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당’보다 나은 곳이 바로 ‘지금’ ]
어느 신부님이 강론중에 청중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옥에 가고 싶은 분 손들어 보세요.”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천당(天堂)에 가고 싶은 분 손들어 보세요.”
모두가 손을 들었습니다.
“이곳에 계신 모든 분들은 천당이 좋으신가 봅니다.
그러면 지금 바로 천당에 가고 싶은 분은 손들어 보세요.”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신부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천당보다 ‘지금'이 낫다는 말이네요.
그러니 ‘지금’ 행복하게 잘 삽시다.”
‘천당’보다 나은 곳이 바로 ‘지금’입니다.
아무리 천당이 좋다고 해도 지금과는 견줄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승에서의 삶이 아무리 힘들고 고달파도 저승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불평불만 그만하고 지금 즐겁게 삽시다.
불평불만이 많으면 그곳이 바로 지옥이요, 배려와 나눔이 많으면 그곳이 바로 천당이라는 것이다.
천당은 바로 이 세상에 있는 것이요, 지옥도 바로 이 세상에 있는 것이다.
잘 살면 이곳이 천당이요, 잘못 살면 이곳이 바로 지옥인 것이다.
이 세상에서 엉망으로 살면서 천당과 지옥만 찾지 말고, 잘 살면서 이곳을 천당으로 만들어야 겠습니다. <펌>
[ 청안(靑眼)과 백안(白眼) ]
세상을 보는 눈에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청안은 좋은 마음으로 남을 보는 눈이고, 백안은 눈의 흰자위가 나오도록 업신여기거나 흘겨보는 눈입니다.
우리가 아는 옛 고사에서 무학대사의 눈이 청안이라면 태조 이성계의 눈은 백안입니다.
무학대사가 기거하는 도봉산의 절을 찾은 이태조가 무학 대사와 곡차를 마시다 문득 대사에게 이런 농을 시작하였습니다.
“요즘 대사께서는 살이 뚱뚱하게 쪄서 마치 돼지 같소이다.”
“소승이 돼지처럼 보이십니까? 전하께서는 언제 보아도 부처님처럼 보이십니다.”
“아니, 격의 없이 서로 농을 즐기자고 해놓고, 대사께서는 과인을 부처님 같다고 하면 어쩝니까?”
“예, 본시 돼지의 눈에는 모든 것이 돼지로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모든 것이 부처님으로 보이기 때문이지요.”
옛 일화처럼 청안으로 보면 모든 것이 부처로 보이고, 백안으로 보면 세상만사가 돼지로 보이게 마련입니다.
불교 능엄경에는 '일수사견(一水四見)'이란 말이 나옵니다.
같은 물이지만 천계에 사는 신은 보배로 장식된 땅으로 보고, 인간은 물로 보고,
아귀는 피고름으로 보고, 물고기는 보금자리로 본다는 뜻입니다.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각각 생각하는 견해가 다름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입니다.
결국 사람은 자신이 보는 시각대로 세상을 보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청안으로 보면 세상에 사랑이 가득하겠지만, 백안으로 보면 미운 사람밖에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