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여기서 한 가지 밝혀 두고 싶은 것은 저 중딩 3입니다. 너무 역사에 대해서 아는 척 한다고 막 뭐라 하지 마십시오.
저 우울증 있습니다. T_T
그리고 이조선 암흑기 하시는 분들, 저 고종 "황제"라고 한다고 너무 뭐라지 마십시오.
조선이 명나라에 청나라에 비굴한 자세 취했다고 하시는데, 제가 밑에 올린 글처럼 명, 청 동이족입니다.
유교도 동이족인 공자가 만들었어요!
그래서 올립니다.
조선 일보에 나온 내용인데요. 그대로 쓸게요. 제 개인적인 의견 없이 그저 쓴 것입니다.
꼭 90년 전 3.1 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고종 황제의 죽음이 일본측의 지시에 의한 독살이었다는 정보를 기록한 당시 일본 고위 관료의 문서가 처음으로 발굴됐다. 이 문서는 1919년 당시 일본 궁내성 제실 회계심사국 장관이었던 구라토미 유자부로가 쓴 일기로, 고종 독살의 배후에 초대시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와 당시 조선총독 하세가와 요시미치가 있었으며 독살의 이유는 고종이 독립운동에 관련되었기 때문이라는 궁내성 내의 정보를 기록했다. 고종 독살의 개연성을 언급한 국내 자료는 많았지만 일본 정부의 수뇌부가 개입했다는 구체적 정황과 실명을 기록한 일본측의 문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최근 일본 국회 헌정 자료실이 소장하고 있는 '구라토미 유자부로 일기'의 해당 부분 사본을 입수하고 이 사실을 27일 본지에 공개했다. 이 교수는 일본 교토대 나가이 가즈 교수의 홈페이지를 통해 문서의 내용을 알게 되었으며 이에 대한 연구 성과를 오는 4월 23일 미국 하와이대에서 열리는 학술회의에서 논문으로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말을 듣지 않아... 은폐하려 죽였다"
구라토미는 다이쇼 8년(1919) 10월 26일의 일기에서 도쿄 오오 이마치에 있는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 히로구니의 집을 방문한 뒤 돌아오는 기차에서 송병준을 만났다고 적었다.
송병준은 '민병석과 윤덕영의 사직에 대해서 두 사람 모두 분노하고 있다'고 구라토미에게 말했다. 송병준, 민병석, 윤덕영은 모두 한일강제합방 뒤 일본으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았던 친일파였다.
4일 뒤인 30일, 구라토미는 궁내성의 한 부서인 종질료에 갔다. 종질료란 황족과 왕족, 작위, 조선 귀족 등에 대한 일들을 다루는 곳으로 조선의 종친부와 비슷한 관청이었다. 그는 종질료의 고위 관료 센고쿠 마사유키를 만나 민병석, 윤덕영의 사직과 관령해 이런 질문을 했다.
전 총리 데라우치 마사다케가 조선 총독 하세가와 요시미치에게 뜻을 전해 하세가와로 하여금 이태왕(고종)에게 설명하게 하였지만 태왕이 수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일을 감추기 위해 윤덕영, 민병석 등이 태왕을 독살했다는 풍설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구라토미는 "데라우치가 얘기했다고 하는 일이 무엇인지는 듣지 못했다."고 말하고는 "당신은 이를 들은 것이 없느냐"고 물었다.
초대 조선 총독이자 일본 총리대신을 지낸 데라우치와 고종 승하 당시 조선총독이었던 하세가와가 독살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구체적인 정보가 언급된 것이다.
"고종, 파리 회의에 독립 청원 시도"
독살 건에 대한 구라토미의 문의는 집요했다. 10월 30일 센고쿠로부터 별다른 답변을 듣지 못하자 11월 1일 다시 종질료 관리 이시히라 겐조를 만나 "조선에서는 데라우치가 하세가와로 하여금 이태왕에게 얘기하게 한 것이 있었는데 태왕이 승낙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입을 막는 수단으로서 태왕을 독살한 것으로 얘기가 되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여기서는 독살을 지시한 것이 데라우치였음이 좀 더 분명히 드러난다. 이시하라는 이에 대해 "그런 풍설이 있다고 한다"며 정보를 알고 있음을 시인했다.
이틀 뒤인 3일 구라토미는 종질료의 다른 관리인 다나카 우쓰루에게 또다시 고종 독살건에 대해 질문했다. 다나카는 여기서 더욱 구체적인 정보를 전달했다. "어떤 사람이 이태왕이 서명 날인한 문서를 얻어서 파리 강화 회의에 가서 독립을 도모하려고 해, 민병석, 윤덕영, 송병준이 태왕으로 하여금 서명 날인하지 못하게 했지만 아주 독립이 된다면 민 등이 입장이 곤란해질 것이기 때문에 살해했다는 풍설이 있다고 한다."고 말한 것이다.
"독살 진상 실토한 사람은 송병준"
이태진 교수는 "구라토미는 고종 독살의 정보를 송병준으로부터 들은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민병석, 윤덕영의 사직'이야기가 일기에서 처음 등장한 곳이 송병준을 만난 부분이며 다른 사람과 그 이야기를 나눴다는 기록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구라토미 등은 이 정보를 '풍문'이나 '풍설'로 언급하지만, 이것은 '뜬소문'이 아니라 상당한 근거를 지니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이 교수는 말했다. "송병준이 구라토미에게 전한 사실은 일본 최구 수뇌부의 인물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근거없이 쉽게 거론될 수 없는 사항"이라는 것이다. 지시자인 데라우치와 전달자인 하세가와, 하수인 역할을 한 윤덕영, 민병석과 이들의 전달자인 송병준 외에는 전혀 알 수 없는 극비사항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구라토미가 궁내성의 상급자로서 종질료 관리들에게 거듭 이 문제를 캐물었고, 복수의 관원들로부터 구체적인 답변을 얻은 것도 이것이 '풍문' 수준을 뛰어넘는 정보였음을 시사한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일본인들은 상당히 근거 있는 정보라도 자신에게 책임이 올 것을 두려워해 단정적인 표현을 피하려고 우회적으로 '풍문이 있다'는 식의 표현을 쓰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송병준은 왜 구라토미에게 그런 중요한 정보를 전했던 것일까? 법제국 장관을 지낸 구라토미는 궁내대신 하타노 다카나오와 가까운 정계의 실력자였다. 송병준은 작위를 잃게 된 민, 윤 두 사람을 구제하려는 목적에서 그에게 독살의 진상을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고 이태진 교수는 말했다. 구라토미는 군부를 배경으로 한 데라우치 등 당시 총리들의 노선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았으며, 이 때문에 독살 정보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제, 민족자결주의 후폭풍 우려"
첫댓글 파렴치한 놈들....
영득하시네요 ^^원래 그 나이가 세상의 이치를 알 나이죠 어리시다고 뭐라 할 사람 여긴 없어요^^
저근데 청나라는 맞는데 명나라는 엄연히 주원장이라는 거지중새끼가 만든쓰레기 나라인데요 청은 우리 신라와 관련있지만 명은 관련 없습니다 어떠한 서토사서에도 그런내용은 없습니다 명나라는 빼주시길바랍니다
그리고 정사 25사에 명나라가 동이와 관련이 있었던가요? 저도 모르는 부분이 많지만 명나라는 우리하고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없다고 생각하면 없는것이겠고 있다고 생각하면 있는것이겠죠.원래 모든 만물의 이치가 이로서 비롯되니 말이죠.구분할 수 없는것을 구분하려 하기에 힘든것이겠지만 정황을 따져보면 알 수 있는 것이겠죠.그 정황이라는 것 조차 이미 오래전 일이라 구분할 수 없다면 마음가는데로 하는것이 가장 좋을것같네요 알량한 편견으로 벽을 쌓을바엔 그 벽을 애초에 만들지 않는것도 좋은 방법인듯 싶구요.벽을 만들지 않아도 명확하지 않나요 지금의 중화 일제 미제를 구분하는것에?
조선일보라.. 믿어도 되는 얘긴가.. 학생한테 거는 태클 절대 아님. 조선일보 얘들이 하도 거짓말을 잘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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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제가 님을 되게 존경했는데 그런 분한테 칭찬받으니 감개가 무량하네요. 요즘 우울증 때문에 힘든데 감사합니다.
아마도 독살이 맞을껍니다 왜 놈들이 우리나라 왁족을 씨을 말리려고 한거 확실하거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