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합의로 삼성생명이 제게 했던 사기행각은 철저히 은폐되겠죠"
<위키프레스>에 제보한 부산의 강모 씨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다. 강 씨는 삼성생명으로부터 '당연히' 받아야할 보험금을 받지 못해 2년간 홀로 싸워왔다. 하지만 더 이상 그의 눈에서 전의를 찾아볼 수 없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지리한 싸움 끝에 자신에게 남은 건 합의금 1천만 원과 화병 밖에 없다"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사실 강 씨의 싸움은 지인 황 씨를 위한 것이었다. 2년 전 당시, 황 씨는 뇌졸중 연계질환인 '열공성 뇌경색'(이하 열공경색)을 앓았다. 보험금 청구조차 혼자 힘으로 할 수 없었다. 이를 보다못한 강 씨는 황 씨의 보험금 청구를 직접나서 도와주었다. 그러나 삼성생명은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강 씨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모든 게 자신의 책임이다 싶었다. 그는 일하는 시간을 뺀 모든 시간을 황 씨의 보험금을 받아내는 데에 썼다. 사회구조적인 문제임에도 힘 없는 자들이 늘 그러하듯 강 씨 또한 그저 '자기 탓'으로 돌릴 수 밖에 없었다.
강 씨는 1인 시위를 비롯, 각종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삼성생명의 행각을 고발하며 고군분투했다. 나름대로 준비도 철저히 했다. 하지만 삼성생명이 친 덫에 말려든 그는 되레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약점을 잡은 삼성생명은 끝내 보험금 2천만 원을 지급하지 않았다. 대신 합의금(삼성은 '화해'라고 주장하지만)명목으로 1천만 원을 지급할 용의가 있음을 여러 경로를 통해 강 씨에게 통보했다.
강 씨는 지칠대로 지친 황 씨의 권유에 못이겨 결국 삼성생명의 제안을 승락했다. 이들은 함께 합의서를 작성하러 갔다. 가뜩이나 모든 상황이 억울했던 강 씨는 황 씨가 합의서를 쓰는 모습을 보며 또 한 번 극심한 굴욕감을 느꼈다. 합의내용 때문이다. 합의하러 온 삼성생명 직원은 피보험자 황 씨에게 부르는 대로 받아 적으라 했다.
"화해금 1천만 원을 보험금 청구에 갈음하고···본인이 게재한 모든 인터넷 게시글, 회사 비방글을 삭제할 것이며 이를 어길 시 화해금을 반환할 것을 확약한다"
강 씨는 다른 건 몰라도 '비방글을 삭제하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삼성생명의 횡포를 한 사람이라도 더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자 삼성생명 직원은 그러면 합의금을 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뿐만 아니라 비방 글을 또 다시 게재할 시 계약위반, 명예훼손 등으로 고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 씨가 부당하다며 화를 내자 황 씨가 나서 '이제 그만하자'며 그를 만류했다. 그리고 황 씨는 직원이 부르는 대로 묵묵히 받아 적었다.
이번 합의로 삼성생명은 얻은 게 많다. 무엇보다 원래 지급해야할 보험금의 절반인 1천만 원만 지급하면 되는 성과를 올렸다. 지급하지 않은 보험금 1천만 원은 삼성생명의 '이익금'으로 산정되어 주주들의 지갑으로 고스란히 들어 갈 것이다. 일부는 이번 사건을 담당한 손해사정사와 지급팀의 인센티브로도 지급 될 것이다. 강 씨의 고발 글들도 깨끗하게 해결됐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삭제한다는 합의서를 받아냈기 때문이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합의서에 따라 합의금을 회수한다고 엄포를 놓으면 된다.
합의서를 작성한 뒤 강 씨는 기자에게 전화해 울먹이며 말했다. "대기업이 국민을 두고 이렇게 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삼성생명은 이렇게 자신들의 행각을 고객들의 눈물로 지워나갔다.
애초, 강 씨는 황 씨의 보험금 청구만 잠깐 도울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황 씨가 들었던 보험은 열공경색을 보장했기에 진단서를 끊어주는 정도면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강 씨는 손해사정사와 만나 필요한 서류를 꾸민 뒤 모두 삼성생명에 넘겼다. 며칠 뒤 강 씨는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삼성생명의 통보를 받았다. 진단명에 따른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코드(이하 질병코드)가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처음엔 무슨 뜻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진단서에는 분명 '진단명-열공경색, 질병코드-I63.8'라고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통상 의사의 진단에 따라 원무과에서 입력하는 질병코드는 사실 '통계청'에서 연구를 목적으로 분류해 놓은 번호일 뿐 다른 목적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보험사는 이 질병코드를 보험금 지급 거절 근거로 악용했다. 방법은 간단하다. 손해사정사는 삼성이 직접 만든 서류양식 하나를 의사에게 내민다. 이어 손해사정사는, 한 의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말로 의사를 구워삶아' 의사가 다른 질병코드를 쓰도록 유도한다. 이 서류를 받은 보험사 보상팀(지급팀)은 '의사가 명확한 진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왜곡 해석하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한다. 황 씨에게 열공경색 진단을 내린 부산 동래구 봉생병원의 내과과장은 황씨의 뇌 MRI를 9년 동안 찍었고, 열공경색으로 판명된 후 3년간 치료 했다. 이러한 의사의 진단명을 한 순간에 '오진'으로 만든 것이다.
(참고-[보험특집1] 삼성생명의 기막힌 말장난에 놀아난 의사와 금감원)
이에 본지는 '질병코드'의 정체를 명확히 하기위해 통계청의 질병코드담당부서 관계자와 전화인터뷰를 시도했다. 관계자는 '보험사가 질병코드를 근거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질병코드는)그런 용도가 아닌데요?"라고 반문했다. 그는 "통계청에서 발행한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코드지침서 2권 11쪽의 '목적과 이용'을 보면, '국민건강을 연구하기위한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다"고 답했다. 질병코드가 의사의 진단명을 대신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진단명에 따라 질병코드가 부여되는 것이지, 질병코드에 따라 의사의 진단명이 결정되는 건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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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코드를 만든 목적은 우리나라 국민의 질병 및 사인을 조사하기 위한 연구자료임을 명시해 두었다 (자료=통계청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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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몰랐던 강 씨는 다른 여러 자료를 인용해 보험금 재청구를 수차례 시도했다. 하지만 강 씨가 발버둥 칠수록 삼성생명이 친 덫은 그를 더욱 강하게 옭아맸다. 특히 자신의 억울함을 대변해주리라 기대했던 '제3 의료기관자문 소견서'와 금감원의 '금융분쟁조정신청 회신문'은 오히려 삼성생명의 보험금 지급 거절논리로 철저히 악용됐다. 제3 의료기관소견서는 봉생병원 의사의 진단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의견을, 금감원은 거의 방관에 가까운 분쟁조정 결과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강 씨는 좌절했다. 그가 느끼기에 더 이상의 싸움은 무모하다 못해 무섭기까지 했다. 이를 지켜보던 황 씨는 당사자인 자신이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황 씨는 삼성생명이 내민 합의서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강 씨는 자신이 올린 모든 글을 스스로 삭제해야만 했다. 뿐만 아니라 삼성생명은 황 씨에게 '위키프레스에 제보해 게재된 기사 또한 삭제요청을 하라'고 요구했다. 황 씨는 기자에게 전화해 기사삭제를 부탁했다. 기자가 이를 거절하자 삼성생명 지급팀에서 기자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냈다.
"보험금 지급이 원리와 원칙에 맞지 않을 경우 결국은 보험료가 더 높아져 소비자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거시적 관점에서 보험금 지급심사는 신중해야···(이번 사안은)의학적, 법리적 논리가 팽팽한, 더 나아가 보험사의 생각이 옳다고 판단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는 현시점에서 '거대보험사의 횡포' 로만 비춰질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한 기사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기사 삭제를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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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보험사 종신보험에서 사망보험금으로 나간 돈은 전체 사업비의 3.8%정도 밖에 차지하지 않는다. 은행 이자에도 미치지 않는 적은 수치다 (자료제공=보험소비자협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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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해당 이메일을 보험소비자협회의 김미숙 대표에게 보여주자 "보험금으로 나가는 돈이 은행이자보다도 적은데 어떻게 이런 거짓말을 할 수 있냐"며 목소리르 높였다. 김 대표는 "종신보험료 수익 117조7천억여 원 중 사망 보험금으로 지급된 돈은 3.8%에 해당하는 4조4천억 원 정도이나, 임직원 수당 및 주주이익분배 등 사업비로 나간돈은 무려 31조1천억 원이 넘는다"면서 보험료 상승요인은 따로 있음을 지적했다. 김 대표는 '보험사의 생각이 옳다고 판단하는 경향이 강해진다'는 내용에 대해서도 "거대보험사의 횡포가 그만큼 심해 진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 이라며 미국의 민간보험 사례를 들며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