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민, 가족 24-7, 내가 쓸 생활필수품
오늘은 수요일,
해민 군이 하교 후 별다른 오후 일정이 없는 날이기도 하고
오래전부터 함께 하고팠던 생필품 쇼핑을 마음먹은 날이다.
매일 세탁을 할 때나 샤워를 할 때
눈에 띄게 줄어가는 여러 살림들의 용량을 보며
그날이 얼른 왔으면 했다.
해민이가 학교에 간 동안
쇼핑리스트를 작성해보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사야 할 물건을 따져보며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마저
해민이 몫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사실 당시에도 이를 인지했을지 모른다.
항시 깨어있어야
해민이가 보통의 삶을 살 수 있을 텐데
그저 편의를 위해서라거나
이러나저러나 결과는 같을 것이라는 생각은
깨어있음에 큰 걸림돌이 되어
우리를 ‘보통의 삶’에서 더욱 멀어지게 할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엔 내가 해민이를 만난 이유,
내가 하는 행동들,
내가 쓰는 기록들의 의미는 무엇이게 될까….
이렇게 새겨보며 돌아보고
앞으로 더욱 의지를 품을 수 있다는 것도
기록의 의미가 될 수 있기에
진솔한 기록을 남기고 싶으면서도
기록이 기록으로만 남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내가 판단했을 때
해민이에게 필요한 물건을 적고
되도록 쓰던 물건을 죽 사용하는 것이 좋을 듯해
제품명과 함께 사진을 남겨보았다.
하지만 또 지금 생각해 보니
지금 사용하고 있는 세제의 체감 세탁 효과,
섬유유연제와 샴푸나 바디워시 향기,
폼 클렌저의 거품 정도 등등
해민이가 계속해서 쓰고 싶은지
한번 다른 제품을 써보고 싶은지
고민은 해보았는지 되새겨본다.
여러 제품을 써보며 나에게 딱 맞는 제품을 발견했을 때
그 반가움과 그 제품을 오래 써보고 싶다는 생각
혹은
이 제품이 여전히 좋지만 이제는 다른 제품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봤기 때문이다.
지금은 우선 쓰던 제품 위주로 사기로 마음을 먹고
해민이와 하교하러 학교에 갔다.
전날 할머니를 뵙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
이번에는 미리 할머니께 연락을 드려본다.
해민이를 기다리는 동안 연결을 시도했을 때
받지 않으셨고,
해민이가 학교에서 나와
함께 전화를 걸었을 때는 받으셨다.
오늘도 일찌감치 장사를 마무리하시고
밭에 나와 계신다고 한다.
조심스럽게 놀기 삼아 해민이와 밭으로 찾아뵙는 건
개의치 않으신지 여쭈었다.
다소 부담스러워하셔서
만남은 다음을 기약하고
해민이 내복 구입에 대해 여쭈었다.
사실 최근에 해민이 내복―특히 바지―이
부쩍 해어진 것이 신경이 쓰였었다.
여전히 돌려가며 입기에는 적지 않지만
‘새 내복을 구입할 때’라는 느낌을 받았다.
해민이 몸에 맞는 옷, 특히 내복은 더더욱
구입해 본 경험이 없어서 여쭐 곳을 고민하고 있던 차였다.
할머니께 혹시 B매장을 둘러보려고 하는데
시장 안에도 살 만한 곳이 있을지 여쭈었다.
할머니는 B매장도 좋지만
해민이 내복을 사는 것이라면 시장 안 옷 가게를
가보는 것도 좋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보다
이제 곧 내복 입을 철이 지나니
다가오는 가을께나 새로 사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도 해주셨다.
마침 날이 점점 풀리고
더워질 기미가 보이는 기온이라
그렇게 하기로 했다.
할머니와 이렇게 오래 대화하는 것은 처음이라
오히려 얼른 만나 뵙고 더 많이 이야기 나누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겼다.
“해민아, 할머니야. 통화 한번 할래?” 권하자
할머니도 ‘손자 바보 모드’로 해민이에게 인사를 건넨다.
장시간 통화에 감사 인사를 드린 후 통화를 마무리하고
스카이시티 마트로 향했다.
박현준 선생님 일지에서
해민이가 마트에서 쇼핑하는 것을 좋아했고
또 평소에 바퀴처럼 돌아가는 물건이나 바퀴 달린 것,
휠체어 미는 것 등을 좋아하는 터라
마트를 굉장히 반가워할 것으로 여기고
카트를 밀어줄 것을 권했다.
해민이의 기대보다 내 기대가 훨씬 커서인지
생각보다 시큰둥했다.
재차 카트를 끌어줄 것을 부탁해도
간간이 끌다가 말기에
해민이가 끌고 싶을 때까지 기다리려
함께 물건들을 살펴보았다.
해민이가 쓰고 있던 물건도 보이고,
새롭게 눈길을 끄는 물건들도 있다.
해민이는 세탁 세제나 섬유유연제 코너는
딱히 관심이 없었다.
치약이나 바디로션, 폼 클렌저 등을 고를 때도 마찬가지.
흥미가 없어 계속해서 다른 쪽으로 가려는 것을
“해민아, 오늘 사야 할 것들이 있어.
해민아, 좀 골라줄래?”하며 거듭 부탁했다.
썩 밝은 표정은 아니지만
마지못해 폼 클렌저 하나를 골라준다.
이제 바디로션을 살 차례,
해민이가 쓰던 로션은 보이지 않고
선택지가 두 종류밖에 없다.
하나는 과일향, 다른 하나는 곡물향.
모두 좋은 향이라
또 해민이에게 선택을 맡긴다.
“해민아, 둘 중에 어떤 걸로 살까?”
해민이가 또 마지못해 하나를 카트에 담는 시늉을 한다.
살짝 거들어서 담고
혹시나 남은 하나도 권해보자 또 카트에 담으려 한다.
‘아, 왜 두 종류를 다 살 생각은 못 했을까?’하며
가격대를 슬쩍 보았는데
가격도 나름 합리적이고 두 가지 향 모두 써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에
두 제품을 모두 써보기로 한다.
치약은 어린이 치약보다 여느 치약들에 더 눈길이 갔지만
아직은 뱉고 헹구기가 원활하지 않기에
불소가 적은 치약을 고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어린이 치약으로 권한다.
‘이제 살 것들은 다 샀다.’ 싶어
“해민아, 이제 가고 싶은 대로 가봐.”하며
카트도 넘겼다.
해민이는 카트를 끌고 마트 이곳저곳을 누빈다.
진열되어 있는 상품이 흐트러질 때만 살짝 정리를 돕고
해민이가 계산대까지 갈 수 있도록 돕는다.
계산대에 물건 올리는 것만 거들고
해민이에게 카드를 건넨 후 계산을 부탁했다.
내친김에 주차장까지 해민이가 카트를 끌고 간다.
임무를 마친 해민이는 먼저 타고 싶은지
뒷문을 열고
나는 트렁크에 짐을 싣고
카트를 제자리에 두러 부리나케 뛴다.
끌다 보니 신난다.
해민이도 이렇게 신났을까?
잘 거들기 위해 고민도 많았던 첫 장보기,
해민이가 보고 산 물건이기에
해민이가 쓸 때도
더 해민이 것으로 사용할 수 있겠지.
그랬으면 좋겠다.
2024년 3월 13일 수요일, 서무결
구구절절 공감합니다. ‘내가 쓸’, 이 표현이 참 좋습니다. 내 간식, 내 샴푸 사러 마트에 가는 거죠. 내 물건 담긴 쇼핑 카트를 내가 끌고요. 해민이가 이렇게 사니 감사합니다. 월평
양해민, 가족 24-1, 다음에 뵙겠습니다
양해민, 가족 24-2, 조부모님 가게 두부 한 모
양해민, 가족 24-3, 이렇게라도 축하
양해민, 가족 24-4, 미리 생일 축하
양해민, 가족 24-5, 어머니가 사주신 케이크
양해민, 가족 24-6, 할머니는 못 뵀지만 시장 나들이
첫댓글 서무결 선생님 생각이 참 깊네요. 저라면 이토록 세심하게 당사자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을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