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야기]
재공연 서편제서 기립박수받고 펑펑 울어...
삶의 무게가 반짝인다 돌아온 '송화'
차지연
신정선 기자/조선일보 : 2012.03.07.
고3때 집안 망해, 소녀가장 생활 - 당시엔 힘들었다, 독하게 맘… 재작년 첫 무대 관객 20명뿐
'나가수' 코러스로 유명세 - 하루아침에 대중스타 변신, 서편제는 내게 치유의 뮤지컬
지난 3일 서편제 재공연 이틀째 날, 첫날 이자람에 이어 주인공 송화 역으로 무대에 선 차지연(30)은 커튼콜 때 펑펑 울었다. 비 오듯 눈물 흘리는 그녀에게 3층까지 들어찬 관객의 기립 박수가 쏟아졌다. 6일 공연장인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만난 차지연은 "아, 내가 이 박수를 받아도 될까, 싶었다"고 말했다. "꼭 보답해야지, 열심히 살아야지, 재삼 다짐했어요."
그녀에게 이날 박수는 각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10년 8월 초연, 이자람이 송화 역을 맡은 개막날 관객은 꽉 찼다. 둘째 날은 차지연이었다. "무대에 나갔는데, 관객이 스무명 정도밖에 없는 거예요. 순간 울컥했어요. 하지만 곧바로 마음을 돌렸어요. 그래, 이분들한테만이라도 내 온 마음을 쏟은 송화를 보여드리겠어, 좋았어!" 그간의 사정을 아는 서편제 음악슈퍼바이저 김문정씨는 지난주 공연팀 회식 때 차지연의 손을 잡고 "고생했다, 잘했다"며 울먹였다.
그녀는 지난해 5월 '우리들의 일밤―나는 가수다'에서 '빈 잔'을 부르는 임재범의 코러스로 섰다가 하루아침에 대중 스타가 됐다. 가슴 밑바닥에서 끌어올린 듯한 목소리로 '미친 존재감'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노래 한 곡으로 대중을 사로잡을 정도로 그녀의 소리에는 내공이 있다.
삶에서도 '내공'을 쌓았다. 판소리 인간문화재였던 외할아버지 덕분에 세 살 때부터 북채를 잡았다. 고비는 고3 때 닥쳤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집안이 풍비박산되며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 대전에 살던 그녀는 하나뿐인 여동생 손을 붙잡고 서울행 기차에 올랐다. 신촌 반지하에 단칸방을 얻었다. 학교가 파해 돌아오면 동생이 오도카니 방에 앉아 기다렸다. 살아야 했다. 그것도, 열심히 살아야 했다.
‘서편제’송화 역의 차지연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그래야 '좋은 기운'이 관객에게 전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오넬컴퍼니 제공
"어머니는 부도 수습하기도 힘들 정도로 몸이 안 좋았고, 동생은 잔병치레가 잦았어요. 두 팔 두 다리로 돈 벌 수 있는 건 저밖에 없었죠." 학교가 파하기 무섭게 호프집으로 출근했다. 새벽 4시까지 호프집에서 맥주를 나르고, 식당에서 밥을 볶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참 만에 들어간 대학은 결국 자퇴했다. 은행에 단기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었다. 카드 발급 신청 서류를 정리하고, 커피도 탔다. 한 달에 70만원을 벌었다.
"뮤지컬 하면 한 달에 140만원 준다더라"는 소리를 들었다. 일본 극단 시키(四季)가 올리는 '라이언 킹'이었다. 오디션에서 앙상블 1번으로 붙었다. 도쿄에서 연수할 기회가 생겼다. 극단 근처 주차장에서 편의점 삼각김밥을 꾸역꾸역 넘기며 '라이언 킹' 음악을 들었다. 운도 따랐다. 당연히 주술사 라피키 역을 맡으리라 여겼던 한국 배우가 캐스팅 발표 직전에 극단을 그만뒀다. "발표 벽보에 제 이름이 라피키로 붙은 걸 보고 한동안 멍했어요."
그녀는 뭘 해도 독하게 한다. 뮤지컬 '드림걸즈'(2009)에서 뚱뚱한 가수 에피 역을 맡고 한 달 만에 15㎏을 찌웠다. 우유 500mL에 꿀 반 통 비율로 만든 우유꿀물을 온종일 물처럼 마셔댔다. 공연 후 다시 그 살을 다 뺐다. 무작정 굶고 무섭게 운동했다. 인터넷에는 그녀의 성형 전후 사진이 돌아다닌다. "배우니까, 단점을 보완하고 싶었어요. '성형 전후' 사진을 공개하는 조건으로 공짜로 수술해주겠다고 해서 했어요. (성형 얘기해도) 괜찮아요. 사실이니까요."
얼마 전에 "돈을 모아 모아서" 산 상도동 아파트에서 세 모녀가 산다. 모친은 큰딸이 무대에 설 때마다 운다고 한다. 차지연이 "딸 같다"고 하는 동생 차엘리야(24)는 서편제에서 남자 주인공 동호를 사랑하는 미니의 대역이다. 기회가 되면 자매가 무대에 설 수도 있다. "마음속 상처를 쏟아내는 서편제는 제게 치유의 뮤지컬이죠. 좋은 배우 이전에 좋은 사람이 돼서 좋은 기운을 관객에게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