1719-1777, 풍양조씨) 일행은 우리나라에 고구마, 수차를 들여온 정도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일본인에게 대마도, 독도가 우리 고유의 영토임을 설명하고 관련 지도를 일본인 임자평(1738-1793)에게 건네주어 이것이 91년 후 1854년 대마도, 독도를 국제법적으로 공인받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실이 발견되었다. 임자평의 전기에 실린 조엄의 기록, 임자평이 이들을 만나보고 소원을 달성했다고 기록하였다. 그뒤 임자평은 이를 근거로 삼국통람도설을 작성하였다.
2.대마도가 우리영토(領土)로 그려진 우리나라 지도를 한, 일 국경선이 어디인가 궁금해 하던 임자평에게 전해 준 사람이 있다. 그는 당대 조선 최고의 문장가이자 동아시아 최고의 천재, 일본에서 한류의 원조였던 이언진이라는 25세의 조선 대통역관이었다. 이언진이 전해준 조선전도에는 압록강을 중국과 국경, 울릉도 대마도가 우리 영토로 표기되어 있다.
3.임자평(林子平)은 설명을 더 듣고 대마도 부근을 다녀본 뒤 이 지도를 근거로 조선지도를 다음과 같이 모사한다. 그리고 일본과 류구국(오끼나와), 에조국(북해도), 소립원(남태평양 무인도)의 지도를 묶어 동북아시아 지도를 완성(삼국접양지도)하고 이를 설명한 책(삼국통람도설)을 일 천황에게 보고하면서 소자가 이 지도를 만든 목적을 조일간 국경을 명확히 하기 위함이다 라고 기록되었다.
4.이때 조선 통신정사 조엄의 서기였던 성대중도 우리선조 안용복(安龍福)의 울릉도, 독도 개척과 이들 섬이 우리영토임을 한글과 함께 일본인에게 설명해 주고, 또한 통신사 일행 중 화원 변박은 지도와 그림으로 대마도가 우리영토임을 그들에게 설명하였다. 이때 알려준 한글이 후에 유럽에 우리한글이 소개된 효시(嚆矢)였다.
5.일본과 주변국 국경선을 명확히 남기고자 했던 일본인은 조선의 지도와 한글을 획득후 당시 청나라 황제의 특사로 류구(오끼나와)국 책봉사로 활동하던 서보광이 남긴 중국과 류구의 영토관련 자료를 센카쿠(조어대)를 중국영토로 기술했으며, 이 한중 양국의 국왕특사 지도와 자료를 합쳐서 1785년 동북아시아 영토지도를 완성 후 1788년 일 천황에게 보고한다.
6.임자평이 일본주변 3개국의 지도를 만들 때 마지막으로 문제가 된 동해바다 한가운데 섬 독도는 우리영토임을 조선통신사 서기 성대중이 알려준다. 그는 일본에 가기 1년전 금강산여행을 하다가 삼척 소공령에서 맑은 가을날 동해바다를 보면 3개의 섬 봉우리가 보인다 라고 시를 남기고 여기서 울릉도가 보인다고 역설하였다. 독도를 가 보지 못한 임자평이 일본의 자료와 성대중이 말한 것을 지도에 기술하고 이를 조선의 것으로 라고 기록하였다.
7.완성된 지도를 천황(天皇)에게 보고되어 이를 직접 열람 칭찬하고 이후 모든 천황들이 칭송하였다. 명치천황은 이토히로부미와 같이 이 지도를 만든 일본인 묘소를 방문하였고 이 지도는 일본 스스로가 세계가 반복해서 승인한 일본 영토자료라고 기록하고 있다.
8.이 지도 1부가 일본에 있던 네델란드인을 통해 북경을 거쳐 파리에 있던 동양학본부에 전해지고 이것이 당대 제1의 동양역사학자이던 Klaproth에 의해 1832년 프랑스어로 번역(飜譯)되었다.
9.이 프랑스판 지도 1부를 일본을 강제로 개항해 근대국가로 변모시킨 미국 페리제독이 1854. 2월 일본과의 영토협상 시 가져 온다. 일본주위 무인도를 미국령으로 만들고자 하여 일본이 곤욕(困辱)을 치른다.
10.이에 일본은 1785년 일본인이 만든 지도를 제시하고 무인도(無人島)를 일본인이 최초로 발견했다고 주장하나 미국은 일본어로 된 지도는 국제법상 증거능력이 없다고 하여 받아들이지 않았다.
11.이에 일본은 어렵게 남태평양 섬들은 무인도이나 일본인이 최초로 발견했음이 기록되고 여기에 대마도, 울릉도, 독도가 우리영토로 기록된 1832년 프랑스어판 지도를 어렵게 구해 페리제독에게 제시하여 이를 국제법적 공인자료로 받아들여 일본이 이를 일본영토로 귀속(歸屬)시키게 된다.
12.이후 일본은 서구(西歐) 열강이 식민지(植民地)를 개척하려고 동양으로 밀려와 지속적으로 섬을 뺐으려 한 1861년, 1862년 미국해리스, 영국알콕 등 일본이 수교한 국가의 대사들에게 이 지도를 통해 반복해서 대마도, 독도를 우리영토로 국제법적 공인을 받았다.
13.일본정부는 이 프랑스어판 지도의 위력을 실감하여 다나베 다이치 정치인을 프랑스 대사로 2회 보내어 프랑스어판 원본을 수집하여 없애고 대마도를 일본령으로, 남태평양 무인도를 유인도로 조작(造作)한다.
14.원본(原本)은 하나일 수 밖에 없다. 임자평이 만든 지도는 일본정부에 의해 몰수된다. 이때 1부가 임자평의 친구에 의해 북경을 거쳐 파리로 간다. 이 1부가 프랑스 동양학본부에서 수십부 만 번역되었다. 번역하기전 10년 동안 동아시아를 돌아보고 만든 지도에도 대마도는 우리영토로 되어 있다.
15.원본지도와 조작지도의 차이점은 두 군데로 대마도와 남태평양 제도에 있으며 이는 곧 일본의 대륙침략 교두보(橋頭堡) 대마도와 일본의 태평양 진축 교두보 소립원도인 것이다.
16.일본이 대마도, 독도를 우리영토, 조어대를 중국영토로 국제공인 받은 그 지도에 따라 일본은 2012년 5월 유엔에서 한반도 전체의 14배가 넘는 해양영토를 새로 승인받았고, 일본이 중국보다 넓은 해양영토를 보유한 국가가 되는 기초를 제공받았으며, 2012년 6월 해양영토에서 일본이 향후 220년간 사용할 희토류가 매장(埋葬)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17.일본이 조작된 지도를 근거로 확보한 남태평양의 산호초에 2013년 7월 수조원을 투입하여 유인도로 확장에 나감에 따라 우리나라는 유사시 해양교역로 차단, 참치 등 수산자원과 희토류 등 미래 해양자원의 보고를 상실해 가고, 중국은 태평양 진출로가 차단 당함으로서 항공모함(航空母艦)이 무용지물이 되는 등 한국, 중국은 미래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 올 것이다.
18.일본이 지도를 조작하여 대마도, 오가사와라제도 등을 귀속한 것은 국제법상 불법(不法)이며, 한국과 중국은 역사적으로 일본의 남태평양 해양영토 소유(所有)를 승인한 바 없다. 그럼에도 일본은 계속해서 남태평양으로 영토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19.남태평양 소립원제도는 일본령으로 되어 있으나 미국의 백과사전(百科辭典)을 보면 원주민의 일부에는 한국인과 대만인도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소립원을 1968년 미국에게서 반환받았다.
20.2010년 발표된 본 연구 초기 논문이 나오자 일본은 관련사실을 숨기려고 그때까지 수록되어 있던 백과사전 내용을 조작하였다.
21.호사카유지(세종대교수, 독도전문가) 교수는 그의 논문에서 앞의 조선지도는 일본인에게서 받았다고 하고, 이 문장에서 ‘조선의 대통역관이 전해준’ 이란 3마다를 누락(漏落)하였다.
22.중국이 이 지도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임자평이 이 지도설명서에서 중국의 향후 위협을 경고(警告)한 것과 함께 이미 100년전 이 지도로 향후 일어날 청일전쟁(1894)과 러일전쟁(1904-1905)을 정확히 예언(豫言)하였고 이에 대비할 것을 일본정부에 알려 주었고 이에 일 정부가 철저히 준비하여 승리한 것이다.
23.우리에게 주는 경고, 이 지도를 근거로 조선을 일본 천황의 영토로 만들었다. 일본이 영토협상에서 이 프랑스어판 삼국접양지도로 영국, 미국을 이겨 본 자신감이 후일 미국을 상대로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된다.
24.대마도에는 6.25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나는 한국인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2000명 정도 살고 있다고 히로히도 천황에게 보고되었다.
25.현재 일본은 중국보다 큰 447만 입방미터의 해양영토를 가진 세계 6위의 해양강국(海洋强國)입니다. 땅 면적 61위의 일본이 6위의 강국이 된 것은 임자평의 덕분입니다. 일본이 독도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문제화하고 도발(挑發)하는 것은 우리 국민의 시선과 관심을 독도에만 집중하도록 오도(誤導)함으로써 대마도 등 다른 해양국경선의 진실을 은폐(隱蔽)하고 남태평양에서 이루어지는 불법적인 영토확장 책동(策動)을 계속하려는 의도입니다.
26. 결론적으로 대마도는 일본이 대륙을 침탈(侵奪)할 때마다 발판이었습니다. 대마해전은 러일전쟁시 승리의 상징이자 한반도에서 일본의 강점(强占)을 인정받은 일본 부흥의 상징이었습니다.
우리 후손(後孫)을 위해서 라도 일본이 조작된 자료로 우리영토 대마도를 강점하고 불법적으로 태평양에서 영토를 확장해 나가는 것을 이해를 같이하는 국가와 공동으로 막아야 할 것입니다. 해양은 접속해역, 영해, 공해가 있습니다.
“역사(歷史)는 미래를 내다보는 창(窓)입니다.”
<仁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