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식사도 했고... 이제 그다지 어려운 코스는 없을 듯하니
이제부턴 조금 여유롭게 걸어도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는 걸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질 않았지요.
일본에는 그런 단어가 있습니다.
하레온나와 아메온나... 하레온나는 좋은 날을 몰고다니는 여자, 아메온나는 비를 몰고다니는 여자라는 뜻이지요.
저는 확실히 하레 온나임을 이번 여행에서 확신했답니다.
제가 가면 늘 날씨가 좋거든요.
고로... 이번에 날씨가 좋았던 것은 순전히 제 덕이라는... (퍽! 매를 벌어요)
와! 그렇게도 보고싶었던 물파초입니다.
눈 밑에서 살포시 고개를 내민 물파초는 천남성과의 독초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청초해보이기까지 합니다.
꽃에 비해 저렇게 작은 잎이 꽃을 떨어뜨리고 난 후에는 어제 본 군락처럼 커다란 잎으로 우거지게 되겠지요.
예년 같았음 이미 다 졌을텐데 올해는 날이 추워 아직 물파초가 남았다니 운이 좋았네요.
사실 마음만 먹으면 못 올것도 아니었을텐데... 늘 숙제처럼 마음 한 곳에 담아두고 있었던 오제입니다.
첩첩 산중에 둘러싸인 이런 분지에 이렇게 넓은 습지가 있을 줄이야...
일본을 자주 다니다보면 이네들의 이런 대자연은 때때로 부러운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땅을 걸으며 느끼는 편안하고 잔잔한 아름다움만 할까요.
잘려나간 나무 위쪽이 마치 예술작품 같지않나요? 어찌보면 양 같기도하고요.
다들 물파초에 발이 붙잡힌 듯... 한동안 쉬 발길을 떼지 못하십니다.
작은 산장을 하나 지나고 얼마 걷지않아 갈림길이 나옵니다.
일본인 부부가 셀카를 찍는 걸 굳이 뺏어서 한 방 찍어주고는 우리도 찍어달라했습니다.
우리보고 멋있다네요~ 우린 순진해서 말하는대로 믿지요.^^;
사진 찍느라 지체하는 사이 다른 분들은 벌써 저만치 가 계시네요.
실은.... 여기가 갈림길이었답니다.
우리가 후미였기 때문에 별 생각없이 일행을 좇아 갔지요.
유리님과 미틈님은 빨리가서 산죠폭포까지 다녀와야한다고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절 버리셨어요. 엉엉 ㅠㅠ
제가 거의 마지막이다보니 어느 순간 혼자서 걷고 있는데... 오르막 길이 나타납니다.
여기서부터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전에 살펴봤던 지도상의 산길쪽을 선택해 넘어가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드디어 어딘가에 도착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갔더니
거의 대부분의 인원이 이곳에 모였는데... 리딩을 하시는분이 안보이신답니다.
헐~~~ 그럼 누가 여기까지 앞장 서 오신 건가요?
관유서님께서 저보고 얼른 상황을 알아보랍니다.
이번엔 조용히 남들 뒤만 쫓아다니려했건만... 어쩔 수 없이 본색이 드러나게 되는군요.
안내하시는 분께 여기가 미하라시냐 물었더니 황당하다는 표정.
다시 오제누마로 내려가야한답니다.
우리가 지금 막 오제누마에서 올라 왔는데... 처음엔 무슨 소리인지 잘모르겠더군요.
그랬더니 지도를 펼쳐놓고 우리가 지금 있는 곳을 알려주시는데...
아하! 여기는 누마야마토게입니다.
오제로 들어서기 위한 몇군데 들머리 중 하나이지요.
한쪽으로는 버스까지 있습니다. 습원 한가운데에 있는 미하라시에 버스가 다닐리가 만무하지요.
오제 루트 중 미이케 출발이 많은데 그럴 경우 셔틀 버스로 이동해 이곳 누마야마토게부터 걷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일행들께 상황을 설명하고 다시 네시간 정도를 걸어가야한다 했더니
다들 황당해하는 표정... 택시타고 가면 안되냐네요. ㅎㅎ
리딩하시는 분과는 전화 불통. 오제는 일반 전화가 되지를 않습니다. 분명 걱정하고 있을텐데...
휴게소로 들어가 도움을 요청해 우리가 묵는 숙소에 연락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일정표에 있는 숙소로 연락했더니 한국 단체 예약 받은 게 없답니다. 황당~
몇군데 일일이 전화를 해 보고나서야 가까스로 한국 단체손닙을 받았다는 산장을 발견.
이곳에서 12명이 출발해 7시 경에는 산장에 도착할 거라고 전언을 겨우 남길 수 있었네요.
옆에서 가만히 듣고있던 아주머니 한분이 다가오시더니 거들어주시는데 알고봤더니 일본에서 살고계시는 한국분.
가는 중간에 어두어지기라도하면 큰일이니 서둘러 출발을 하려는데
아주머니께서 자신들이 싸가지고 온 주먹밥과 과자등 먹거리를 모두 탈탈 털어 나누어 주십니다.
전체적인 삶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여행이란... 돌발적인 변수와 맞닥뜨리기도 하고
이렇게 뜻하지않은 도움을 받기도, 또 주기도 하는 것이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실로(失路)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시간 2시 50분
아무튼 힘을 내 다시 출발해 보지요.
아자아자 화이팅!!!
누마야마토게에서 오제누마까지 약 1시간정도 걸릴거라했는데 약 40분만에 주파를 했네요.
이곳은 오에습원.
다시 만나는 오제누마가 반갑습니다. 여기에서 오제누마를 따라 우측길로 접어들었지요.
이렇게 의도치않게 다녀온 누마야마토게가 바로 지도상의 보라색 길이었답니다.
얼마 못가 산길이 나타나고요...
산장 아저씨가 어찌나 세세하게 루트를 알려줬는지 루트가 마치 예전에 왔던 것처럼 익숙하네요.
다시 또 습원
어김없이 피어있는 물파초들...
잠시 쉬어다가 가기로... 각자 점심 남겼거나 아까 그 아주머니가 주신 오니기리 등을 먹으며
잠시 말없이 오제누마를 바라다봅니다.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 하나의 추억 거리가 되겠지요.
다시 또 눈 쌓인 숲길을 지나...
다시 또 펼쳐지는 습원 누마지리입니다.
자, 마지막 고비입니다.
이 곳을 넘어가야하는데 거의 에너지가 바닥 나다보니 꽤 힘겹더군요.
눈이 녹고있는 상태라 상당히 위험하기도 했고요.
등산화를 신지 않으신 분들은 많이 힘든 구간이었을 듯합니다.
이 사진을 마지막으로 유리님은 거의 방전 상태.
아침부터 계속 걸었으니 그럴만도 하지요.
저도 걱정했던 무릎보다 발바닥이 많이 아프네요.
드디어 미하라시 도착입니다.
7시쯤 도착할 거라했는데 한시간 앞당긴 6시에요.
미하라시에만 산장이 여섯개나 된다는 것도 이번에야 알았네요.
그나저나 온 몸이 천근만근... 짐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서둘러 씻고 (비누칠, 샴프 앙대요~)
치약대신 소금으로...하지만 일본인들도 치약만큼은 어쩔 수 없는지 최소한의 양으로 쓰더군요.
저녁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오, 함박스테이크... 뭔들 맛이 없겠습니까만은 정말 맛있게 뚝딱 먹어치우고 생맥주도 한잔.
옆에서 관유서님께서 밥을 남기시기에 안된다고 다 드시라고했지요.
하는 수 없이 내려놓았던 수저를 들고 마저 다 드시는 관유서님... 넘 귀여우셔~^^
방에 들어와 그야말로 응급조치 취하기에 급급
발바닥에 테이핑도하고 샤론파스, 동전파스도 여기저기 붙이고 이런저런 약도 먹고 잠이 듭니다.
약 때문이었을까요? 셋이서 자기에는 비좁은 방에서 옆 사람이 밤새 뒤척이든 말든 저는 아주 잘 잤다는 전설이....
첫댓글 참 아름다운 풍경들을 담아 오셨네요
잠잠히 가슴에 남는 풍경이더군요.
에구..고생하셨지만...해피엔딩~^^
평소에 운동을 좀 해야하는데... 갑자기 무리를 했더니 힘들더군요. ^^;
아?
트레킹중에 일행을 벗어나는 수도 있군요...
어쩌든 트레킹 잘 하셨으니 사진으로나마 즐기고 갑니다...............
사진으로나마 즐겁게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