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달 동안이나 잠수를 탔던 낭만배달부
엉뚱한 부고와 함께 돌아와 겸연쩍은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으며
“여러부~운, 고음악의 디바가 누구?”
하트 클릭-질에 오른손 검지 지문이 거의 닳게 생긴 둥지 식구들
‘저 논네, 뭘 잘못 잡쉈?’ 갸웃거리면서도
“소프라노 임.선.혜!”
낭만배달부의 임.선.혜. ‘입덕’ 시기는 2018년 여름.
서당질 3년에 풍월이요 덕질 5년에 명함 판다고, (골.덕.에 비하면) 이제야 겨우 명함 내밀 수 있을라나. 잠수부 너님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로세.
하지만!
안 보인다고 없는 것이 아니듯
시도 때도 없이 잠술 탄다고 팬심까지 허우적거리는 건 아니다.
자맥질 중에도 ‘울 소프님, 여전히 바쁘신가?’ ‘둥지식구들, 별일 없겄지?’
막 궁금하고 별안간 생각나고...
작년 이맘 때 즈음의 인근 무인카페.
벤츠를 몰고 온 보험설계사 아줌마가 내민 계약서에 사인 후 굳이 집 앞까지 방문한 성의를 생각해 여벌로 갖고 있던 소프님 CD를 건네며
“‘고음악의 디바’란 분인데, 금번 일반인도 편하게 들을 수 있는 뮤지컬 넘버로...”
“아~ 고음악의 디바요.”
계약자의 음반 선물은 처음이라며
고마움 vs 부담스러움 어떤 표정을 보여주어야 할지, 넘버 앨범이라는 데 뮤지컬이 당체 숫자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 갈팡질팡하는 보험설계사와는 별도로
낭만배달부는 자신도 모르게 뱉은 ‘고음악의 디바’에 대해 얼음 채운 아.아.가 뜨끈해지도록 명상에 잠긴 적이 있었다.
고음악古音樂(각주)의 사전적 정의는
한마디로 ‘바로크 이전의 음악’.
그렇다면 ‘고음악의 디바’ 울 소프님은 바로크 이전 음악에 정통한 소프라노?
소프님의 음반/공연 목록을 살펴본다.
으악! 너무 길다.
감당 불가한 목록에 한숨짓다가 작곡가들만 추려본다.
바흐 헨델 빈치 하이든 모차르트 리스트 멘델스존 그라우프너 포레 테야데라스 버드 슐호프...
평범한 교육을 받은 평범한 일반인으로서의 한계는 멘델스존까지다. 그라우프너에 이르면 일반을 넘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팬심을 발휘 이를 악물고 서양음악사를 들춰본다. 중세음악은 이렇고, 르네상스 음악은 저렇고, 바로크 음악가엔...
눈알 빠지도록 뒤져본 후에야 비로소 안다.
헨델/바흐/빈치는 바로크, 하이든/모짤은 고전, 리스트/멘델은 낭만...
소프님 레퍼토리 중 사전적 의미의 고음악에 해당하는 음악가엔 르네상스의 버드가 있다.
어? 중세 힐데가르트 폰 빙엔의 노래도 부르셨던 거 아닌가?
그럼 언제부터 이런 애칭이 따라다니게 되었을까?
여쭤보면 바로 알 수 있을 테지만, 바쁜 소프님을 들볶을 순 없으니... 검색을 통해 자료와의 싸움을 시작한다.
‘고음악의 디바’를 처음(?) 언급한 미디어는 한국일보.
2012년 7월 29일 김소연 기자가 대관령국제음악제 '천지창조' 공연과 관련해
'고음악계의 디바' 소프라노 임선혜. 선친의 고향 철원서 30일 첫 무대라는 타이틀로 기사를 작성했다.
이후 자연스럽게 ‘고음악 디바 = 소프라노 임선혜’라는 등식이 성립되었다.
cf, 한 차례 예외가 있긴 했다. 조선일보 출신으로 유튜브 상 클래식톡Classictalk을 운영하고 있는 김성현 기자가 2016.03.21. 개인 블로그에서 엠마 커크비를 '고음악의 디바'가 될 줄 몰랐던 소프라노라고 소개한 바 있다. 미리 알았더라면 2020.02.05. 클톡 인터뷰 나가신다고 했을 때 ‘즈려밟고 가세요.’ 머리띠 둘렀을 것을.
결론적으로
음악사는 물론 음악 자체에 불학무식한 낭만배달부의 단견으로는...
소프님의 애칭 ‘고음악의 디바’에서의 고음악이란
사전적 의미의 그것과는 다소 의미가 다를 수 있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아마도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성악가를
아무런 수식 없이 소개하기에 민망함을 가진 언론사가
(현대음악과 상대되는 포괄 개념으로서의) ‘중세부터 낭만까지를 아우르는 디바’란 의미에서
‘고음악의 디바’란 수식어를 헌정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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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2023.07.12 현재
영문 위키피디아에선 울 소프님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군요.
Sunhae Im (Korean: 임선혜; Hanja: 任善惠; born in 1976) is a South Korean soprano. She has been described as a bright and versatile lyric soprano with lightness and coloratura.[1][2] She first gained her reputation in the field of early music and now performs a wide range of classical and non-classical music.
본문의 고음악에 해당하는 early music을 클릭해보니
Early music
generally comprises Medieval music (500–1400) and Renaissance music (1400–1600), but can also include Baroque music (1600–1750). Originating in Europe, early music is a broad musical era for the beginning of Western classical music.
중세/르네상스는 물론 바로크까지를 확.실.히. 포함하고 있어
국내 사전의 '고음악' 범위와는 차이가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첫댓글 덕질도 공부를 해야한다는 어느분의 말씀이 이글을 보면, 다시금 느끼고… 반성을하게 되네요 🥲
반성은 잠수부가 따블로 하겠습니다.
공연장에서 소프님 앨범 팔릴 때마다 돈 세야 하는 사랑님은 반성 안 하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