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75세 이상 효도검진? 불효검진 될 수 있다" 말리는 의사들 왜
중앙일보
입력 2023.09.20 00:46 업데이트 2023.09.20 09:04
신성식 기자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서울적십자병원 문영수 원장(서 있는 사람)이 19일 40대 환자의 위 내시경 검사를 하고 있다. 이 병원은 80세 이상은 원칙적으로 암 검진을 하지 않는다. 우상조 기자
75세 이상 111만명 암 검진 받아
장천공·감염·호흡정지·심정지 위험
위·대장·유방·갑상샘 검진 무용론
"의사상담 후 검진여부 결정해야"
"이 나이에 뭔 검사를 받으라는 거냐."
경기도 성남시 김모(80)씨는 건강검진 권유를 거절해오다 딸이 또 얘기하자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김씨는 심장 시술을 받아서 주기적으로 심장만 검사를 받는다. 딸(52)은 "다른 데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걱정돼 암 검진 같은 걸 받았으면 좋겠는데, 아버지가 너무 싫어한다"고 말한다.
"92세 아버지 위·대장 검진 해달라"
최근 서울 종로구 서울적십자병원에 60대 딸이 "아버지가 소화가 잘 안 되니 위·대장암 검사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아버지의 나이는 92세. 문영수 원장(내과전문의)은 "검진의 목적은 암을 일찍 발견해서 20년 넘게 오래 살게 하는 것인데, 검진을 안 해도 100세 넘게 살 수 있다"며 "검진하다 마취 상태에서 호흡정지, 심정지가 올 수 있어 매우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설득 끝에 대장 검진은 안 했고, 위는 수면 마취 없이 내시경 검사를 했다. 결과는 이상 무.
박경민 기자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암검진을 받은 75세 이상 노인은 111만7175명이다. 대상자의 39.6%가 받았다. 2018년 92만여명(수검률 38%)에서 2020년 코로나19 탓에 잠깐 줄었다가 다시 증가한다. 두 예에서 보듯 '암 검진은 좋은 것'이라는 효심이 깔렸다. 이번 추석에도 부모님께 수백만 원짜리 검진 패키지를 선물하거나 암 검진을 권유할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효도 검진'이 자칫 '불효 검진'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이 나이에 뭘"이라는 김씨의 판단은 의학적으로 옳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주최 '건강검진 이대로 좋은가' 포럼이 열렸다. 최윤정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암관리학과 교수(예방의학 전문의)는 '암 검진 하지 마라 5'를 공개했다. 이 중 하나가 '기대여명 10년 이하이면 유방·대장·전립샘암 선별검사 목적으로 암 검진을 하지 않는다'이다. 나머지는 금지 항목은 갑상샘암 초음파검사, 췌장암 선별검사(무증상), 양전자 단층촬영(Pet-CT) 등이다. 선별검사란 병을 확진하려는 게 아니라 의심이 가는 걸 걸러내는 검사를 말한다. 가짜 양성, 가짜 음성이 적지 않다. 폐암 검진에서 양성이 나오면 바늘로 찔러 조직검사를 하는데 이 중 5~50%만 실제 양성이다. 유방은 10%만 진짜 양성이 나온다.
암 검진의 득보다 해가 커
박경민 기자
최 교수는 2021년 기대수명(남성 80.6세, 여성은 86.6세)을 근거로 "75세 이상의 암 검진은 이득보다 위해가 더 크다"고 말한다. 국립암센터의 '암 검진 권고안(2015년)'에도 나와 있다. 첫째, 75~84세 위암 검진의 이득과 위해를 평가할 근거가 불충분하다. 둘째, 70세 이상 유방촬영술은 의사의 판단, 환자 선호도를 고려해 선택적으로 하라. 셋째, 80세 이상 대장암 검진(대변혈액검사)은 근거가 불충분하다. 넷째 폐암은 고위험군에만 저선량 가슴 CT를 하라. 쉽게 말하면 위·대장암은 굳이 할 이유가 없고, 유방암은 사례별로 따져서 하라는 것이다. 폐암은 75세 이상에게 권고하지 않는다. 미국 질병예방서비스특별위원회 지침에도 75세 이상 유방암 검진은 '근거 불충분'으로 돼 있다. 76세 이상 대장암 검진은 사례별로 따지고, 70세 이상 전립샘암은 '하지 마라'이다. 미국 일반내과학회 지침에는 '기대여명 10년 미만이면 암 선별검사를 권해서는 안 된다'고 돼 있다.
그런데 국가암 무료검진(위·간·유방·대장·자궁·폐)에는 연령 제한이 없다. 서민아 국립암센터 암검진사업부장은 "폐암 고위험군 외는 국가암검진의 종료 연령(검진을 안 해도 되는 나이)이 없다"며 "99세 할머니에게 '자궁암 검진을 안 받아도 된다'는 말을 못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85세 이상 위암 검진은 오히려 사망률을 높인다"고 설명한다.
최 교수는 "내시경 검사를 하다가 구멍이 나거나(천공) 감염될 수 있다. 천공은 수술이 필요한 중증 합병증이다. 내시경 검사에 쓰는 미다졸람·프로포폴 같은 마취제는 저혈압·호흡곤란·의식저하를 야기할 수 있고 간혹 심정지가 오기도 한다"고 경고한다. 지난해 5월 대한소화기학회지에 한 대학병원의 2004~2020년 16년 치 대장내시경 6만여건을 추적한 논문이 실렸다. 23건의 천공이 발생했고 80대 노인 2명이 숨졌다. 논문은 일반적으로 내시경 합병증이 0.1% 선에서 발생한다고 밝혔다.
서울적십자병원 80세이상 암검진 안해
국가검진이다 보니 당연히 하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온다. 서울 종로구 김정자(77)씨는 코로나 전까지는 유방·자궁경부·갑상샘 등의 국가암검진을 빠짐없이 했다. 아들은 "국가에서 의무적으로 하라고 하지 않느냐. 어머니도 주기적으로 받아야 한다고 여긴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암 검진은 10년을 바라보고 하는 것이다. 조기에 발견해 수술하고 항암제·방사선 치료를 하는데 고령의 노인이 감당할 체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조건이 맞으면 80세라도 검진해도 된다는 뜻이다.
문영수 원장은 "우리 병원은 최근 80세 이상은 원칙적으로 암 검진을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다. 너무 위험해서다. 대신 먼저 진찰해서 위험성을 따진 후 시행한다"며 "나라에서 선심 쓰듯 검진을 제공하지만 이게 결과적으로 어르신과 병원을 잡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윤정 교수는 "평소 다니는 병원의 의사와 상의한 뒤 검진 여부를 정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