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 681
■ 3부 일통 천하 (4)
제11권 또 다른 난세
제 1장 전국(戰國)을 알리는 소리 (3)
한편, 조가(朝歌) 땅으로 달아난 순인(荀寅)과 범길사(范吉射)는 그 곳에서 재기를 노렸다.
그들은 여러 해 동안 힘을 기르며 진(晉)나라를 미워하는 여러 나라 제후에게 원조를 요청했다.
이에 제, 노, 정, 위(衛)나라 등이 곡식과 무기를 보내어 그들을 지원했다.
이것이 또 한 번 조앙을 분노케 했다.
"용서할 수없다. 그냥 놔두었다가는 우리 진(晉)나라마저 타국에 팔아먹을 자들이다."
조앙(趙鞅)은 한불신, 위만다, 지역 등과 힘을 합해 조가를 공격했다.
조씨를 비롯한 사가(四家)의 거센 공격에 순인(荀寅)과 범길사(范吉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가병을 동원하여 대항했으나 역부족이었다.
- 조가(朝歌) 함몰.
순인(荀寅)과 범길사(范吉射)는 눈물을 삼키며 조가를 탈출하여 한단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조앙은 집요했다. 군사를 몰아 한단까지 추격해왔다.
또 한차례 전투가 벌어졌고, 순인과 범길사는 패했다.
한단마저 조앙(趙鞅)의 수중으로 떨어졌다.
순인(荀寅)과 범길사(范吉射)는 다시 백인(栢人) 땅으로 쫓겨갔다.
백인은 지금의 하북성 요산(堯山) 부근이다. 적족 땅이다. 그러나 그 곳에서도 그들은 재기에 실패했다. 뒤쫓아온 조앙의 군사에게 또 패한 것이다.
그 와중에서 범길사의 서자인 범고이(范皐夷)와 장유삭(張柳朔) 등은 전사했고, 순인의 심복 부하인 예양(預讓)은 지역의 아들 지갑(知甲)에게 사로잡혔다.
지갑(知甲)이 예양을 죽이려 할 때였다. 지갑의 아들 지요(知瑤)가 아버지에게 청했다.
"예양(預讓)은 인과 의를 아는 사람입니다. 제가 거느릴 터이니 죽이지 말고 제게 내려주십시오."
지갑은 예양을 지요에게 내주었다.
모든 군사와 가신을 잃은 순인(荀寅)과 범길사(范吉射)는 겨우 목숨을 구해 제나라로 망명했다.
이로써 진나라 유력 귀족이던 순씨와 범씨는 순림보의 5대손인 순인과 사위(士蔿)의 7대손인 범길사 대에 이르러 그 손이 끊어지고 말았다.
BC 490년(진정공 22년), 월왕 구천(句踐)이 오나라에서 풀려나 월나라로 돌아가 와신상담(臥薪嘗膽)하며 복수를 노리던 때의 일이었다.
이제 진나라에서는 육경 중 이경(二卿)이 탈락하고 사경(四卿)만이 남아 국정을 휘두르게 되었다.
조앙(趙鞅)과 한불신(韓不信), 위만다(魏曼多), 지역(知躒) 등은 순인과 범길사의 영지를 공실에 반납하지 않고 자신들이 똑같이 나누어 가졌다.
사경의 힘은 그만큼 더 강해졌다.
그러는 사이 세월은 계속 흘렀다.
순씨와 범씨가 패망한 지 15년이 지났다.
BC 475년, 진정공이 재위 37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그 아들 착(鑿)이 군위에 올랐다. 그가 진출공(晉出公)이다.
그 사이 사경(四卿)의 당주 자리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한씨는 한불신의 손자 한호(韓虎)가 당주에 올라 일문을 이끌어가고 있었고, 위씨는 위만다의 손자 위구(魏駒)가 당주 자리를 물려받았으며, 지씨는 지역의 손자이자 지갑의 아들인 지요(知瑤)가 대를 이어받았다.
반면 조씨만은 여전히 고령의 조앙이 당주 자리를 차고 앉았다.
이 무렵 진(晉)나라 재상은 지요였다.
일반적으로 사서(史書)에서는 지요를 '지백(知伯)'으로 표기하고 있다. 백(伯)이란 정실 태생의 큰아들, 혹은 집안의 우두머리라는 말이다.
여기서도 앞으로는 지백으로 호칭하겠다.
지백(知伯)은 재상이긴 하였으나 실제 권한은 여전히 조씨가 장악하고 있었다. 지백으로서는 이것이 여간 불만이 아닐 수 없었다. 호시탐탐 조씨의 세력을 잠식할 기회만 노렸다.
그런 중에 기회가 찾아왔다.
수십 년 동안 진나라 정권을 장악해온 조앙(趙鞅)이 죽은 것이다.
'이제 조씨의 시대는 갔다. 앞으로는 지씨의 시대다."
그가 이렇게 장담한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평소 그는 조앙의 뒤를 이어 당주에 오른 조무휼(趙毋恤)을 멸시하며 깔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잠시 조무휼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겠다.
조앙(趙鞅)은 여러 아들을 두었다.
그 중 큰아들 이름은 백로(伯魯)였으며, 막내아들은 무휼(毋恤)이었다. 그런데 조무휼은 정실 소생이 아니고 천한 여비(女婢)에게서 태어난 서출이었다.
그 무렵 정나라 사람 중에 성은 고포(姑布)요, 이름은 자경(子卿)이라는 인물감별가가 있었다. 인물감별가는 요즘으로 치면 관상가(觀相家)를 말하는데 고포자경의 사람 보는 안목은 타국에도 알려질 정도로 뛰어났다.
어느 해인가 고포자경(姑布子卿)이 진(晉)나라에 왔다.
조앙(趙鞅)은 고포자경을 집으로 초빙해 여러 아들에 대한 관상을 보게 했다.
고포자경이 관상 보기를 마치자 조앙이 물었다.
- 내 자식들의 관상이 어떻소?
고포자경(姑布子卿)이 대답했다.
- 장상(將相)에 오를 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군요.
- 우리 조씨 가문이 멸망한다는 뜻이오?
- 그렇습니다.
조앙(趙鞅)의 실망은 이만저만 크지 않았다.
그때 고포자경(姑布子卿)이 말을 이었다.
- 그런데 제가 경의 집으로 오는 도중 한 소년을 만났는데, 그 소년을 따르는 사람들이 이 곳 사람인 듯했습니다. 혹 그 소년이 경의 자제는 아닌지요?
- 무휼(毋恤)을 말하는 게로군. 그 놈이 내 자식인 것은 맞소만, 워낙 천한 몸에서 태어난 신분이라 아무 기대도 할 수 없소이다.
그러나 고포자경(姑布子卿)은 고개를 저었다.
- 그렇지 않습니다. 하늘이 버리면 아무리 귀한 태생이라도 천해지며, 하늘의 뜻을 받은 사람이라면 천한 몸이라도 반드시 귀해집니다.
길에서 잠시 보아 자세한 말씀을 드릴 수는 없으나, 언뜻 보기에도 그 소년은 귀상(貴相)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그 소년을 보게 해주십시오.
조앙(趙鞅)은 사람을 시켜 조무휼을 불렀다.
고포자경(姑布子卿)은 방안으로 들어온 조무휼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더니 별안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절을 올렸다.
- 이 분이야말로 하늘이 내려주신 분입니다. 틀림없이 존귀하게 될 것입니다.
그 뒤 조앙(趙鞅)은 늘 유심히 조무휼을 살폈다.
하루는 여러 아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 내가 귀중한 보배를 상산(常山)에 숨겨두었는데, 그 보배를 먼저 찾는 사람에게 큰 상을 내리겠다.
그 날로 여러 아들은 수레를 몰아 상산으로 달려갔다.
상산(常山)은 항산(恒山)이라고도 한다. 하북성 곡양현 서북쪽에 있다.
아들들은 각기 흩어져 숨겨진 보배를 찾느라 온산을 뒤졌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
다만 조무휼(趙毋恤)만이 돌아와 조앙에게 말했다.
- 소자는 보배를 찾았습니다.
- 그 보배가 무엇인지 말해 보아라.
- 상산 꼭대기에 올라가보니 대(代)나라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습니다. 우리 조씨는 장차 대(代)나라를 차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무휼의 이러한 대답에 조앙(趙鞅)은 무릎을 쳤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