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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이 천재론을 얘기했을 당시 저는 비웃었습니다. 이건희는 천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건희는 9세까지 할머니가 어머니인줄 알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경남의령에서 자라다가 서울로 올라와 학교를 다녔고 아마 서울사대부고를 나왔습니다. 홍사덕 의원이 동기동창입니다. 고교 시절에는 레슬링을 했습니다. 그리고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합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에 따라 곧 와세다대학교 상경계열로 진학해 공부를 했고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마칩니다. 이 경력을 보며 대단한 것을 느낍니까? 별거 없습니다. 이병철 회장이 아들 건희에 대한 평가는 그냥 무난하다는 겁니다. 무엇보다도 형들과 달리 아버지에게 순종했다는 겁니다.
왜 이건희가 삼성의 후계자가 되었을까요? 이건희의 능력이 뛰어나서가 절대 아니라는걸 지금부터 말하려고 합니다. 이병철은 매우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정말 1세기에 하나 나올까 싶을 정도의 뛰어난 기업가임이 분명합니다. 국가경제 기여도 면에서 정주영에게 뒤지긴 하지만 단지 기업가능력만 따지면 정주영보다 이병철이 조금 더 나은 듯 합니다. 왜냐면 정주영이 박정희의 전폭적 지원 아래 성공 가도를 달린것과 달리 이병철은 철저하게 자신의 능력으로 삼성을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이병철이 아니었더라면 박정희 시대 당시 삼성은 부도를 면할 길이 없었을 겁니다.
사실 이병철과 박정희의 사이가 처음부터 나쁜건 아니었습니다. 박정희와 정주영 사이처럼 좋은건 아니었지만 훗날 서로 경원시할 정도는 적어도 한비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삼성의 한국비료 건설 당시 미쓰비시가 비자금으로 쓰라고 100만달러를 삼성에 줍니다. 당시 한비건설비가 4300만달러 정도였는데 이 정도는 국제적 관례라고 하더군요(훗날 이병철은 자기가 미쓰비시에게 사기를 당한걸 알게 되죠. 사실 한비는 2000만러 정도면 건설이 가능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쓰비시가 두배의 덤터기를 쒸우죠. 그런데도 한비를 흑자기업으로 만든건 이병철인걸 보면 그 기업가 능력은 대단한 겁니다.) 삼성은 정직하게도 이걸 정부에 알렸씁니다. 박정희는 1/3은 정치자금으로 나머지는 한비건설자금으로 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삼성은 각종 밀수를 했습니다. 당시 귀하던 수세식 양변기를 들여왔더니 국내가격이 1/3로 폭락했다고 하더군요. 삼성은 비자금 처리에 매우 서툴렀고 결국 이 사실이 동아일보 귀에 들어갑니다.
동아일보는 박정희와의 커넥션은 생략하고 사카린 밀수만을 보도합니다. 박정희는 안면몰수하고 뒤로 물러났고 모든 비난은 이병철에게 돌아갑니다. 이병철은 어떻게서라도 이 사태를 수습하려 노력했으나 동아일보 등 당시 기존 언론은 중앙일보로 언론계에 진출한 삼성을 색안경을 끼고 보고 있었으며 신문용지공급업체인 전주제지까지 보유한 삼성을 이번에 코를 꺽어놓지 않으면 나중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하여 맹폭을 합니다.
결국 이병철이 손을 듭니다. 세계 최고의 요소비료 공장인 한국비료는 정부에 헌납하고 경영에서 영원히 은퇴한다고 발표합니다. 이 때가 50대 후반의 이병철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후계자 문제가 꼬여가기 시작합니다. 사카린 밀수 등을 하여 삼성이 이병철이 보여주는 철두철미함과는 거리가 멀게 엉성하게 한비건설에 나선게 이병철의 장남과 차남이었습니다. 이들은 국내의 사치품 시장을 보고 자기들이 이 시장을 대체하다시피하려고 엄청난 밀수를 합니다. 하지만 수요와 공급의 법칙대로 수요는 한정되어 있는데 공급이 대폭 증가하니 가격이 폭락하고 국내밀수시장은 요동을 칩니다. 더군다나 사카린 밀수 당시 세관공무원 매수도 실패하는등 여러 문제를 일으킵니다.
이병철은 경영은퇴후 큰 아들 이맹희에게 사실상 경영을 일임합니다. 똑똑하기로 소문난 이창희도 한 몫을 하죠. 그러나 두 아들에 대한 실망감이 가슴 한쪽에남아 있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건 이 사건에 이건희는 끼지 않았다는겁니다. 당시의 이건희는 동양방송 이사로 경영수업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병철이 물러난후 이맹희는 7년간 삼성을 경영했씁니다. 물론 결정권은 아버지에게 있었지만 명목상 대표이사는 이맹희였습니다. 당시 삼성물산, 제일제당, 제일모직, 등 삼성의 주요계열사 대표이사직을 이맹희가 맡고 있었죠. 그런데 이맹희는 한가지 커다란 실수를 하게 됩니다. 이병철은 결국은 돌아오는데 아들인 이맹희는 그런 준비를 안했다는 겁니다. 나날이 정부의 도움없이 삼성을 꾸려가는게 어렵다보니 경영에 혼을 쏟았고 아버지와는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당시 이맹희는 삼성전자를 창업했습니다. 삼성전자가 1969년 창업되었는데 당시 명목상 삼성의 선장은 이맹희였습니다. 원래는 자동차도 같이 하자고 아버지를 조를 정도로 일 욕심이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성실한 이맹희를 아버지 이병철은 자신의 컴백의 걸림돌로 여기게 됩니다. 이병철은 이렇게 눈치가 없는 이맹희를 경원시하게 되고 마침내 1976년 내치게 됩니다. 이걸 주도한게 이건희의 장인인 홍진기입니다. 4.19의거 당시 발포명령자로 의심되는 인물로 감옥에 있었던 인물입니다. 친일파이기고 하고요. 이승만 당시 삼성을 많이 도와주었고 징역살다가 나오고 이병철이 불러서 일을 맡깁니다. 그리고 장녀인 홍라희와 삼남인 이건희를 결혼시키죠.
그런데 일에 정신팔려있던 이맹희는 어느 정도 눈치는 채고 있었으나 자신이 완전히 삼성에서 물러나리라고 생각은 못했습니다. 훗날의 이건희가 그런것처럼 부회장 직함 달고 아버지 지시하에 일이나 열심히 하다가 자신이 삼성회장되리라고 여겼던거죠. 그런데 단순히 대표이사직을 아버지에게 돌려주고 자신은 부회장이나 혹은 부사장으로 아버지 밑에서 열심히 일하는 상황이 아니라 실업자가 되고 동생인 이건희가 대권후보로 떠오릅니다.
이건희가 삼성의 후계자가 된건 능력이 아닙니다. 운이 좋아서죠. 그리고 아버지와 두 형의 사이가 안좋아서가 결정적입니다. 이건희는 아버지에게 도전하는 그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큰 형 이맹희가 7년간이나 자기가 삼성의 총수마냥 대외활동을 하거나 둘째형 이창희처럼 아버지 이병철을 탈세와 재산해외도피로 처벌해달라고 박정희에게 고발도 안합니다. 그냥 가만히 있다가 아버지가 죽고 삼성을 물려받습니다.
여기서 이창희가 안타깝습니다. 능력은 세 아들중 가장 나았습니다. 훗날 세한을 창업해 성공시킨것만 보아도 그의 경영능력은 인정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가 자신을 형과 함께 삼성에서 내치자 아버지를 검찰에 고발하는 해서는 안될 짓을 하여 영원히 이병철의 눈에서 벗어납니다. 당시 탈세와 삼성물산의 수출과 수입규모를 조작해 약 100만달러를 해외로 도피한것을 자료와 함께 검찰에 넘기죠. 그러나 박정희가 눈감아 주라고 그래서 무마되고 이창희는 아버지의 분노를 피해서 해외로 도피합니다. 일본으로 도망가죠. 그리고 다시 돌아와 삼성의 후계자 자리를 노렷으나 꿈으로 그치고 1991년 혈액암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이 비운의 삼성사에서 이건희는 도대체 무엇을 했을까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삼성사에 보면 1974년 이건희가 반도체 사업 진출을 아버지에게 건의했고 한국반도체를 자비로 인수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신빙성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아마도 아무런 업적이 없는 이건희가 반도체 사업에 아버지 이병철과 함께 자신도 함께 했다는 내용을 첨가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게 분명합니다. 제가 앞에서 밝혔듯이 1976년까지 삼성전자는 이맹희가 경영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동양방송 이사였던 이건희가 형들을 제치고 경영에 나서는듯한 행동을 했다면 아버지 이병철의 눈에서 벗어났으리라 봅니다. 장인인 홍진기 중앙일보 당시 사장이 당시 이건희의 모든 사생활을 컨트롤하고 있던 당시 이런 무모한 행동을 이건희가 햇을리가 없습니다.
이건희는 형들이 제거되고 1976년에 삼성부회장에 오른것으로 보입니다. 그 후 그는 사생활이나 회사생활에서나 아버지의 뜻을 전혀 거스르지 않고 그림자로서 경영수업을 받습니다. 사실상 있으나마나한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죽고나서 고삐풀린 망아지마냥 여자연예인들을 사냥합니다. 남편의 엽색행각에 놀란 부인 홍라희는 원불교에 의탁하며 미술과 종교생활로 생을 이어갑니다.
이게 삼성의 비공식사입니다. 공식사에는 이맹희가 6개월 일하다가 스스로 무능을 느껴 물러났다고 되었으나 이건 명백한 허위이며 이맹희는 한비사태 이후 7년간 삼성을 이끌었습니다. 어쩌면 한국반도체도 이맹희가 인수하자고 요청했는지 모르죠. 아마도 이병철의 자체 판단이거나 강진구 삼성전자 사장이 인수를 요청한게 진짜 사실일겁니다.
이런 인간이 천재론을 들고 나오는데 어이가 없습니다. 정작 천재성을 보인 이창희가 삼성에서 쫏겨나고 범인에 불과한 자신이 후계자가 된게 항상 맘에 걸렸던건지도 모릅니다. 아니 어쩌면 자신이 천재성으로 두 형을 밀어내고 삼성의 후계자가 된거라고 믿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런 말을 한걸까요?
현대 사회는 한 인간의 영향력이 미약합니다. 개인이 민족과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는 아돌프 히틀러를 끝으로 인류사에서 영원히 끝이 났습니다. 모든 발명과 혁신은 기존의 사회체계를 기반으로 일어납니다. 기초 없이 일어나는 혁신은 없습니다. 모든 노벨상 수상자들도 선배들의 업적에 숟가락 하나 올려놓은 것입니다. 선배들이 양자역학이나 상대성리론을 정립해 놓지 않았다면 그 누가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겠습니까?
그리고 대부분 선진국 과학자들이 노벨상을 탑니다. 전세계에서 유대인이 가장 많은 이스라엘에서 노벨상이 안나오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바로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이건희가 좋아하는 그 단어 인프라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미국 유대인들이 노벨상을 수상합니다.
결코 천재가 십만명을 먹여살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이라면 모르죠. 한 인간이 사회에 커다란 공헌을 한다고 해도 그건 사회의 하부구조가 받쳐주는 가운데 벌어지는 일입니다. 천재론은 이건희가 반도체로 5000만 한국인을 먹여살리고 있으니 너희들은 나를 숭배하라는 아주 오만한 발상입니다.
여러분 이런것에 열받지 마세요. 이건희는 범인중의 범인입니다. 까페의 어느 누구도 이건희에게 능력이 밀리지 않습니다. 우리도 아버지가 이병철이었으면 서울대 정도 나와서 삼성경영할수 잇습니다. 너무 열등감 가지지 마세요. 이건희는 결코 천재가 아닙니다. 우리와 같은 범인입니다. 삼성자동차 실패 사례를 보더라도 그는 결코 뛰어난 인물이 아닙니다. 우리 속고 살아서는 안됩니다.
이건희 따위의 무능력자에게 열등감 같은것 갖지 말고 사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정말 잘 봤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글 잘보았습니다
잘 봤습니다.
근래에 보기 드문 글입니다. 이 카페의 반정도는 만약 아버지가 재벌이었다면. 삼성의 이건희만큼 경영다 할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건희나 한국재벌총수들이 착가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지들이 능력이 좋아서 웃기는 소리입니다 ,한국의 재벌사와 정권과 국민의 희생과 재벌의 성장과의 관계를 면밀히 실증적으로 조사해보면 한국재벌은
혁신해서[ 물론 없을수도 없지요. ] 오늘날의 성장을 이룬측면보다 대다수국민의 희생과 그들의 특혜때문입니다.
옥의 티 하나..^^ 이건희 마누라 홍라희도 이건희 못지않게 남성편력(요즘말로 호스트) 만만찮을 건데요... oky를 부르며 미국에서 노점상하다 컴백해 뽕짝계를 주름잡는 t가수 등등...
이미 아들은 마이너스의 손으로 유명 한데요....ㅎㅎ
홍라희 어떤여잔가요 요즘 무척 궁굼합니다
이건희가 자신을 천재라고 한적은 없지 않나요? 그런 인재가 나와야 미래가 있다는 얘기 아니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