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중세는 신 중심의 시대다. 모든 문제의 답은 신에게서 나왔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고 신이 모든 것을 다스렸다. 근대에 들어오면서 점차 교회의 권위는 무너지고 새로운 과학 지식이 대두되었다. 과학은 이성에 무한한 힘을 부여했다. 이성은 인간이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세상을 파악하게 하는 주요한 요소로 작용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도기에 신 중심의 중세적 사유체계를 무너뜨린 철학자가 데카르트다. 그래서 데카르트를 근대철학의 아버지라고 한다. 그는 신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신이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가 아니라,
신이 만들어 놓은 이 세상을 어떻게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과제였다.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우선 그는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지식을 얻고자 하였는데, 이를 위한 방법으로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의심하고 또 의심해서 더는 의심할 수 없는 것을 찾아내겠다는 것이었다. 이것을 ‘방법적 회의’라고 부른다. 이 회의는 의심할 수 없는 철학적 원리를 찾아려는 노력으로 행해진 것이다.
그가 먼저 의심한 것은 우리의 감각이다. 우리는 감각을 통해 세상의 온갖 사물들을 이해한다. 그러나 이 감각은 불완전하다. 오늘 좋았던 것이 내일은 싫어질 수도 있는 것이 감각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이성에 대하여 검토해 보았다. 이성은 논리적 추론으로 지식을 주는 기반이다. 수학적 지식이나 과학적 지식이 여기에 속한다. 이것들은 명확하고 변함없는 것으로 보인다. 1+1=2라는 명제가 바로 그러한 예이다. 그러나 이것 또한 완전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우리보다 한층 더 뛰어난 악령이 그렇게 인식하도록 우리를 속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악령이 나를 속이려면 ‘나’라는 존재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데카르트가 선언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라틴어로 ‘Cogito ergo sum(코기토 에르고 숨)’이라는 말이다. 회의로 얻어낸 부정할 수 없는 하나의 원리다. 이때 존재하는 것은 ‘생각하는 나’이며 ‘내 몸’이 아니다. 나의 존재는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인간은 태어날 때 어떤 지식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했다. 이를 본유관념이라고 한다. 모든 지식은 이 명확한 본유관념에 기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본유관념에 대해서도 악령이 속일 수도 있기 때문에 데카르트는 신을 가져온다. 전지전능한 신이 인간에게 이성을 주었기 때문에 이성으로써 파악하는 지식은 거짓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한 신이 있기 때문에 속을 염려가 없다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정신과 물질이라는 두 실체를 인정하는 이원론을 제시했다. 정신은 앞서 말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에서 증명되었고, 육체는 우리가 감각할 수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 정신과 육체가 따로 놀기 때문에 이를 조정하기 위하여 우리 뇌에 송과선(松果腺)이란 게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런 역할을 하는 송과선이 있는지는 아직까지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이러한 정신 곧 이성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 동물은 이와 같은 정신이 없는 물질적 존재에 불과하다. 여기서 바로 자연 지배 이데올로기가 탄생했다. 모든 것들은 인간의 정신이 마음대로 탐구할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정신이 없는 육체는 물질일 뿐이므로 마음대로 해부 실험을 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합리화시켜 준 셈이다. 그 결과 유럽은 과학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반면에 시체조차도 인격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 동아시아인들은 과학을 발전시킬 여지가 없었다.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자연을 오직 인간들의 이익을 위해 마음대로 개발하고 다스릴 수 있다는 문제를 야기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도 부인할 수가 없다.
요컨대 데카르트는 방법적 회의를 제시했고 나아가 이성만이 세상을 판단하고 종합하여 진리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한 합리론을 견지한 철학자다. 합리론이란 인간의 이성이 세상을 인식하고 진리를 파악하는 근원이 된다는 논리의 철학이다. 이 이성에 무한한 권능을 부여한 것이 데카르트 철학의 중요한 기여다.
첫댓글 데카르트는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어찌 그리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요? Cogito ergo sum도 아주 짦은 문장인데, 이리 깊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니까요. 좋은 글 여러 번 읽겠습니다.
내일이 한식이지만, 내일 상추 쌈배추 적겨자 등의 모종을 밭에다 심으려고 준비를 했기에 오늘 김천 봉산면 예지리 선산(先山)에 다녀 왔습니다. 조부모님 묘소를 좀 돌보고, 가시덩굴을 잘라내고 하다가 바로 곁에 있는 8대조 5대조의 묘소에도 잔을 올렸습니다. 이상하게 매년 이맘때 선산을 다녀온 뒤에는 좋은 일이 생기더라구요.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은 ‘도대체 무슨 까닭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녁밥을 먹고는 ‘파묘’라는 영화를 보러 가려 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