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
뉘엿뉘엿 해가 질 무렵 미추는 연못을 향해 걷고 있다.
마을의 한쪽엔 대나무 숲이 있고 그 중앙에 옹달샘이 있다. 그곳은 마을의 식수원으로 아주 중요한 곳이었다.
샘 둘레는 크고 작은 조약돌로 차곡차곡 쌓아서 깨끗하게 정리가 잘되어 있었고
흘러넘치는 물은 마을 앞 강까지 작은 도랑을 만들어 졸~졸~졸~ 흘러 내려가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샘에서 강으로 흐르는 도랑 중간에 넓은 웅덩이를 파서 그리 깊지 않은 인공연못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목욕과 물놀이를 할 수 있게 바닥에 조약돌을 깔아 놓아서 물놀이를 해도 흙탕물이
일지 않았으며 지독한 가뭄에도 샘의 물의 양이 변함이 없어 마을 사람들에게 최고의 기쁨과 즐거움을 줬다.
어릴 때 미추는 다른 아이와 달리 엄마를 지나칠 정도로 졸래졸래 따라 다녔었다.
지금은 건강하지만 어릴 때 미추는 잔병치레를 많이 해서 미추 부모님의 사랑이 그만큼 각별하고 지극정성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추의 나이 일곱 살 이었을 때 미추 엄마가 동생을 갖게 되어 기족 모두가 기뻐했는데
열 달 후 엄마가 미추 동생을 낳다가 그만 동생과 함께 세상을 떠나고 말았던 것이다.
그날 이후로 미추는 샘과 연못에서 혼자 우두거니 있는 것을 좋아했다.
아니 좋아했다가 보다 엄마가 생각나면 그곳에 가서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렸던 것이다.
요즘 이상하게 미추의 꿈에 어머니가 자주 나타났다. 그런데 미추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표정이 아주 어두웠다.
그리고 항상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
"미추야~~ 엄마 말을 명심해라. 그렇지 않으면 큰 화를 입을 수도 있단다."
미추는 이런 저런 생각을 곰곰이 해봤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연못을 몇 바퀴 돌다가 샘을 향해 걷는다.
샘으로 가는 길에 대나무 숲에 죽순을 보니 어머니 생각이 더욱 난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눈이 촉촉하다.
미추는 가슴이 뭉클해지며 어머니가 더욱 그리워진다.
"어머니......"
미추는 낮게 어머니를 불러보았다.
그런데 뒤에서 어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미추야....."
미추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는 어머니가 서 있었다.
"어머니!"
"그동안 많이 컸구나......"
"어떻게 된 거예요 어머니..."
"네가 꼭 해줄 말이 있단다."
"그게 무엇인데요?
"일주일후 새벽 동이 트기 직전 이곳으로 다시 오거라 내가 소개해줄 인물이 있단다.
"그게 누군데요?"
"그날 나와 보면 안단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혼자 나오너라.
그리고 그와 함께 힘과 지혜를 모으면 분명 좋은 일이 생길 거란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의 말씀을 따르겠어요."
미추의 말이 끝나자 어머니는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투명하게 변하더니 스르르 사라졌다.
비추는 그 자리에게 멍~ 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한참을 있었다.
잠시 후 옹달샘 옆에 앉아 있던 미추는 몸을 일으켜 샘을 떠났고 대나무 숲을 벗어났다.
바로 그때...
미추가 떠난 자리에 미추의 어머니가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대나무 숲에서 빨간빛이 번쩍하더니 희미한 물체가 나타났고 그 물체는 미추 어머니를 향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걸어 나오면서 점점 윤곽이 뚜렷해지는데... 그는 빨간빛의 요정이었다.
빨간빛요정이 미추 어머니에게 말을 건넨다.
"저 녀석 어때?"
그러자 미추 어머니의 모습이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 마냥 흔들리더니 빨간 요정으로 변하며 말을 한다.
"저 정도면 우리가 분위기만 잘 맞춰주면 우리의 훌륭한 동업자가 될듯한데요?"
"그렇지? 내 생각도 그래.. 그럼 일주일 후에 오자고..."
"네... 그래요. 호호호..."
그들은 순식간에 연기처럼 사라졌다.
아.. 그들은 미추를 속인것이다.
일주일후 달빛이 환하게 비추는 밤...
깊은 새벽인지라 마을 사람들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있고 멀리서 들려오는 부엉이 소리만이
고요한 정적을 깨트리고 있다. 아니 좀더 정확이 말하자면 목책(木柵)을 순찰하며 마을 외곽을 감시하는
두 명의 마을 청년과 며칠 전 새로 지은 가옥을 경비하는 군인 두 명만이 자신의 본분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의 손에는 소뿔로 만든 나팔이 들려있다. 그것은 비상시에 마을사람들을 깨우는데 쓰이는 것이다.
한 가옥 안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한 사람이 밖으로 나온다. 그의 표정으로 보니 자다가 나온 것 같지 않다.
무슨 일이 있는지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밖으로 나온 듯하다. 그는 가옥에서 나오자마자 한숨을 크게 내쉰다.
"휴~~~~"
그는 밝은 달빛을 두 어깨에 받으며 걷는다.
세상의 모든 고민을 짊어진 듯 힘들고 지치고 괴로운 표정으로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걸음을 걷는다.
"휴~~~~~"
또 다시 한숨을 내쉬는 그는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어느덧 마을 앞 강가에 다다랐다
돌멩이를 집어 강에 던진다. 연거푸 십여 개를 던진다.
고개를 들어 달을 바라본다. 달 속에서 한 여인이 환하게 웃고 있다.
사내는 걸음을 멈추고 멍~ 하니 달 속의 여인을 바라보더니 입을 열어 그녀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러 본다.
"미지...."
달 속의 여인은 다름 아닌 바로 미지였고 사내는 사랑에 빠진 파치였다. 파치는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옥가락지를 빼고 있으면 아무렇지 않은데
옥가락지를 끼기만 하면 그녀 생각이 솔~솔~ 나 사람의 애간장을 녹이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가락지를 빼고 지내기도 하고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차라리 사랑하는 마음을 인정하고
어찌하면 그녀를 만날 수 있을까? 하며 궁리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놀라기도 했다.
파치는 그동안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기만 했었던 자신의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최대한 빠른 시일에 기회를 만들어 북쪽 마을 근처에 가보기로 했다.
먼발치에서나마 그녀를 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돌아오리라 결정을 하니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고개를 숙여 옥가락지를 보니 가락지도 전(前) 주인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챈 듯 온기를 더욱 더 발산한다.
파치는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파치는 그날의 일을 회상하며 깊은 사색에 잠겼다.
같은 시간 대나무 숲 옹달샘에서는...
미추와 어머니가 나란히 서있고 그 앞에 빨간 요정 한명이 서있고 분위기로 봐서 그들은 많은 시간을 이야기한듯하다.
"미추야! 난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니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라."
"네 어머니"
"네 앞에 있는 빨간 요정이 너를 도와 앞으로 다가올 혼란함을 잠재울 요정이란다.
너는 앞으로 이 요정과 힘을 합하여 "자수정검"을 찾아서 부디 이시대의 영웅이 되길 바란다."
자수정 검이라는 말을 듣자 미추는 가슴이 뛰었다.
"네 어머니.."
"내가 떠난 후 빨간 요정이 또 한명 올 거란다. 그 두요정이 너를 도울 것이니 셋이서 지혜를 모아라."
"네 어머니." 말을 마친 어머니가 사라지자 미추의 얼굴엔 섭섭한 표정이 역력하다.
그때 대나무 숲에서 빨간 요정 한명이 걸어 나온다. 미추는 서운한 마음을 가다듬고 요정들에게 말했다.
"인사 나눕시다. 난 미추라고 합니다."
"난 "티누"이고 애는 내 여동생 "니니"라고하오."
티누는 남자 요정이었고 니니는 여자요정이었다
한편 같은 시간 강가에 있는 파치...
파치가 고개를 들어보니 멀리 동쪽하늘이 붉게 물들어온다. 벌써 동이 트려고 한다.
파치는 바위에서 일어나 마을로 몸을 돌렸다.
그런데 바로 그때...
대나무 숲에서 빨간 빛 두개가 솟구쳐 오르더니 마을 뒷산 정상을 향해 날아간다. 파치는 너무 놀라 깜짝 놀랐다.
“저건 빨간 요정인데?”
그런데 파치는 더욱 놀라운 일을 목격했다.
옹달샘이 있는 대나무 숲속에서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레 걸어 나오는 미추를 본 것이다.
“응? 미추와 빨간 요정이?”
그런데 미추는 다른 사람의 눈에 띌까 조심하는 듯 몸을 최대한 낮추고 빠른 걸음으로 마을로 사라졌다.
파치는 궁금했다. 하지만 미추의 이상한 행동으로 보아 앞으로도 물어 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미추와 빨간 요정은 무슨 관계일까? 그리고 무슨 사연이 있기에..."
- 계속 -
- 예쁜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