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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章洙란 이름을 가진 한 감독을 한국에서는 '이장수'라 부르고 중국에서는 '리장주'라 칭한다. 발음만 다른게 아니다. 한국과 중국의 축구계에서 똑같은 사람에 대한 평판에도 큰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는 일화(지금의 성남), 전남, 서울 등 3개팀을 지휘했고 중국에서도 충칭, 칭다오, 베이징 등 3개팀을 맡았다. 그런데 K리그에서는 크게 각광받지 못했던 그가, 중국에서는 '최고 명장'으로 대접받고 있다. 왜 이런 차이가 나오는지는 매우 흥미로운 질문이다.
이장수 감독이 중국 복귀 첫 시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이장수 감독이 국내에서 성적을 못 낸 것도 아니다. 2006년 서울에서 컵대회 우승을 차지했고, 전남과 서울을 이끌고 4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기도 했다. 다만 정규리그 챔피언과는 거리가 있었다. 반면 중국에서는 중하위권의 전력이었던 충칭, 칭다오를 이끌고 두차례 FA컵을 제패했고 올시즌에도 중상위권 수준의 베이징에서 막판까지 정규리그 우승을 다투는 2위를 차지했다. 그래서 혹자는 "K리그의 수준이 중국 슈퍼리그보다 휠씬 높은 현실에서 이장수는 단지 '중국용'일뿐"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과연 그렇게 간단하게 평가할 수 있는 일일까.
중국리그는 K리그보다 해외 지도자에게 휠씬 개방적인 곳이다. K리그보다 상대적으로 외국인 감독들이 휠씬 많이 활동하고 있다. 그만큼 중국인과 외국인 감독간의 경쟁이 치열하다. 영입되는 외국인 감독의 수준도 꽤 높다. 한국축구국가대표팀 사령탑을 지냈던 본프레레는 올해 다롄의 사령탑을 맡았다.
중국리그의 또 다른 특징은 감독의 생명이 짧다는 점이다. '감독의 생명은 파리 목숨'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곳이 바로 중국이다. 올해도 시즌 중간에만 5명이 잘렸다. 앞에 말한 본프레레도 1년만에 성적 부진으로 옷을 벗었다. 이장수 감독은 이런 중국무대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유일한 '한국인 지도자'다. 필자는 멋훗날 한국축구의 역사를 정리하는 책이 쓰여질 때에 이장수란 이름은 국내에서 지금 현재 받고 있는 '이상한 저평가'보다 휠씬 정당한 재평가를 받으리라 믿는다. 그는 누가 뭐라고 해도 '대륙을 뒤흔든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자 이제,'이장수'와 '리장주' 사이에 숨어있는 중국에서의 성공 비결을 한번 찾아나서 보자.
2000년 충칭에서 FA컵을 차지한뒤 선수들과 감격의 악수를 나누는 장면. |
◇성공비법1:소신있게 팀을 이끌 수 없다면 아예 시작을 하지 않는다.
시즌을 마치고 소리소문 없이 귀국한 이장수 감독과 만난 것은 지난주 서울 압구정동의 한 식당이었다. 얼굴이 상당히 부어있었다. 시즌내내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가 이제 휴식을 취하다 보니 여기저기 몸이 아프다고 했다. 감독은 원래 그런 자리다. 편할 시간이 별로 없다. 올해 새로 맡은 베이징 궈안은 수도를 연고지로 하고 있지만 아직 창단 이후 단 한번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던 전형적인 중상위권팀이었다. 올해도 시즌이 시작하기 전까지는 4~5위권으로 평가받았다. 이장수 감독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계약 기간인 2년안에 팀을 우승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했다. 현지 기자들은 다소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베이징이 전기리그에 좀처럼 중위권을 벗어나지 못하자 당장 '경질설'이 흘러 나오기도 했다. 시즌 중반 '경질설'의 진위를 한번 물어봤다. 이장수 감독은 껄껄 웃으며 이런 이야기를 했다. "중국에서는 구단이 새로운 감독과 계약할 때 '시즌중에 4경기 연속으로 이기지 못하면 마음대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는 경우가 많다.(사실 중국팬들은 3연패 정도 하면 감독 퇴진 운동을 벌인다) 내가 베이징과 협상을 할 때도 구단이 이런 조항을 내밀었던 것이 사실이다. 나는 이런 계약 조건하에서는 일할 수 없다고 했고 결국 구단에서 이 조항을 철회했다. 하지만 중국기자들은 관례적으로 이런 조항이 감독 계약서에 들어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전기리그때 베이징이 무승부경기가 이어지자 지레짐작으로 '경질설'을 써 댄 것이다. 사실은 전혀 그렇치 않았다."
이 대목에서 이장수 감독이 중국무대에서 버티는 비밀이 하나 드러난다. 그는 자신이 소신있게 팀을 이끌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면 애시당초 계약에 응하지 않는다. 베이징 구단은 지난해 12월 이 감독과 현지에서 협상을 하던 중 통상적으로 중국에서 통용되는 계약 조건을 내놓았다가 혼쭐이 났다. 이 감독이 협상 결렬을 선언하고 "다음날 비행기로 한국에 돌아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당시 이 감독은 "불합리한 조건에서 일하느니 쉬면서 재충천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깜짝놀란 베이징 구단은 그날 새벽 이 감독의 숙소로 다시 찾아왔다. 자신들의 조건을 철회한 상태에서 다시 협상이 진행됐고 이 감독의 베이징행이 확정됐다. 만약 이 감독이 그때 구단의 조건을 그냥 수용했더라면 올시즌 전기리그에 부진했을 때 힘을 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다.(지난해말 이 감독과 FC서울의 재계약이 불발로 끝난 것도 재계약 기간에 대한 양측의 입장 차이때문이었다. 구단은 1년뒤 재평가를 원했고,이 감독은 안정적으로 팀을 이끌 수 있게 최소한 2년 이상을 원했다. 결국 재계약이 물건너갔고 이 감독은 베이징과 계약했다.)
2000년 중국프로축구 최우수 감독에 선정된뒤 가진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받고 있다. |
◇성공비법2:때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승부수가 필요하다.
베이징은 전기리그에서 다소 부진한 성적을 보였지만 후기들어 전혀 다른 팀으로 변모했다. 연전연승의 대파란을 일으키며 정규리그 단독 선두로 치고 나갔다. 베이징은 발칵 뒤집어졌다. 시즌 막판에 모든 홈경기 표가 매진됐다. 경기 전날 밤부터 표를 구하려는 팬들의 밤샘 행렬이 이어졌다. 베이징은 그러나 우승의 분기점이 됐던 장춘과의 홈경기에서 0-1로 석패했고, 끝내 이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15승9무4패(승점54)로 시즌을 마감했는데 1위 장춘과의 승점차는 단 1점이었다. 장춘과의 홈경기에서 비기기만 했어도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이 감독은 "내년에 할 일을 남겨뒀다고 생각한다"고 씩 웃는다. 그런데 전기리그의 부진과 후기리그의 대약진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모든 외국인 감독이 공통적으로 부딪히는 문제는 선수의 장악이다. 자국 선수들과 외국인 감독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기 마련이다. 이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베이징은 비록 우승 경험은 없지만 '수도를 연고로 하는 팀'이라는 선수들의 자존심이 대단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콧대가 높은 선수들과 이 감독 사이에 마찰이 없을 수가 없었다. 팀의 주전 스트라이커 고마웨이와 수비수 추웨이가 그 중심인물이었다. 이들은 감독이 정한 팀내 규정을 어기면서 '도발'을 했다. 이 감독은 처음에는 2군으로 내려보내는 조치를 취했지만 별다른 반성의 기미가 없었다. 결국 이들을 팀에서 방출하기로 결정했다. 이 감독이 결단을 내린 뒤 팀의 분란은 정리됐고 후기리그부터 일사분란한 대반격이 시작됐다. 사실 이번 베이징에서 겪은 사례는 지난 99년 충칭에서의 사건과 비교하면 약과였다.
이 감독이 충칭에서 처음 중국 생활을 시작했을 때 그 팀에는 가오풍이라는 대스타가 있었다. '중국의 황선홍'이라고 부를 만한 인기스타였다. 충칭 지역을 넘어서 중국 최고의 전국구 스타였고, 그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는 팬들의 수가 엄청나게 많았다. 그런데 가오풍이 이 감독의 지도 노선에 반기를 들었다.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자기는 한국에서 온 초보감독이었고, 상대는 중국 최고의 인기스타였다. 처음에는 경기에 출전시키지 않는 선에서 통제를 시도했지만, 가오풍을 쓰지 않자 당장 구단 안팎에서 엄청난 압력이 들어왔다. 이렇게는 도저히 팀을 이끌 수 없다고 판단했다. 구단 사장과 면담을 신청해 최후통첩을 보냈다. "나를 택할 것이냐, 가오풍을 택할 것이냐"고 압박했다. '내 의지대로 팀을 이끌 수 없다면 물러나겠다'는 배수진을 친 것이다. 사장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가오풍은 구단에 반드시 필요한 선수"라면 설득하려 했지만 이 감독은 완강했다. 결국 사장은 이 감독을 택했고, 가오풍은 다른 팀으로 이적됐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승부수가 통하면서 충칭은 '가오풍의 팀'에서 '이장수의 팀'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결국 만년 하위권 전력이었던 충칭은 이 감독의 확고한 지도체제를 확립하면서 2000년 FA컵 우승을 일궈내는 쾌거를 이뤄냈다. 그해 이장수는 중국 프로축구 최우수 감독에 선정됐다. 때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질 정도의 담력과 결단이 있어야만 위기를 극복해낼 수 있다. 이장수의 성공비법은 다음 주에 계속된다.
위원석기자 batman@sportsseoul.com
첫댓글 국대설도 있던데 .. 과연 중국국대맡아서 한국깨면 반응이 어떨까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