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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스크랩 진주시계 8구간 (창촌교~도내고개)
조은산 추천 0 조회 224 13.01.29 07:3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진주시계 8구간

 

 

2013. 1. 10 (목)

산길 : 창촌교~도내고개

사람 : 객꾼 학봉 조은산

거리 : 23.6km (누계 137.5/167) 82.3%

 

 

 

구간거리

창촌교~6.7~동월마을(수곡면원계리)~8.2~자매마을(수곡면자매리)~6.1~검무봉~1.0~묵곡고개~1.6~도내고개(3국도) / 23.6km

Cartographic Length = 24.4km Total Time: 09:00

 

 

08(창촌~도내고개).gpx

 

 

 

 

 

 

 

07:20 창촌교

08:32 문암교

08:44 산청군계

09:00 동월마을

09:22 고사리농원 (시루봉 아래 )

09:54 호리고개

10:29 ×334

10:54 진주농원

11:42 △344.1m

11:53 팔암산

12:40~13:45 청솔정 점심

13:55 대관교

14:10 남강 수면위로

15:05 ×183

15:36 대진고속도로 산청3터널

15:47 검무봉

15:58 성양원 공원묘지

16:20 3번국도(도내고개)

 

 

 

 

 

창촌교 (65m)

진주시 수곡면 창촌리. 다리 건너기 직전에 [진주농민항쟁기념탑]이 있는 소공원에 주차장도 있다.

1862년 농민항쟁이 발발한 이곳이 수곡장이 서던 곳이란다. 둘러보면 예전에 장이 열렸을 만한 터로 보인다. 하동 사람들도 건너왔을테고 장사치들의 흥정이 시끌벅적 했겠다만, 지금은 구멍가게 하나 보이지 않는다.

 

 

 

 

 

 

 

 

 

 

진주농민항쟁 (1862년 철종13)

한국 근대사에 진주민란(晉州民亂)으로 기록된 진주농민항쟁의 시발점이 바로 여기 수곡장이다.

누적된 삼정(三政)의 문란과 병마절도사 백낙신의 가혹한 탄압과 착취에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농민들이 유계춘(柳繼春)·이계열(李啓烈) 등을 중심으로 하여 봉기했다. 이들은 초군(樵軍) · 목동을 규합, 격문 · 선전문을 나누어 주고 언가(諺歌, 한글노래)를 지어 부르며 사기를 높인 다음, 2월 18일 먼저 근처의 수곡장(水谷場)에서 모임을 갖고 행동을 개시, 수곡장과 덕산장(德山場)을 휩쓸고 진주성으로 쳐들어갔다.

 

몽둥이로 무장한 농민봉기군은 스스로 초군(樵軍)이라 부르면서 머리에 흰 수건을 동여매고 노래를 부르며 진군했다. 주변 농민들이 합세하여 그 수가 수만 명에 이르렀으며, 이에 당황한 백낙신은 환곡과 도결(都結)의 폐단을 즉시 시정할 것을 약속했으나, 농민군은 그를 포위, 죄상을 따지는 한편, 악질 아전 몇 사람을 불태워 죽이고 농민들의 원한을 샀던 토호들의 집을 부수거나 불질렀다. 6일간이나 계속된 진주변란은 23개 면을 휩쓸었으며, 3명의 아전과 그 아들 한 사람이 살해 되고, 120여 호의 토호 집이 파괴되거나 약탈당했다.

 

조정에서는 관찰사를 비롯한 현지관리들을 문책 · 처벌 하는 동시에, 부호군(副護軍) 박규수(朴珪壽)를 안핵사로 보내 사태를 수습케 했으나, 한번 폭발한 농민의 분노는 진주에서 그치지 않고 이내 삼남지방으로 펴져, 그 후 전국 각지에서 발생하는 민란의 도화선이 되었다.

 

 

 

 

 

 

 

오늘도 덕천강변 뚝방길로 간다. 비짝 마른 당산나무 옆을 지나면서

문득, 옛사람들이 신고 다니던 짚신 이야기가 나와 우리처럼 장거리 뛰는 사람들은 짚신 한 켤레로 하루를 갈수 있을까. 한양까지 가려면 짚신 몇 켤레가 필요할까. 신발 문수도 다양했을까. 별의별 의문에 다양한 추측들을 해 본다.

 

 

이참에 우리도 “짚신신고 옛길을 가는” 그런거 한번 해볼까. 최근 객꾼이 ‘딸내미랑 백두대간’으로 매스컴을 많이 탔는데, 그러면 우리도 필경 방송을 탈수 있을꺼라. 짚신신고, 두루마기에 갓쓰고, 죽장 짚고, 괴나리봇짐 메고 영남대로 같은 옛길을 가면 오만 방송 다 올끼라. 그래, 동기가 뭐냐 물으면,  “테레비 한번 나올라꼬요...”

 

 

 

 

저기 보이는 상봉 천왕샘에서 내려온 물이 덕천강이 되어 흐른다.

 

 

 

상봉 ~ 중봉

 

 

 

일출

 

 

 

큰보

 

 

창촌보

덕천강을 가로질러 설치된 보(洑) 위로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지난번에 우리가 건너봐서 아는데~...” 저 정도면 사뿐히 건너가겠다. 여기는 철책 울타리도 없다. 강물이 흐르는 데는 얼지 않았고 가장자리 흐름이 멈춘데는 얼음이 보인다.

 

 

잠시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가니 무슨 큰 공사를 하는지 이른 아침부터 콘크리트벽 거푸집을 만들고 있다. 다시 제방으로 올랐다. 길게 이어지는 제방 멀리로 햇살을 받은 지리산 상봉이 머리를 내밀고 있다. 둑방에는 아직 햇살이 미치지 않아 쌀쌀한 바람에 콧물이 줄줄 흐른다.

 

 

커다란 당산목이 지키는 조계마을을 지난다. 하동 병천마을로 건너가는 덕천강에는 잠수교가 설치되어 있다. 좁은 잠수교 위로 코란도 한 대 지나가다가 멈칫거린다. 강물을 막은 보가 많다. 창촌보, 큰보, 냉정보...  객꾼이 전국에 이런 보가 4천개가 넘게 있다네. 언제 다 세봤노.

 

아스팔트 도로를 5분가량 밟고 다시 제방으로 올랐다. 길가에 관을 쓴 비석이 있어 뭔가 싶어 가봤더니 戊申生同庚記念碑다. 나이가 같은 동갑내기들이 그 대단한걸(?)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문암교

 

 

문암교

냉정보를 지나고 문암교가 나온다. 진주 원계리와 하동 문암리를 연결하는 다리다. 강에 오리가 많이 보인다. 한 무리 강물에 앉았다가 사람을 보고 일시에 날아오른다. 현재 위치가 진주시의 최서단이 된다. 127° 53' 21.63E''

 

 

 

 

덕천강 오리

 

 

 

 

산청군계

 

 

산청군계

북으로 제방을 따라가던 진주시계는 우측(동쪽) 동월마을로 틀어 내려가고 이제 위쪽은 산청군 단성면이 된다. 강쪽으로는 작은 배수시설이 있고 우측으로는 전봇대가 있는 지점이다. 계속 이어지는 제방이라 시경계 표지판이라도 하나 있으면 좋겠다. 전봇대 지지선인 철사줄에 [진주시계] 리본을 하나 달았다.

 

 

 

 

 

동월마을쪽으로 가는 길 양쪽에 비닐하우스다. 시멘트 길을 가운데 두고 왼쪽은 산청이요 오른쪽은 진주라. 사람이라도 있으면 물어 보겠다만, 길 양쪽에 하우스를 가진 사람은 세금을 산청, 진주로 나눠서 내는가...? 하니, 학봉이가 비닐하우스에 세금 낼일 없으니 걱정하지 마시란다.

 

 

양지쪽 길바닥에 앉아 빵을 나눠 먹었다. 스피커를 단 잡화상트럭이 사람이 살지도 않는 비닐하우스 단지로 들어오면서 확성기로 내뱉는 소리가 얼마나 요란하고 시끄러운지 물건을 팔겠다는건지 뭔지, 처음에는 욕을 하며 다니는 줄로 알았다.

 

 

 

 

 

 

동월마을(80m)

진주시 수곡면 원계리. 덕천강변을 접한 마을로는 진주의 최북단 마을이다. 창촌교에서 여기까지 둑방길 7km를 1시간 40분 걸렸다. 4.2km/h

 

 

동월마을에서 진주시계는 산으로 올라간다.

도로변 나무에 [이순신백의종군길] 리본이 달려있다. 그 옆에 우리의 [진주市界]도 하나 걸었다.

 

 

백의종군로 정비사업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조정의 모함을 받고 관직에서 물러나 백의종군했다가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수되기 직전의 행적을 역사관광 탐방로로 조성하는 사업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의 직을 박탈당하고 1597.3.4. 의금부에 투옥,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곧 감형되어, 출옥(1597.4.1)한 후 경상도 초계의 권율도원수의 관아로 가기하기 위해 아산, 공주, 삼례, 남원, 구례를 거쳐 5.26. 하동에 도착하여 경상도의 백의종군 행로가 시작된다. 1597.5.26.부터 하동, 진주, 산청, 합천을 지나 6.4. 권율도원수의 진이 있는 초계에 도착하여 있던 중 수군이 대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전황을 살피기 위해 7.18. 초계를 출발하여 합천, 산청, 진주, 하동, 사천을 거쳐 노량에 도착, 전황을 살피고 돌아오는 길에 진주 송경례가에서 유숙 중 삼도수군 통제사 재수임을 받게 된다.

그 중 지리산 자락은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고전면 하동읍성에서 산청군 단성면 남사예담촌을 거치게 되고, 이후 경호강을 건너 20번국도따라 생비량, 대의 삼가를 지나 초계까지 이어진다. (산청군)

 

 

 

 

 

도로에서 동쪽으로 진주시계는 정면 능선으로 가지만, 길이 보이지 않아 왼편으로 올라가는 시멘트길을 따랐다. 음달이라 눈이 녹지않고 그대로 쌓여있는 임도는 능선을 휘돌아 오르면서 시계에 접한다. 멋진 소나무가 있는 합천이공묘 뒷봉에서 우측(남서)으로 꺾어 올라가면 갑갑한 숲길이다.

 

 

 

 

토끼가 다닌 길인지 겨우 분간이 되는 흔적을 따라 지저분한 잡목숲을 헤치며 올라가다가 왼편으로 개간지가 보여 나갔더니 고사리재배지역이다. 뜯어가지 말라는 경고문이 있다. 시루봉 북서쪽 비탈을 다 밀어내고 고사리를 심었나보다.

 

 

고사리밭 임도를 따라 왼편으로 돌면서 시루봉 앞의 335봉은 생략이다. 질러간다고 하지만 눈에 보이는 벌목된 사면만 돌면 되는 것이 아니라, 개간지가 끝나고도 몇 개 지능선을 더 넘어야 시루봉에서 내려온 시경계선을 만난다.

 

 

松峰진양정공

숲속에 널찍한 묘터에 관을 쓴 비석은 松峰진양정공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숲속이라 다소 갑갑하시겠다. 10분간 쉬었다가 여기서 북으로 올라가는 시경계를 보면 능선이 아니라 계곡으로 떨어졌다가 건너편 능선으로 이어지는데, 길도 없는 계곡으로 내려설 수도, 그럴 필요도 없어 왼편으로 휘어져 내려가는 능선길을 따라간다. 필경 시경계선을 잘못 그은 것이다.

 

 

 

고사리농원

 

 

 

시루봉

 

 

 

호리고개

 

호리고개 (195m)

단성면 虎里로 넘어가니 호리고개라 하자. 시멘포장인지 어쩐지도 모르게 눈이 두텁게 깔려있고 두 줄의 차바퀴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다. 건너편 비탈에 있는 처사영양천공묘 뒤로 올라간다. 穎陽千氏의 영양은 경북 영양이 아니라 중국의 지명이란다.

 

 

능선 끝봉에는 푸른색과 노랑색 물탱크 두 개가 사이좋게 놓여있고 내려가면 아까보다 더 넓은 고갯길. 역시 눈이 하얗게 덮혔다. 건너편 왼쪽 비탈은 조경용 나무가 심어져 있는 농원이다. 농원의 가장자리인듯한 마루금을 따라 올라가니 우측으로 철조망이 쳐져있다. 어디가 안쪽인지도 모르게 철조망은 녹이 쓸었고 도중에 터진 곳이 있어 넘어갔다.

 

 

 

 

 

 

덕천강

 

 

조망바위

×334봉 바로 아래로 서쪽으로 돌출한 바위가 있어 올라가니 조망이 시원하게 열린다. 덕천강 너머로 하얀 지리산능선이 머리를 내밀고 있는데 촛대봉쯤으로 보인다. 남쪽으로는 우리가 빼먹고 질러 온 시루봉 아래 고사리밭이 다 보인다. 이 때 객꾼의 전화기에 불이난다. 누가 찾는 모양이다.

 

 

 

시루봉(왼쪽 뒷봉), 고사리농장(우측 사면)

 

 

 

 

 

334봉

 

×334

조망바위 위로도 큰 바위가 많다. 옆으로 피해 올라가면 약간의 평평한 터를 갖춘 봉우리이나 조망은 없다. 한 차례 길게 내려간 능선 안부에는 하얀 눈을 덮어 쓴 봉분 세 개가 있는 학생초계정공인데 봉분이 아주 작아 언뜻 애기들 묘인가 할 정도다.

 

 

양달마을 안부

양지쪽에 봉분 여러개가 있는 묘터에서 뒤로 올라가다가 가시덤불이 너무 두터워 뚫지 못하고, 작전상 후퇴하여 우측으로 돌아 올랐다. 동쪽 멀리 아스팔트 고개를 보더니 객꾼이 자매고개란다. 자전거 훈련코스로 여러번 넘어봐서 안단다.

 

 

 

 

 

 

 

진주농원

 

진주농원

상대마을 고갯길 왼쪽은 농원이다. 간판에 녹이 쓸어  ‘晉州農園’ 글자가  겨우 읽어진다. 매실, 감나무 등 규모가 상당한 농원이다. 전정작업이 된 나뭇가지를 보더니 객꾼 왈, "농장 주인이 젊은 사람" 이란다. 어째 아느냐 했더니, 나 많은 사람은 나무를 이렇게 자르지 않는다네.  ×303봉 꼭대기까지 시멘트길로 가다가 우측으로 돌아 내려가고 상대마을에서 올라온 임도에 내려섰다

 

 

 

 

 

 

 

 

포남고개

눈이 덜 녹은 임도를 따라 올라가면 여기도 조경수를 키우는 농원이다. 끝까지 올라가 우측으로 뚫고 넘어가면 포남마을에서 단성면 창촌리로 넘어가는 고개 시멘트 포장이고 1톤트럭 한 대 주차해 있다. 혹시나 산불감시 차량인가 싶었는데 아무도 없다. 비탈로 조금 올라가서 쉰다.

 

포남고개에서 급비탈로 고도 150을 올리면 325쯤 되는 첫봉인데 웅석지맥을 만난다. 단성에서 중산리로 들어가는 20번국도 아미랑고개에서 올라 온 웅석지맥은 344.1봉 전후로 잠깐 함께 간다.

 

 

웅석지맥 : 지리산 천왕봉에서 진양호 귀동마을까지 55km의 산줄기

 

 

△344.1

 

 

△344.1m

커다란 바윗덩이가 하나 둘 나오고 정점에는 눈이 하얗게 깔려있어 삼각점은 찾지 못했다. 남쪽으로 U턴 하다시피 돌아 내려가 웅석지맥을 우측으로 보내고, 산죽 사잇길로 내려가면 왼편으로 훤히 열려 멋진 조망이 되는 곳에 절충장군 묘가 있다.(折衝將軍副護軍通政大夫敦寧府都正) 가야할 남강 너머 집현산까지 북동쪽으로 먼데까지 조망이 된다. 절충장군 묘터에서 내려가니 뜻밖의 이정표가 있다. [정상0.1km]

 

 

 

원지 아파트가 보인다

 

 

  

 

 

 

 

팔암산 315m

지도에도 없는 산이 나타나 의아스럽기도 하지만 동시에 반갑다. 이정표가 있고 산길이 잘 닦여 있으니 반갑지 않을 수가 있나. 넓은 공터에 해맞이 제단이 있다. 수곡면 [제6회 팔암산 해맞이 행사] 플랭카드가 걸려있고, 해맞이제단에서 보면 진양호 일부와 남강 뒤로 월아산까지  보인다.

 

 

뒤(남)로 [수인사, 선암사] 내려가는 길도 있고, 정면(동)으로 내려가는 길도 선명하다. 당연히 시계는 동쪽이다.

 

 

남강, 대관교, 멀리 희미한 월아산

 

 

 

신선대

 

아주 급한 비탈길로 3분 내려가니 [신선대] 입간판이 있고 정면 바위 아래는 천길 벼랑이라 오금이 저릴 지경이다. 우측으로 돌아 내려가면 신선이 바둑을 둘만한 편편한 바위가 있고 조망은 막힘없이 펼쳐진다. 196봉을 넘어가는 시경계를 눈으로 짚어보고, 우리가 갈 식당(청솔원)쪽 길도 확인한다.

 

절벽이나 다름없는 급비탈이지만 좌로 우로 길을 잘 내놔 어려움 없이 10분 내려오면 우측으로 [선암사0.1km]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있는 임도다. 우리는 좌측으로 내려간다.

 

×196봉으로 올라가는 시경계는 눈으로만 확인하고, 덕동마을 길을 따라 나가면 1001번 아스팔트 도로를 만나 우회전이다. 논에 무시래기를 강원도의 황태덕장처럼 엮어 널어놨다. 객꾼의 새로운 관심사항이었는데 이 동네는 이미 상품이 되어 출하까지 하고 있다.

 

 

 

×196봉이  시계능선이다. 우리는 왼쪽 청솔정으로

 

 

 

 

 

 

 

 

청솔정 055-972-5465

 

청솔정

단성면 관정리 관정 버스정류장 앞에 있는 통나무와 황토로 만든 집이다. 마당에는 출하 대기중인 ‘산청 시래기’ 박스가 쌓여있고, 식당 안에는 요상하게 생긴 목각 공예품도 많다. (점심~13:45)

 

 

학봉 머리 뒤에 있는 " 더 큰거"

 

 

식당으로 들어 갈 때는 몰랐는데, 나오면서 입구에 미닫이 현관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잡고보니 이 손잡이가 나무로 깎은 남자의 거시기 형상이라. 배웅하는 식당 아줌마더러 희한한 물건이다 했더니, 아줌마 하는 말이...

"저 안에 더 큰거 있는데요!"

 

식당 여주인의 이 대답을 두고 한참동안 갑론을박 했다.

(갑) 아줌마가 너무 순진하다. 어린 아이처럼 있는 그대로  이야기 한것이다.

(을) 쪼깬한 그걸 갖고 놀래느냐. 저 안에 있은 저만한 놈은 되아야 이야기꺼리가 되지...

(병) 시시한거 갖고는 아무데나 들이대지 마라.

객꾼이 마무리 짓기를,  "가까이 사는 내가 한번 더 가보고 진의를 파악하겠다".

진의?, 뭔 진의??

 

 

메뉴판

 

이 사진이 희한하다.

그냥 똑딱이로 찍었고, 내컴에 복사한 다음 블로그에 올렸는데 올려놓고보니, 우상단에 PLAY버턴이 생겼다. 이를 누르니 그 때 그 방송이 다른창으로 방영이 된다. imideo라는 프로그램을 설치하면 모든 방송 다시보기가 된다네. 처음보는 신기술이다.

 

우상 버튼이 보였다가 안보였다가...

PLAY누르면, 왼쪽 새창이 열리면서 방송이 나오더라.

 

 

 

 

 

관정삼거리

 

 

수곡면 자매리와 단성면 관정리를 구분하는 진주시계는 자매리 앞에서 남강을 건너가는데, 여기는 가화강이나 덕천강처럼 만만한 물이 아니라 진양호의 상단부라 거의 호수 넓이다. 강을 건너서도 강의 한가운데를 양분하므로 배를 동원하지 않는 이상 온전히 시경계를 따를 수는 없는 일이고, 최대한 근접해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일단은 대관교를 건너야겠다. 한편, 대관교를 건너는 대신 북쪽 성철스님 생가로 들어가는 묵곡교를 짚어봤지만 너무 많이 돌아가는 그림이다.

 

 

 

관정삼거리

왼쪽은 산청, 우측이 진주 대관교로 간다. GAP선별장에는 딸기 출하가 한창이다. 요즘에는 하우스로 재배를 하니 제철이 언제인지 헛갈릴 지경이다. 논에는 무시래기가 널려있다. GAP란, 우수농산물관리 인증제도를 말한다. (Good Agricultural Practices)

 

 

무시래기  탐구 중...

 

 

 

 

 

대관교

2차선 도로인 대관교를 건너가면 대평면이다. 다리 길이가 500m가 넘어 한참을 걸어야 건너편 둑이다. 아래 보이는 남강은 꽁꽁 얼어붙어 잘만 하면 걸어서 건널 수도 있어 보인다. 흐르지 않는 담수형태라 얼어붙은 것일거라. 눈에 보이는 강표면은 전부 얼었다. 군데군데 흔히 말하는 숨구멍인가 싶은 얼음의 색깔이 다른곳도 있지만, 어디를 봐도 물은 보이지 않는다만, 119구조요원 학봉이 한테는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다.

 

 

다리를 건너 [진주시 대평면] 이정표에서 왼쪽으로 내려와 제방을 타려니 바람이 너무 거세 아래쪽 길 따라 올라가고, 이때만 해도 정면에 보이는 능선을 탈 생각이었다. 비닐하우스단지를 지나 산자락에 도착하고, 왼쪽 물가로 나가봤다. 혹시나 산자락을 따라 길이라도 있을까 싶어서였는데 조그만 배 한척이 달려있는 물가로 내려서고 보니 강물의 얼음은 그야말로 꽁꽁 얼어붙어 얼마전 신문기사처럼 ‘트랙타를 몰고’ 들어가지 않는 이상 끄떡도 않겠다.

 

 

 

 

남강 수면위로

공인 119요원의 ‘안전’ 판정을 받은 후 산길대신 얼음길을 간다. 물론 최대한 땅과 가까운쪽으로 진행을 하지만 가다보니 슬금슬금 간이 부어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기도 하고, 미끄럼도 탄다.

 

 

 

 

 

 

 

 

 

 

 

 

 

 

 

 

 

 

산길로

첫 번째 절벽능선이 끝나는 안부로 올라간다. 배수장같은 시설물이 방치된채 남아있고 희미한 길자국이 나 있다. 쓰러진 나무 아래로 허리를 굽혀 통과하다가 삐쭉 튀어나온 나뭇가지에 머리를 박았더니 피가 난다.

"아이고~ 박터졌다...!!"

 

 

 

안부로 올라가니 넓은 묵밭이다. 지도에 표기된 ‘돌고개’는 어디를 말하는지 모르겠고 145쯤되는 첫봉에 오르니 대평면과 명석면의 면계다. 진주시계하면서 열 세 번째 만나는 명석면이다. 남은 면은 집현면과 미천면이고, 이어 대곡면을 만나면 출발점에 원점회귀다. 금산면만 시계에 접하지 않는다. 앞에 볼록 솟은 봉우리를 보니 종아리가 더 땡기는 듯하다.

 

 

능선에는 길이 있다.

 

 

 

 

남강

 

 

경호강

법정명칭(고시지명)은 남강이다. 덕천강은 남강의 제1지류이나 경호강은 남강의 본류다. 발원은 남덕유산 참샘이고, 지리산에서 남덕유산까지의 백두대간 동쪽물은 모두 여기로 흘러든다. 지리산 심원, 뱀사골, 한신, 칠선계곡 물이 모두 모여 임천강이 되었다가 함양군 생초면 상촌에서 남덕유에서 내려온 물과 합한다. 여기서부터 단성면에서 산청군 영역을 벗어나는 구간(진양호 이전)까지를 경호강이라 부른다. (한강의 본류인 남한강을 정선에서는 조양강, 영월에서는 동강으로 부르는 것과 같다).

 

 

 

×183봉 직전 안부에는 우측 아래에서 올라 온 임도가 있고 개인사유지이니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문이 있다. 수도꼭지도 있는데 틀어봐도 물은 안나온다. 쉬었다 간다. 고속도로 차소리가 가까이 들린다.

 

 

×183봉에는 돌담으로 기반을 보강한 묘가 있다. 왼쪽 절벽아래  얼어붙은 남강물을 보며 또 내려가다가 왼편 벼랑에 아찔한 조망바위가 있어 나가봤다. 삼천궁녀 떨어져도 다 수용(!)이 될만한 높이고 물이다.

 

×173봉 직전 안부에는 ‘차량소독함’, 소파와 의자가 있다. 오름길에 있는 묘비에는 ‘고 이정민 이곳에 누웠다’. 1949년生에 1963년1월 묘를 썼으니 불과 14살인가. 객꾸이 나이보다 더 오래묵은 비석이다. ×200봉을 넘으니 성철스님 생가가 있는 묵곡리 들판이 보인다. 의외로 뚜렷한 길이라 신나게 내달렸다. 묵곡리에서 올라 온 등산로인가 싶었는데 묵곡리 갈림봉에서도 묵곡리쪽으로 길은 보이지도 않고 자연스레 검무봉으로 길이 나있다.

 

 

대전-통영고속도로

 

대진고속도로 산청3터널 위를 지나고 남쪽으로 조망대가 있다. 남으로 뻗는 고속도로와 멀리 진양호 물이 보인다. 날등에 오르면 북으로도 트이는데 여기서 보는 천왕봉은 그새 눈이 다 녹았는지 희게 보이지 않는다. 둔철산, 황매산이 확연하다.

 

 

지리산

 

 

 

 

검무봉

 

 

검무봉(劒舞峰 280.4m △산청466)

숲이 둘러싼 좁은 정상부에 삼각점은 눈 속에 파묻혔고, 삼각점 안내문이 세 개가 삼각점을 감싸듯이 있다.

 

 

집현산, 광제봉

 

공원묘지

숲이 확 트이면서 앞에 펼쳐지는 비탈은 전체가 묘지다. 여기서 시계는 북으로 이어지지만 확트인 잔디밭이 내려가기 쉬울거 같아 공원묘지를 가로질러 내려갔다. 조성중인 공원묘지 ‘성양원’이다. 절집 한 채에 대웅전도 있고 [정관정사] 간판도 보인다.

 

 

성양사, 정관정사

 

 

 

외율리

 

3번국도(도내고개)

절집 앞에서 왼쪽으로 임도를 따라 내려가니 축사와 마을이 있고,  3번국도 도내고개 남쪽 1km 지점이다. 묵곡고개에 기다리는 택배 차를 불러 창촌교로 넘어간다.

 

 

3번국도

 

 

 

외율리 하산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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