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은 언어가 하나임을 밝히고 동방에서 시날 평지에 와서 벽돌로 돌을 만들어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여 흩어짐을 면하고 이름을 내고 싶은 행동으로 바벨탑을 쌓은 모습이다. 오늘은 우리들에게 은혜 받으라고 주신 말씀을 중심으로 떠난 자의 모습이란 제목으로 서로 은혜가 되자.
1. 하나님 떠난 자는 간섭자로 본다(3).
사람들이 하나님이 없어도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성과 탑을 쌓는데 평야 지역이라 돌이 귀해서 만들겠다는 것이다. 돌을 흙으로 흙이 없으면 역청으로라도 해보고 싶은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위험한 것이 자기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가 긍정적으로 사는 복을 받았지만, 하나님 때문에 할 수 있음이 복인 것이다. 우리의 몸이 64조의 세포들이 눈에 보이지 않은 작은 것들로 조립해 생명이 왔다. 그 64조의 세포를 잠간이라도 외면하시면 병이 나서 죽게 되며, 세포가 안전하더라도 24시간 무호흡이면 사망이다. 하나님이 직접 주관하시는 호흡이 멈추면 죽음이다. 이는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것이다. 감사의 대상인 하나님을 떠나면 반드시 죽는다. 하지만 이들의 착각은 하나님이 주신 자연의 돌보다 더 좋은 재료를 흙과 불과 역청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홍수에도 견딜 수 있는 성을 원했고, 소유권도 자연동산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들의 것이 되었다는 착각에 빠져 소유욕의 욕심과 홍수라는 징벌도 면할 수 있고, 흙을 불에 굽자고 함은 광물의 성질을 알고 있었으며 하늘까지 닿게 쌓 는 일들이 과학적인 지식을 총 동원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홍수가 없다는 무지개 약속을 불신하고 자구책을 동원함이다. 믿음으로 보면 불신이고, 통치권으로 보면 반역이다. 요즘도 하나님이 없는 세상에 살며 자기 생명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을 모르고 사는 이들은 예외 없이 바벨탑을 쌓고 떠나며 돕는 분을 간섭자로 안다.
2. 하나님 떠난 자는 이름을 낸다(4).
“우리 이름을 내고”란 보편적인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의 이름을 내고 싶은데 이것이 자라면 영웅심이 되는데 곧 타락 한 인간의 욕망이다. 세상과 나는 간곳없고 구속하신 예수님만 보이면 되는 것이다. 업적과 이름을 내는 곳보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 내가 있으면 최선이다. 성도 중에 성자 칭호를 받은 분들은 한결. 같이 주의 영광이다.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는 인자하시고 진실하시므로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시115:1).이다. 하나님을 떠나 이름을 높이면 마음도 높아진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베푸신다. 겸손 자는 때가 되면 높여 주신다(벧전5:5.6).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이름을 내고서 교만하면 반듯이 하나님과 적이 되어 멸망한다. 그러나 겸손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며 인생의 잔을 채워주신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기까지 사랑하시고 구원하신 예수님을 높이고 주안에 살자.
3. 하나님 떠난 자는 흩어짐을 면한다(4).
하나님께서는 지구에 사람들이 채워지기를 원하고, 세상이 그렇게 되도록 은혜 베푸신다(창1:28). 노아의 계약도 같은 것이다(창9:7). 여기 흩어짐은 힘의 세력을 발휘할 수 없으니, 거부하며 하나님 앞에 자기들의 세력을 과시하려는 발상이다. 바른 믿음의 소유자들은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하나님의 것이니 만드시고 축복하시는 분께 감사한 마음으로 살면서 예수님 안에 선한 일을 위하여 쓰임을 받고 싶다. 예수님께서도 기도하실 때에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17:11).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원하셔서 흩어짐이 있고, 원하시니 하나로 됨이 있다. 어느 시대에나 타락한 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3).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함이 죄이다(삿17:6). 예수 따라 살고 예수 안에 만족하자.
결론: 죄와 짝하고 위대한 업적이 예수님 십자가 피보다 귀하면 사탄의 종이니 회개로 하나님께 돌아와 주와 함께하며 영광 돌리자.
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