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지난 2월 15일 발간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결정적인 오역이 발견되어 지난 4월 1일자로 출간한 제2판에서 바로 잡았다.
<복음의 기쁨> 222항부터 225항에 이르는 부분에서 이탈리어어 ‘tempo’와 ‘spazio’에 대한 번역인데, 1판에서는 ‘tempo’를 “지상에서 영원의 지평을 바라보는 카이로스”라는 의미로 ‘때’라고 번역하였고, ‘spazio’는 한계를 가진 역사적 시간이라는 크로노스라는 뜻으로 ‘시간’으로 번역했다고 ‘역자 주’에서 밝히고 있다.
그러나, 영역본을 텍스트로 삼아 번역을 시도한 박동호 신부(서울대교구)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월 12일자에 먼저 연재했던 번역에서는 ‘tempo’를 시간으로, ‘spazio’를 공간으로 옳게 번역했다. 결국 박동호 신부 역본에서 소제목이 “시간이 공간보다 위대하다”인데, 천주교중앙협의회 2월 15일자 제1판 역본에는 “때는 시간보다 더 중요하다”라고 되어 있다. 이러한 한 단어의 오역은 내용상 엄청난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따라서 천주교중앙협의회는 제2판에서는 ‘때’를 ‘시간’으로, ‘시간’을 ‘공간’으로 고쳐서 다시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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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의 기쁨>초판본과 수정본의 차이가 확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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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사회정치 활동에서 보는 잘못들 가운데 하나는 권력의 시간을 진전의 때 보다 더 중시하는 것입니다. 시간을 우선시 한다는 것은 권력과 자기 과시의 모든 시간을 장악하여 당장에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무모한 시도를 의미합니다.”(천주교중앙협의회 제1판 번역본 223항)
“이따금 사회정치 활동에서 보는 잘못들 가운데 하나는 공간과 힘을 시간과 진전보다 더 중시하는 것입니다. 공간을 우선시한다는 것은 자신을 내세우는 권력의 공간들을 독점하고 모든 것을 현재에 가두어 두려고 하는 무모한 시도를 의미합니다.”(천주교중앙협의회 제2판 번역본 223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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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의 기쁨, 교황 프란치스코, 천주교중앙협의회, 2004 | 한편 <복음의 기쁨> 222항부터 225항에 이르는 내용의 핵심은 ‘시간은 공간보다 위대하다’라는 원칙을 통해 현재의 제한된 공간에서 성취해야 하는 결과보다 복음화를 이루기 위해 걸어가는 ‘여정’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교황은 권고를 통해 “공간을 우선시 한다는 것은 자신을 내세우는 권력의 공간들을 독점하고 모든 것을 현재에 가두어 두려고 하는 무모한 시도”라고 비판한다. 오히려 “사회 안에서 새로운 진전의 과정을 만들어 내고, 그 과정들이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 안에서 열매를 맺도록 다른 사람들이나 단체들과 함께 하는 활동들을 우선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시간을 중시하는 태도는 “단기적인 정치적 이득을 가져오지만 인간의 충만함에는 도달하지 못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교회의 노력이 “인간 삶의 충만함이라는 진정한 대의에 어느 정도 도달했는지” 하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복음화’에도 그대로 적용되며, 아직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하느님 나라의 지평에서 현재를 바라보게 한다고 지적한다.
한편 이번 <복음의 기쁨> 오역과 관련해 주원준 박사(한님성서연구소)는 “이 문서는 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발행한 공식적인 번역이니만큼, 오역된 부분에 대한 공식적인 해명이 있어야 하며, 주교회의 홈페이지 등에 사실 공지와 함께 정오일람표를 게재하는 게 마땅한다”고 말했다. 천주교중앙협의회 측 관계자는 “아직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공식적인 논의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지금여기>에 전했다. 향후 이번 오역과 관련해 잘못된 번역본 회수문제, 또는 잘못된 번역본을 이미 구입한 구매자들에 대한 정본 교환 및 환불조치 등이 따라야 하지 않는가, 하는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