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간현암 <별이 진다네> 등반하다 추락해서 발목 인대가 파열됐습니다. 사고 경위 궁금해하실 선배님들 계신 듯해서 페이스북에 올린 짤막한 추락 후기 공유해봅니다. 부디 저처럼 멍청하게 부상 당하는 일 없길 바라며, 재미 삼아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간현암 <별이 진다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어렵다고 느끼지 못했던 루트였다. 다음에 다시 붙으면 한 번에 완등해야지 하며 속으로 벼르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웬걸, 바로 눈앞에 홀드도 못 찾고 헤매기 시작했다. 몸이 덜 풀렸나 싶어서 잠시 쉬었다 다시 붙어봐도 도무지 시야가 트이지 않았다. 전완근에 펌핑도 평소보다 훨씬 빨랐다. 날씨도 좋았고 바위 컨디션도 좋았다. 내 컨디션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다만 이상하게 집중이 안 됐다. 게다가 일몰 시간이 가까워지니까 마음까지 조급해졌다. 결국 사달이 났다. 또 홀드를 못 찾고 엉뚱한 길로 오르다 힘이 빠져 떨어졌는데 몸이 돌아가면서 벽에 부딪혔다. 벽에 부딪힐 때 무의식적으로 왼발을 뻗어서 벽을 차는 바람에 발목 인대가 파열됐다.
4주 강제 휴식 당첨. 등반이 안 될 때 억지로라도 해보려고 오기를 부렸던 대가치고는 싼 편이다. 또 마침 산악회(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등반을 좀 더 본격적으로 하고 싶어서 지난달에 산악회 가입했다) 자일 파티에 무려 정형외과 전문의가 계셔서 과잉진료도 피할 수 있었다. 내친 김에 평소 안 좋던 오른손 중지도 진료를 받았다. 골절 후유증이라고, 치료 시기를 놓쳐서 조심히 재활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터져 나오는 헛웃음을 가까스로 참았다. 오른손 중지 다쳤을 때 찾아갔던 정형외과에서는 엑스레이도 찍지 않았다. 당연히 골절된 줄도 몰랐다. 실비 보험 있냐고 묻더니 대뜸 비급여 치료부터 권했다. 비급여 치료가 생각보다 비싸서 소염제 처방만 받고 말았는데 그때 제대로 치료 받았다면 지난 일요일에 <별이 진다네>쯤은 가뿐히 완등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발목 인대 파열도 없었을 테고. 아, 갑자기 킹받네?(등반가 여러분, 영등포 연세보람정형외과 강추드립니다. 원장 선생님이 자기도 등반을 하니까 등반 하다 다친 사람들 특히 잘 봐줍니다.)
왼쪽 다리에 반깁스 하고 지하철 탔더니 웬 젊은 여자 분이 벌떡 일어나서 자기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괜찮다고 손사래 치자 누군가 재빨리 그 자리에 앉았다. 친절을 베푼 젊은 여자 분과 나는 둘 다 뻘쭘해져서 볼 것도 없는 차창에서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집까지 가려면 1호선에서 9호선으로 갈아타야 하는데 환승 플랫폼까지 왜 그렇게 멀기만 한지. 또 사람들은 걸음이 느린 나를 왜 그렇게 치고 가는지. 지하철 내릴 때는 미처 내리기도 전에 밀어닥쳐서 “잠깐만요!”를 외쳐야 했다. 몸이 불편한 사람은 살기 어려운 사회라는 걸 새삼 몸으로 느낀다.
*사고 당시 자기 몸처럼 세심하게 살펴주신 용준 선배님, 보람 선배님 고맙습니다. 지난 한 주 방탕하게 살았으니까 등반이 그 모양으로 안 되지 라며 애정어린 쿠사리 아낌없이 날려주신 영도 선배님도 고맙습니다. 자기 키네시올로지 테이프 선뜻 나눠준 산타클라이밍장에 이름 모를 회원 분도 고맙습니다. 어쩌다 다쳤냐며 먼저 전화까지 걸어서 위로해준 영관 선배님도 고맙습니다. 인스타에 댓글까지 남겨서 위로해준 찬미 선배님과 영조 선배님도 고맙고, 아무튼 골수산악회 선배님 모두 다 고맙습니다. 음... 가만히 보니까 추락 후기가 아니라 무슨 연말 수상 소감 같네요ㅎㅎ
첫댓글 겨울이라 4주정도 쉬어가기가 비교적 수월할 듯 하여 그나마 다행입니다.
별이 지기전에 먼저 가시면 안돼죠.. 추락하는 것도 기술이더라구요. 얼른 회복하시길 바래요!
쾌차하길 바라네 ~
용득형!! 선등자는 언제나 추락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빠구 할순 없습니다! 빨리 쾌차해서 툴툴 털어 버리고 계속 정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