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 최우석(1898-1964)
서울 출생으로, 1915년에 서화미술강습소 화과에 입학하여 안중식, 조석진의 문하생으로, 이상범, 노수현 등과 함께 미술 공부를 하였다. 전통화법을 배웠고, 1918년에 졸업하였다.
그는 조석진, 안중식의 문하생으로, 동양화 10대가에 이름을 올릴 정도인데도 그의 자료가 아주 모자란다. 그는 아주 생활태도가 유흥에 빠져서 술을 많이 마셨고, 술값 때문에 사구려 그림을 남발한 것이 아닌가고 한다.
서울에서 큰 전시회를 거의 가지지 않으므로 연구자에게 자료를 남기지 못한 것도 이유이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는 1924년부터 작품 출품을 1934년까지 계속하였다.
전통 회화를 하는 화가는 수묵 산수화를 주로 하는데 반해 그는 채색을 했다.
근대적인 채색화 수법으로 사실적인 풍경화와 한국의 역사적 인물을 연작으로 그린 것이 있다. 포은공, 이충무공, 고운 선생, 등등을 그렸다.
그를 화단에 이름을 남기는 것도 한국의 역사적 인물을 많이 그린, 인물화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1940년에는 오세창(吳世昌) 등의 자문을 받아 조선미술관이 주최한 『10명가산수풍경화전』에 초대되어 「일하도해(一蝦渡海)」를 출품하는 등 두드러진 작품 활동을 보였다.
광복 후에는 1961년까지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의 추천 작가·초대 작가·심사 위원을 역임하며 역사인물화·도석인물화·화조화·어해도 등을 출품하면서 명성을 유지하였다. 현존하는 대표작으로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의 「전가풍미(田家風味)」(1959) 등이 있다.
어쨌거나 그의 경력은 유명화가의 요소를 많이 갖추었으나 가장 알려지지 않는 화가라고 할 수 있다.
첫댓글 정재 최우식-1915년 서화니술강습소 화과에 입학하여 안중식 조석진문하생으로 전통화법을 배웠고 1918년에 졸업하였다.
동양화 10대가에 이름을 올릴 정도인데도 그의 자료가 모자란다.생활태도가 유흥에 빠져서 술을 많이 마셨고 술값때문에 싸구려그림을 남발한 것 때문이 아닌가고 한다.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는 1924~1934년까지 작품을 출품하였다.전통회화화가는 수묵산수화를 주로
하는데 반해 그는 주로 채색을 했다.근대적인 채색화 수법으로 사실적인 풍경화와 한국의 역사적 인물(포은, 충무공, 고운선생)을 연작으로 그린 것이 있다.1940년에는 오세창등의 자문을 받아 조선미술관이 주최한 "10명가 산수풍경화전"에 초대되어 '일하도해"를 출품하는 등 두드러진 작품활동을 보였다.광복후에는 국전 추천작가 초대작가 심사위원을 역임하면서 역사인물화, 도석화,화조화, 어해도 등을 출품하면서 명성을 유지하였다.현존하는 대표작으로, <전가풍미>(1959) 등이 있다.그의 경력은 유명화가의 요소를 갖추었으나 가장 알려지지않는 화가라 할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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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