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가 잘 살지 못하는 것은 수도자가 덜 기도해서라고?'
신부님과 수녀님이 만나서 '더 잘 살자'고 나누는 말씀을 들으니
그럼 수도자나 성직자가 못 산다면 신자인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지 않아서겠다..
그러니 널널한 나는 보속삼아..
또 기도중에 사랑으로 기억하신 분들에 대한 감사함으로
나이 불문한 오랜 친구이며 스승인 어른 수녀님과 동기 수녀님들을 모시고 강원도에 피정을 갔다.
온 세상에 가득한 하느님의 은총을 충만히 느끼는 계절.. 이 가을 끝에
또한 늘 나만 챙기고 산 것에 대한 보속 삼아 그분들을 모신 것은
다시 신앙을 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다.
속초에서 만나 그분들을 모시고 정선에 가는 길목엔 청심대라는 아~주 쪼꼬만 정자가 하나 있다.
언젠가 남편과 올라가 본 그곳이 장거리 운전을 하다가 잠시 몸을 풀고 기지개를 펴 보기에 적절할 것 같아
수녀님들을 안내하여 모시고 올랐다.
아래로 보이는 전망이 참 예뻐서 재미있어 하셨다.
나도 덩달아 잘난 척하며 즐거웠다. (근데 이게 잘난 거 하고 뭔 상관?)
먼저 와 보았으니 안내해 드렸을 뿐인데...
그날 밤은 서울교구 신부님 친정댁에서 하룻밤을 신세지기로 했다.
젊은 신부님은 십년만에 얻은 안식년을 보내시는 중이셨는데
우리 팀들을 위해 특별히 새벽미사를 봉헌해 주셨다.
삼척의 대금굴을 예약했는데 아침 아홉시였고
그곳에서 대금굴까지는 두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다.
그러니 신부님께서서둘러 미사를 해 주시기로 한 거다.
감동적인 건 노란 들국화 몇 가지를 꺾어 올린 제대 꽃꽂이에
대나무가지로 만든 조촐한 십자고상, 그러니 식탁이 멋진 성전이 되었다는 사실....
우린 모두 식탁에 앉아 새벽미사를 봉헌했는데 마음에 포만감이 가득했다.
수녀님들은 그 지역 신부님들 연수로 며칠째 영성체를 못해 배가 고팠다고 하소연했던 차였기에...
참! 신부님들이 계셔서 좋죠?
안계셨으면 우린 또 배 고플뻔한 거잖아요?
주님을 언제든 영하려면 그분들이 계셔야하니 더 존경하고 사랑해 드려야겠다...
대금굴 가는 길은 참 멋지다.
이런 길을 약 십분 정도 걸어 들어가야 대금굴이 짜잔~ 하고 나타난다.
누구에게라도 권하고 싶다.
아래 흐르는 냇물도.. 붉고 노랗게 물든 주변 경관도 ...멋지다.
대금굴을 나와 바로 아래쪽 왼쪽에 있는 식당에서
강원도 감자전과 더덕구이를 반찬으로, 된장국 곁들여 아침을 먹고
어젯밤 추운 지하방에서 잔 우리는 제대로 씻지도 못해 삼척온천으로 고고씽~
사십분..달려 ~달려 삼척온천..
시설 좋고~
(대금굴 가는 길.)
그리고는 강릉의 안목항에서 열리는 커피축제를 참여했다.
집에서 출발할 때 가브리엘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 강원도 가는데 같이 갈래?"
했더니 커피축제 정보를 주더라구요...
그러더니 아예 우리 일정에 잠시 끼어들어 인사를 하고 간 거다.
참 효자아들... 난 또 자랑일세~
안목항에서 경포대 그리고 사천항까지 바닷가 길은 죽~ 이어져 있다.
그리고는 강릉에 온 김에 임당동 성당에 들러
전에 우리 본당에 계시던 파시엔시아수녀님을 찾아 뵙고 인사도 드리고...
사천항에 들러 진짜 맛있는 물회를 한 그릇 뚝딱!
맛잇는 음식을 보니 집에 있을 남편생각이 스쳐간다.
그는 인스턴트로 때우고 있을 지 모르는데...
담에 오면 가이드해서 사 줘야지...
그 성당의 성모자상은 우윳빛 살결에, 그윽한 눈매하며 따뜻함이 뚝뚝 묻어 난다.
조신한 성모동산은 기도하기도 딱 좋은데 그 마음담아 곁에 서서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을 보니 저는 가볍게 활짝, 그분은 깊은 미소.. 그게 그대로 영성일듯...
임당동 수녀님은 우릴 경포호로 안내해 주셨다.
외로운 배가 묶인 경포호 곁에는 동전을 넣는 기계 하나가 있다.
여행은 객기를 허락한다.
100원짜리 동전 하나를 넣자 가곡 '사공의 노래'가 경포호 가득 울려 퍼졌다.
시 낭송 곁들여서...
석양빛 기운 호숫가는 너무나 로맨틱했다.
갈대밭에서 기념사진도 찍고, 바람에 잔물결 일렁이는 해 지는 호숫가..
마음은 금방 문학소녀가 되었다.
수녀님 살짝 안고 친한 척 한 장~
뭐 실제로 제게 꽃을 가르친 수녀님은 제 스승이고
제가 신앙을 맛들일 기회를 제공한 은인 이시니 친하지, 안그런가?
늘 고백하거니와 신자가 아닌 나라니.. 끔찍한 상상이다.
하느님의 자녀라는 특권을 가진 게 요즘처럼 자랑스러웠던 적은 없다.
그분의 사랑을 늘 체험하는 날들...
요번 피정은 그분의 사랑을 수녀님께 조금이라도 되갚아 드릴 기회였고..
고요한 새벽미사를 체험한 수녀님들과의 2박 3일 피정같은 휴가기간 동안
그분들의 주님 사랑을 곁눈질로 배웠다.
돌아오는 길은 설악산 구룡령길을 선택했다.
오색온천과 현리를 지나는 길을 택하고 싶었는데 실수로 접어든 그길..
단풍놀이 삼아 오면서 구룡령 정상 근처에 있는 '용규네 집'에 들렀다.
용규네 집은 가건물 꼬질한 간이식당인데. 감자전 맛이 일품이다.
큼직한 모양도 그렇지만 그 맛이라니... 길 잘못든 것 정도는 상쇄하고도 남는다.
단풍 물든 국도를 달리는 행복한 드라이브를 하다가 아침에 전화를 하지 않은 남편이 생각났다.
"여보! 당신 오늘 아침에 왜 전화 안했어요?"
했더니
"어차피 당신 오늘 올 건데 괜히 불안하게 서둘러 오라고 채근하는 거 같을까봐 안했어.."
"고마워, 여보! 저녁 뭐 먹을까 걱정하지마요.
저 여주니까 금방 가서 맛있는 저녁 지어 올릴께요. "
돌아와서 새로 지은 식사접대까지 최선을 다해 해 드리고 싶었다, 정성껏...
어쩌면 소임지에서 은퇴를 할 시점이 가까워진 수녀님께서
평생을 수도자로 산 세월에 그 밥상으로 보람을 느끼길 빌면서....
발사믹 소스 얹은 샐러드, 소고기 살짝 굽고, 나물밥에, 과일 요구르트 후식까지...
그게 내가 하는 방식의 수도자를 위한 기도니까...
첫댓글 보기만해도 시원시원 넘~좋아요... 회장님.. 항상 건강하시고요 늘~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