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이회창님 열열 지지자 여러분, 토요일 이회창님을 모시고 북한산 산행을 하면서 다시 한번 "우리의 大義"만을 생각했습니다. 오래간만에 산에 오르니 공기도 맑고 기분이 참 상쾌 하군요...
맑은샘은 중간에 오르다 직접 어느 중년의 신사 등산객분과 서민들과 국민들이 바라시는 삶의 어려움과 경제 문제들을 들어 보았습니다. 예전 저는 이곳 등산로의 입구에 있던 어느 약차파는 찻집을 아는데 한참 법서를 보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오토바이 사고로 다리를 다쳐 치유의 목적으로 산행을 하며 알게 된 아주 정이 넉넉한 집이었습니다만 오늘 가니 주인이 바뀌어 있더군요...
그 등산객은 무려 한 시간이나 저를 잡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경제 이야기와 이회창님께 바라는 바를 평소에 메모해둔 자신의 노트에 깨알같이 적어 놓고 계셨습니다. 마침 저도 각 일류 연구소와 경제정책들을 점검 하던바, 그 외로 그 분의 노트 내용을 이메일로 받아 꼭 정책에 반영해 드리겠다고 말씀드리고 왔습니다. 동지 여러분, 이제 정책전쟁의 시작입니다. 모두들 분발해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이 지면에 발표하는 저의 졸글은 그동안 자유애국우익운동을 하면서 써놓았던 것인데, 일반 교양용으로 발표하오니 부디 부족하더라도 사랑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 글들은 부끄럽지만, 매우 솔직하고, 감정표현도 가끔 절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쓴 글입니다만 양해를 구합니다......
<맑은샘의 신좌익사상비판 12 : 열등감의 에드워드 사이드>
구국결사대 : 맑은샘
A:오리엔탈리즘이란 무엇인가?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에 대한 서양의 지식체계를 가르키는 말로서 “우월한 서양”과 “열등한 동양”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포함하고 있다.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서양의 속성을 열등/우등 ,비합리성/합리성, 유약함/강력함, 야만/문명, 종속/지배, 혼돈/질서, 유치/성숙, 비정상/정상, 후진/선진, 이질성/동질성, 수동/능동, 여성성/남성성, 비도덕/도덕, 관능성/이성, 본능적/논리적, 둔감함/민감함, 애매함/정확성, 전제주의/민주주의, 복수심/공평성등으로 파악하는 에드워드 사이드라는 학자가 만들어낸 개념이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이런 오리엔탈리즘이 서양과 동양을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지배하고 간섭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동양인들에게 서양의 간섭과 지배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기능을 수행했다고 비판한다.
즉, 이에 따르면 동양의 입장에서는 서양에 대한 적개심과 반감의 감정이 발생하고 서양의 입장에서는 동양은 열등한 지배대상이므로 지배속성자체의 악을 제거하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세계사를 보면 최초의 인류는 분명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남미에서 발견되었고, 인류최초의 4대문명이 중국, 인도, 중동 그리고 이집트강가에서 발생했다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야기는 갑자기 유럽으로 건너가고 소위 동양은 알렉산더의 정복대상으로 잠깐 언급되었다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왜 이렇게 세계사는 서양 중심으로만 되어 있을까? 여기서부터 많은 젊은이들과 지식인들이 필자가 볼 때 생각을 잘못 하거나 이를 더 현혹시키기에 여념이 없지만 진정한 사랑의 지식인이라면 책임이라는 것도 알아서 이상과 현실 전체를 좀 더 냉철하게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a. 오리엔탈리즘의 출발점
19세기 유럽 사람들이 모두 동양을 비하하는 사고를 지녔던 것은 아니다. 지식인, 엘리트, 무역가등이 주로 동양에 대해 “열등한 지역” 이라는 이미지를 씌우는 작업에 열중했다. 이런 사고방식이 널리 퍼질 수 있었던 것은 서양이 동양보다 경제력, 군사력등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열등한 동양”이라는 관념이 형성되는 것과 때를 맞추어 “우월한 서양” 이라는 관념도 형성되었다.
b. 현대의 잠재적 오리엔탈리즘과 명백한 오리엔탈리즘
잠재적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에 대한 서양의 우월이라는 거의 무의식적인 확신(이분법적 우월주의)이고 명백한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의 사회, 언어, 문화, 역사, 사회학등에 관해 표명된 견해들이다. 모든 동양에 관한 지식의 변화는 오직 “명백한” 오리엔탈리즘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잠재적” 오리엔탈리즘에서의 합의, 고정성, 지속성은 거의 항구적이다. 오리엔탈리스트들의 동양에 대한 진술의 차이는 명시적인 것이나 그들이 서술하는 기본적인 내용은 거의 다른 점이 없다. 동양을 다룬 모든 저작자들은 동양을 서양인에 의해 주목되고, 재건되고, 나아가 구제될 필요가 있는 지역으로만 서술했다.
B: 에드워드 사이드는 누구인가?
에드워드 사이드는 1935년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 나치독일의 박해를 피해 가족과 함께 이집트로 이주한 다음 카이로의 “빅토리아대학교”에서 공부했다. 1950년대 말에 미국으로 건너가 프린스턴대학을 거쳐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컬럼비아대학 영문학, 비교문학 담당교수와 하버드대학 비교문학 객원교수로 있으면서 문학평론가이자 문명비평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특히 서구인들의 동양관을 비판해온 대표적인 학자로 꼽힌다. 그는 1978년에 (오리엔탈리즘)을 출간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이 책은 서구인들이 말하는 동양의 이미지가 그들의 편견과 왜곡에서 비롯된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체계적으로 설파한 저작이다.
이어 1993년 (문화와 제국주의)를 출간한 뒤 2001년에는 미국의 아프카니스탄 공격중단과 지식인들의 참된 역할을 강조하는 일련의 글들을 묶어 (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을 출간했다. 사이드는 1994년부터 백혈병으로 고통스러운 투병생활을 했지만 9,11테러사건 이후의 국제정치와 미국의 세계정책에 자신의 생각을 반영하기도 했다.
그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서유럽 사회의 이분법적 사고와 야만적인 관행의 산물로만 보고 있다. 곧 미국의 공격이 새뮤얼 헌팅턴의 말처럼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서유럽 사회가 동양사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에서 비롯된 “무지의 충돌”이라고 꼬집는다. 사이드는 한때, 팔레스타인 망명정부의 국회의원으로써 중동평화협상에 깊히 관여했으나 팔레스타인의 “야세르 아라파트” 지도부에 만연해 있는 무능과 부패에 염증을 느껴 그와 결별하기도 했다. 또 그는 영국문학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영문학자임과 동시에 영국의 식민통치로부터 오늘날 자신의 조국 팔레스타인의 현실이 배태되었음을 비판하는 팔레스타인입장으로써는 자국의 애국적인 논객이었다.
(지식인의 표상)(세계,텍스트 그리고 비평가) (예이츠와 비식민화) (박탈의 정치학) (아웃 오브 플레이스) (팔레스타인 문제와 미국의 상황) (이슬람 은폐) (팔레스타인 민중의 모습) 등의 저술은 하나의 일관된 문제의식과 흐름을 가지며 그의 (오리엔탈리즘)으로 집대성 된다.
C. 오리엔탈리즘, 우리에게 무엇이 문제인가?
a. 에드워드 사이드 자체의 문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은 이성과 광기의 이분법을 통해 서구 근대사회를 규율과 이성만이 지배하는 사회로 분석하고 있는 마르크시스트 “미셀 푸코”에 많은 것을 의존했다. 사이드 스스로가 “엄청난 빚을 지고 있는 미셀 푸코”라고 언급했을 정도다.
푸코에 따르면 서구 근대화와 더불어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이성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는 인간정신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한 비이성적이고 감성적인 것들을 이성의 경계 밖으로 몰아내서 이성 자신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타자화”하고 새로운 “광기”의 영역을 만들어 낸다. 푸코는 이런 이성과 광기, 이성과 비이성의 분리와 차별을 통해 광기와 비이성에 대한 이성의 지배가 확립 되었다고 지적한다. 광기는 언제나 이성에 의해 통제되고 감금되어야 하는 보호의 대상자이고 교정의 대상으로 광인, 부랑자, 어린이, 부녀자, 이방인, 범죄자 등의 이미지와 결부되었다.
곧 푸코에 따르면 “게으름뱅이, 방랑자, 무직자의 자리는 오직 감금 뿐이다는 것이고 푸코는 이런 인간성을 감금하는 이성을 타파해야 한다고 늘 외치고 다녔는데 사실 내용의 외침을 차치하고라도 필자가 보기에 푸코도 또 다른 광인일 뿐 아니겠는가? 즉, 에드워드 사이드는 나치를 경험하고 자신의 조국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위해 서구 최고의 일류대에서 공부하고 자리잡았지만 그의 사상적 밑바탕은 편협한 악감정과 열등감의 발로일 뿐이다.
b. 한국에서 알게 모르게 오리엔탈리즘을 추종하는 자들.
필자는 에드워드사이드의 책을 읽으면서 그와 비슷한 한국의 지식인이 누구일까? 하고 좀 재미있는 생각을 해 보았다. 독자들은 기억할 것이다. “도올, 김용옥”이라고.......누구를 인신공격할 의도는 없지만 인간적으로 유아적이고 천진난만한 성격도 비슷하고 무슨 현실적이고 알맹이 있는 서구의 선진학문을 공부해 온 것도 아니고 무슨 역사속에서 진부한 철학들을 꺼내어 하여튼 간판 학위는 세계최고의 대학들에서 받아와서는 국내의 얼치기 사람들에게 획기적일 것 같은 자신의 박식함을 자랑하고 현혹하고 사기쳤지만 지금 그를 존경하는 사람이 우리 국민들 중 과연 몇이나 될까?
필자의 기억으로는 도올만큼 “자신보다 강한자에게는 약하고 자신보다 약한자에게 강한 인사”도 드물 것이다. 자신 이전의 선배, 고참 학자들은 모두 낡았고 남들 다 아는 이론 가지고 자신만이 무슨 새로운 학문을 공부해왔다는 둥하는 3류의 인상도 그렇고 그의 모든 지식인들이 동참했던 80년대의 민주화운동을 무슨 자신만의 대표적인 캐릭터인양 내세우면서, 그도 당시는 국내의 짜깁기 좌익들을 맹렬히 성토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노무현이 뭐라고 무슨 전 국민이 보는 TV에 나와서 아부의 극치를 하는 발언을 하지를 않나, 자신이 무슨 대단한 학자라고 경제학, 국제경제학, 경영학을 모르면서 온 대기업에는 갖은 아부를 다하고 금융 정경 유착 하나 짚어내지 못한 얼간이 아닌가?
도올의 작업은 파묻혀있는 한국학을 서구의 과학적인 인문 연구방법론으로 재해석해내는 일은 매우 가치가 있었으나 이를 빌미로 교만해서 다른 학문분야의 어마한 발전 연구체계와 내용을 몰라 세상에 대한 무지와 교만으로 자신을 망쳐 버렸다는데 있다.
1980년대말 국내 어중간 대학 여학생들에게는 우상이었고 필자도 1990년대 초반이던가 하버드 엔칭연구소를 잠시 방문하고 난 후 컴퓨터와 산업공학을 위한 대기업에 있을 때 잠시 통나무라는 출판사로 그를 찾아 보기도 했지만 더럽게 거만하던 그와 그를 추종하던 별것도 아닌 무리들의 기억이 우습지만 나기도 한다.
미리 말하지만 인간이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지구상의 모든 데이터를 줒어 담을 수는 없는 미물인 것이다. 한편으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중에서 동양정신의 우수성은 늘 우리는 재고해 보아야 한다.
그중의 미덕중 하나가 겸양의 미덕 아니겠는가? 우리는 좌파종식 운동을 하면서도 이런 X같은 유행에 편승해서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까지 욕먹이는 인사들도 좀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또 다른 예로 몇 개월전 좌파측에서 FTA를 반대한다고 브리셀에 원정 데모를 간적이 있었다. 이때 필자는 여러 자유애국우익의 젊은 동지들과 인천공항에 이를 저지하러 나섰던 기억이 있는데 우스운 것은 이 좌익 원정대가 브리셀에 가서는 완전히 국가망신은 다 시켰다는 것이다. 가서는 한마디도 못하는 영어실력으로 피켓시위를 한답시고 온갖 개망신은 다시키고 말이 통하지 않으니 그들의 시위전달도 별무소득이었다.
어디서 돈이 났는지 겉은 시위를 한다고 떠났지만 당시와 지금 우리 경제사정이 좌익노조가 호화판 해외여행을 할 정도록 한가 하신가? 이러니 대한민국의 좌익은 좌익도 아니고 쓰레기 짜깁기 군상들일 뿐이다. 바로 이들의 감정이 에드워드 사이드같은 민족적 열등감에서 기인하고 비롯되는 것 아니겠는가?
한국인으로써 자기실력으로 노벨상을 받는다는 것은 엄청난 영광이고 매우 국가적으로 고무 칭찬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좌파 쓰레기 민족문학작가회의의 고은이라는 작자(필자는 고은씨뿐만 아니라 민족문학작가회의 자체를 그리 좋게 평가하지 않는다.) 는 무슨 평화통일이라고 허황한 몽상에 젖어 북에 갔다오면서 자신이 통일의 여명을 여는 시인이라고 다 낡은 쓰레기 좌파에게 기회주의 눈치나 보는 사람이 서구의 치열하고 치밀한 엄청난 노력과 인정이 요구되는 노벨문학상을 받는답시고 받지도 못할 상을 받고자 웃기는 쌍쓰레기 짓을 한 것이나 국민의 피같은 돈으로 김대중이 민족과 국가를 팔아 노벨평화상을 받은 것이나 참으로 에드워드사이드를 지적할 만큼 서구도 썩어 문들어진 측면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왜 우리는 일본처럼 자연과학자나 공학자가 노벨상을 받지 못하는 것일까? 여기에 현시대의 현자들은 교수가 판사에게 아무리 문제가 있더라도 “석궁”이나 쏘는 풍토, 즉 일명 “석궁관 대학교”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외국생활을 조금만이라도 해 본다면 누구나 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하게 된다는 사실을 많이 경험하게 된다. 필자는 이 사랑이라는 단어를 다른말로 “이해”라고 보는데 이 사랑이라는 의미만큼 그 내용이 사실상 풍부하고 다양할 수 있는 것도 없다고 본다.
필자는 한 가지 어릴 때의 생각을 한번 해 본다. 초등학교때인가? 공부를 좀 잘해서^*^ 부모님께서 용돈을 좀 많이 주신 적이 있었다. 할아버지 서재의 책들 중에 2차세계대전 때의 기록들이 좀 있었는데 그때 필자는 처칠내각의 아데나워 외상의 책과 태평양전쟁에 관한 책이 생각이 난다.
당시 필자는 그 책을 읽은 어린 상상대로 일본 해군의 당시 세계최대의 거함 전함 “야마도”호의 프라모델 장난감을 산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친구들에게 있어 일주일 내내 같이 자랑하면 놀수있는 신기하고 정교한 큰 장난감 이었다. 정밀한 부품들을 하나하나 붙이고 만드는 것도 시간이 걸리지만 한번 만들어 놓으면 그야말로 몇 시간을 바라 보아도 재미있는 물건이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이차대전때로 돌아가 보면 당시 야마도호는 세계최고를 자랑하는 일본 군수산업과 국력의 상징이었다. 일본은 당시 과연 어떤 나라였던가? 바로 동양의 나라들중에서 가장 빨리 개방을 해서 서구의 문물을 받아 들이고 문명을 개화시킨 나라였다. 다만 한가지 필자가 생각해보는 것은 문명을 개방하더라도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신다이즘(무당교)과 칼잡이 문화의 명맥을 끈지않고 도도하게 전수하면서 개방한 지혜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그래서 일본은 중국과 우리, 동남아를 삼키고 동양의 패권을 쥔 것 아닌가? 당시 세계최고의 거함 “야마도호”를 지휘하던 일본 태평양 함대 최고 사령관은 바로 “야마모도 이소로쿠”라는 자로써 이 자도 에드워드 사이드처럼 미국 최고의 대학 하버드를 졸업한 최고 수재였다. 바로 이 자가 일으킨 것이 진주만 기습이다.
왜 야마모도는 미국을 공격할 엄청난 야심을 품었을까? 그것은 당시 일본 군국주의자들에게는 아마도 별것 아니었을런지도 모른다. 동양최대의 제국주의 산업국가로 발돋움을했고 야마모도 자신이 하버드에서도 수재였으니 그까지 미국놈들이야 하며 당당한 자신과 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민족성처럼 “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한 기회주의적 심뽀가 있는 민족도 드물것이다.” 이런 자들이 미국을 상대하기에는 자신들의 당당한 실력이 밑받침되지 않으면 감히 엄두가 날 일이겠는가? 그러나 결국 시간이 흐르고 전세는 점점 패퇴해가 일본의 군국주의는 역사의 뒤안길로 원폭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에드워드 사이드”나 일본의 “야마모도 이소로쿠”나 서구문명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공통점은 실력을 키우기까지는 엄청난 인내로 감추었다가 만만하게되면 이빨을 들어내는데 그것은 바로 평화가 아니라 “칼의 문화”라는 것이다. “칼은 칼로 망한다.”
그런점에서 나는 오히려 대한민국이 이들이 하지 못한 동양의 한을 푸는데 있어서 천금같은 지혜의 문화와 기회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또 한가지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칼이 아니라 붓의 문화라고 하더라도 붓이 썩으면 칼로 망하는 것보다 더 엄청나고 비참하게 망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나라를 빼앗기고 36년간 국토를 참절당한 적이 있는 우리 역사가 잘 증명해 주고 있다. 칼은 서로 대적하다 먼저 베면 이기고 베이면 지는 것이지만 붓이 썩어 망해 버리면 엄청난 시간을 전국민이 정신적으로 고통당한다는 것이다.
지금 북의 핵문제로 망해가는듯한 우리를 볼 때 필자는 이점이 정말 걱정스럽다 아니할수 없다.
그럼 우리는 어떠해야 하는가? 바로 좋은 칼도 가지고 명필의 붓들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옛날 성골과 진골의 썩은 놈들을 배격하고 진정 양질의 성골과 진골을 통합시킨 김유신의 현실성과 냉정한 이성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그럴 때 신라도 삼국통일의 대업을 달성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썩어빠진 빨갱이 민주화와 약해빠진 기회주의 중도 민주화, 썩어빠진 정경유착의 노가다 산업화를 배격하고 진정 양질의 선진 민주화와 선진 산업화의 좋은 점을 결합시키는 말만의 화장빨 선진이 아닌 참 선진화 아닐까?
지금 이것을 가로 막는자들이 과연 누구인가? 바로 서구의 좌익과 신좌익 이론을 비판검토없이 무조건 베껴오면서 자신의 사리사욕들을 위해 국가와 민족을 배신한 놈들과 반역하는 놈들, 멍청하게 에드워드 사이드 자체를 비판 검토함이 없이 무슨 맨날 민족을 팔아먹는 유치하고 졸렬한 열등감들의 화신 좌익 쓰레기 양아치 놈들 아닌가? 이를 맨날 유혹하고 선동하면서 북의 기쁨조들과 춤판이나 벌리고 사기치는 지식인 쓰레기들 아닌가?
지금 좌익들은 노무현이 무너지면서 점점 한나라당에 위장 침투 분열공작을 획책할 것이다. 무슨 얼어빠질 중도를 외치면서....이를 보자면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살려달라”는 의미일수도 있지만 우리는 결코 그들을 살려 두어서는 안된다.
철저히 국가와 민족을 망쳐버린 얼치기 포퓰리즘의 그 사상적 책임도 반드시 어떤 형태든 물어야만 한다. 나는 우리 후배 젊은이들에게 고한다. 반드시 우리 역사의 아픈점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5백년전통의 사랑하는 민족대학이 어떻게 “석궁관 대학교”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통일을 할 것이고 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통일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북의 정권은 “헌법상 인정할 수 없는 반국가단체”임은 틀림이 없고 지금 “절대전술무기인 핵무장”을 하고 있다. 핵무장에 대응하는 수단은 같이 핵무장을 하는 수밖에 없다. 이것은 적의 칼에 대응하는 호국의 칼이다.
중국공산당과 김정일 정권, 국내의 얼치기 좌빨들을 상대하는 무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얼어빠지고 썩어문들어진 “평화”가 아니라, 에드워드 사이드 베껴무스가 아니라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이성과 중국공산당, 김정일학정아래 신음하는 동포들에게 지속적으로 퍼트릴 참사랑의 새민주화의 붓이 아니겠는가?
문(文이) 낳다. 무(武)가 낳다는 얼빠진 논쟁의 말은 더 이상 통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당당하게 실력을 갖추고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헌법아래 저 북의 공산 쓰레기들을 쓸어 버려야 한다. 그것은 경제와 산업의 선진 민주화, 당당한 경제실력, 국민의 각성된 민주정신무장으로 이루어질 일이다. 저열하고 비루한 에드워드 사이드같은 열등감으로 어떻게 국제외교의 한마당에서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도 저 옛날 야마모도 이소로쿠처럼 미래에는 당당하게 알랙산더와 징기스칸처럼 대륙을 호령할 수 있다. 그러나 야마모도 이소로쿠처럼 실패할 수는 없지 않는가? 에드워드 사이드처럼 뉴욕에서 비루한 사막의 양아치라고 욕먹으면 안된다.
그 길은 좌빨 쓰레기가 아니고 참고 참고 또 참으며 인내하고 실력을 기르는 일이다. 당당한 실력을 갖추고 세련되고 점잖은 문화의 우위로 우리의 통일이 이루어 질 것이다.
필자가 휴일날 자주가는 북한산과 도봉산의 어느 등산로의 암반에는 천지동근(天地同根)이라는 오래된 글귀가 새겨져 있고 원통사(圓通寺)라는 조그마한 암자가 있는데 바로 이 원통사가 도선국가가 친구 신라 경문왕을 위해 세운 절이다. 이미 천 여년전에 우리 조상들은 "지구는 둥글다" 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던 것은 아닐까? 그런데 멍청하게 왜 에드워드 사이드처럼 동양과 서양을 나누어 놓는 사고의 단순함을 가지고 있을 것인가? 이 모든 정보가 찰나에 왔다갔다하는 인터넷의 시대에 말이다.
해가 밝아오는 새로운 새벽에 졸필을 놓는다..........
자유애국우익의 동지들게 구국의 건승을 기리며.................
-----------------------------------------------------------------------------------------
<신새벽의 크리센도 : (현대시)>
맑은샘 지음
별
새벽
새로운
신림동 뒷골목에서
너의 이름 불렀다
숭고한 자유민주주의여
사람들은 너 잊은지 오래
발길들은 너 잊은지 너무나 너무나 오래
오직 한 줄기 개념들 있어
타들어 가는 피울림의 묘비들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책임을 머금은 사랑의 자유민주주의여
그 그림자의 크리센도여
그냥 주저앉는 얼치기 개념 없어 눈치파 회색의 민주주의 깃발 아래
낡고 썩어가는 말(言) 가벼운 레토릭의 사회
인민의 민주주의 숨긴 붉은 군단들
닭장속을 관리하는 빅브라더의 협박속
장닭도 빨간 돼지의 더러운 혀에 고개 숙이고
닭 모가지 비틀어도 새로운 새벽
파아란 자유민주주의가 오는가 , 개념없는 사람들은 외면해 간다
쾌락의 맹맹한 민주주의 가면 무도회를 벌리는 짐승들에게
목이 비틀어져 가는 닭이 개에게 외친다
너도 가면에 속지를 마라
너 스크린의 디 크리센도여
오늘은 두명이 또 구속되었다고
전파가 불통튀는데, 분노의 열기를 삮인 하늘에
타들어 가는 피울림으로 나는 타들어 가는 목마름을 말한 옛 새에게 외친다
당신의 말도 이제 우리에게는 썩어가는 거대한 파놉티콘, 파놉티콘들
우리는 황량한 논바닥에서 삽자루 들고 웃기는 검은 구렌져를 탈수 없노라
이제 썩어가는 민중(民衆)의 파놉티콘들
새가 되고팠던 닭 두마리가 목을 비틀리면서 피를 토한다
위조의 화폐가 원인이라고 그래서 당신들은 이제 가면을 벋으라고
점점 더 커진 크리센도여
새는 자유롭게 날고 싶다, 타들어 가는 피울림으로라도
지금 신림동에서 새들은 그렇게 운다. 낡아빠진 저 가면 무도회의 붉은 깃발을 찢어버릴까
상암동에서 자랑스런 대한민국을 외친 새의 이마를 찢어버린 네놈들의 만행을
죄없는 세건의 자살인지 타살인지 생각을 아리송하게 하는 네놈들의 만행을
너의 귀가 먹을지니
감당할수없는 큰 울림에 내 정신이 미쳐갈지라도
피울림으로 피울림으로 파아란 하늘에 새기고 고하노라
나는 기도 하노니
네들 붉은 군단과 미신의 창녀들의 정수리에
거룩한 아버지의 불칼이 내리 꽂히리라
울려라 하늘의 크리센도여
울려라 천둥으로 울려라
울려라 미카엘과 엘마의 사랑으로, 하늘의 터질듯한 성음(聖音)으로
자유시민의 혼(魂)으로
나라사랑의 혼(魂)으로
구국결사의 혼(魂)으로
우리사랑 피 눈물이 흘러도
그렇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음성으로 울려라
2006 , 1, 27 맑은샘
----------------------------------------------------------------------------------
*졸시 감상곡 : 엘가작곡 , 사랑의 인사 오케스트라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