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는 바다가 있는 낭만적인 관광지를 위주로 초콜릿 홍보관을 늘려 나가고 있다. 마라도의 초콜릿 홍보관 ‘로빈손 아저씨의 집’, 우도의 초콜릿 홍보관 ‘빨간머리 앤의 집’도 부부가 만든 것. 초콜릿 박물관 홈페이지(www.chocolatemuseum.org)는 한예석 관장의 일기장 같은 공간이다. 손자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정겨운 문체로 돼 있다. 거기엔 부부가 추구하는 삶의 지향점이 이렇게 적혀 있다.
자연을 더불어 살면서 찾아오는 손님과
낮에는 낚시질하고 등산하며 같이 놀아 주고
저녁에는 우리가 빚은 포도주 들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고
다음날 객이 떠날 때 그의 손에 손자나 아이들 주라며
우리가 손수 만든 초콜릿을 쥐어 주면서 사는 것.
그래서 그의 아이들이나 손자들에게 늘 인기 있는 할머니가 되는 것.
한예석 관장을 압구정동에 있는 초콜릿 숍 ‘초콜릿 캐슬’에서 만났다. 한 관장이 “일부러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온화한 미소로 맞았다. 지난 12월 초 오픈한 이곳은 카카오 함량을 선택할 수 있는 핫초코와 수제 초콜릿을 판매하는 곳이다. 맛보라며 내온 핫초코는 우유와 고함량 카카오가 어우러져 진하고도 부드러웠고, 견과류가 박힌 생 초콜릿은 혀에 살살 녹았다.
제주도 초콜릿 박물관 마당에 있는 트롤리 버스 |
한예석, 주진윤 부부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 왔다. 한예석 관장은 이화여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시티은행 이사를 거쳐 e뱅킹 총괄부장으로 있다가 2006년 정년퇴직했고, 주진윤 씨는 서울대 졸업 후 대우실업을 거쳐 아가방을 창업하고 현재는 e마켓 플레이스 ‘엔투비’ CEO로 재직 중이다. 아들과 며느리는 둘 다 뉴욕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딸은 캐나다에서 의대에 다니고 있다. 겉보기엔 남부러울 것 없는 톱클래스의 삶. 한 관장은 치열한 조직 문화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 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마라도‘로빈손 아저씨의 집’ |
“1979년이었어요. 남편이 아가방을 창업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데,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어요. 남편한테 이렇게 말했죠. ‘지금은 당신이 없으면 못살 것 같은 사람들이 많지만 언젠가 그들이 떠나갈 때도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요.”
경복궁점‘초콜릿 캐슬’ |
부부는 하는 일은 달랐지만 관심의 촉수는 늘 아이들을 향해 있었다. 한 관장의 전공인 교육학도, 남편 주씨가 창업한 아가방도 모두 아이들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됐다. 뭐든 아이들과 관련된 것이라면 눈이 번쩍 뜨였다. 두 사람은 해외 출장 스케줄을 맞춰 함께 다니며 장난감, 인형, 팬시용품 등을 모았다. 한 관장은 “아직도 박물관 2층에는 풀지도 않은 장난감 꾸러미가 한 가득이에요” 한다. 초콜릿 박물관을 만들기로 결심한 건 미국에서 한 노부부의 집을 우연히 방문한 뒤였다.
“남편과 함께 미국에 갔다가 오클라호마에서 여든이 넘은 노부부의 집에 간 적이 있어요. 소박한 집이었는데 어릴 때부터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진열해 놓고 박물관이라는 푯말을 붙여 놓았더라고요. 행복해 보였어요. ‘아, 이런 식의 박물관도 감동을 줄 수 있구나’ 깨달았죠.”
그때부터 부부는 틈나는 대로 박물관 기행을 다녔고, 나라마다 자국의 특색 있는 초콜릿이 있다는 걸 알았다. ‘우리나라에도 우리 땅에서 나는 재료를 이용한 우리만의 초콜릿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한 관장은 ‘초콜릿의 한국화’에 제2의 인생을 걸겠다고 결심했다.
우도‘빨강머리 앤의 집’ |
세계 곳곳 다니며 쇼콜라티에 과정 이수
한예석 관장은 1976년 시티은행에 입사, 37년 재직기간 동안 치열하게 살아왔다. 컴퓨터 사이언스라는 과목조차 없던 시절, e뱅킹업무 체계화를 위해 몸을 바쳤다. 아이들을 떼어 놓고 외국을 전전하며 선진 시스템을 배웠고, 그 시스템을 한국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숱한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많이 힘드셨겠어요” 하자 인자하게 웃으며 “정말 치열하게 살았어요” 한다.
그 와중에 초콜릿 박물관을 준비하는 건 또 하나의 도전이었다. “시티뱅크에서 그 힘든 것도 했는데 이런 걸 못 하랴 싶었는데, 쉽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초콜릿 박물관이 있던 자리는 폐허가 된 갈옷 공장이었다. 오랫동안 방치해 유령의 집 같은 곳. 레노베이션하면 되겠다고 덤벼들었는데, 지반이 돌로 돼 있어서 예상치 못한 대공사가 됐다고 한다. 개조 비용만 10억 원이 넘게 들었다. 마라도에 초콜릿 홍보관을 지을 땐 배로 물을 실어 와 시멘트 반죽을 해야 했다. 초콜릿 박물관 마당에 있는 트롤리 버스. 지금은 명물이 되어 전국 여기저기서 이벤트를 위해 대여해 달라는 요청이 끊이질 않고, 패션 화보 배경으로 인기 높지만 이 버스도 사연이 많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건데, 우리나라 도로보다 폭이 넓은데다 도로교통법에 어긋나는 부분이 많았어요. 우리나라 도로교통법령집을 영어로 번역해서 그에 맞게 다 뜯어고쳐 달라고 했죠. 요코하마와 인천을 거쳐 제주도로 왔어요.”
2억 원에 사왔다는 이 트롤리는 비행기에 쓰는 튼튼한 엔진을 장착한, 실제로 운행하는 버스다. ‘무엇 하나 설렁설렁 할 수 없었다’는 한 관장은 초콜릿을 만들 때에도 ‘건강과 맛’ 모두를 잃지 않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틈틈이 캐나다 퀘벡, 싱가포르, 파리에 가서 쇼콜라티에 과정을 이수하고, 유럽 각지로 초콜릿 투어도 다녔다. 그가 방문한 초콜릿 공장만 1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초콜릿 캐슬’은 방부제와 색소, 설탕을 사용하지 않고 초콜릿을 만든다. 제주도 특산물인 백년초, 감귤은 물론, 인삼, 복분자, 매실 등 한국적인 재료를 이용한 초콜릿을 개발했다.
제주도에 있는‘초콜릿 박물관’. 중앙 부분은 벼슬아치가 쓰던 관모를 형상화한 것이다. |
올해 60세인 한예석 관장. 그는 또 하나의 치열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 있다. 한국 초콜릿의 세계화를 위해 뉴욕, 나이아가라, 밴쿠버 등지에 초콜릿 캐슬 숍을 오픈하고, 카카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쇼콜라티에 최고 등급인 마스터 쇼콜라티에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사진 : 이창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