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트 발저의 중단편 42편을 엄선한 대표 작품집
20세기 독일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하나이자 스위스의 국민작가 로베르트 발저의 작품집. 동시대 작가 카프카와 헤세가 그의 열렬한 애독자였고 후대 W. G. 제발트, 페터 한트케, 마르틴 발저, J. M. 쿠체 등이 그에게 문학적 영향을 받았음을 공언했다. 발터 벤야민(<로베르트 발저>, 1929), 조르조 아감벤(<로베르트 발저는 왜 그토록 중요한가?>, 2005), 수전 손태그에 의해 독일어권 밖으로도 널리 알려졌으며,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는 1998년 헌정 희곡 《Er nicht als er》를 출간하여 그의 작가적 발자취를 잇기도 했다. ‘걷기’는 발저 작품의 가장 중요한 모티프로서, 실제 그는 많은 시간을 걸으며 길 위의 작은 것들에 시선을 두고 그 관찰과 사색을 작품에 담아냈다. 《산책자-로베르트 발저 작품집》는 발저가 남긴 수백편의 작품 중 그를 대표하는 중단편 42편을 엄선하여 수록한 것이다. 작가 배수아의 유려한 번역이 함께한다.
작은 것들의 세밀화가, 내면을 걷는 산책자 로베르트 발저
로베르트 발저는 27년의 정신병원 생활과 거의 그만큼의 절필 기간으로 인해 한동안 잊히는 듯했다. 그러나 헤세와 같은 문인들의 계속적인 언급에 의해 작품들이 재출간되었고, 사후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수많은 젊은 작가와 비평가들이 그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이해하고 연구했다. 현재 발저는 20세기 독일문학사의 가장 중심적인 위치에 놓인 작가이다.
1878년 스위스의 독일어 사용 가정에서 자란 발저는 어려운 형편 탓에 14세에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이후 하인, 사무보조, 사서, 은행사무원, 공장노동자 등의 직업을 전전한다. 종이조차 살 수 없는 궁핍한 생활 중에도 영수증, 전단지, 포장지, 달력 뒷면 등에 글을 썼고 그것을 끊임없이 신문과 잡지에 투고했다(수록작 <최후의 산문> 참조). 이러한 그의 삶은 그대로 글의 소재가 되었다. 당시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지 못했던 발저는 그러나 문단에서는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루었는데, 그중에서도 발저보다 5살 어린 카프카가 그의 찬미자였다. 로베르트 무질은 카프카의 초기 산문 <관찰>을 읽고 “발저 유형의 독특한 예”라고 언급하며 그 유사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연구자들은 카프카의 《성》에 등장하는 두 명의 조수의 원형을 발저의 장편 《야콥 폰 군텐》(한국어판 제목 ‘벤야멘타 하인학교-야콥 폰 군텐 이야기’)에서 찾기도 한다.
카프카뿐 아니라 헤세 역시 발저를 “동시대 가장 의미 있는 스위스 작가”라 칭하며 그의 작품이 더 많이 읽히기를 바라는 글을 여러 차례 쓰기도 했다. 그러나 아웃사이더적인 면모와 정규교육을 마치지 못한 점, 스위스 방언 등의 이유로 발저는 독일의 지성인 사회에서 겉돌았고,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스위스로 돌아가기에 이른다. 발저는 잠을 자는 시간 외에는 늘 걷고 또 글을 쓴 듯하다.
바로 앞에 풍요로운 대지가 펼쳐져 있었지만 나는 가장 작고 가장 허름한 것만을 주시했다. 지극한 사랑의 몸짓으로 하늘이 위로 솟아올랐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나는 하나의 내면이 되었으며, 그렇게 내면을 산책했다. 모든 외부는 꿈이 되었고 지금까지 내가 이해했던 것들은 모두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바뀌었다. 나는 표면에서 떨어져 나와 지금 이 순간 내가 선함으로 인식하는 환상의 심연으로 추락했다. 우리가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우리를 이해하고 사랑한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이 아니라 어떤 다른 존재였으며, 또한 바로 그렇기 때문에 비로소 진정으로 나 자신이었다. _<산책> 중에서, p.349
발저는 산책에 강박적으로 몰두했다. 그에게 산책은 자신의 내면을 거니는 행위였고 이는 곧 그의 글의 소재와 형식이 되었다. 심상, 스케치, 우화, 단편 같은 형식 속에서 발저의 인물들은 대부분 무기력한 보통의 소시민으로 등장한다. 그들은 권력과 지배를 끔찍하게 생각하고 심지어 가난하고 초라한 자신의 생활을 유지하고자 애쓴다. 발저는 작품 속에서 고립되고 무력하나 자유로운 자신의 작은 세계를 지키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낸다.
1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발저는 더욱 심한 경제적인 궁핍과 우울감에 시달리다 결국 자살을 시도한다. 그러나 그마저 실패하고(“나는 심지어 올가미조차 제대로 맬 줄 몰랐기 때문이다.”) 1929년 베른의 발다우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1933년 헤리자우 병원으로 옮긴 다음부터는 단 한 글자도 쓰지 않았지만(“나는 여기 글을 쓰러 들어온 것이 아니라 미치기 위해 들어온 것이니까요.”), 발저의 작품을 사랑하는 이들에 의해, 작품의 재출간을 위해 1936년 병원을 찾은 출판인 카를 젤리히에 의해 재조명되고 늦은 성공을 거두었다. 1956년 크리스마스 산책길에서 그는 눈밭 위에 쓰러져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발저의 작품에서 주체의 세계는 항상 내면에 있다. 하지만 이러한 우주는, 그리고 절망은, 결코 유아론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연민으로 가득하며, 슬픔을 동반하는 생명이라는 존재를 한시도 의식의 바깥으로 밀어내지 않는다. _수전 손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