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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락 속에서 하느님 노래하는 ‘우리맥소리’ | ||||||||||||||||||||||||||||||||||||
[인터뷰-최지애 우리맥소리 대표, 음악감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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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우리 장단에 맞춰 성가를 부르고 연주하는 집단 ‘우리맥소리’(대표 최지애 미카엘라, 56세)를 찾았다. 사성부를 기본으로 하는 서양음악과 달리 순수한 우리 가락을 고집하는 ‘우리맥소리’는 가야금, 해금, 대금, 피리, 아쟁, 장구 등을 반주삼아 20대에서 60대에 이르는 다양한 성가대원들이 모여서 2000년 3월에 서울대교구 행운동성당을 중심으로 전례음악에 참여하면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우리 소리로 하느님 만나야
실상 ‘연도’를 드릴 때에도, 최근에 정형화된 표준곡을 정해 두었지만, 사실은 지역마다 다 곡조가 틀리다면서, “우리말도 사투리를 빼면 개성이 안 살아나듯이, 연도도 제 색깔을 지니는데, 거기서 여유가 생긴다”고 말한다. 이른바 국악은 음정이 서양처럼 자로 재듯이 나오지 않고, 음간 역시 때로는 좁고 빠르게, 때로는 넓고 느리게 호흡에 따라 변화된다. 이를 두고 최지애 씨는 “국악은 인간 본성에 맞추어 부르는 자연미를 지녔다”고 말했다. 게다가 우리 소리는 서양인의 문화와 달라서, 아무리 판소리를 잘 하는 외국인이라도 제 맛을 내기가 어렵고, 가야금을 튕겨도 피아노 치듯 하게 되는 게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우리는 우리 발성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소리로 우리 정서를 담아 하느님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국악은 기생이나 하는 것이야!” 최지애 씨가 국악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초등학교 시절부터였다. “어릴 적에 미군들이 트럭 타고 지나가면 아이들이 쫓아가며 ‘기브미초코렛’을 연발했죠. 그 흑인들은 덩치가 컸는데, 한국인들은 그네들에게 함부로 못 했어요. 꼼짝 못한 거죠. 그래서 어린 마음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좀 비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크면서도 정치적 소란이 많아서 늘 나라가 어수선했었죠. 이 당시 학교에서 글을 써도, 선생님들은 진하게 잘 써지는 미제연필로 쓰면 동그라미에 별 다섯 개를 주었는데, 질 나쁜 우리나라 연필로 쓰면 성적을 제대로 쳐 주지 않았습니다. 나라에선 국산품 애용하라면서 이건 뭐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음악책에 모짜르트, 베토벤은 가르치는데, 국악 분야는 달랑 가야금이나 장구 그림이 나올 뿐 가르치지도 않았죠. 우리 것이 대접을 받지 못하던 시절인 거죠.” 최지애 씨는 우리 것을 알고 남의 것을 더 공부하는 것은 좋지만, 그 반대는 아니라고 여겼다. 그리고 “왜 우리는 자랑할 만한 우리 것이 하나도 없을까? 이게 무슨 나라지?” 생각하며, ‘우리 걸 뭔가 해야겠다’는 야무진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음악을 좋아하니, 국악을 하기로 마음 먹었지만 다들 반대했다. 어느 선생님은 “국악은 기생이나 하는 거야”하며 야단쳤고, 최지애씨는 그 말에 부아가 끓어올라 “선생님, 우리 것이 그렇게 창피하세요?”라고 대꾸했다. 결국 가족들의 반대도 물리치고 고집을 부려 ‘이왕직아악부’에 이어 세워진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중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나라에선 남녀 중학생 20명 씩 국비로 국악을 공부시켜 주었다.
국악은 방중(房中)악기, 가야금 개량에 몰두해
최지애 씨가 2000년에 ‘우리맥소리’라는 국악성가대를 만든 것은 순전히 개신교 신자였던 제자의 학부형 때문이었다. 두 차례에 걸쳐 최지애 씨는 개신교에 다니는 제자의 학부형에게서 이런 말을 듣는다. “그 아까운 재주를 갖고 왜 교회에서 봉사하지 않느냐”는 거였다. 그 제자는 최지애 씨로부터 배운 실력으로도 교회당에서 반주봉사를 한다는 거였다. “하느님께 은혜를 받아놓고 그걸 하느님께 바치지 않느냐”는 질문에 응답하기로 결심한 것은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운 시기를 건너고 있을 때였다.
내 안에 계신 하느님 발견하게 만든 국악미사 최지애 씨는 국악성가를 하기 전에는 ‘하느님과 사이가 멀었다’고 고백한다. 그분은 늘 계시다고는 생각했지만, 신앙적으로는 여전히 어린애 수준이었다. “대학시절에 학교에서 데모도 많이 했어요. 데모하다가 새로 산 구두끈이 끊어진 적도 있었죠. 그러면서 도대체 하느님이 계시다면 왜 가난한 이들이 여전히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지 안타까울 정도로 이해가 가지 않았죠. 여러 이유를 붙여 보았지만 분통이 터질 뿐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비리의 연속인데도 잘 살고,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을 못살게 굴고... 과연 하느님이 계신지 묻곤 했죠. 성당에서 멍청하게 십자고상만 쳐다보곤 했죠.” 그런 최지애 씨가 성경을 다시 읽기 시작한 것은 국악성가를 시작하면서였다. 전통음악에 가사를 새로 써넣어야 하니 성경을 볼 수밖에 없었고, 그러니 늘 평화방송 TV를 켜 놓고 살았다. 한 일 년을 그러다 보니, 성경말씀이 가슴 속에 들어와 박혔다. <가톨릭국악성가> 31번 “너희는 걱정하지 말아라. 너희는 귀하지 않느냐. 공중의 새들도 먹이를 주시니 먹을 것 걱정하지 말아라.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구하여라. 그분의 의로움 찾으면 모든 것 곁들여 받으리라...”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생계문제를 해결하지 못해도, 국악성가운동으로 오히려 없는 곳간이 더 비더라도 ‘걱정하지 마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성가를 만들며, 하느님과 더불어 있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기’ 때문이다. 간혹 이런 성가를 자신이 작곡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때도 많았다. 그리고 드는 생각은 “하느님께서 먼저 계획하지 않으셨다면 어떤 곡도 나올 수 없다”는 거였다. <가톨릭국악성가>에 담긴 성가가 219곡이나 된다. 최지애 씨는 이게 모두 그분 작품이라 여긴다.
국악성가운동을 하면서 겪는 실패도 성공도 ‘다 그분이 하시는 일’이니, ‘나는 걱정이 없다’는 게 최지애 씨 생각이다. 하느님은 나보다 나를 더 훤히 아시는 분이니 걱정할 것이 없는 법이다. “하느님 당신께선 나를훤히 아시어 앉아서도 서있어도 저의생각 봅니다 걸을때나 누워서도 모든행실 아시어 앞과뒤를 막으시고 그위에 계시네 그아심 놀라운데 어느곳에 가리까 새벽날개 붙잡고서 동녘으로 가서도 바다끝의 서쪽가서 보금자리 잡아도 당신손이 붙드시어 나를 인도 하시네” (가톨릭국악성가 214번 1~2절) 최지애 씨는 국악성가로 봉사를 하면서, ‘봉사할수록 신앙심이 커짐’을 깨달았다. 더 행복해지고, 나눌 줄 알게 되고, 더욱 큰 깨달음은 ‘주어진 삶에 감사할 줄 알게 된 것’이었다. 최지애 씨는 이제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다. 물론 함께 있으면 더욱 좋지만. 예전에는 성당에 가야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고 믿었지만, 이제는 “내가 어디에 있든 그분과 함께 있는 것 같다. 하느님의 영이 내 안에 이미 들어와 계심을 알게 된다”고 말한다. 성체를 모시듯 ‘그분이 내 안에 계시네’하고 느낄 때마다 저절로 감사하는 마음이 솟는다. 그리고 “그래, 그걸 믿고 주님 뜻대로 살아야 해”라고 말한다. “나쁜 짓 하다가도, 그러면 하느님이 한쪽으로 찌그러져 계시네”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바로 잡게 된다고 고백했다. *오는 11월 19일 오후 4시부터 서울 돈암동에 있는 성공롬반외방선교회 선교센타 성당에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서 주관하는 '국악미사'에서 '우리맥소리'가 참여하며, 미사 후 최지애 씨와 대담이 마련되어 있다. (문의: 070-8292-7334)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