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동아일보 / 성덕왕릉 무인상)
경주 성덕왕릉의 무인상과
(사진 출처 : 조선일보 / 토제 여인상)
경주 황성동 무덤에서 나온 여인상은
중앙아시아인 또는 서부 아시아인의 모습입니다.
이 두 유물은 서역인이 신라에서
관직에 등용됐음을 암시하죠.
(사진 출처 : 조선일보 / 돌십자가)
불국사에서 출토된 돌십자가와
(사진 출처 : 조선일보 / 성모 마리아상)
성모 마리아상은
기독교가 신라로 전해졌음을 의미합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 보물 628호 천마총 유리잔 : 후기 로만 글라스)
그리스·로마의 후기 로만 글라스,
와인잔 형식의 토기, 말머리 장식 뿔잔이
신라 고분에서 출토되었죠.
(사진 출처 : 문화유산답사 / 5C 뿔잔 : 중앙박물관 소장)
그리스·로마 문화에서 뿔잔은 풍요를 상징합니다.
신라는 다양한 형태와 용도로 변형을 시도하죠.
(사진 : 유향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경주 불국사에는 1,300년 전
아라비아반도에서 건너온 것으로 추정되는
유향이 있습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 국보 189호 : 관모)
(사진 출처 : 경향신문
/ 보물 618호 : 천마총 금제 관식)
(사진 출처 : 경향신문
/ 보물 456호 : 노서동 금목걸이)
(사진 출처 : 경향신문 / 금제 굽다리접시)
(사진 출처 : 경향신문
/ 국보 88호 : 금관총 금제 허리띠)
신라는 아랍문화권과 교류하며
눈부신 황금 유물을 생산했습니다.
신라의 교역은 이슬람 문헌에도 나타납니다.
아랍이 지리학자 이븐 쿠르다지바(820~912)는
신라를 ‘중국 동해에 있는 나라’라고 불렀습니다.
중국 동해에 있는 나라로부터 비단, 검, 말안장,
도기를 비롯한 11가지 물품을
수입한다고 기록했다.
(사진 출처 : 나무위키 / <고려사> 보물 2115-4호 : 부산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소장)
<고려사>에 따르면,
고려 시대 아랍 상인들이 100여 명씩 배를 타고
개경까지 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금 알갱이와 가는 금실을 붙여
세공품의 표면을 장식하는
'누금세공'이라 불리는 기법은
아랍에서 온 것이다.
(사진 출처 : 보스톤코리아)
국립경주박물관에는
신라의 인면유리구슬이 있다.
(사진 출처 : 인천일보 / 인면유리구슬)
현재 인도네시아에는 신라와 똑같은
유리구슬을 만드는 곳이 있습니다.
(사진 출처 : 매일신문 / 신라 해양 네트워크)
이것은 신라와 남방 문화권 간의
해양 네트워크가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18C 서양인들은
아시아 내 무역에서
상대적으로 주변적인 위치였습니다.
아시아 무역에서 주된 세력이 아니었죠.
주요 국가들은
중국, 아랍, 인도의 상인들이었다.
(사진 : 포르투갈, 리스본)
15C 말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부를 찾아
아시아의 바다로 들어왔다.
유럽에서는 아시아의 열풍이 불었습니다.
유럽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도자기와 비단, 향신료, 면은
유럽인들의 욕망에 불을 질렀습니다.
(사진 : 영국, 웨일스 성)
1753년 영국 웨일스 같은 곳에서는
‘언젠가 우리도 중국만큼 번영했으면 좋겠다’라고
간절히 희망했다는 기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