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민이라 자부하던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은 매우 강력합니다. 예루살렘 성이 세계 모든 민족의 저주 거리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는 유다왕 여호야 김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도 가감하지 말고 전하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메시지입니다.
백성들이 듣고 회개하면 구원을 얻을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끔찍한 심판에 이를 것이라 말씀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선포는 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않으면 예루살렘이 실로와 같이 된다는 심판입니다. 실로는 하나님의 성소가 처음 있었던 곳입니다. 그런데 부패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렘 7:12). 엘리의 죽음으로 실로의 시대가 끝납니다. 이처럼 예루살렘이 세계의 저주 거리가 됩니다.
그것은 예루살렘이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았고, 선지자를 통하여 계속하여 주신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자의적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를 핍박하였습니다.
예레미야의 말을 들었던 이스라엘의 지도층들이 분노하여 선지자를 죽이려고 합니다. 말씀 앞에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불퍈한 말에 저항하여 오히려 죽이고자 합니다.
선지자는 죽이라는 협박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살지만 듣지 않으면 심판에 이를 것임을 다시 전합니다. 나를 죽이면 무죄한 피가 너희 몸과 이 성과 성 주민에게 돌릴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선지자의 담대한 모습 앞에 우리의 신앙과 교회를 돌아봅니다. 오늘 한국교회의 위기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감없이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또한 가감없이 전해진 말씀에 애통하고 찔리는 마음으로 듣지 않았는지 생각합니다.
설교는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일입니다. 해석의 영역도 하나님의 말씀이 좀더 밝히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시대와 사람의 편리를 위한 설교는 설교자와 성도 모두를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설교자는 가감없이 말씀을 전하고, 성도는 가감없이 말씀을 듣고자 할 때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교회의 위기는 총체적입니다. 한국교회도 실로와 같을 수 있습니다. 성리학 체제를 물리친지 200년도 안 되었지만 기반부터 흔들리고 있는 현실을 봅니다.
목사들의 막말이 선지자의 말은 아닙니다. 사랑으로 진리를 전하지 않는 말은 단지 쓰레기에 불과합니다.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불리던 한국교회가 세계의 저주거리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오늘 예레미야의 말씀은 설교자와 성도 모두에게 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두렵고 떨림으로 받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하루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