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본시 태백에서 태어났지만 유년시절 대부분을 제천시 청풍면에서 자랐다 그곳은 우리 아버지의 고향이기도했다 아버지는 50년대말 태백 광산개발로 이곳 태백에 오셔서 정착하며 우리를 태어나게 하셨고 성장하게 하셨다
긴 여정같은 어릴적 청풍은 말 그자체 푸른물 맑은 바람 청풍명월의 고장 인심 후한 충청도
억양과 행동은 느리지만 맘씨 하나는 고운 사람들
나는 태백에서 초등학교를 다녔지만 여름만되면 방학을 이용해서 청풍을 가곤했다 여름엔 냇가에서 어린친구들과 멱을 감고 복삼이라는 개량형 어항을 만들어 물고기 잡던게 엊그제 같다
겨울철엔 벼농사가 마을 전체에 생업인 관계로 논에 물이 얼으면 얼음빙판이라 썰매 뱅이돌리기 시케또타기 삼삼오오 모여 모닥불 피워놓고 집에서 가져온 고구마 구워먹으며 입가에 숯검덩이를 서로 마주보며 낄낄대던게 긴 겨울을 보낸 추억 빛바랜 사진처럼 시간의 저편에서 아른거린다
나는 중학교 3학년 반학기를 청풍에서 졸업했는데 학교가 강건너편에 있는관계로 나룻배를 타고 학교를 다녔다 행여 장마철 우기로 비가 많이 내리면 안전사고 날까봐 학교에서는 등교를 제한하였다
학교가 남녀 공학인 관계로 하얀 교복을 입은 이쁜 여자 동창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40년이 지난 지금 무척 궁금하다
가을철 등교길에는 가을 들녘을 수놓은 누렇게 익은 벼이삭은 저마다 고개를 숙이고 황금벌판 풍요로움이 새삼 시골 밥상에서 느껴진다
여름엔 친구들과 남에 밭에 수박서리 참외서리 서리해간줄 알면서 눈감아주는 후한 인심이 시골 옛길 돌담길에는 지금도 남아있다
그러던것이 내가 졸업하고 얼마지나지 않아서 충주댐 준공으로 수많은 마을사람들 정든 고향을 뒤로한체 저마다의 삶을 찾아 뿔뿔히 흩어져야만했다
수몰의 아픔인것이다
이쁜 미소녀와 나룻배를 타고 등교하던 학교는 물에 잠겨 흔적을 찾아볼수가 없었고 할머니가 계시던 본가는 물밑으로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이젠 청풍을 대표하는 문화재단지 그것만 원형을 보전한체 마을 앞산 언덕배기에 우뚝 위용을 자랑한다
국보급 문화재와 지방문화재가 산재해있어 문화재청에서 실사를 거쳐 이주한걸로 알고있다
요즘도 가끔 제천에 다녀오곤한다 하지만 내 어릴적 멱감고 고기잡고 배타고 학교다니던 청풍의 모습은 빛바랜 사진으로만 남아있다
아직 마을을 떠나지 못한 주민들은 수몰지를 피해 집단 주거지를 형성하며 새로운 청풍의 면모를 만들었다
요즘 청풍은 벗꽃축제 레져쪽으로 많이 발전한것같다
청풍은 예전의 어릴적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마을의 후덕함은 사람들 마음속에 녹아있다
시간의 바늘을 저벽에 걸수만 있다면 나는 시간을 되돌려놓고 싶다 다시금 예전의 청풍의 모습으로
시골 오일장의 장똘뱅이 너스레 떠는 소리 객주집에 파전부치는 파전내음 시골장 뒤켠에 해장국 끓이는 해장국 내음 엿장수의 가위질 치는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