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제가 2018년부터 작성해 온 글로써, 매년 조금씩 교정하여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영"에 대한 개념은 많은 학습 또는 깨달음을 필요로 하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이것이 우리가 매일 접하는 물리적인 세계에서의 경험이 아니라 오직 말씀과 그에 대한 묵상으로만 깨달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래는 제가 요즘 묵상하는 말씀입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KJV-하나님 아들의 믿음으로)
많이들 외우고 찬양 가사로도 만들어 부른 구절이지요. "나"라는 존재는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인데 이것은 영적인 영역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내 몸이 죽진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영적인 현실에서 죽은 것은 내 영이 아니라 내 육입니다. 게다가 그 육은 영원히 죽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깨달은 후에 저지른 육적인 죄와 실수들까지도 영적인 현실 속에서는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혀 사라진 것들입니다.
이것을 시간과 공간의 제한 안에서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오직 성령의 조명, 깨닫게 하심으로만 깨칠 수 있는 진리입니다. "나"라는 사람의 옛 자아는 죽었고 이제 살아있는 존재는 "나"라는 육신 속에 계신 그리스도입니다. 나는 그 그리스도를 내 육으로 제한 할 수도 있고 아니면 갈라디아서 2장 20절 같은 말씀을 깨닫고 묵상하므로 나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사시도록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할 수 있는 근거는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죽으신 하나님 아들의 믿음(KJV), 또는 그분을 믿음(NIV)으로 가능합니다. 즉, 나의 정체성은 새 사람이며 하나님의 아들이 목숨바쳐 사랑한 존재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는 말입니다.이것을 믿지 못할 때, 여전히 자신을 옛 자아로 봅니다. (성경에는 옛 자아가 아닌 옛 사람이라고 되어 있으나 보통 옛 자아라고 통용되기 때문에 옛 자아라는 표현을 쓰겠습니다.) 그렇다면 옛 자아란 무엇일까요? 몇 가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자기 자신을 자신의 죄 또는 다른 사람의 죄의 피해자로 인식하는 경우
강간당한 나, 또는 강간을 저지른 나.
불륜을 저지른 배우자에게 피해 받은 나, 또는 불륜을 저지른 나.
상처를 받은 나, 또는 남에게 상처를 주며 살았던 나.
등등
2. 자신의 성격으로 자기를 보는 경우
두려워하는 나,
분노하는 나,
미워하는 나,
사사건건 상처받는 나,
반골 기질로 저항하는 나,
그 외 교육학과 심리학에서 말하는 온갖 기질을 가진 나,
등등
3. 주변 환경에 제한 받는 자기 인식하는 경우
배운 게 없어서 못하는 나,
없는 집에 태어나서 안 되는 나,
가족 문제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쫒아가지 못하는 나,
특정 지역 출신이기 특정 정당을 지지해야 하는 나.
그러나 하나님 말씀은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이 모든 것이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어떠한 죽으심이었습니까? 인류의 모든 죄와 허물을 다 처리하신 죽으심이며 물과 피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쏟아버리신 죽음입니다. 즉, 죽지 않은 옛 자아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나를 바라 볼 때 하는 말들은 이렇습니다. "두려워. 나는 상처 받았어. 용서할 수 없어!"
예수님이 두려워하실까요? 예수님이 상처 받으실까요? 예수님이 용서 못하실까요? 이제 내(나의 옛 자아)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영적 현실을 깨닫고 내 삶에 적용할 때, 얼마나 놀라운 자유가 임할까요?
희안하게도 말입니다, 놀라운 계시일수록 모두가 안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이해하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바로 그렇습니다. 교회 1, 2년만 다녀도 갈라디아서 2장 20절은 수 없이 듣게 됩니다. “그래, 뭐 예수께서 내 안에 계시지.”하면서 대부분 다 알고 있는 진리입니다. 하지만 그 이해의 깊이는 다 다르며 이렇듯 깨달음을 필요로 하는 계시들은 그만큼 우리 삶에 분명한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계시들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해 사신다.’는 이 진리는 내가 깨닫는 만큼 나의 삶에서 실제적으로 역사하게 될 것이고 내 삶뿐만 아니라 세상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내 삶에서 실제적으로 역사한다는 것은 위에 열거한 옛 자아의 정체성에서 벗어나 기쁨과 평안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고 세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 계시를 가진 사람들은 지금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바라볼 때, 그리스도와 같은 생각으로 접근하게 됩니다. 말씀도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mind)를 가졌다고 증거하고 있고요(고전 2:16). 그래서 걱정하거나 패닉하지 않고, 또는 무관심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도 애걸복걸하는 기도가 아니라 다스리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하실 만한 기도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지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이 진리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