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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동주해외작가상 수상작
수상자 이월란
수상작 눈의 집 외 4편
본심 장석주 나희덕 이병률
예심 김미희 권귀순 신지혜 정국희 한혜영 임혜신
눈의 집 외 4편
결이 고울수록 단단해진단다
눈더미를 눈칼로 잘라 만든 눈벽돌이 필요했을 때
따뜻한 슬픔은 흐르기 쉬워
얼지도 녹지도 않을 추상적인 체온을 갖게 된다
깨어나고 싶지 않은 동면에 든다면
슬픔은 에스키모들이 낳았을까
길섶에서 산 이글루는 한 가족이 들어가기에 딱 좋은 눈의 집이었다
바다표범의 내장으로 끼운 창문에 눈을 자르던 고래의 뼈가 보인다
배고픈 짐승의 발자국 소리는 응답 없는 질문 같다
내가 보는 세상은 내게만 보인다는 이상한 소리 같다
식어가는 관계를 모두 끊어낸 후
내가 기억하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눈 내리는 소리가 들릴 즈음엔
슬픔이 풀릴 때까지 얼음평원을 걷고 또 걷는 에스키모처럼
그래서 화가 풀리면 비로소 멈춰, 왔던 길을 뒤돌아 걷는다는
겨울 보초를 서고 난 뒤 동상에 걸렸다는 사람처럼
이불 속에서도 발이 차다
아직 오지 않은 겨울에 아직 서지 않은 보초를 서듯
오지 않은 슬픔을 미리 가지듯
사냥을 못 해 환기 구멍이 없는 돔 속에 앉아있다
물개 지방을 태우는 얕은 접시 위의 슬픔은 아직 먹어보지 못한 맛이야
슬픔 속에서 꺼낼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나를 가진 열 달 동안 엄마는 바탕화면처럼 슬펐을 거야
폭설로 종점이 자꾸만 바뀌는 겨울 버스에 올라
설산이 푸르도록 신비했던 바탕화면을 엄마처럼 깔아두었다
어둠의 겹을 여러 번 걷어내면 슬픔이 흰색이라는 걸 알게 돼
백지 위에 내리는 눈 같은 것
아무하고도 나눌 수 없는 허기 앞에 놓인 작은 빵 같아서
수건을 쓸 때마다 돈을 내야 한다는 알래스카의 숙소 같아서
어떤 땐 너무 아까워 조금씩 흘리며 쓴다
썼던 슬픔을 다시 쓸 때도 있다
닿지 않아도 이가 시린 얼음의 어투로
슬픔이라는 계절을 지나고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슬픔 없이 알게 되는 것은 믿지 않는 것이 좋다
순록의 털로 덮인 눈침대는 찬 빛을 품고 자기에 좋다
눈이 녹고 있다
흐르듯 멎듯
메멘토 모리*
꽃이 불을 만나 사라졌으므로 모니터에서 화약 냄새가 난다
살구 사진에 마우스를 대면 침이 고였다
늘 속고 있었다
독립을 선언하고 떠나버린 탄저균 같은 기억이 총기 난사하듯 터져 나왔다
누군가의 독립은 누군가의 고립이었다
노란 불꽃이 부케처럼 터졌을 땐 생수에서 레모네이드 냄새가 났다
그럴수록 약속은 허무해지고 용서는 하찮아지고
개연성 없는 깜빡깜빡 3초 사이
트라우마에 잠긴 반신이 포탄 소리에 죽었다 깨어난다
뭐든 처음이었던 나는 이브였다
가득 쌓인 고허가 눈부셔 안간힘을 쓸수록 내가 여기 없었다는 부재의 증명이라고
뜨거워진 폐허 속에서 재를 뒤집어쓰고도 꼬물꼬물 일어서는 살아있음, 비눗방울을 잡으려다 엎어지는 이제 막 돌 지난 아기가 가슴의 돌을 가져간다 뭐든 입으로 가져가는 조막손을 잡고 먹음 안 돼요, 별빛 시린 두 눈 속으로 들어갈 때마다 누구에겐지 모를 미안하다는 말이 구슬처럼 툭 떨어진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천국에선 엔딩노트 같은 자음과 모음을 가르쳐야겠다 아기를 붙들고 관속 체험을 한 듯 더 오래 밖에 있고 싶어진다 어딘가에 매달리고 싶은 벼랑 끝에서 아장아장 걷다 손익은 무덤가에서 터지는 웨딩 불꽃
비뚤게 주차된 차를 보고 짜증이 나던 날 나의 차도 비뚤어진 걸 나중에야 알아차렸다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사이드미러를 조금 움직여 사각지대를 줄여본다
어둠이 발라낸 7월의 사막
더 이상의 식민은 없다고 단청 입은 하늘이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귀마개를 쓴 아기를 꼭 껴안아 본다 허구가 아니다 마더 구스 책을 들고 까딱까딱 춤을 추는 아기 옆에서 나는 나무다 이브에게 금단의 열매로 유혹하는 사과나무, 불에 타지 않게 그늘을 키우는 꿈을 꾼다
누구의 소행인지 알 수 없는 불꽃놀이가 한창이다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
사슴이 온다
겨울 한가운데였을 것이다
완성된 풍경화 가운데 떨어진 나뭇빛 짐승 한 마리
창 너머 셀폰 터지는 소리를 들었을까
안개꽃 문신이 사향 내를 뿌리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갑자기 나타나는 것들이 있다
읽다 만 책 속에 끼워둔 북마크 같다
먹이처럼 삼켜지는 줄거리 없는 흉몽 한 입
죽은 엄마의 두 발, 수치스러웠던 대문, 부끄러웠던 운동장, 놓쳐버린 비행기, 올려다보던 하늘에서 떨어지던 눈물, 자꾸만 꺼지던 땅, 멀어질수록 가까워지는 얼굴
갑자기 보이는 것들은 모두 어딘가로부터 천천히 온 것이다
누군가는 먹이를 찾으러 왔다고
누군가는 바이러스 때문이라고 했다
포식자든 사냥꾼이든 도망쳐 온 길은 사방이 수줍어진다
미세한 거짓이 쌓여 단단한 진실이 되는 걸 보았다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돈을 모으던 엄마가 죽었을 때
그녀마저 비로소 거짓이 되었다
이 많은 진실들이 단 하나의 거짓을 향하고 있다면
곧 사라질 저 사슴 한 마리는
기억의 협곡을 헤치고 왔을 것이다
거짓의 영역에 뛰어든 진실처럼 당당하다
믿고 싶었던 헛소문처럼 빼앗긴 들판에 뛰어든 봄처럼
홀로 떠도는 응시
먼 것이 다녀간 뒤 바람의 방향이 바뀌곤 했다
사슴 발자국 위에 집을 짓고 문을 잠근 뒤
손에 들고 있던 마지막 경계
두 손을 모으면 기도가 되는 나이가 되어서도
휘저어도 끊어지지 않던 알끈 같은 묘한 당김으로
칼끝에서 벌어지는 사과 같은 시간
아삭아삭 풀밭을 거닐고 있다
벨벳을 다 긁어먹고도 배가 고픈 큰 눈망울이 두리번거린다
사슴피를 마시고 사슴이 되었다는 시름시름 앓던 아이 같기도
사자의 뱃속에서 꿈틀 다시 살아난 꿈같기도 해서
외래종이 되어
사슴 앞에 다시 나타난 나를 돌려세운다.
서로를 침범하는 저 가느다란 다리는
과거에서 왔다
미래에서 왔다
앞집 뒤뜰이 겅중겅중 사라진다
-『스토리문학』 2023 상반기호에 게재
지중해
별장의 발코니가 키우는 바다가 있습니다
반달 오이와 깍둑썰기 토마토만 떠올리기엔 샐러드가 너무 한가합니다
포트 보방을 뜬 요트가 세공된 도시를 싣고 달립니다
침몰할 리 없는 바다는 말이 없습니다
한 뼘 건너 통역되지 않는 아우성이 그림 같은 닻을 올립니다
출항하는 노예선은 벌써 만선이었습니다
발 디딜 틈 없는 꿈이 장난감처럼 출렁입니다
총구와 허기 대신 지불한 손끝에 해진 목숨을 걸었습니다
벽에 걸린 바다가 종말을 싣고 떠다닙니다
피카소 박물관에서 걸어 나온 폭음이 입체적인 바다를 물들입니다
게르니카에서 목이 꺾인 아이는 엄마의 절규를 모릅니다
아무도 용서하지 않은 하늘의 별 같은 허물
낮아진 하늘이 샐비어처럼 타오릅니다
뒤집어진 파도 사이 버려진 인형들이 떠다닙니다
어둠과 한 몸으로 떠오른 외계인들을 하나둘 건져내는 노아의 방주
남루해진 비명이 한 마디 두 마디 요트에 실립니다
햇살 같은 요트가 분홍새우처럼 먹이고 입혀 뭍에 부려놓았습니다
몇 개의 모국어가 울음소리로 부서지는 혼혈의 바다
물과 어둠, 한 뼘 사이로도 해가 집니다
난파된 국적을 싣고 떠나던 꿈이 스스로 닻이 되어
닻줄에 휘감긴 닻이 되어 바다의 몸속에 정박합니다
가물대는 난바다 수평선에 막 태어난 섬들이 걸려 있습니다
적나라해진 바다가 알몸처럼 반짝입니다
파도에 밀려온 사망시점은 한 컷 뉴스의 송고 시간입니다
화려한 요트가 언제든 인출 가능한 잔고처럼 평화로운 물 위에서
그들은 기묘한 항로 위에 나란히 떠 있었습니다
고요한 어둠이 촘촘히 지워가는 물의 기억
그날의 노을이 샐비어보다 조금 더 붉어졌을 뿐입니다
학과 시드니』 3호 2023
모래와 안개의 집*
주소를 발설하는 순간
솔솔 흘러내리거나 뿌옇게 모였다 흩어지는
속이 훤히 비치는 여름옷 같은 곳이었을까요
투명한 리빙박스 같은 곳이었을까요 우리가 꿈꾸던 그곳은
집이 없는 동네에서 태어나는 악몽을 꾼 뒤
이방인이 되지 않기 위해선 지붕과 벽이 필요하다고
나눠가질 수 없는 땅 위에 각자의 집을 지으면
뾰족한 지붕 위에서도 터를 닦는다고
돌아가고 싶은 곳이 어디일 줄 알고 사람들은 집을 지을까요
흘러내리는 것을 움켜쥐는 순간과
흩어지는 것을 다시 모으는 사이
여자는 투명이 더 투명해질 때까지 창을 닦고
남자는 날아오다 부딪힌 새의 사체를 쓸어 담는 곳이라고
하루 종일 잡초를 뽑다 허리를 편 순간
정갈한 정원이 아닌 뽑혀 나간 잡초였음을 들키지 않게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가 서로를 가두는 곳이라고
이 집에 살다 간 사람들을 닮아가는 걸까요
그들이 떠나간 곳을 알 수 없으므로
여긴 따뜻한 곳이야
여긴 무성한 곳이야
벼룻집 같은 어둠이 칸칸이 쌓이는 방 하나쯤 어느 집에나 있다고
거짓에 변명을 조금씩 개어 쌓아 올리다보면
손바닥만 한 경첩으로도 언제든 열리고 닫히는 기억의 문
그럴수록 거대한 진실처럼 떠억 버텨주는 것이라는데요
빈터만 보면 뿌리를 내리는 습성으로
어제의 옆집으로 이사를 온 뒤
허물어진 귀퉁이로 들려오는 모래와 안개의 웃음소리
*Andre Dubus Ⅲ의 소설 제목을 빌려옴
-시집 『바늘을 잃어버렸다』(2023년 4월)
수상소감
메그 울리처의 소설이 원작인 영화 The Wife를 보고 있었습니다. 조안의 남편 조셉에게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전화가 걸려옵니다. 조안 부부는 손을 맞잡고 침대 위에서 점프를 합니다. 그리고 심상찮게 클로즈업되던 조안의 눈빛과 표정 사이로 그들의 어두운 비밀이 선명해질 때쯤 동주해외작가상 수상 소식을 받았습니다.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아서인지 영화 속 노벨상처럼 놀라고 기뻤습니다. 마음은 벌써 강아지를 끌어안고 침대 위에서 소심한 점프를 했지만 윤동주 시인의 이름 앞에서 저의 시들이 한없이 초라해지는 부끄러움은 상과 함께 제가 감당해야만 하는 벌이었습니다.
돌아보니 이민의 삶은 정신적인 팬데믹을 수시로 겪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음과 모음의 백신으로 견뎌왔나 봅니다. 바다를 건너오지 않았다면 많은 것들이 시를 대신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처음 시를 썼을 땐 한글을 다시 깨우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 때의 설렘을 잊지 않겠습니다. 단지 배설의 한 방법으로만 치부해버리지도 않겠습니다. 견딤과 즐김, 그 사이 펄럭이는 백지 위에서 나는 자주 내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나는 시를 쓴 적이 없습니다. 시가 나를 쓰고 있었습니다.
유타에선 로또가 불법입니다. 로또를 사기 위해 네바다나 와이오밍의 주경을 넘나들 듯 저의 반경을 넘나드는 욕심인 것 같아 응모작을 보낼 땐 시를 떠나보내는 느낌이었습니다. 수상작이라는 귀한 이름으로 다시 돌려주신 장석주, 나희덕, 이병률 심사위원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바다 위에 떠있는 해외교민들의 글을 그물로 건져내듯 소중히 읽어주시는 시산맥과 동주해외작가상을 만드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국경 너머 주소도 없이 떠도는 시들에게 반짝이는 집을 지어주시는 시산맥에 늘 감사합니다. 저의 시를 읽고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언제나 저를 읽고 이해해주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더욱 미안하고 더욱 고맙습니다.
2023년 9월 유타에서, 이월란
이월란 (Wolran Kim)
1964년 경북 김천 출생
1988년 도미(현재 유타 거주)
2009년 계간 『서시』신인상 등단
2014년 유타주립대학교 비교문학과 졸업
2008년 제2회 경희해외동포문학상 시 입상
2010년 제4회 경희해외동포문학상 시 입상
2011년 제13회 재외동포문학상 시 우수상
2012년 제6회 경희해외동포문학상 시 입상
2012년 SLCC Chapbook Contest 당선
2007-2012 Korean Times of Utah 시 연재
2013년 제7회 경희해외동포문학상 단편소설 입상
2021년 제23회 재외동포문학상 단편소설 대상
2023년 제8회 동주해외작가상 수상
미주문인협회 이사
시집 『모놀로그』 『흔들리는 집』 『The Reason』
『오래된 단서』『바늘을 잃어버렸다』
E-mail: adelalee1228@naver.com
심사평
이번에 진행된 제8회 동주해외작가상에는 세계 각지에서 30여 분이 응모를 해주셨다. (해외 및 국내 등단 10년 이상, 2014년 이전 등단) 예심을 맡은 기수상자 6분은 5명의 본심자 명단을 보내주었으면 가장 많은 득표순으로 6명의 작품이 본심에 올랐다.
「데스밸리 빠져나오는 방법」 외 9편
「눈의 집」 외 9편
「초록 뱀이」 외 5편
「퍼즐 맞추기」 외 6편
「손수건」 외 8편
「발코니」 외 9편
위의 본심에 오른 작품은 무기명으로 본심위원께 이메일로 전해졌다. 직접 대면 심사하기 전에 2-3명의 작품을 추천하였고 본심에서 거론된 최종 작품은 「눈의 집」 외 9편이었다.
본심에 오른 응모 작품들은 어느 것을 수상작으로 해도 수준작이었다. 다만 시의 진정성과 미학적인 감각에서 조금 더 깊이를 가진 작품이 수상작이 되었다.
이국이며 타국에서 모국어로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자체로 형벌이며 슬픔이다. 궁지에 내몰리는 듯한 괴로움들이며 쓰고 써도 해방되지 않을 것 같은, 부서져버릴 것만 같은 고민들로 더 가라앉을 것만 같은 책상 위에서의 형편 때문이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의 말대로 인간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 세상에 던져진’ 상태, 즉 피투성(被投性,Geworfenheit)의 존재로 살아가는 우리들이겠지만, 더 그러한 환경과 분위기 속에서 시를 써야 하는 해외작가들의 작품 앞에서는 더 그런 생각을 했다.
제8회 동주해외작가상을 수상하게 된 이월란 시인의 시들에는 저편 세상에서 이편을 향해 갈구하는 목소리가 어떤 절박함으로 스며들어 있었다.
“두 손을 모으면 기도가 되는 나이” (「사슴이 온다」)까지 살아오다 보니 “누군가의 독립은 누군가의 고립”(「메멘토 모리」일 거라는 체험적 인식을 받아들이게도 되었지만 “닿지 않아도 이가 시린 얼음의 어투로”(「눈의 집」)에서 살아야 하는 운명은 “난파된 국적을 싣고 떠나던 꿈이 스스로 닻이 되어”(「지중해」) 먼 곳에 도착해 “이방인이 되지 않기 위해선 지붕과 벽이 필요”(「모래와 안개의 집」한 시인으로 살고 있다. 굉장한 고립이다.
그런 것처럼 이월란 시인은 사람 사이에 있을 법한 흔한 존재방식이 아니라 공(지구) 이편과 저편의 존재방식을 충돌시켜 시를 발화한다.
심사위원들은 몸부림의 언어에 끌렸다. 변방에서 어떻게든 안쪽 중심으로까지 가닿게 하려는 목청 좋은 소리와 울림들이 이월란 시인의 세계에는 당도해 있었다. 흐린 눈으로 불투명한 세계를 어떻게든 보겠다는 의지도 그녀의 시에서 퍼득거렸다.
단편의 영상을 보는 듯한 「사슴이 온다」, 풍경을 우아한 손놀림으로 비늘 벗기듯 벗겨내 배치하는 「지중해」, 한기를 온몸의 쓸쓸함으로 녹여 말려내듯 써낸 「눈의 집」에서 보여준 내밀한 시에로의 밀착을 우리는 외면할 수 없었다.
미국 유타라는 곳은 어떤 곳일지 상상할 수가 없어 구글 지도에서 찾아보았다. 그곳은 왠지 먼 별(星)일 것만 같으며 여기보다는 더 추울 것만 같아서 지도만 들여다보는 것으로 감정을 멈췄다. 이월란 시인은 이 상으로 인해 춥지 않을 것이고 자신의 별을 더 반짝, 단단히 가꿀 것이다. 수상을 축하한다. 이월란 시인이 사는 그쪽 별에서는 이럴 때 어떻게 축하를 하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시인이라서 다 안다. 이번 수상이 천만캐럿의 다이아몬드 광채로 이월란 시인의 시 영혼을 밀어줄 거라는 것을. 그래서 더 축하한다.
심사위원 장석주(시인) 나희덕(시인) 이병률(시인. 글)