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빌립보서 4:10-13)23.03.26.주일낮설교
1980년대까지 사람들의 주요 사망원인은 거의 모두 세균에 의한 질병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는 사람들이 거의 모두 스트레스와 관련되는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스트레스가 무엇입니까?
스트레스란 사람이 살아가면서 심한 고통과 아픔을 당했을 때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 육체적으로, 그리고 행동적으로 나타나는 반응을 말합니다. 스트레스는 외부에서 나에게 다가오는 압력입니다.
그것을 감당하면 괜찮은데 못 감당하면 병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서울대 정신과 의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뇌는 현실과 언어를 구별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입으로 ‘짜증나’를 반복하면 그 소리가 귀를 통해 뇌로 전달되고, 뇌는 짜증난다는 소리에 맞추어 온몸에 불쾌한 스트레스 호르몬을 쫙 뿌린답니다.
말버릇은 그야말로 버릇이지만 버릇이 잘못된 말 때문에 스트레스가 생기게 돼서 결국 몸을 해치게 되는 것입니다.
스트레스의 증상이 무엇입니까?
아무 것도 아닌 일인데 자꾸 화를 잘 냅니다.
신경이 예민해져서, 그냥 지나칠 일이고 넘어가도 될 일인데도 자꾸 신경질을 잘 냅니다.
스트레스가 생기면 모든 게 귀찮아지고 자꾸 짜증이 납니다.
마음이 우울하고 외로움과 소외감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니까 불쑥 불쑥 한 말이 남에게 큰 상처를 입힙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스트레스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습니까?
첫째는 내가 사랑받고 있는 존재임을 알아야 합니다.
1절을 보면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했습니다.
빌립보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사랑 받는 존재였습니다.
이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사랑받는 존재입니까?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들을 사랑하시는데 죽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천하보다 귀한존재로 여기시며 사랑하십니다.
미국에 아주 저명한 정신과 의사인 스코트 팩(M. Scott Peck)이 쓴 '아직도 가야할 길'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많은 정신병자 들을 치료하면서 정신병이 왜 걸렸을까?
또 어떻게 해야 정신병자가 나았나?
어디서부터 치료가 되기 시작하나?
그의 많은 경험과 지식으로 이렇게 요약해서 말해줍니다.
먼저 중요한 것은, 병의 책임이 나에게 있다는 걸 인정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때부터 벌써 50%는 병이 낫는답니다. 내 불행의 원인이 남에게 있다고, 세상에 있다고, 남을 원망하는 동안은 절대로 병이 낫지 않습니다. 이 불행의 원인이 나 외에 다른 데 있다고 생각하면서부터 병에 걸리는 겁니다. 억울하고 분해서. 그러나 '이것이 나 자신의 문제다'라고 생각하는 순 간부터 벌써 치료가 되기 시작을 합니다.
두 번째가 이 고통은 나 에게 필요한 것이다. 라고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내가 당하는 고통은 아픔이 지만 내게 꼭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고통과 아픔이 나의 인격을 위하여 꼭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이 시련은 결과적으로 나에게 유익한 것이다.' 이런 마인드를 갖는다면 정신병과 스트레스는 빠르게 치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찬송 563장의 가사가 너무 좋습니다.
1. 예수 사랑하심을 성경에서 배웠네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2. 나를 사랑하시고 나의 죄를 다 씻어 하늘 문을 여시고 들어가게 하시네
3.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히 여기사 높은 보좌 위에서 낮은 나를 보시네
4. 세상사는 동안에 나와 함께 하시고 세상 떠나 가는 날 천국가게 하소서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쓰였네 아멘
우리는 주님께 사랑받고 있습니다.
주님이 나를 사랑한다. 엄청 사랑한다.
이러한 확신을 가지고 살면 스트레스를 이길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습니까?
첫째는 내가 사랑받고 있는 존재임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는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본문 4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했습니다.
우리 마음에 기쁨이 가득하고, 얼굴에 웃음이 있다는 것은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옆에 있는 분들과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보기에 참 좋습니다.”
바울은 무조건 기뻐하라고 권면합니다.
이 말은 무조건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모든 상황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스트레스를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스트레스의 대가 캐나다 한스셀리(hans seyle) 내분비학자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은 1958년 스트레스 연구로 노벨 의학상을 받았습니다. 이 분이 고별강연을 하바드 대학에서 했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내려가는데 한 학생이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 오늘 우리는 스트레스의 홍수시대에 살고 있는 데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한 가지의 비결을 말씀해 주십시요!"
그러자 한스셀리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appreciation" 감사하며 사십시오.!
홍당무를 지은 프랑스 작가 쥘 르나르의 기도문에
신체가 허약해서 아침마다 이렇게 감사드렸다고 합니다.
"눈이 보인다. 귀가 즐겁다. 몸이 움직인다. 기분도 괜찮다.
고맙다. 인생은 참 아름답다." 감사하다.
오늘 아침에 눈을 뜨는 것만으로도 정말 고맙고,
내 발로 이렇게 대지를 버티고 서있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생각해보면 감사의 이유는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감사하며 긍정적으로 살 때 스트레스를 이길 수 있습니다.
어느 과학자가 개미를 연구했답니다. 생명을 가진 곤충 가운데 개미처럼 신비한 곤충도 없습니다.. 그 가느다란 허리를 가지고 하루 종일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일하는 것을 보면 애초롭기까지 합니다.
과학자가 이것저것을 연구하다가 개미는 얼마의 힘을 가지고 있을까? 이게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살펴보는데 어느 날은 개미가 죽은 메뚜기를 질질 끌고 가고 있는 겁니다. 그게 하도 신기해서 일하고 있는 개미를 붙잡아다가 몸무게를 달아보고 메뚜기의 몸무게를 달아보는데, 개미의 몸무게가 얼마나 되겠어요? 개미는 하도 가벼워서 kg이 아닌 g으로 나가잖아요. 놀라운 사실은 개미는 자신보다 60배나 더 되는 것을 끌어간다는 겁니다. 그 몇 g 밖에 나가지 않는 개미가 자기보다 60배나 되는 무게를 끌고 간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했답니다. 개미는 능력 있게 살아가는구나.
우리는 개미보다 귀한 존입니다. 그리고 힘이 있습니다.
주님이 함께하시면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스트레스를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습니까?
첫째는 내가 사랑받고 있는 존재임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는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셋째는 자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 나보다 더 우월한 사람을 보면 배 아픕니다. 나도 모르게 열 받습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생리입니다.
인생은 불만과 부족함의 연속입니다.
재물이 부족하고, 건강이 부족하며, 지식과 지혜가 부족합니다.
기쁨이 부족하고, 행복이 부족하며, 사랑이 부족합니다.
그 외에도 온갖 부족함 투성이 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남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더 많이 가지려고 안달입니다.
오늘 바울사도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빌4:18에 보면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고 고백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도 바울과 같이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을까요?
본문 11-13 절이 해답입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 당시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하면서 세운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이 박해가 심해서 빌립보 교회를 떠날 때 빌립보 교인들은
떠나는 바울에게 사역에 보태라고 헌금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후에도 주기적으로 바울에게 헌금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체포가 되고, 그래서 로마로 압송되고
바울이 감옥에 있는 동안 빌립보교회 교인들이 다시 헌금을 보내 왔는데 이 헌금을 받고 지금 바울이 기뻐하는 겁니다.
10절에 그 보내온 선교비에 대한 감사의 말을 하는 겁니다.
“내가 주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그리고는 이어서 얘기합니다. “그런데, 내가 기뻐하는 것이 그 돈 때문에 내 필요가 충족되어서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서 나의 기쁨과 만족은 환경을 통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에게 능력을 주셔서 기쁘다고 합니다. 11절입니다.
“어떤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 풍부와 궁핍에도 기뻐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13절 말씀 때문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사도 바울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풍부한 삶, 기뻐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물론 인간적으로 볼 때 바울의 생애는 그렇게 행복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굶주리고 헐벗고 병들고 매 맞고 괴로워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풍성한 삶의 비결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그에게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기뻐하는 삶을 산 것입니다.
그의 기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행복했고 기뻐하며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환경 때문에 기쁜 것이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든지 그 환경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신 하나님 계셨기 때문에 기뻐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나는 풍족한 삶을 산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주님 때문에 만족한 것이고, 행복한 것입니다.
환경이 좋아야 행복하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하는 얘기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오는 환경이 안 좋아도 행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환경의 문제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감옥에서 자살하는 사람보다 별장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여러분은 아십니까?
많은 것을 가졌다고 행복한 것은 압니다.
없는 가운데에서도 현재를 만족하며, 자족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더 큰 행복이 오는 것입니다.
다윗과 사울을 비교하겠습니다.
다윗은 주의 말씀만 묵상했고 사울은 다윗을 묵상했습니다.
시편은 다윗이 사울에 대한 적의와 살의를 어떻게 해결했는가를 보여줍니다. 다윗은 아프고 외로울 때 크게 소리쳐 노래 울분을 풀었고 기도했습니다.
반면 사울은 하나님에게 묻지 않고 무당을 찾았습니다.
다윗을 죽이려고만 애를 썼습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스트레가 있을 때 자족하면서 주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스트레스 받을 일이 많으시지요.
하나님이 모든 상황 속에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고 감사하며
기쁘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