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자본주의 사회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프랑스의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샤를 베틀레임(Charles Bettelheim, 1913~2006)은 그의 저서 《경제적 계산과 소유의 형태》(Calcul économique et formes de propriété. 1971)에서 자본주의 사회와 사회주의 사회를 소유 형태로 구분하는 밑바닥에는 보다 심층적인 경제적 차원이 놓여 있음을 주장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경제적 계산의 형태이다. 그는 부르주아지 사회의 사적 소유가 무엇보다도 모든 재화를 상품으로 취급하고 이를 화폐의 형태로 환원시키는 화폐적 계산 체계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해석하였다. 그래서 베틀레임은 부르주아지 자본주의 사회를 넘어선 새로운 사회를 만든다는 것은 새로운 경제적 계산의 체계를 창출하는 것이지 외관상 소유의 형태를 국가 소유의 형태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새로운 경제적 계산의 형태를 창출하지 않고서 모든 재산을 국가의 소유로 전환하는 것은 새로운 형태의 기형적인 지배 권력을 창출할 뿐이다. 그의 주장은 스탈린 시대 이후의 소련 사회에 정확하게 적용된다.
실제로 레닌은 1917년 러시아 혁명과 더불어 정권을 장악한 이후 단지 국유화라는 형식적 제도에 집착하지 않았다. 그는 근대 부르주아지 국가가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착취에 기반한 사회였다고 해서 이러한 사회의 전복이 곧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이 역으로 다른 계급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사회로의 전환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근대 부르주아지 사회를 넘어선다는 것은 착취와 억압이 없는 사회를 만든다는 의미였다. 모든 토지와 산업 기반, 그리고 토지를 단순히 국가의 소유로 강제한 스탈린의 정책과 달리 레닌은 착취 일반을 없앨 수 있는 새로운 제도가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서 고민하였다.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을 피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일시적으로 화폐 및 시장경제를 일부 수용하게 된 1920년대의 ‘신경제정책(NEP, New Economic Policy)’으로 전환하기 이전까지 레닌은 실험적이고도 혁명적인 사회 정책을 시도하였다.
가령 그는 화폐를 없애기 위해서 현물 중심의 경제를 운영하기도 하며 화폐에 의한 자본의 가치증식과 착취 일반의 가능성 자체를 차단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물론 이러한 실험이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레닌의 의도가 외관상 평등을 지향하면서 착취를 정당화하는 부르주아지 근대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고자 했던 것임에는 틀림없다. 이러한 노력이 비록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레닌의 머릿속에서는 부르주아지 자유주의라는 관념론적 체계를 어떻게 극복하는가 하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였다. 부르주아지 자유주의는 겉으로는 시민의 자유, 만인의 평등을 떠들어대지만 그것은 밑바닥에 존재하는 착취의 현실을 은폐하거나 미화하는 데 그치는 관념적 허울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근대 자본주의 사회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보고 듣고 만지는 현대사상, 2015. 08. 25., 박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