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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선수만을 유독 고집하는 가시마를 제외한 J리그 몇몇구단들은 시즌내내 K리그 외국인선수들을 주시합니다.
(나고야그람퍼스는 한국인스카우터를 두고 있을정도)
K리그에서 검증된 선수들은 J그에서도 성공할 확률이 높은것
사실이지만 돈으로 시장질서를 문란하게
만드는것이 개탄스럽다네요.(까보레파동)
연맹도 선수를빼앗긴다는
피해자의식에만 빠져있지 말고
대응책을 마련하여 경쟁력을 키워야 하며 유럽형 선진화된 리그의 운영과 수익모델을 창출할수있는 콘텐츠를 개발, 수입의
다변화와 인프라구축을 해야하고 인지도있는 지도자,선수영입,피스컵등으로 K리그도 세계적으로 충분히 눈길을 받을수 있어야한다고봅니다.
언제까지 아시아에서조차 J리그에
밀려야하는지...
J리그출범이후 K리그에서 활약하다가 일본으로
이적한 선수들을
정리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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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은 2009년 말에 작성된 글인데 현재 상황을 보면 J리그 -> 중국슈퍼리그로 바꿔도 전혀 어색하지 않네요.
2010년 이후로는 중국으로 진출하는 선수들이 훨씬 더 많아졌으니까요.
★1.포항의
레전드 - 라데 [구 유고,포항제철]
포항팬들이라면 절대 잊을수없는 라데 보그다노비치!!
K리그통산 147경기출장
55G/36AS 기록한 라데는 96시즌이끝나고
재계약협상에들어가지만 구단과 큰 이견차이를 보이면 이별수순에 들어간다.
당시 신생팀이었던 수원이
15억원이라 거액의 이적료를 제시했지만 무산되었다.
그후 네덜란드 아약스에서
이적료33만달러(2억8천만원) 연봉 80달러(6억8천만원)에
2년계약을 제시했지만 포항은 계약조건에 큰불만을 제기하며 반대했다.
결국 J리그 제프로 이적하여
97시즌 16경기출장 8골을 기록하며
전반기 제프의 돌풍을 이끌었고
여름이적시장이 열리자 라리가
AT마드리로 이적하게된다.
한국,일본,스페인,독일무대에서 성공을
거두며 은퇴했고 지금도 축구계에 남아
활동중이다. 가끔 한국을 방문하여
선수를 소개해주기도...
★2.바데아 [루마니아, 수원]
세리아A 모구단과 전남의 치열한 경쟁끝에 신생팀 수원으로 입단.
총액80만달러(이적료 69만달러,연봉11만달러) 3년간 계약체결로
화제가 되기도했다.
김호감독이 가장
극찬했던 선수로 수원의중원을 진두지휘하며
K리그 최고 용병으로 군림하던
98년 이적료와 연봉을 포함해
52만5천달러(7억2천만원)에 J리그 벨마레히라츠카로 이적하게된다.
김호감독은 바데아를 데리고있고
싶어했지만 고종수를 더키우고 싶어했고
서른줄을 넘은 나이를 고려해 제값에 팔수있는 적절한시기라고
판단하고 이적시키게된다.
(당시 수원팬들의 반발이 심했었다)
벨마레 이적후 벨마레의
재정난으로 홍명보,나카타,바데아는 이적하게된다.
(J리그 최악의 이적)
바데아는 홍명보와 가시와로 이적했고 ' 00시즌 아비스파 후쿠오카로
다시 이적하게된다.
(천안일화가 바데아 에이전시와 입단합의를 했지만 본인이 직접 후쿠오카와 교섭후
입단을 결정해 많은 아쉬움을 남기기도..)
◆J리그통산
80경기출장 10G <98시즌 7월~ 01시즌>
( 김호감독이 일본 전지훈련때 바데아를 보기 위해 직접경기장에 찾자
크게 감동했다고함)
은퇴후 루마니아 크라우마에서
감독겸 구단주를하다가
지금은 개인사업을
하고있다고,,
★3.원조수원의 벽 올리!! [루마니아,수원]
97년 수원에 입단, K리그 최고의 수비수였다.강한승부근성과 투지로 상대방을 제압했고
장점인 제공권,공격가담,위치선정, 거친태클과 몸싸움으로 리그를 평정했다.
무엇보다 매우
성실한 자세로 김호감독을 존경하였고 당시 말도많고 탈도많았던
루츠,비탈리,데니스,샤샤를 다독거리며 용병들 가운데서 맏형 노릇을하였다.
당시 전남의 마시엘과 쌍벽을 이루며 수원수비진의 사령관이었다.
'00시즌 본인 스스로 은퇴를 염두해 두었고 금전적인부분과 기분전환을
이유로
J리그 이적을 구단에 요청.. 수원은 그동안 올리의 헌신적인
수비력과
인간성에 그의 의사를 존중.
6개월임대료
25만달러를 받고 제프유나이티드로 보낸다.(10경기출장)
수원을
떠난 뒤에도 종종 이운재,고종수와 연락을 하였고 김호감독은
자신의 지도자 멘토라고..
은퇴후 루마니아 부크레슈티
슈테아우아감독 맡으며 06-07챔스에서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 후
알 히랄,알 사드, 알 아인, 알 알리에서 감독직을 수행하며
중동에서 활약하였고
현재는 사우디 감독으로 2015 아시안컵에 나선다.
★4.바람의 아들 마니치!! [구 유고, 부산]
이차만 감독이 이끄는 부산대우는
97년 역사적인 3관왕< 아디다스컴-라피도컵-프로스펙스컵>을
달성했고 그중심에는 바람의아들 마니치가 있었다.
하지만 98년 외환위기 한파에
대우는 직격탄을 맞았고 이로 인해 마니치는
하석주와 황선홍이 활약하고있는
세레소오사카로 1년간 임대가게된다.
1년간 연봉,임대료 50만달러에
주택,승용차를 제공받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마니치는
오사카감독,동료선수들과 불화를 겪었고 불성실한 플레이로
곱지않은 시선을
받아야했다.
하석주의 중재로 동료들과
원만한관계를 유지할수있었지만 휴가때마다
부산을 찾아 부산복귀를 강력하게 원했다.
'99시즌 부산으로 복귀! 변함없는 활약을 펼치며
포항,전남,수원의 러브콜을
뿌리치고 팀의 해체를
바라보았다.
부산아이콘스로의 재탄생과 유고연방의 분리로 그가
간절히 원했던 고국의
전쟁종결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이안
포터필드감독과의 극심한 불화로
자국으로 돌아가 2부리그에서 뛰게된다.그후
인천 안종복단장의 부름을 받고
K리그에 복귀했지만 자녀들의 교육문제로
인해 아쉽게 K리그와 작별을 고한다.
★5.비탈리 [우크라이나,수원]
95년 8월
전북에 입단한 비탈리는 데뷔전에서 2골을 몰아치며
전북의 희망으로 주목을
받았고 알렉세이(GK),잔코(MF),김도훈,최진철과
함께 전북의 돌풍을
일으킨다.
하지만 2년차부터 심판에 대한
잦은 항의와 독불장군식의 플레이로
선수들과 불화를 겪었고 팀전술의 불만을
터트리며 팀내 분란의 주동자로
낙인 찍혔다. 유독 비탈리를 아꼈던
최만희감독도 어쩔수없이 98년 여름
수원으로 이적시키게
된다.
김호감독 영도아래 개과천선,우승에 이바지하기도 했지만
가시와레이솔로
이적한 샤샤가 부상이 확인되어 황선홍과 빅딜로 다시돌아오자
용병보유한도(5명)초과 당시 144경기출장(42골,19AS기록)한 우크라이나특급
비탈리를J리그로 이적시키게된다.
(당시 김호감독은 고민을 해야했다,,
샤샤가 복귀한시점에서 비탈리,올리,루츠,하리,데니스중 한명을 버려야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부진한 하리를 제치고 비탈리를 선택한 이유는 동료들과 콤비플레이가
부족한점
과 샤샤와 포지션이 겹쳤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이유는 연말에
계약이 종료되는것을 간파..
이적료를 챙기기 위해 J리그
쇼난벨마레를 이적시키게된다
(그후 하리도 J리그 단기임대후 부산으로
이적)
'00시즌 6월 벨마레로 이적한 비탈리는 부상과
적응실패
5경기출장 1골로 부진끝에 방출
당하게된다.
비탈리는 그라운드안에서는 심판에대한 불만과 이기적인
플레이어라는
평을 받았지만 그라운드밖에서는 친절하고 인간적인 사람이라는
상반된평을
받았다.안양LG~부천SK에서 재기를 위해 몸부림을 쳤지만
부상과 고령으로
인해 은퇴하였고 지금은 우크라이나에서 사업을 하고있다고
한다.
★6.신의손 샤샤!! [구유고/세르비아, 수원]
94년 11월 가방하나
들고 부산대우로 입단테스트를 받으러 왔을때만해도
그가 K리그 최고의
우승청부사로 발돋음 할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타고난 골결정력과 부산대우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세큐라라치감독의
구박과 무시..이차만감독과의 팀전술
견해차이로 일촉즉발의상황까지 되자
이적을 강력하게 요구했고 이를 감지한
수원은 '98시즌 샤샤를 영입한다
언제나 불만을 토로하고
사생활문제,수비력 핸디캡,케미스트리 문제를 일으키는
샤샤를 인간을 만든
김호감독은 '00시즌 결단을 내린다.
샤샤 한명의 의존도를
버리고<퍼거슨이 반니를 내치듯> J리그를 점령한
황선홍을
거액의 이적료를 지불하며 영입하고 데니스,고종수를 정점으로
엄청난 재능을
보여준 루츠와하리를 새로운 공격진카드로 개혁을 시작
가감히 샤샤를 J리그
가시와레이솔로 이적시킨다.
하지만 가시와에 입단하자마자
부상이확인되어 가시와의 항의따라
수원은 박건하를 3개월 단기임대 해준다.
가시와는 샤샤의 불성실한
훈련태도와 적응등의 문제를삼아 수원황선홍과
샤샤의 빅딜을 추진하게된다.
수원 역시 황선홍이 데니스등 몇몇 동료들과
불화를 겪으며 팀에 녹아들지 못하자
빅딜을 수락하게된다(2000년
5월)
김호감독의 '00시즌의 야심찬 구상도 동시에 무너지게
된셈이다.
그후 하리의 부조화, 루마니아로 직접 날아가 스카웃한
루츠는 보헤미안기질로
적응하지 못했고, 샤샤또한 불성실한 자세로 라커룸은
하루도 조용한날이 없었고
공격진의 개혁은
혼란으로 빠지게된다(산드로의 영입으로 위안을 삼게되지만,,)
김호감독은 다시한번 큰 용단을 내린다.
불성실한 자세,문란한 사생활,동료들과의 불화.. 더이상 샤샤를
안고갈수없다고
판단한 김호감독은 가감히 '00시즌 7월 자유계약으로
방출한다.
이적료도 포기한 김호감독과
수원의 결정에 환호작약한
사람은 성남일화의 박규남 단장이었다.
전남 이회택감독이 샤샤영입을
위해 포항제철 고위층에게 읍소하고있을때
재빨리 샤샤에게
거금(총220만달러 ,2년계약)을 쥐어주며 성남일화에
입단하게된다.
그후
샤샤는 호랑이감독으로 명성을 떨친 故차경복감독과 주장 신태용의 군기에
개과천선 성남의 3연속 K리그우승을 이끌며(01~03시즌) 우승청부업자로
명성을 떨친다. 04년 성남과의 계약실패로 인해 K리그와 작별을
고한다.
고액의 연봉과 나이가 들어가면서 떨어지는 골수치와
몸놀림, 항상문제가
되었던 문란한 사생활,불성실한 자세로 지탄을
받긴했지만 부산대우,수원삼성,
성남일화의 우승을 이끌며 골헌터의 진명목을
보여주었다.
한때 인천복귀설도 있었지만 인천초대감독 로란트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세르비아 하위권팀에서 활동하다가 은퇴하였다.
★7.하리 [콜롬비아, 수원]
◆K리그 통산
135게임출장 17G/18AS
자타가 공인한
개인기와스피드,감각적인 골감각,정확한 패싱력,왕성한 활동으로
김호감독에게
낙점. 수원에게 입단하게된다.페루리그 득점2위를 달리며 명성을 떨쳤지만
수원의 두터운 스쿼드에
밀렸고, 생전 처음접한 추위와 개인기위주
플레이로 수비수들에게 저지를
당하고 5경기에서 1골을 기록中 다혈적인성격에
레드카드까지 받게되자
김호감독 눈밖에 나게된다(2군경기에서의 난투극까지)
비탈리,루츠,데니스이
선전으로 하리가 뛸수있는 시간은 점점줄어갔다.
그후 비탈리가
J리그 이적하자 안도의한숨을 내쉬었지만 청천병력의 소식을
접하게된다.
샤샤-비탈리를 방출하며 외국인 선수 물갈이를 단행하고있던 김호감독은
하리를 J리그 아비스파 후쿠오카로 단기임대 보내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하리는 후쿠오카를
날씨를 들먹거리며 수원잔류를 원한다
(당시 인터뷰에서 후쿠오카는
하위권팀이었고 일년내내 눈이내린다는
말에 아연질색했다고,,)
*사실 후쿠오카는 일년내내 눈이 오지
않습니다. 잘못된 정보를 듣고 얘기한것으로 추측되네요.
이때 하리의 기량을 높이평가 고향선배인 김호감독에게 강력하게 영입요청을
한 김호곤감독의 노력으로 부산으로 이적하며 수원타도를 외친다.
하지만 그를 아껴준 김호곤감독이 떠나고 포터필드감독과 불화가 계속되자이적을 결심한다.
하리의 영입을위해 3년을 기다려준 故차경복감독의 노력으로 성남으로 이적하지만 부진했다.
동반입단한 브라질용병
아데마(FW)역시 부진 사이좋게 방출당한다.
잠시 K리그르 떠나
신생팀 경남으로 컴백했지만 예전의 모습은 볼수없었다.
하리는 아마도
자신이 운영하는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지 않을까??
세번째부인과
데킬라를 마시며...
★8.산드로 [브라질, 수원]
'00시즌
하리,비탈리,황선홍,샤샤를 방출하고 영입한 브라질 청소년대표
산드로!!
브라질내에서는 인지도가 없었지만 청소년대표시절 활약으로
수원에
입단하게된다.리그중반에 입단했음에도 후반기 8경기에서
4골4어시스트를
기록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수원입단시 순지하고 착한심성으로
동료들과 잘지내고 경기도 열심히 뛰던
그가 어느순간부터 거만해지고
신경질적으로 변하더니 경고8개 퇴장1번을 받고
동료를 이용한 플레이보다
독단적인 플레이를 펼치며 02시즌 8골로 부진..
김호감독의 그런
산드로에게 실망감을 느꼈고 경고메시지를 보내지만
산드로는 점점
변해갔다.
'02시즌이 끝나면서 제프유나이티드의 이적제의가
들어오자 김호감독은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련없이 이적을
수락한다.
J리그에서 그런데로 활약을 펼쳤지만 자택에서 술에취한
일본인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되어 졸지에 강간범으로 낙인찍혀 바로
퇴출당하였다
◆리그통산 45경기에서
17G
'05시즌 수원으로 컴백 명예회복으로 노렸지만 불어난체중과
무뎌진체중으로
인해 벤치멤버로 전락했고 전남으로 임대를 갔지만 예전의
산드로가 아니었다.
오히려 산드로히로시에게 밀렸고 등록명까지 산드로C로
불리자 무척 자존심이
상했다고한다.
★9.도도 [브라질, 울산]
●K리그통산
62게임출장 33G/4AS
울산은 브라질1부리그
산토스-팔메이라스-보타보구에서 명설을 떨친
득점왕 출신 도도를 이적료
100만달러 연봉30만달러에 영입한다.
울산현대의 입단으로 브라질내에서도
보도될만큼 네임벨류가 있었고
김정남감독은 도도기량에 만족하며 시즌을
기대한다.
'03시즌 최성국-이천수와 심각편대를 형성 팀을
이끌었고
김도훈,이따마르,마그노와 골레이스를 펼치며 27G/3AS를
기록한다.
평상시 마그노와
이따마르(팔메이라스시절 도도 교체요원)와 자신과 비교하는것을
불쾌하게 생각했고
남다른 자부심을 가졌지만 평상시에는 동료들과 잘어울리며 전구단을 상대로
골을 뽑아내 성공적으로 시즌을 마친다.
'03시즌 종료후 베갈타센다이,요코하마마리노스,오이타 트리니타에서
이적료 150만달러를 제시하며 러브콜을 보냈지만 김정남감독의 강력한반대와
울산구단의 최소 이적료 200만달러를 제시하는 구단에게만 이적허용
방침을 세워 도도 이적은 유보된다.
도도역시 울산에서 함께뛴 브라질동료 에디(MF)가 이미 오이타에서
활동하며
J리는 K리그보다 수비도 타이트하지 않고 금전적으로 수입을
올리수있다고
꼬드기는 통에 J리그행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한다.
도도는 원래 스피드,개인기,파워면에서
뚜따,마그노,이따마르,에드밀손보다
출중하지 않았지만 지능적인 플레이로
수비수들을 농락했다.
그러나 '04시즌 도도플레이는 수비수들에 간파당했고 막히기 시작한다.
거친태클과 맨투맨마크로
인해 플레이가 봉쇄당하자,, 골헌터의 모습은 사라지게 되고
18게임 출장 6골1AS로 부진의 늪에
빠지게된다.
(시골깡촌에서 데려온
카를로스<제칼로>에게 마저 밀리게됨..)
당시 오이타
신임감독으로 취임한 황보관 감독은 검증된 용병을 원했고
마침울산은
브라질,스페인에서 명성을 떨친 마차도를 영입하기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던지라 미련없이 도도를 '05시즌 오이타 트리니타로 이적시킨다.
도도 역시 마그노,에디가 뛰고있는 오이타를 선호했다.
하지만 체력이 떨어지고 마그노 위주의 팀전술에 불만을 토로하다
6개월만에 브라질로 돌아가게된다(15게임 출장
3골)
★10.마그노 [브라질, 전북]
전남은 플루미넨세에서 골폭풍을 몰아치는 마그노를 영입하기 위해
임대료 60만달러 연봉30만달러에 1년계약을 제시하며 숨고르기를 하고있었다.
총액90만달러(10억8천만원)을 제시하며 교섭하던중
(포항제철 고위층의 도장만 기다리고 있던 시기로 부대조건이 걸려 지체)
이틈에 전북은 속전속결의 스카웃작업을 펼치며
임대료 60만달러 월봉 2만7천달러(연봉32만4천달러)
별도의 승리수당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발표한다.
총액
92만4천달러(10억8천480만원) 당시 K리그 최고의몸값이었다.
이때부터 전북-전남 앙숙관계(김현수이적건 포함)가되어 '03시즌에는
전남써포터와 마그노가 물리적 충돌까지 일으키게된다.
'03시즌은 K리그 역대최강의 거물들이 찾아온 용병 르네상스시대였다.
전북(마그노,에드밀손,보띠) 수원(나드손,뚜따) 울산(도도)
성남(샤샤,데니스)
안양(마리우,마에조노)
전남(마시엘,찌코,이따마르)
하지만 마그노는 단연
군계일학.
트라이앵글(마그노-보띠-에드밀손)의 가공할 폭발력과 문전앞에서
동물적
골감각,드리블을 통한 돌파, 강철체력으로 90분내내 수비를
농락하며
27골을 작렬!! K리그
접수한다.
그러나 '03시즌 종료후 행복했던 허니문 기간이 끝나고
전북과 마그노는
이별을 준비한다. 브라질에서의 마그노 결혼식까지 참석하며
J리그에 밀리않는
금액을 제시했음에도 마그노는" 돈이 문제가 아니다!
K리그는 너무거칠어서
도저히 경기를 할수없다!! 두번다시 뛰고싶지않는
무대이다!" 라며
단호박 먹고 J리그행을
선언한다.
'04시즌 거액의 돈다발을 챙기며 황보관감독의 오이타로
입성한다.
오이타~감바오사카에서 활약은 좋았지만 끝은
좋지않았다.
계약기간이 남았음에도 독단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알 이티하드와
거액의 비밀계약을맺어 많은 지탄을 받고 떠났다.
◆J리그통산 115게임출장 65골
★11. 포페스쿠 오레!!<가비> [루마니아, 수원]
◆1998년
프랑스월드컵 루마니아대표
A매치27경기출전
4골
라리가:누만시아-살라망카-발렌시아
개인적으로 광팬이었던 포페스쿠는 '00시즌 올리의 강력한 추천으로
계약금 15만달러,연봉20만달러에 2년계약으로 수원에 입단하게된다.
김호감독의 전폭적인 믿음을
받았지만 차붐부임이후 전술적으로 맞지않아
'05시즌 내셔널
부크레슈티(루마니아)로 단기임대되었다가 3월 J리그
제프유나이티드 치바로
이적하게되지만 급격한 체력저하와 컨디션난조로
7경기출전 1골을
기록한다.
'05시즌 종료후 은퇴를
선언! 올리가 지휘하는
슈테아우아에서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하기도했다.
★12.알파이 외잘란 [터키,인천유나이티드]
알파이는
2002년월드컵 로이터통신 베스트11에 뽑혔고, FIFA테크니컬그룹이
선정한 16명의 올스타팀에서 선정. 00시즌 터키페네르바체에서
아스톤빌라로
이적료 1050만달러(약155억원) 연봉29억원이라는
터키사상최고액으로 이적했었다.
유로2004 예선 베컴에게 폭언을
퍼부으며 세계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베켐열성팬들에게 시달려 잉글랜드생활
어렵게되자 이적을 결심했고
'05시즌 인천에
입단하게된다.
당시 인천감독이었던 로란트감독마저 알파이 영입에
놀랄정도..
인천은 계약기간2년에 계약금 80만달러 연봉100만달러라는
K리그
역대최고연봉으로 계약한다.
입단당시 체중이불어 배추로 3끼를 해결하며 감량했고 적극적으로
적응하기위해 노력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동료들과 불화가 생겼으며
경기에서도 거친태클을 남발하여 비난을 받았다(전북
에드밀손<십자인대>
에게 부상입힌 태클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팀미팅조자 참가하지 않으며
동료선수들의 무시하는 발언을 일삼는등
인천은 알파이때문에 골치를
썩는다.
리그중간에 홍콩여행을 간 알파이는 안종복단장에게 이적을 요구했고
마침 우라와에게 제의가와 기분좋게 떠나보내주었다.
(인천은 알파이의 이적으로 40만달러 이익을 보았다)
알파이는 우라와입단 회견에서 K리그는 성에차지않아 수준높은 축구를
하고싶어 왔다는 망언을하여 인천팬들의 분통을 터지게했다.
그러나 J리그에서도 거친태클과 동료들을 무시하고 독불장군 행세를하며
눈총을 받던중 7경기에서 3장의 레드카들받아 6개월의 계약기간이
남았음에도
바로 퇴출당한다(J리그
13게임출장)
요쿄하마 유상철에게 부상을 입히는 만행으로
다시한번 국내팬들의
지탄의 대상이
된다.
★13.보띠 [브라질, 전북]
결과론적으로 보면 전술과 맞지 않는다며 보띠를 방출하고 토니를 영입한건
최강희 감독의 실패라고 생각된다. 토니가 반짝 활약하고 방출 당한걸 보면...
보띠는 바스코다가마에서 이름을 날리며 '02시즌 전북에
입단한다,.
마그노-에드밀손과 트라이앵글을 형성하며 FA CUP우승을
차지했다.
마그노의 J리그행과 에드밀손의 부상장기화로 홀로
고군분투했지만
그를 신임하던 조윤환감독 퇴임으로 보띠도 연을
끊는다...
'07시즌 빗셀고베로 이적 43경기 3골을 기록했고
김남일과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14.까보레 [브라질, 경남]
J리그가 K리그를
무시한 대표적인 케이스로 많은 분통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07시즌
혜성처럼등장.. 환상적인 골을 터트리며 뽀뽀,산토스와 돌풍을 일으키지만
'08시즌 FC도쿄와
스카우트 분쟁속에 J리그로 이적한다.
자신을 키워준 경남에
사과한마디조차 하지않고 떠나간 까보레;;
그래도 경남팬들은 까보레를
진심으로 사랑했을것이다..
★15.뽀뽀 [브라질, 경남]
◆K리그통산
94게임출장 32G/24AS
'06시즌 20골 8AS를 기록하면서
부산의 핵심적은 선수로 부상했을때
가장 강력한 공격옵션임에도 불구하고
에글리감독의 엄청난 착각속에
(뽀뽀대신 영입한 페르난도-윌리암은 부산의
악몽의시작이자 에글리감독
퇴임에 단초가 되었다.) 사실상
방출되었다.
주위에 엄청난 반대속에도 뽀뽀 방출을 결심한
에글림감독의 판단은
아직도 미스테리이고 뽀뽀의 악령에 시달리며 용병
복없는 팀으로 전락한다.
'07시즌 와신상담! 8골 10AS를
기록하며 까보레,정윤성과 함께 경남의 공격을
이끌었지만 에글리에이어
조광래감독에게 마저 신임을 얻지못하며
'08시즌 가시와로
이적한다.조광래감독이야 뽀뽀의 재계약을 확실히 믿었지만
구단의 재정난으로
인해 이적시킬수밖에 없었다..
동료에게 찔러주는 킬패스,환상적인
프리킥과 강력한 중거리슛팅
화려한 발재간으로 폭발적인 드리블을 하던
뽀뽀.. 감독복이 없었던것일까;;
★16.미첼 [카메룬,
천안일화]
일화에서 공금을
훔쳐 달아나서 퇴출후 러시아리그를 거쳐
히로시마에 입단 (K리그
최악의용병중 한명)
★17.후치카
[크로아티아, 울산]
183cm 미드필더 후치카는 크로아치아 청소년대표 출신으로
어린나이에 울산에 입단한다.
하지만 팀적응에 애를먹고
파울링요,하우,마르코스 브라질용병들과의
주전경쟁에 밀려 j리그 임대후
k리그를 떠난다.
(크로아티아 자국에서는 j리그
임대에 크게 격분 유럽에서 인지도를
넓혀가던 후치카의 k리그행에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02년월드컵 개최하는
나라여서 허락했더니 j리그 임대라니;;
차라리 크로아티아로 보내달라고
항의했다고함)
★18.안젤코비치
[세르비아, 인천유나이티드]
'04시즌 인천창단멤버로 교섭중... 라데에게 k리그의 수준을 물어보고입단.
11경기출장 4골을
기록하고 그해 7월 세레소오사카의 5개월간
임대한뒤 완적이적에 합의하여
j리그행..
하지만
4경기1골로 부진.... k,j리그 모두 이별을 고한다.
★19.통곡의벽 마토
[크로아티아, 수원블루윙즈]
◆2004년 '유로2004 크로아티아 대표
A매치 10경기 1골
HNK 오라치예 - NK 오시제크 -HNK 하이두크 - 수원블루윙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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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에서 태어난
크로아티아 국가대표 출신 마토는 2005년 수원에 입단하게 된다.
탁월한 대인마크와 위치선정, 득점력까지 갖추고 리그를 평정하며 06시즌~08시즌
세시즌 연속 베스트일레븐에 선정되었다.
4시즌 동안 수원수비의 핵이였던 마토는 올리 이후로 볼수 없었던 레벨의 선수로 평가받았고
통곡의 벽이라는 별칭까지 부여받으며 많은 팬층을 거느리고 있었다.
하지만 '08시즌 12월 9일 팀을 우승시킨 직후 국대복귀를 위해
유럽리그로 갈 것이라는 전망을 깨고
12월 9일 장외룡 감독의 오미야 아르디쟈 FC와 연봉 1억엔에 계약하며 이적하게 된다.
당시 대부분의 수원팬들은 마토에게 배신감을 느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동안 수원에서 성실한 플레이와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준 마토를 인정해주고
비난보다는 J리그에서 그의 건승을 기원해주었다.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좋아했던 선수였는데 수원을 떠난다고 했을때
무척이나 아쉬웠다. 본인뿐만 아니라 많은 수원팬들은
아직도 마토를 그리워할 것이다
(2년 뒤 다시 수원으로 컴백했고 한시즌을 뛴 뒤 자국으로 돌아갔다.)
★20.라돈치치 [몬테네그로, 인천/수원]
◆K리그 통산 238게임출장 68G/24AS
라돈치치는 2004년 인천 창단 멤버로서 K리그에 데뷔하였다.
시즌 전 연습경기와 공식 창단 기념 경기인 감바오사카와 경기에서 골을 기록하면서
향후 몇년간 인천의 공격을 이끌 선수로 주목 받았다.
2005시즌에는 득점 6위에 오르며 창단 2년만에 준우승을 하는데 기여하였다.
하지만 이듬해 리그 1골이라는 재앙적인 수준의 성적표를 기록하였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07시즌엔 데얀 다미아노비치가 새롭게 합류하면서
주전경쟁에서 밀려났다.
인천은 07시즌 중반 라돈치치를 J리그 반프레 고후로 보내기로 결심하였고
첫번째 임대를 떠나게 된다.(시즌 종료후 복귀)
절치부심한 라돈치치는 08시즌 26경기에 출전해 13골을 기록
두두,데얀에 이어 득점 3위를 차지한다.
그러면서 귀화 선언을 하고 대한민국 국가대표로도 뛰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다음해 라돈은 성남으로 이적! 2010시즌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에
큰 역할을 한다.
2011시즌 종료 후에는 수원으로 이적하게 된다.(2011.12.08)
(구단은 라돈의 귀화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선언함)
12시즌엔 많은 골은 기록하지 못했지만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서정원감독 부임 후 부상이 겹치면서 출장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어갔다.
그러면서 라돈과 구단간의 이상기류가 흐르더니 급기야 13시즌 여름
시미즈에스펄스로 임대를 떠나게된다.
(2번째 J리그행이며 시즌 종료 후 오미야로 완전 이적한다.)
★21.에스티벤 [콜롬이바, 울산/제주]
◆2006-20008
콜롬비아 국가대표
A매치 15경기
출전
콜롬비아 국가대표 출신 에스티벤은 주로 왼발을 쓰며 활동반경이 넓고
1:1 수비상황에서 대처능력이 뛰어난게 장점이었다.
특히 역습시 패스 동작이 간결하여 빠른 공격으로 이어질수 있도록
연결고리 역할을 잘하는 선수였다.
당시 리그내에서 큰 활약으로 유럽 진출 루머가 돌기도 했는데
에스티벤을 주시하던 울산은 재빨리 계약을 마무리하고
2010시즌 준비를 마친다.(까르멜로,오르티고사)
이호-에스티벤 조합은 최강이었으며 상대에겐 뚫기 힘든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2012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도 맹활약하며 우승에 큰 공헌을 하였다.
하지만 시즌이 끝난 뒤 울산은 에스티벤과 재계약을 하지 않았고
계약만료와 함께 J리그 빗셀고베로 이적하며 K리그와 작별을 고한다.
(빗셀고베가 제시한 연봉 10억을 감당하지 못했다고는 하나
김호곤 감독이 이미 에스티벤을 이적시키려는 시도를 했었던 것으로 보아
예정된 결별 수순이 아니였을까 생각된다.)
그후 2014시즌 제주로 다시 돌아오면서 K리그에 컴백했지만
반년만에 J리그 도쿠시마로 떠난다.
★22.하피냐 [브라질, 울산]
하피냐는 2007년 J리그 아비스파 후쿠오카로 임대이적하면서 아시아무대에 진출하였지만
초라한 성적표만 남겨놓고 브라질로 돌아간다.
3년뒤 J2 더스파 구싸스라는 팀으로 임대이적하며 두번째 도전을 하게되는데
폭발적인 득점력을 과시하며 감바오사카의 러브콜을 받는다
2011시즌 중반에 합류한 하피냐는 17경기 11골을 퍼부으며 감바 공격진을 이끌었다.
이듬해 하피냐는 울산으로 선수 경력상 7번째 임대를 떠나게 되는데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준결승,결승전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천금같은 골을 기록하며
우승에 큰 공헌을 하였다.
이 활약을 바탕으로 임대 연장을 하였고 2014시즌 전 3년 계약하며
완전 이적한다.
그렇게 울산의 공격을 이끌어갈 선수로 주목 받았지만
조민국 감독 부임 후 전반기에만 1골 1도움만을 기록하며
극심한 부진에 빠진다.
결국 울산은 하피냐를 이적시키기로 하고
월드컵이 한창 진행중이던 6월말에 요코하마 F.마리노스로 떠나게 된다.
★23.이에나가 아키히로 [일본, 울산]
일본 청소년,올림픽,국가대표 출신으로 기술좋은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수비형 미드필더 사이드쪽 포지션도 소화 가능하며
2011시즌 감바 오사카에서 라리가 마요르카로 이적하며 기대를 모았던 선수이다.
마요르카에서 총 25경기 출전 2골을 기록하였는데
말수가 적어 팀원들과 커뮤니케이션이 원할하지 않았다.
실제로 카파로스 감독이 지적하기도...
그리고 가장 큰 문제점은 언어장벽이었다.
이런 저런 상황이 겹치면서 이에나가는 이적 루머에 시달렸는데
당초 분데스리가로 갈것이라는 외신과는 달리
2012년 2월 울산으로 임대를 떠난다.
이에나가는 인터뷰에서 "J리그 복귀보다는 K리그를 경험해보고자 울산을 선택했다"
"그 때의 울산은 정말 놀라웠어요. 설마하던 6실점으로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을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이천수 선수의 플레이도 레벨이 높아서 굉장히 경이적인 팀이란 인상이었어요"
당시 감바오사카의 일원이었던 그는 A3 챔피언스컵에서 울산과 맞붙어 0-6 대패를 맛보었다.
또한 감바 오사카에서 뛴 바 있는 이근호가 소속되어 있었다는것도 울산 선택의 이유중 하나였다고 한다.
하지만 제2의 이천수라는 기대를 온몸에 받으며 시즌을 시작했지만 12경기 1골이라는
부진한 성적표를 들고 친청팀인 감바오사카로 또다시 임대를 떠나게 되는데
팀의 2부리그 강등을 막지 못하며 현재는 오미야로 이적한 상태이다.
★24.마스다 지카시 [일본, 울산]
마스다는 2010년 몬테비오 야마카타 임대시절을 제외하고
2004년부터 2012년까지 가시마 앤틀러스에서 뛰었는데
매번 주전경쟁에서 밀리며 로테이션 선수로 활용되었다.
하지만 임대시절의 활약으로 국가대표에 선발되기도 하였다.(2011.07.28)
가시마와의 계약이 끝나고 K리그 진출을 선언한 마스다는
울산을 선택했고 2013시즌 중원에서 대단한 활약을 하며
4골 3도움을 기록 울산팬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조민국 감독 부임 이후 전술과 맞지않아
입지가 좁아졌고 결국 시즌 중 오미야로 9개월 임대를 떠나게 된다.
현재는 임대복귀 했고 신임 윤정환 감독의 키플레이어로 기대를 받으며
2015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첫댓글 선수가 돈 많이 주는 팀으로 가는걸 무턱대고 시장을 문란하게 하는 행동으로 치부할 수는 없겠죠.
네 정상적인 계약으로 가는걸 누가 말릴수 있겠습니까. 프로는 곧 돈인데 말이죠.
하지만 카보레 파동처럼 계약 위반하면서까지 데려가는게 시장을 문란하게 만드는게 아니고 뭘까요..
이에나가 선수는 감바에서 강등을 경험하고 오미야 갔더니 또 강등당함... ㅠ
일본의 주앙 파울로
정밀 잘 봤습니다 추억이 새록새록하네요 ㅎㅎ
가비,올리,마토,산드로 좋아하던 선수들인데
추억의 용병들 반갑네요ㅎ 특히 마지막 울산용병들 보고싶고 그립고ㅎㅎ
울산 에디, 전남 마르퀴뇨스, 대구 끼리노, 대구 안델손, 대구 바울, 인천 난도, 포항 슈벵크, 서울 블라드니르 실바, 서울 푸마갈리, 전북 로브렉, 수원 헤이날도, 수원 보스나, 수원 정대세, 안영학, 울산 량규사, 성남 김명휘, 박강조, 아데마, 수원 핑팡, 에두, 제주 히칼딩요, 자일 등등도 J리그와 관련있죠 ㅎㅎ
대박........ 이걸 다 정리하시다니
진짜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자일, 페드로도 일본으로 간 용병 중 수준급 용병
네 자일 제프 페드로 고베로 갔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