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네 번째 파리 재앙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파리떼예요. 파리 때 여기서 단순히 이 파리 떼는 파리 한 종류만을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은 것 같아요. 파리와 같은 여러 종류의 해충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재앙이 연속되잖아요. 이제 네 번째 재앙이잖아요. 보통 재앙이 연속되면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유를 생각해 왜 이 재앙이 계속해서 나에게 닥칠까 그런데 바로는 재앙이 이제 네 번째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워요. 정말 이렇게 바로에 대해서 좀 규정을 하면 바로는 재앙이 통하지 않는 사람인 거죠.
우리가 교회에서 만날 수 있는 최악의 사람, 세상에서 만날 수 있는 최악의 사람이 재앙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여러분 불신자도 재앙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요. 정말 대책 없는 사람이죠. 성도도 마찬가지예요. 재앙이 통하지 않는 것은 대책 없는 성도예요.
파리떼 재앙은 죽을 만한 재앙은 아니지만 엄청나게 불편한 재앙이긴 해요. 그 불편함에 하나님의 방향과 하나님의 뜻과 생각이 담겨 있다고 바로가 생각하지 못한 거죠. 하나님은 분명히 뜻을 담아서 재앙을 바로에게 내린 거예요.
근데 이 바로는 완악한 사람이라 하나님의 뜻이 담긴 재앙을 해석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다섯 번째 재앙도 여섯 번째 재앙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너무 민감해서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과하게 해석하는 것도 문제지만 감각이 없어서 사소한 일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방향을 놓쳐서도 안 되는 거예요. 두 가지가 같이 있어야 되는데 너무 민감하게 해석하는 것도 조심해야 되고,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담겨져 있는 작은 일들도 놓쳐서는 안 된다니까요.
여러분 우리 가정에 일어나는 작은 일들이 때로는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담고 있을 때도 있어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성도는 이것을 볼 수 있어야 되는 거죠.
바로는 네 번째 재앙은 그냥 견딜 만한 재앙인 거예요. 파리 떼의 재앙이니까. 근데 이 재앙에는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담겨 있어요. 근데 바로는 재앙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을 만큼 아주 완악한 사람 이었습니다. 어쩌면 바로는 파리 때 재앙이라서 너무 쉽게 봤을 수도 있어요.
여러분 우리는 경고나 재앙이나 사고나 어려움이 통하는 성도여야 돼요. 그래야 하나님도 재미있지 않을까요? 경고하면 금방 알아차리고 얘기하고 하나님 입장에서 분명히 경고했는데 못 알아차리고 못 깨달으면 하나님도 얼마나 분노하시고 화가 나시고 짜증이 날까요?
하나님 입장에서도 성도가 때로는 작은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셨는데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시겠어요.
근데 교회 안이든 세상에서든 간에 재앙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여러분 특별히 교회를 오리다 다닌 사람들, 저처럼 모태 신앙인 사람들, 또 교역자들, 어쩌면 교회 안에서 가장 조심해야 될 사람일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재앙이 안 통할 수도 있거든. 하나님은 크고 분명한 일들을 통해서도 말씀하지만 때로는 큰 위협이 되지 않는 사건들을 통해서도 당신의 방향과 계획을 말씀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못 깨닫는 거죠. 왜냐하면 재앙이 통하지 않는 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오늘 본문의 특이점은 이 재앙이 파리떼의 재앙이 애굽 사람들에게 임했다는 거예요.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하지 않고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이 당시에 고센 땅에 머물렀는데 그 땅에는 임하지 않고 애굽 사람에게만 임했어요.
이게 어떤 의미냐 하면 재앙을 경험하는 이들을 구별함으로 통해서 구별하신 거죠. 하나님의 계획을 더 메시지를 더 선명하게 말씀하신 거예요. 그러니까 이 메시지는 바로를 향한 것이고 이 메시지는 애굽 사람들을 향한 것이라고 하나님이 재앙의 지역을 한정을 지음으로 말미암아 선명하게 하신 거죠.
여러분 출애굽을 표면적으로는 바로만 방해한 것처럼 보여요. 그런데 출애굽을 바로만 과연 방해했을까요? 이 당시에 이스라엘은 다 이렇게 노예는 아니었어요. 어쨌든 해석이 좀 분분한데 어쨌든 우리가 일반적으로 노예로 알고 있잖아요. 이 노예가 반드시 국가적인 노예만은 아니었을 거예요. 개인 지배도 분명히 이들이 노예의 역할을 했을 거예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애굽 사람들도 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풀려나는 것이 피곤한 일 불편한 일일 수도 있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재앙을 특정 지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고 선명하게 보여주신 거죠. 하나님은 분명하게 바로와 애굽 백성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거주하는 고센 땅에는 재앙을 내리지 않고 그 외에 타리대로 다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은 우리의 상황과 또 여건들을 잘 조절하셔서 나를 향한 메시지를 더 선명하게 하실 때도 있어요. 어떨 때는 하나님 메시지가 목장 교회 전부를 위한 것 같은 메시지도 있어요.
근데 하나님이 때로는 이 메시지를 어떤 사건들을 통해서 축소시켜요. 이 메시지가 분명 누구를 향한 것인지를 축소시켜서 알려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거예요. 이런 거 하나님은 내 삶에 일어나는 온갖 종류의 다양한 일들을 통해서 나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좀 더 분명하고 선명하게 전달하기를 원하시는 분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과 저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내 삶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통해서 나에게 구체화되고 있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우리가 정확하게 알아들어야 된다는 거죠. 처음에는 모든 성도를 향한 메시지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사건과 어떤 것들을 통해서 점점 이 메시지가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를 하나님이 선명하게 하실 때가 있어요.
어떨 때는 목장 교회를 향한 메시지처럼 보이지만 그 메시지가 담임 목사인 저를 향해 있다는 사실을 제 주변에 일어난 사건들을 통해서 분명하게 하실 때가 있어요.
여러분도 마찬가지죠. 하나님이 목장 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하신 메시지처럼 보이지만 사건들을 통해서 여러분 개인에게 여러분 가정에게 항암 메시지라는 것을 선명하게 하실 때가 있다는 거예요.
그게 이제 사건인 거죠. 그러니까 이 네 번째 재앙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 메시지가 바로와 유다 애굽 백성들을 향한 메시지라는 것을 선명하게 하신 거예요. 선명하게 그런데도 바로와 애굽 백성들은 못 알아들었습니다.
여러분 시간이 지날수록 사건과 여러 가지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나를 향한 메시지를 분명하고 선명하게 해요. 어쩌면 지금도 하나님은 여러분의 가정과 여러분의 기회를 향한 메시지를 사건과 여러 가지 일들을 통해서 선명하게 하고 계실지 몰라요.
근데 우리가 바로처럼 재앙이 통하지 않는 사람 사건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못 알아듣는 거죠. 그러니까 이 지경 이 나쁜 단어인데 이 지경이 되지 않도록 우리가 경계해야 되는 거죠.
하나님 분명히 말씀하세요. 이런 사건들 저런 걸 통해서 이 메시지가 나를 향하고 있다는 것 만약에 목사인 제가 재앙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될까요?
불행한 사람 왜 나 때문에 여러분의 재앙을 받을 수도 있거든요. 그 반대도 마찬가지죠. 여러분 만약에 성도인 여러분이 재앙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주변의 사람들이 고통을 당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정말 올바른 성도로서 살아가려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구별해 낼 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 번도 우리 삶에 끊어지지 않습니다. 지금도 분명히 하나님은 이렇게 성경을 읽는 일들을 통해서 또 말씀을 듣는 일들을 통해서 또 이런 사건들을 통해서 내게 향한 메시지를 자꾸 선명하게 해요.
그런데 우리가 못 알아차리는 거죠. 하나님은 점점 더 선명하고 점점 더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셔요. 근데 내가 어떤 사람이 재앙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 이 메시지를 못 알아차리는 거죠.
여러분 요즘 여러분에게는 어떤 메시지가 들리고 또 보이시나요?
이게 들려야 돼요. 보이셔야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한 번도 우리를 향해서 말씀을 거두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정말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에게 말씀을 거둘 때도 있어요.
그냥 아예 말씀의 문을 닫아버린 거죠. 그런 것이 아니라면 지금도 하나님 말씀을 하고 계시고 특별히 그 메시지가 나와 아니면 때로는 우리 가정과 또는 우리 교회를 향한 것이라는 것을 이런저런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선명해 가실 때가 있다는 거예요. 그때 우리는 그 하나님의 메시지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하고 알아차릴 줄 알아야 됩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여러분과 저의 지금의 마음의 상태는 바로와 애굽 백성들처럼 재앙이 통하지 않는 상태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을 전하고 있고 여러분이 말씀을 듣고 있고 지금 여러분이 열심히 봉사를 하고 신앙생활을 해서 겉보기에는 그렇지 않게 보일 수 있으나 실제로는 어쩌면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재앙이 통하지 않는 영적인 상태로 지금 머물러 있을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될까요?
말씀이 통하지 않는 날을 하나님께 내려놓아야 되겠죠. 재앙이 통하지 않는 날을 하나님께 내려놓아야 되겠죠. 작은 사건에 담긴 메시지도 구별할 줄 알고 작은 변화에 담긴 하나님의 생각도 구별할 줄 아는 성도가 되어야 우리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과 저에게 이런 믿음의 문이 활짝 열려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