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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3편에 함축된 놀라운 여호와의 이름들 3편
- 여호와 치두케누, 여호와 샬롬
/쌍문동산소망교회 김 목사
시편 23편에 함축된 놀라운 여호와의 이름들 3편
여호와 치두케누, 여호와 샬롬
"(시편23:3~4)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1.여호와 로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2.여호와 이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3.여호와 나카 "인도하시는도다"
4.여호와 라파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5.여호와 치두케누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6.여호와 샬롬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7.여호와 닛시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차려 주시고"
8.여호와 메카데쉬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9.여호와 삼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5.여호와 치두케누 - 그는 여호와 의의 하나님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67:33)"
1>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 여호와 치두케누
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뜻을 세우시고 뜻을 따라서 결정하십니다.
맞는냐 안맞느냐의 기준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십니다.
그러므로 진리인지 아닌지 바르게 가르쳐 주는 가장 바른 가르침의
책은 성경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입니다.
모든 성경 66권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입니다.
하나님이 먼저가 되는 기본의 진리로 가르침을 받으면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는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복음이 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1:17)"
믿는 자의 담대함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중심은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증거하여 믿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2>불의함에 대하여 심판하시는 여호와 치두케누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처럼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먼저 구할 것은 예수님의 나라와 예수님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그의 나라는 예수님의 나라와 그의 의는 예수님의 의입니다.
사람이 먼저가 되는 것은 적그리스도의 나라입니다.
사람이 먼저가 되는 것은 적그리스도의 통치로 불의함으로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예수님의 나라는
천년왕국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5장에서 7장까지의 가르침은 예수님의 나라에서
가르치는 교훈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천년왕국을 따라갈 수 있는 법과 질서를
주신 것이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입니다.
그러나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무너뜨리는 불의함으로 심판받을
것이 공산주의로 인민 민주주의, 사람이 먼저로 단일 체제의
적그리스도의 짐승정부가 될 것입니다.
이 마지막 때에 깨어 있어 먼저 구할 것은 예수님의 나라 천년왕국을
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어 통치하시는 가장 이상적인 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예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반대하고 자기를 높이고 자기 이름을 드러내는 대적자가
사탄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하늘세계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천사장 중에 천사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그 마음이 교만하여 하나님인체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할려고 반역을 꾀하였습니다.
사탄을 따르는 무리가 천사들 중에 3분지 1이나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그는 의의 하나님으로 사탄의 마음에 품은 교만을
드러나게 하였습니다.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네 불의가 드러났도다(에스겔28:15)"
하나님께서 불의한 사탄을 하늘에서 쫓아내었습니다.
쫓겨난 사탄과 함께 타락한 천사들 3분지 1이 어둠의 세계에
있어 사람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공중권세 잡은 자, 세상 임금이 되어 귀신들에게
명령하여 사람들을 미혹하여 지옥으로 떨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믿는 자들과 불의를 행하여
마귀에게 속아 범죄하는 불의한 자들이 있습니다.
오늘날 마귀에게 속하여 불의를 행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공산주의, 진화론, 종교다원주의, 뉴에이지, 종교(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등)를 따라
절대적 가치를 부정하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죄악입니다.
정신차리는 그리스도인이 되어 영들의 분별함으로
그는 여호와 치두케누의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하겠습니다.
여호와 치두케누 그 이름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오셨습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십자가의 고난을 위하여 간절하게 기도하셨습니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태복음26:39)"
천국은 누구나 주여 주여 한다고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리석게 자기 편한대로 자기 마음대로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많은 목사들과 신자들은 편한대로 신앙생활하고 편한대로
세상에 맞추어 살아가는 복을 누릴려고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기준을 따라가 가는 불의한 다양성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양성이란 절대적 가치를 파괴하고 진리에서 벗어난
거짓된 교리, 거짓된 가르침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가령 남자와 여자간의 결혼을 가진 이성은 정상적인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입니다.
그러나 다양성은 이성이 아닌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의
이성을 가지는 귀신의 가르침입니다.
또한 사람이 먼저이다하여 국민이 아닌 사람을 앞세워
이슬람 난민을 우선한다면 자국민의 피해를 가져다 주는
문란과 질서의 파괴를 가져다 주는 것이 됩니다.
세상의 다양성을 따라 가는 것이 편하고 안전하다고 평화를
외치지만 불의가 드러나는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누가복음21:34)"
3>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4:7~8)"
디모데전후서는 디도서와 함께 바울의 목회서신입니다.
디모데후서는 바울의 마지막 서신입니다.
디모데전서는 목회지침으로 교회사역에서 거짓 교사의 거짓
교훈을 물리치는 교회의 굳건함을 이루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의 강조점은 말세에 고통하는 때에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여호와 지두케누 그 이름의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의로운 면류관을 얻는 것이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교회라고 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아닙니다.
진리 아닌 거짓교회가 있습니다.
교회인척 위장하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살았다고 하나 죽은 교회들이 많습니다.
잘믿는척 하지만 영적으로 거짓이 영으로 가득차 있어
눈 멀었고 귀먹은 귀신들린 교회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진리로 성령이 가득찬 교회가 될려면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아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교회가
되어야 살아있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오직 성령의 감동으로 된 성경을 가지고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는
성도가 됩시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에 살고 있습니다.
온갖 불의한 세상에 기독교를 압박하고 핍박하는 법안들과
교회를 파괴하려는 공산주의와 이슬람의 교세가 전세계적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이럴때 우리 믿는 그리스도인은 믿음의 선한 싸움으로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 되어야하겠습니다.
불의를 따라 안전하고 편하고 거짓 평화를 따라 갈 것이
아니라 깨어 있어 정신차리고 기도하는 자가 되십시다.
날이 갈수록 오직 피할 길은 하늘로 올라가는 피난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5:3)"
6.여호와 샬롬 - 그는 여호와 평강의 하나님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기드온이 여호와를 인하여 거기서 단을 쌓고 이름을
여호와 샬롬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사사기6:24)"
1>기드온이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 타작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났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큰 용사로 불렀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사사기6:12)"
기드온은 단지 밀을 타작하는 일개의 농부일뿐입니다.
크게 싸워 본적이 없는 농사 일만 하였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사자는 큰 용사라 불렀습니다.
하나님 앞에 초라한 인간일지라도 하나님께서 큰 용사라
부르시면 큰 용사가 될 수 있습니다.
과연 여호와의 사자는 누구일까요?
얼핏 보기에는 천사인 것 같으나 실상은 예수님입니다.
구약 속에 예수께서 여호와의 사자로 보이신 것입니다.
기드온은 여호와의 사자를 보았음으로 죽을까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사자가 여호와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사사기6:23)"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여호와 살롬이라 하였습니다.
여호와 살롬은 여호와는 평강이라는 뜻입니다.
여호와의 이름 중에 우리에게 평안을 있게 하시고
두려움에서 벗어나 안심하게 하시는 여호와 그 이름은
여호와 살롬입니다.
2>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 새벽에 무리들에게 붙잡히셨습니다.
제자들은 두려워 붙잡힐까봐 다 도망갔습니다.
베드로가 다른 사람들은 배반할지언정 자기는 결코 주를 배반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였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찌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같이 말하니라(마26:33)"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께서 붙잡히시자 사람들 사이에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척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당신은 예수님의 제자라고 말할 때 베드로는 아니라하였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이라 하여도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예수와 함께 있었던 그 사람이라 하여도
베드로는 저주를 하면서 결코 아니라고 예수님을 부인하였습니다.
곧 닭 우는 소리가 들릴 때 베드로는 두려움에서 깨어나 예수께서
말씀하신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마태복음26:34)"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였습니다.
사람이 두려움을 가지는 것은 배신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석 제자였으나 예수님의 예언대로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번 배신하였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잘났다고 맹세하여도 그 맹세는 헛된 맹세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은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의지를 가지는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평안이 없은 맹세는 결국 겁과 두려움이 올 때 오르지
자신을 대중에게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비겁함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도 베드로와 가롯유다의 서로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베드로와 가롯유다 둘 다 배신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12제자들의 이름들을 나열 할 때 베드로는 항상
앞에 있습니다.
그리고 가롯유다는 항상 마지막 12번 끝에 있습니다.
그리고 가롯유다만 "예수를 판 자라"(마10:2~4, 막3:16~19, 눅6:12~16)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열 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이 형제 안드레와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안인 시몬과 가룟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마10:2~4)"
베드로는 비록 평안 없는 두려움으로 예수님을 세번 부인하였지만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심히 통곡하여 돌이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았다는 죄책감은 있었으나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는 것도 없고 심히 통곡하여 돌이키는
것이 없었습니다.
가룟유다가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통곡하는 회개가 있어야 할 것인데 예수님을
팔았다는 괴로움에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목매달아 자살하는 것이었습니다.
가룟유다는 자신의 몸을 결국 마귀에게 맡김으로 영원한 배신자가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언제 어디서 붙잡힐까와 두려움으로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부활하신 몸으로 그들이 모인 곳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두려움에서 벗어나 평강이 있게 하셨습니다.
"이날 곧 안식 후 첫말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요한복음20:19)"
부활하신 예수께서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는 여호와의
이름은 여호와 살롬입니다.
여호와 살롬으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불안에서 벗어나 예수님을 만나는
이름은 여호와 살롬으로 예수님의 평강을 가지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거듭 말씀하시는 인사는 여호와 살롬입니다.
그는 여호와 살롬 "그는 평강이시다"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인사가 "살롬"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인사가 무엇입니까?
"안녕하십니까?"입니다.
즉 평안하셨습니까?가 됩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겁과 두려움이 없이 담대한 자가 되십시다.
그리스도인은 여호와의 이름, 여호와 살롬의 평강이 있어 안심할 때
담대하게 전하는 전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마귀는 두려움을 주지만 예수님은 두려움에서 벗어나 평강을
주십니다.
기도의 응답은 두려움이 아니고 평강을 가지는 마음의 평안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예레미야29:11)"
3>예수님 없는 평화는 거짓 평화이다.
예수님은 여호와 살롬입니다.
예수님이 안계신 평화를 외치는 것은 거짓 평화요,
위장된 평화입니다.
북한이 외치는 평화, 거짓으로 가득찬 좌파들이 외치는 평화는
위장된 평화입니다.
악인들의 평화협정은 속이는 위장전술일뿐입니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북한의 이념으로 분단된 한반도입니다.
세계에서 통일을 이룬 두 나라가 있습니다.
한 나라는 동서독의 통일입니다.
동독과 서독의 통일은 서독이 독일을 흡수하는 자유통일입니다.
동서독의 자유통일 중심에는 기독교가 있었습니다.
기독교가 그 중심에 있는 것은 자유통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월맹과 월남의 통일을 이룬 베트남은 적화통일이었습니다.
월남이라는 자유 진영의 나라가 지도상에 사라졌습니다.
월맹의 평화협정에 넘어간 결과는 미군철수였습니다.
미군이 철수 하자 50여일만에 위장된 평화가 드러나고
월맹이 월남을 적화하는데 성공하는 공산화된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안계시는 평화협정은 곧 자유를 빼앗기는
공산화된 나라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유의 가치를 가지게 하는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가지는 기독교의 나라와 혈맹으로 굳건하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악인이 악인과 손잡는 평화통일은 적화통일입니다.
북한의 3대 김씨가 주장하는 연방제 통일, 남한 좌파가 주장하는 연방제
통일의 평화는 대한민국을 공산화하는데 목적이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통일의 중심에 기독교가 있다는 것은 예수님이 계신 자유통일을
이루는 것이어야 합니다.
평화통일, 평화통일 아무리 강조해봐야 자유통일이 아닌 속이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거짓 세력중심의 좌파는 자유를 뺀 민주주의 즉 북한식
인민민주주의입니다.
자유 없는 신학은 예수님이 안계신 민중신학을 가지게 하는 좌파목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 좋아하는 말씀은 자유입니다
또한 이승만의 유언도 자유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라디아서5:1)"
자유의 가치를 가지는 자유통일을 가지는 평화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평화통일, 평화협정을 주장하는 저 거짓세력들에게 속지말고
정신차리고 자유의 가치를 지키는 자유통일이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여호와의 이름, 여호와 살롬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시다.
세상의 적그리스도가 다스리는 세계단일정부가 평화를 외치는 것은
거짓된 평화입니다.
보세요. 어디서 평화를 외치고 있습니까?
이단들이 평화를 좋아합니다.
통일교가 평화를 좋아합니다.
캐톨릭이 평화를 좋아해서 캐톨릭 방송도 평화방송입니다.
그러나 다 헛되고 헛되고 헛된 거짓 평화입니다.
오직 유일하신 여호와의 이름, 그 이름 여호와 샬롬의 예수께서
다스리시는 천년왕국이야 말로 평화시대를 여는 것입니다.
마귀와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없이 예수님이 왕이 되시어 신정정치를
펼칠 때 이 세상의 평화가 있어 사나움도 두려움도 잔인함도 없는
천년왕국을 먼저 구하는 자가 되십시다.
예수님이 다스리시는 천년왕국에는 어린이와 사자와 함께 뒹구는
그 때가 올 것입니다.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땐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이사야12:8~9)"
쌍문동산소망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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