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떡'은 과연 '빈대'와 같은 떡인가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라는 유행가 가사가 말해 주듯, '빈대떡'은 못 먹고 헐벗던 시절 서민들의 출출한 배를 채워주던 요긴한 간식거리였다. '빈대떡'은 녹두를 맷돌에 갈아 번철燔鐵, 무쇠 그릇의 일종에 지진 떡이다. 이 떡을 지역에 따라서는 '녹두떡, 문주, 부침개, 지짐' 등으로 달리 부르기도 한다.
'빈대떡'과 관련된 단어로 가장 오래된 것은 17세기 문헌에 보이는 '빙저'이다. 이는 '餠저;'라는 중국어이다. 이 '빙저'라는 단어가 그 실물과 함께 중국어에서 국어로 직접 들어온 것이다. 중국의 '빙저'는 녹두를 맷돌에 갈아 그 분말을 지져서 먹는 떡이니 지금의 '빈대떡'과 일치한다.
'빙저'라는 단어는 17세기에 '빙쟈'로도 나온다. '빙쟈'는 '빙저'의 제2음절 모음이 음성모음에서 양성모음으로 바뀐 어형이다. 이 '빙쟈'는 좀더 내려와 19세기 말 문헌에는 '빈쟈'으로 변형되어 나온다. 제1음절의 '빙'이 '빈'으로 바뀌어 있을뿐더러 우리말 '떡'이 첨가되어 3음절 단어가 되어 있다.
이 '빈쟈떡'이 20세기 초 문헌에는 '빈자떡' 등으로 표기되어 나온다. '빈자떡'의 '빈자'는 물론 '빈쟈'로부터 변한 것이다. '빙쟈'가 '빈쟈'를 거쳐 '빈자'로 변하자, 그 어원을 잃고 한자 '빈자貧者'로 간주하여 '빈자떡'을 급기야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떡'으로 해석하기에 이른다. 물론 이는 전형적인 한자부회漢字附會이다.
이렇게 보면 17세기의 '빙저'는 '빙쟈'를 거쳐 '빈쟈'로 변했다가 다시 '빈자떡'으로 변한 것이 된다. 그런데 '빙저'의 변화는 '빈자떡'에 머문 것이 아니고 '빈대떡'에까지 이르고 있어 눈길을 끈다. '빈대떡'이라는 단어는 '빈자떡'과 비교하여 제2음절에서만 차이를 보이는데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단어로 추정된다. 이 말은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의 사전에도 잘 나오지 않는다.
<조선어사전>1938에 '빈자떡'과 함께 '빈대떡’이 비로소 나온다. 이 사전에서는 '빈대떡'을 '빈자떡'보다 더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말하자면 '빈대떡'을 중심 표제어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으로 보아 1930년대에는 '빈대떡'이 '빈자떡'보다 더 빈번하게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빈자떡'과 '빈대떡'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빈대떡'이 '빈자떡'을 이어서 나왔고 그것과 어형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빈대떡'을 단순히 '빈자떡'에서 변한 단어로 추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제2음절의 '자'가 '대'로 변한 이유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두 단어를 무조건 연계시키는 것은 곤란할 듯하다.
'빈자떡'이 갑자기 '빈대떡'으로 바뀐 것은, 이 떡이 '빈대'라는 해충과 모양이 비슷해서 그 '빈대'를 연상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빈자떡'의 어원을 잃어버린 뒤 그 어원을 회복시키려던 차에 이 떡이 빈대처럼 납작하다는 점에 착안하여 그저 '빈대떡'이라 불렀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납작한 밤'을 '빈대밤'이라 하고, '납작한 코'를 '빈대코'라 하듯이, '납작한 떡'을 '빈대떡'이라 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이로 보면 '빈대떡'에 대해 '빈대처럼 생긴 납작한 떡'이라는 어원설이 나오게 된 것도 아주 터무니없지는 않다. 그러나 '빈대떡'의 '빈대'를 한자 '빈대賓待'로 이해한 뒤 이를 '손님을 맞을 때 내놓는 떡'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무리이다.
또 어떤 국어학자는 존재하지도 않는 '비대떡(콩떡)'이라는 단어를 상정하여 이것에 'ㄴ'이 첨가된 단어가 '빈대떡'이라고 설명하기도 하는데, 이와 같은 견해는 그 어느 설보다도 근거가 박약하다
'빈대떡'이 '빈자떡'을 이은, 그것의 후속 단어라는 사실은 인정된다. 그러나 '빈자떡'의 '빈자'가 중국어 '빙저'에서 변한 것이어서 '빈자떡'을 이은 '빈대떡'의 '빈대'도 '빙저'에 직접 연결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빈대떡'의 '빈대'는 납작한 외양을 하고 있는 해충 '빈대'에 이끌려 새롭게 연상된 단어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나 한다.
그러나 이러한 연상도 '빈자떡'이라는 단어가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빈자떡'의 '빈자'가 중국어 '빙저'에서 온 말이기에 '빈대떡'을 중국어 '빙저'와 아주 무관한 단어로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글_ 조항범
출처_<정말 궁금한 우리말 100가지>, 예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