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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따뜻해지는 세계의 탕요리를 추천합니다
몸이 으슬으슬하다. 따끈한 국물 음식이 어울리는 계절로 접어들고 있다는 신호다. 얼큰하고 시원하고 속이 든든해 지는 탕이 그립다. 프랑스· 독일·일본식 탕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레스토랑 3곳을 소개한다.
프랑스식 해물탕 ‘부야베스’
어제 저녁 부서 회식을 했다. 술이 과했다. 속이 쓰리다. 해장하고 싶다. 하지만 ‘아저씨’들이 가는 북어국집이나 김치찌개집은 가고싶지 않다. 우아하게 해장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당신의 직장이 광화문에 있다면 축복받았다. 택시를 잡아타고 삼청동으로 간다. 청와대로 가는 길과 삼청동으로 가는 길에서 갈라지는 부분에서 얼마 올라가지 않아 오른쪽으로 작고 하얀 레스토랑이 눈에 들어온다. 레이스커텐, 벽과 천장이 만나는 부분을 박공으로 섬세하게 장식한 벽, 빨간색과 파란색 체크무늬 천으로 덮인 테이블... 커다란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레스토랑 내부가 온통 예쁘고 섬세하다.
지난달 문을 연 이곳은 ‘아 미디’(a(액센트 있음) Midi). 프랑스식 해물탕 ‘부야베스’(bouillabaisse)를 전문으로 한다. 부야베스는 ‘불을 낮추어(abaisser) 뭉근하게 오래 끓이다(bouillir)’라는 뜻으로, 프랑스 남부 항구도시 마르세이유 어부들이 먹던 음식이 프랑스 대표요리로 발전했다. 태국 톰양쿵, 중국 상어지느러미 수프와 함께 세계 3대 국물요리로 꼽히기도 한다.
빨간색 법랑냄비 뚜껑을 열자 따끈한 열기와 함께 시원한 해산물 냄새가 새 나왔다. 흰살생선과 조개 등 네 가지 해산물로 우린 육수에 토마토, 강남콩 등을 넣어 뭉근하게 끓였다. 붉으스름한 국물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 페넬·사프란과 같은 이국적 향기가 코를 자극하더니, 카이엔 고춧가루의 화끈한 매콤함이 혀를 톡톡 찌른다. 시원하고 구수한 국물이 입을 지나 식도를 거쳐 위에 도달할 즈음, 술로 꼬였던 장이 스르르 풀어진다. 부야베스에는 빵 또는 밥이 딸려 나오는데, 기름에 살짝 볶아 파슬리를 섞은 밥을 권한다. 부야베스 국물에 밥을 말아 먹으면 속까지 든든하다.
식사는 세트로만 주문 가능하다. 애피타이저와 메인요리, 후식, 차로 구성된다. 메인요리는 부야베스 또는 해산물요리 중 선택한다. 통통한 가리비 조갯살을 살짝 볶아 크림소스에 버무린 요리, 크림소스를 곁들인 부드러운 아귀살 등이 일주일 단위로 바뀐다. 후식으로 나오는 케이크까지 훌륭했는데, 커피는 다른 음식만 못해 아쉬웠다. 세트는 점심과 저녁 1인 3만원으로 같다.
와인은 모두 프랑스산으로 3만5000원부터 15만원짜리까지 있다. 화이트와인이 해물요리와 전반적으로 잘 어울리는데, 프랑스 남부 론(Rhone) 지역 레드와인은 부야베스와 잘 어울린다. 오늘의 와인은 1병, 반 병, 1잔 단위로 판다. 테이블이 4개뿐이니 예약해야 안전하다. 일요일은 쉰다. (02)736-8667
독일 스튜를 내는 ‘베를린’
독일에서 토요일은 ‘스튜 먹는 날’이다. 서울 안국동 서머셋 팰리스 1층에 문을 연 독일음식점 ‘베를린’(barlin=a 위에 점 2개)을 운영하는 크리스토퍼 본가르트(Bongard)씨는 “독일 사람들은 스튜를 유난히 좋아해서, 토요일이면 스튜만 하나만 내는 식당도 많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제대로 된 독일음식을 맛보이려 열었다는 이 식당 메뉴판에는 ‘토요일 스튜’라는 섹션이 있다. ‘훈제 소시지를 넣은 완두콩 스튜’, ‘미트볼을 넣은 웰빙 보리 스튜’, ‘카슬러를 넣은 렌틸콩 스튜’ ‘쇠고기 깍지콩 스튜’ ‘베이컨을 넣은 감자 스튜’라는 메뉴가 보인다. 모두 1만4900원. 토요일마다 한두 가지 스튜가 준비된다. 종류는 매주 바뀐다.
지난 10월 마지막 토요일. 전날 밤 내린 비로 쌀쌀했다. 베를린 종업원은 “렌틸콩 스튜’와 ‘보리 스튜’가 있다”고 말했다. 두 가지를 모두 주문했다. 렌틸콩 스튜에는 한국의 녹두와 비슷한 렌틸콩과 작은 사각형 모양으로 잘게 자른 감자, 당근, 카슬러가 잔뜩 담겨있었다. 카슬러란 돼지갈빗살에 소금을 뿌려 훈제한 햄이다. 보리 스튜에는 렌틸콩 대신 미끌미끌한 보리와 동글동글한 쇠고기 완자가 잔뜩 들어 있었다.
두 스튜 모두 국물이 거의 없이 걸죽했다. 탕이라기보단 죽이라고 해야 더 정확할 듯 하다. 눈을 자극해 입맛을 다시게하는 시각적 화려함은 없었다. 초라하고 칙칙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입안을 가득 채우는 구수하면서도 소박한 맛, 배를 든든하게 채우는 실용성을 가졌다. 그리고 몸이 곧 따뜻해졌다.
독일사람들은 으실으실한 북유럽 추위를 떨치기 위해 스튜에 알코올 도수가 높은 ‘보크’(bock) 맥주를 즐겨 곁들인다. 안타깝게도 베를린에는 보크 맥주가 없다. 대신 크롬바커(Krombacher) 브랜드 필스맥주와 알트(alt)맥주가 있다. 필스는 우리가 흔히 마시는 맑고 쌉쌀한 황금빛 맥주이고, 알트는 뿌연 갈색에 카라멜 향기가 도는 맥주다. 스튜에는 필스보다는 걸죽한 느낌을 가진 알트가 더 어울리는 듯 하나, 취향에 따라 골라마시면 되겠다. 200㎖ 3900원, 400㎖ 7300원. 본가르트씨는 “맥주를 제대로 따르려면 200㎖ 잔도 최소 7분이 걸린다”며 인내를 요구했다. 하얀 거품을 멋지게 뒤집어 쓴 맥주를 한 모금 마셔보면 기다릴 만 했다는 생각이 든다.
베를린에는 맥주 외에도 제대로 된 독일음식을 여럿 맛볼 수 있다. 레스토랑에서 직접 구운 보리빵과 같이 먹는 독일식 육회 ‘타르타르’(1만7500원), 다진 돼지고기를 넣어 따끈하게 구워내는 페이스트리(1만500원)가 애피타이저로 권할 만하다. 소시지는 어느 것이나 훌륭한데, 물에 삶은 ‘뮌헨식 화이트 소시지’(1만6900원)는 너무 보드랍고 말랑해서 익숙치 않은 사람에게는 약간 버겁겠다. 돈가스와 비슷한 ‘비엔나식 안심 커틀렛’(1만9900원)은 얇은 튀김옷을 느끼하지 않으면서도 바삭하게 튀겨낸 솜씨가 뛰어나다. 후식으로는 ‘딸기소스를 곁들인 바바리아식 크림’(7200원)이 가장 맛있었다. (02)722-5622
일본 스모선수들이 먹는 ‘창코나베’
살이 찌지 않아 고민인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거대한 ‘살의 산’처럼 보이는 일본 스모선수들은 어떻게 그런 몸집을 만드는걸까. 스모선수들은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침을 거른 채 맹렬하게 운동한다. 아침을 거르는 건 공복감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그리곤 점심을 엄청나게 먹어댄다. 보통 일인당 가득 찬 냉면그릇으로 두 그릇씩 먹는다. 그리고는 2시간 달콤한 낮잠을 즐긴 뒤 일어나 다시 저녁을 엄청나게 먹는다. 이렇게 하면 체중이 200㎏까지도 불어난다고 한다.
스모선수들이 먹는 음식을 ‘창코’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냄비에 각종 재료를 잔뜩 넣어 끓인 냄비요리를 ‘창코나베’라고 부른다. 살을 찌워야 하는 스모선수들이 먹어야 하는 음식이라 고칼로리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 청담동에 문을 연 ‘와카’(若)는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창코나베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 제66대 요코즈나(橫綱·스모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와카노 하나(若乃花)가 운영하는 창코나베 전문점의 서울 분점이다. 와카노 하나는 일본의 유명 스모선수 집안 출신으로, 한국에서는 일본 여배우 미야자와 리에와의 파혼으로 더 유명한 제64대 요코즈나 다카노 하나(貴乃花)의 형이다.
고칼로리 음식이라고 하더니, 와카에서 내는 창코나베에는 돼지고기, 닭고기, 닭고기 경단 등 고기도 들어가지만 새송이버섯·숙주·시금치·배추·부추 등 채소가 더 많이 들어갔다. 닭과 오리를 뽑은 국물에 소금으로 간을 한 ‘시오나베’, 미소된장을 푼 ‘미소나베’, 그리고 미소나베에 김치를 더한 ‘김치나베’가 있다. 일본에서는 맑고 담백한 시오나베를 더 많이 먹는다는데, 한국인 입맛에는 구수한 미소나베나 김치나베가 더 어울릴 듯 하다. 유자에 후추, 소금을 섞은 ‘유즈코쇼’로 양념을 하면 칼칼하다. 건더기를 건져먹고 난 국물에 생라면이나 죽을 끓여 먹으면 식사가 마무리된다.
창코나베는 종류와 관계 없이 모두 1인 2만원으로 비싼 편이다. 스모선수들을 기준으로 개발된 음식인만큼 양은 많다. 3사람이 2인분을 시키면 충분히 먹을 만한 양이다. 라면과 죽은 1인분 5000원. 프랑스 카망베르치즈를 춘권피에 싸서 바삭하게 튀긴 ‘카망베르치즈 튀김’(1만원)이나 ‘닭고기경단’(1만4000원) 등 애피타이저는 스모선수가 문을 연 식당답쟎게 양이 아주 적다. (02)592-9252, 592-45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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