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본문 : 전도서 9:11-18】
11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음식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명철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니라
12 분명히 사람은 자기의 시기도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들이 재난의 그물에 걸리고 새들이 올무에 걸림 같이 인생들도 재앙의 날이 그들에게 홀연히 임하면 거기에 걸리느니라
13 내가 또 해 아래에서 지혜를 보고 내가 크게 여긴 것이 이러하니
14 곧 작고 인구가 많지 아니한 어떤 성읍에 큰 왕이 와서 그것을 에워싸고 큰 흉벽을 쌓고 치고자 할 때에
15 그 성읍 가운데에 가난한 지혜자가 있어서 그의 지혜로 그 성읍을 건진 그것이라 그러나 그 가난한 자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도다
16 그러므로 내가 이르기를 지혜가 힘보다 나으나 가난한 자의 지혜가 멸시를 받고 그의 말들을 사람들이 듣지 아니한다 하였노라
17 조용히 들리는 지혜자들의 말들이 우매한 자들을 다스리는 자의 호령 보다 나으니라
18 지혜가 무기보다 나으니라 그러나 죄인 한 사람이 많은 선을 무너지게 하느니라
【말씀나눔】
규정과 방침에 따라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모든 경우가 규정과 방침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상식적으로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하면 토끼가 이기는 것이 당연하지만, 반드시 토끼가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즉,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깨지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잠언에 부자는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이고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께 징계를 받은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에서는(눅16:19-31)에서는 바로 이런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부자로 살아간 사람은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으로서 지혜자이며 의인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그래서 부자라는 단어는 곧 의인이라는 의미였습니다.
이 반대말이 가난입니다. 즉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께 징계를 받은 악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은 이후에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부자는 음부에서 타는 목마름으로 거지 나사로를 보고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부자가 아브라함의 품에 거지는 음부의 맨 아래에 위치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볼 때 당시 생각하고 있는 그들의 도덕적, 종교적 가치관도 허망한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11절은 바로 그런 상황이 적지 않게 발생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예측하지 못한 시점에 재앙과 재난을 직면하게 됩니다.
마치 물고기가 그물에 걸리듯, 공중의 새가 올무에 걸리듯 재앙의 날에 사람들도 그와 같이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걸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재난이 언제 어떻게 임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해서는 지혜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잠언에서는 지혜자가 형통한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지혜자의 공로도 헛된 것이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조그마한 성읍에 막강한 힘을 가진 왕이 대군을 이끌고 와서 둘러싸고 성읍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큰 흉벽을 쌓으려 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이 작은 성읍은 이 왕에게 정복 당 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 성읍에 살고 있던 가난한 지혜자가 자신의 지혜를 활용하여 성읍을 이 위기에서 구원하여 줍니다(전혀 다른 가치를 가진 가난과 지혜가 같이 쓰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사람의 공로를 기억하지 못하고, 그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성읍을 구할 만큼 뛰어난 지혜를 가지고 있어도 그 지혜자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한 것입니다.
사람들의 가치 판단의 기준이 지혜가 아니라 ‘돈’에 있었던 것입니다.
물질 만능 주의가 판을 치는 이 시대에도 좋은 차 좋은 옷을 입은 사람은 대접받고, 가난하게 보이는 사람은 푸대접을 받는 일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지혜가 때에 따라서 빛을 발하지 못할 때도 생기고 외면당할 때도 생깁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환영받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요한복음 1:10-11에 보면,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분명 지혜는 그 어떤 ‘힘’과 ‘다스리는 자의 호령’과 ‘무기’보다 더 선하고 좋지만 그 지혜가 무시당하고 잊혀지고 무너지는 때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이루어 놓은 지혜의 산물이 단 한 사람의 악인 때문에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랜 시간 차곡차곡 쌓아 올린 공든 탑과 같은 나라의 기틀도 그릇된 지도자 한 사람 때문에 허물어지기도 하고, 백년 이상 유지하여 온 교회가 죽은 교회처럼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 18절에 보면, 그러나 죄인 한 사람이 많은 선을 무너지게 하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분명 잠언에서의 가치관으로 보면 인과응보, 권선징악 적인 사고로는 죄인이 선을 무너뜨릴 수 없어야 하지만 실제 현실은 한 사람의 죄인이 수많은 의인을 무너지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를 통해서 한 사람의 악행으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던 일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사건이나, 일본의 731 부대의 생체실험 만행, 근래에는 러시아가 민간인 시설을 의도적으로 폭격하여 수많은 어린이들의 사상자를 발생 시킨 것도 이러한 범주에 넣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지혜와 규정과 방침은 완전한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가는 헛된 것일 뿐입니다.
인간은 때와 기회를 통제할 수 없습니다.
가난한 자를 향한 사회적인 편견과 강한 영향력을 가진 악인들도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없는 것으로 한탄 할 것이 아니라 내 한계를 인정하고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지혜자의 삶입니다.
도무지 우리들의 지혜로 이해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더라도 그것으로 인해서 낙심하지 말고 그 모든 상황조차도 하나님께 의뢰하고 하나님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주신 하루를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묵묵히 살아내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루를 살아내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묵상 - 하살깨묵】
1. 어제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으로 결심한 결단과 실천 사항은 무엇이었습니까?
2. 어제 결단한 실천 사항을 생활 속에서 적용한 결과는 어떻게 평가 할 수 있습니까?
3. 오늘 하루 중에 기억에 남는 사건(일) 한 가지를 기록해 보세요.
그 사건에 대한 나의 마음이 어떤 느낌인지 적어 보세요.
4. 오늘 기억에 남는 사건과 오늘 본문에서 문제는 어떤 유사점을 가지고 있나요?
5. 오늘 사건을 중에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행동을 원하셨을까요?
6. 오늘 본문은 나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내가 하여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7.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으로 기도문 적기 & 실천 사항 적기
【추천 찬송가】
363장 내가 깊은 곳에서
【은혜의 찬양】
광야를 지나며: https://youtu.be/qaIqilD7QT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