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마을
이 현 주
남쪽 지방을 여행해본 이는 〈처용리〉 라고 하는 마을에 대해 이야길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처용리를 〈춤추는 마을〉 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것은 마을사람들이 모두 춤추기를 즐겨하기 때문입니다.
해마다 섣달 그믐만 되면 그 마을사람들은 마을 복판에 있는 연못가에서 불을 밝히고 춤의 잔치를 벌이곤 합니다.
그들의 춤추는 모양은 너무나도 아름다왔기 때문에 쉽게 따라할 수없는 것이 있읍니다.
그들은 춤추기를 좋아하면서 그에 못지않게 춤추는 것을 보기 또한 즐겨했읍니다. 마을의 어른들은 자손들에게 춤을 가르쳐줄 때에 반드시 이런 말을 덧붙
였읍니 다.
―춤이란 먼저 볼 줄을 알아야 그다음에 출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을의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춤을 잘 보는 훈련부터 받았읍니다.
― 춤추는 이의 숨이 바로 나의 숨이 되도록…… 그리고 춤추는 이의 땀방울이 내 이 마에서 흐르도록……
그렇게 될 때 아이들은 이미 또 하나의 훌륭한 춤추는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이 있읍니다.
그들은 먹고살기 위해 춤을 추지는 않았읍니다. 또는 무슨 즐거운 일이 있어서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춤을 추지도 않았읍니다.
슬픈 이를 위로하기 위해 추는 것도 아니었읍니다. 누구의 강요로 춤을 추는 것은 더욱 아니었읍니다.
춤추는 마을이라고도 불리는 그 처용리 사람들이 해마다 섣달 그믐에 모닥불
을 피위놓고 춤의 잔치를 벌이는 것은 다만 한 가지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서였니다.
읍니다.
그것은 일찌기 그 마을에서 태어나 불행한 일생을 보내고 화려한 죽음을 장식한 청년에 관한 일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남이 깆지 못한 재주를 갖고 있었읍니다. 그것은 춤이었읍니다. 이름을 처용이라 했읍니다.
처용이 춤을 추면 그것은 하나의 바람이 되었읍니다. 곁에 서 있는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흘러가던 구름이 멈추었읍니다.
그것은 슬픈 이에게는 위로가 되었읍니다. 기쁜 이에게는 노래가 되었읍니다.
배고픈 이에게는 떡이 되었고 목마른 이에게는 샘물이 되었음니다.
마을사람들은 처용을 보물처럼 아꼈습니다. 비록 그들은 스스로 춤을 추지는 못했지만 그러나 처용이 추는 춤 때문에 슬픈 이는 슬픔을 이기고, 기쁜 이는 기쁨을 노래하며, 목마른 이는 시원한 샘물을 맛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용은 그러나 한번도 무엇인가를 위하여 춤을 춘 적은 없었읍니다.
처용에겐 춤추는 것이 곧 삶이었읍니다. 그것이 온갗 슬픔이었고, 그것이 온갖 기쁨이 었읍니다.
그러나 어느 해인가 섣달 그믐에.
처용의 마음은 좀더 넓은 세계를 그리워하기 시작했읍니다.
―그렇다. 언제까지나 이런 좁은 세계에 살 것인가? 저 앞을 가린 산을 넘어보자. 저기 흐르는 강을 건너보자. 거기엔 내가 미처 알지 못하던 이보다 더 넓은 세계, 이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나의 춤을 보려고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일 아닌가?
처용이 마을을 떠나겠다고 했을 때 마을의 가장 나이 많은 어른이 이렇게 말
했읍니 다.
“젊은이여, 세상은 넓다. 그러나 생각할 수도 없이 좁을 수 또한 있다. 예부터 떠나겠다는 마음 붙들어매둘 약은 없어. 가겠으면 가도 좋다. 그러나·…· 바깥 세상이 좁거든, 다시 돌아오게·….”
그리고는 처용이 들을 수 없도록 속으루 말했읍니다.
―이 마을이 저세상보다 넓을 수도 있으니까·…
처용은 노인에게 공손히 절하고 마을을 떠났읍니다. 사람들이 서운한 얼굴로 동구 밖까지 바래다주었욥니다.
바깥세상은 미친 듯이 처용을 둘러쌌읍니다.
“춤의 천재다.”
누군가 큰소리로 이렇게 말하자;
“처용 만세!”
군중들이 박수를 치면서 만세를 불렀읍니다. 처용은 가는 곳마다 환영을 받았읍니다.
어느 날.
한 뚱뚱한 사내가 처용에게 다가와 귓속말로 말했읍니다.
“여보시오, 당신의 춤을 좀 빌립시다. 나는 자선 사업가요. 수재민을 위한 자선 무용회를 열 시간인데 당신이 협조해주면 잘될 것이오.”
처용은 마음이 들떴읍니다.
“자선 사업이라? 좋습니다. 그러나 내 춤을 어떻게 빌려드렸으면 좋을지 모르겠구려.”
자선 사업가는 뚱뚱한 배를 두드리며 껄껄 웃었읍니다.
“그런것일랑 내게 맡기시오. 당신은 내가 마련한 무대에서 춤만 추면 돼요.”
마침내 치용은 무대위에 섰읍니다. 자기의 춤을 구경하려고 돈을 내고 들어온 수많은 관중 앞에서 처용은 춤을 추기 시작했읍니다.
자선 사업가는 춤이 끝나고 관중들이 다 돌아간 텅빈 극장에서 산더미처럼 쌓인 돈더미를 끌어안고는,
“성공이다, 성공이 야.”
기쁨의 눈물을 흘렸읍니다.
그러나 처용은 유령처럼 흔들리는 막 뒤에 숨이 답답하기만한 가슴을 달래고 있읍니 다.
자기의 춤을 돈 갖고 보러 온 많은 사람들에게 갈갈이 찢어 나눠주고 나니 처용 자신에겐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었읍니다.
처용의 마음은 조금씩 괴로와지기 시작했읍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뒤늦게 아픔을 느끼고 봤을 땐 이미 고칠 수 없게 되어버린 병과 같이 처용의 깨달음
가지고는 어쩔 수 없는 그런 괴로움이었읍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자선 사업가의 배는 자꾸만 뚱뚱해졌읍니다. 자선 사업 가는 때때로 이름이 바뀌었읍니다. 그때마다 처용의 무대도 바뀌었읍니다.
많은 세월이 홀렀음니다.
“처용, 이번에야말로 중요한 일 다.”
어느날 자선 사업가는 딱딱한 얼굴로 처용에게 말했읍니다.
“나랏님 앞에 나가 춤추게 됐다. 나랏님의 생일이야. 그런데 요즘 무슨 일인지 나랏님의 마음이 우울하시거든. 처용, 이번이 기회다. 너의 춤으로 나랏님의 우울한 마음을 풀어주기만 한다면·….”
“그러면…….”
“그러면 너는 아마 높은 벼슬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자선 사업가의 말을 듣고 처용은 속으로 웃었읍니다. 그날 처용은 오랜만에 참으로 오랫만에 고향의 꿈을 꾸었읍니다. 꿈속에서 낯익은 사람들이 피곤한 자기를 따뜻하게 영접 해주었었읍니다.
“알겠소, 참 좋은 기회군!”
처용은 자선 사업가의 어깨를 끌어안았읍니다. 그리곤 이렇게 중얼거리는 것이었읍니다.
“참 좋은 기회지.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마침내 처용은 나랏님의 생일에 특별히 만든 높은 무대에 섰읍니다.
무대 아래에는 수많은 신하들과 백성들이 나랏님을 가운데 모시고 처용의 춤을 구경하기 위해 모여들었읍니다. 처용은 천천히 발을 올리며 손을 흔들어 춤
을 추기 시작했읍니다.
얼굴은 땀으로 젖어 있었고 가슴은 속에서부터 떨렸읍니다.
춤이 점점 빨라지고 한창 무루익어가자 사람들은 숨소리조차 죽이고 처용을 바라보았읍니다.
“나랏님을 위해서·….”
처용은 울고 있었읍니다.
“아니다! 아니다.”
그 순 간.
높은 무대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던 처용의 몸이 꽃잎 떨어지듯 아래로 굴러떨어졌읍니다.
“앗!”
사람들이 놀라 달려갔을 때는 이미 처용은 피투성이가 되어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읍니다.
나랏님이 화가 나서 소리쳤읍니다.
“그대로 갖다 버려라!”
사람들은 처용의 늘어진 몸뚱이를 번쩍 들어 골짜기에 내다버렸읍니다.
처용이 떠난 후 사람들은 섣달 그믐만 되면 마을 복판에 있는 연못가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처용의 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읍니다.
그러던 어느 해.
섣달 그믐이 이틀밖에 남지 않은 날 마을에 낯선 거지 하나가 들어왔읍니다.
전에도 세상을 떠돌아다니던 거지가 어쩌다 이 마을에 들를 때가 있었기에 아무도 그 거지를 눈여겨보지는 않았읍니다.
거지는 꼽추였읍니다. 그리고 얼굴에는 보기흉한 상처가 얼기설기 나 있었읍니다. 꼽추 거지는 마을사람들이 던져주는 찬밥덩이를 받아들고는 어디론가 사
라졌다가 낮이 되면 또다시 나타났읍니다. 아무도 그가 밤은 어디서 보내는지
알 수 없었읍니다.
섣달 그믐밤이 되었읍니다.
마을사람들은 말없이 연못가에 모였읍니다.
활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은 그 옛날 처용의 춤을 생각나게 해주었읍니다.
이때 그들 곁으로 남모르게 한 검은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읍니다.
침묵을 깨뜨리고 누가 말했읍니다.
“처용은 지금도 춤을 추고 있을까?”
아무도 대 답하지 않았읍니다.
또 누가 말했읍니다.:
“처용은 우리 마을을 잊지 않고 기억 할까?”
아무도 대 답하지 않았읍니다.
검은 그림자는 그들의 바로 뒤에까지 다가왔읍니다.
한 어른이 울면서 말했읍니다.
“아 ! 처용, 우리에게 이제 그 춤을 보여 안 주려나?”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읍니다. 검은 그림자가 마을사람들 가운데로 뛰어들었읍니다. 모닥불에 비친 것은 이틀 전에 온 그 꼽추 거지였읍니다.
꼽추는 그 흉칙한 등을 꿈틀거리며 이상한 춤을 추기 시작했읍니다. 점점 발과 팔의 놀림이 빨라졌읍니다. 모닥불에 비친 그의 얼굴엔 두 줄기 눈물이 흐르고 있었읍니다.
이윽고 둘러 선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가,
“처용이다, 처용의 춤이다!”
울음섞인 목소리로 부르짖었읍니다.
꼽추의 춤은 좀처럼 그칠 줄을 몰랐읍니다. 땅에 아주 붙어버리는가 했는데 나비처럼 하늘로 솟아오르고 발이 보이지 않도록 빙글빙글 돌다가는 우뚝 멈추어 하늘을 바라보고 어깨숨만 쉬기도 했읍니다.
마을사람들의 눈에 말없이 눈물이 흘렀읍니다.
이윽고 하늘에나 오를 듯이 공중을 떠다니던 꼽추의 몸이 갑자기 땅에 툭 떨어졌읍니다. 사람들이 불을 밝히고 그의 몸을 안아 일으켰을 때 꼽추는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읍니다. 그 얼굴은 잠든 것처럼 평안한 처용의 얼굴이었습니다.
그후 사람들은 이 마을을 처용리라고 부르게 되었답니다.
지금도 이 마을에 가면 그리고 그날이 섣달 그믐이라면 불행하게 살다가 화려하게 죽어간 처용을 기억하면서 마을사람들이 벌이는 춤잔치를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읍니다. 그것은 그 춤이 당신을 위한 것
은 아니 라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