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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마을 멀구슬논에서 지역주민과 활동가, 강정초등학교 학생 등이 함께 벼베기 체험을 하고 있다. |
제주사람들은 계산하기 어려운 산수 문제가 하나 있다. 육지사람은 제주에서 몇 년을 살아야 제주사람이 될까?
최근 제주도를 찾은 낯선 단체가 민속오일장 등지에서 해군기지 반대론자의 실태를 알리겠다며 전단을 뿌리고 서명을 받은 뒤 돌아간 일이 있었다.
강정마을회가 해군기지 반대를 선언하며 국민들의 지지를 바란 일을 마치 외부 사람들에 의해 강정마을회가 조종당한 것처럼 왜곡한 것이다.
강정에는 외지에서 온 평화 활동가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들 중 대다수는 강정마을로 주소를 옮겼다. 그러나 여전히 외지인으로 받아들여진다. 4.3 등으로 인해 제주도민들이 받아온 상처를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 폐쇄성도 이해되는 면이 있다.
폐쇄적인 제주 괸당문화로 인해 상처받고, 이간질로 인해서 상처받고, 그 이간질에 넘어가는 제주도민들에 의해서 한번 더 상처받는 강정 평화 이주민들을 만나보았다.
강정에 이주한 지 5년이 된 박용성 씨는 요새 강정마을에 위치한 멀구슬 논에 황금빛으로 물든 쌀을 추수하느라 바쁘다.
쌀? 그렇다. 물 좋고 쌀이 많이 나서 일강정이라 불리던 강정마을에 올해 약 30년 만에 모내기를 하고 제주도민들과 힘을 모아 논농사를 지었다. 강정의 본모습을 복원해보고 싶었단다.
도민과 이주민 수십 명이 모여 제주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모내기를 할 때는 거의 축제 분위기였다고. 초등학교 아이들도 쌀 추수 체험학습을 한다. 벼를 베고 있는 그에게 외지인이라는 딱지를 붙일 때 어떤 기분인지 물었다.
그는 “땅 사고 사업하러 제주를 찾는 외지인들보다는 제주의 자연을 지키고 싶어서 제주에 오는 하는 외지인들이 많아지는 게 낫지 않을까요?”라고 되묻는다. “4.3 당시처럼 강정주민들을 폭력적으로 고착하고 연행하는 이들도 육지에서 온 육지것이 아닌가요? ”
그는 내년 초 성공회 사제가 되는 과정을 밟기 위해 제주를 떠나고자 한다. 평화 운동은 한 사람을 종교 사제의 길로 이끌기도 한다. 평화 운동이 절제와 반성의 기회가 된 셈이다.
멧부리 박이라고 불리는 남자가 있다. 바로, 박인천 씨. 구럼비에 닿은 멧부리에 살면서 망원경과 카메라로 공사현장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서 멧부리 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는 강원도 출신 노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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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활동가 멧부리박 |
그는 몇 해 전 일을 하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허리를 심하게 다쳤다. 그러나 산재보험 처리가 안 되었다. 두 번의 힘겨운 겨울을 보냈다. 그때 노동자들이 처한 여건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히 강원도까지 강정마을을 알리러 온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후 강정을 방문하고 강정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는 멧부리에서 해군기지 공사장을 바라보며 불법, 편법 공사를 감시하고 신고한다.
“케이슨 파쇄를 할 때는 자정 지나서도 서른 번이 넘는 커다란 수중 폭발음이 들리곤 했어요. 신고를 해서 경찰이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앞에 도착하잖아요? 그러면 공사장 경비원들에게 무전 연락을 받았는지 공사를 멈춰요. 그리고 경찰이 돌아가면 다시 공사를 시작하더라고요.”
그에게 왜 강정을 떠나지 않는지 물었다.
“내가 떠나면 불법 공사를 감시할 사람이 없어요. 이렇게 큰 국책 사업에 상주하며 감시하는 공무원이 없다는 게 신기해요. 나라가 제 역할을 대신해주면 좋을 텐데 말이죠.”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고권일 강정마을 부회장은 외지인이 강정마을을 망치고 있다는 일부 시각에 대해 “그렇다면 농민 문제는 농민만의 문제인가?”하고 되물으며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마음이 얼마나 각박해졌는지 생각해 봐야할 것으로 보인다”고 개탄했다.
그는 “사람들이 도움을 주며 사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라며 “강정마을에서도 농민회나 예래동 등 자본과 권력으로 인해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과 함께 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군사기지는 제주도 고유의 가치를 상실하는 문제이고 도민들의 무관심 속에서 자라나는 독버섯”이라며 도민들의 관심과 상생을 위한 노력을 당부했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육지 사람이 제주에 와서 몇 년을 살아야 제주인이 될까? 단순히 시간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장 입구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새겨져 있다. 그 문장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조상 대대로 제주에 살았다고 하더라도 제주의 자연을 그의 돈벌이로만 여기는 사람은 육지 것이며, 비록 어제부터 제주에서 살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제주를 그의 생명처럼 아낀다면 그는 제주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