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진해 군항제
벚꽃잔치 여행기 군항제 개막식. 해군 의장대 시범 축하 불꽃 쑈 진해의 중심부. 중원로타리에서 여덟개의 길이 뻗어 있다. 제황산 공원에서 본 진해만. 멀리 거제도가 보인다. 중원 로타리에서 본 탑산(제황산 공원) 온 시내가 벚꽃 천지.. 잘 정돈된 시가지 제황산 1년 계단에서 본 시가지 365계단(1년계단)을 장수한다는 설이 있어 누구나 많이 이용한다. 이 골목도 벚꽃 밭이네~ 어디를 가도 벚꽃 밭이다. 해군 작전사령부 내. 군항제 때만 개방 잘 정돈된 사령부 내 . 거의 50년이상이 된 벚꽃나무. 버스에서 내려서 산책 할 수도 있다. 오랜 수령에도 불구하고 꽃을 엄청피운다. 벚꽃도 유명하지만 소나무도 진해의 명물이다(해군 기지 내) 드라미 촬영지(로망스) 연인들의 테이트 코스. 로망스 촬영지 촬영지의 벚꽃 해군사령부 앞의 북원 로타리. 이순신 장군 동상. 여기서 제사를 올린다. 잘 정돈된 주택가. 진해여고 부근 해군사관학교 정문 앞 남원로타리 해군사관학교 정문을 들어서며. 사관학교 내에 있는 거북선 2차대전과 6.25전쟁때 힘을 발휘한 전투함 함포는 관광품을 변했다. 해사 연병장에서.. 해군사관학교 앞바다에는 우리의 손으로 만든 최신 전투함이 정박해 있었다.기밀 사항이면 즉시 삭제함 해사 앞 남원로타리 시내에서 동부방향 종합 운동장 너머로 진해 군항이 자리 잡고 있다.(기밀 사항이면 즉시 삭제합니다.) 해군작전 사령부에 초입정경 탑산에서 본 진해 시가지 제황산 고원에 우뚝 선 진해탑(옛날에는 로.일전쟁 전승비가 있었으나 철거됨) 내수면어류 연구소. 조용하고 께끗해서 드라마 촬연도 했었다. 시가지 변두리" 이동". 내가 태어 난 집터이지만 도로에 흡수되어 위치마져 아리송했다. 소방서 광장 앞에서. 봄비가 촉촉히 내리고 있었다. 속천 부두에서 본 천자봉 속천 부두 ,작은 섬이 "큰대섬) 분명 봄은 남쪽에서 올라 오고 있었다. 고향이 진해라도 이미 떠난지 몇십년이라 외로움만이 파도처름 밀려 왔다. |
일본은 조선을 침범하면서 진해가 남해 바다에 깊숙히 숨어 있어 해군 기징의 적임지라고 알고 최고의 군항을 만들기 위해 농촌자연 부락 수십개를 쓸어 버리고 미국 워싱톤 다음 2번째로 "계획도시"를 만들었다. (시청홈페이지에는 기록이 없었다.) 시가지 중심에다 둥근 로타리를 만들고 8방으로 길이 갈라지게 만들고 골목들은 전부 직선화 했다. 이 모양이 일본군 해군 깃빨을 상징한다. 빨간 동그라미에 햇발이 비친는 것 처럼.. 진해는 해방 후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의 해군의 핵심 기지로 쓰이고있다. 한때는 3군 사관학교와 육군 대학이 있었고 조그마한 비행장도 있어 6,25때 낙동강 까지 적에게 빼았겼을 때는 미군 전투기와 한국 공군이 이 비행장에서 직접 출격도 했다, 일본은 진해를 영구히 자기 땅으로 만들기위해 일본의 국화인 사쿠라(벚꽃)나무를 집중 적으로 심고 벚꽃을 즐겼다. 해방이 되자 일본의 국화라고 벚나무를 많이 베어버리기도 했으나 "왕벚꽃"이 일본의 국화이지만 원산지가 제주도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진해시에서 옛명성을 되찾고자 다시 어린 묘목을 심어서 지금과 같이 조경했다. 나의 고향은 진해시가지에서 4km정도 떨어진 낙후된 농촌지역인 이동이란 곳이다. 고등학교 2년때 인근의 마산에서 3.15 사태가 나고 곧이어 4.19. 5.16..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을 하자 말자 군에 입대하고 제대 후에도 객지에서 살았다. 고향에 대한 향수를 항상 가슴에 담고 살았다. 몇년 전 부터는 2년에 한번 쯤 다녀오지만 변한 것이 하도 많아 오히려 허전한 마음만 담고 오기도 했다. 2006년 3월 30일에 진해를 다녀 오면서 찍은 사진을 정리하여 올려 봅니다. 소니 W5. 350만화소 소형카메라로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